로데오 거리를 가다
택시를 타고 마냥 로데오 거리를 외치면 아무 곳도 갈 수 없다. 서울 시내에만 로데오 거리가 다섯 군데가 넘기 때문. 요즈음에는 쇼핑과 맛집이 모여 있는 거리라면 어디든 로데오라는 이름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찾아가 봤다. 서울 시내의 로데오 거리들은 이랬다.
글 | 정예진·사진 | 김범석
럭셔리보다는 독특한 개성이 먼저
압구정 로데오 거리
▲ 독특한 브랜드 매장과 체인 레스토랑이 나란히
▲ 가을이 시작되면서 거리로 내몰린 여름 슈즈들
“군인도 압구정 로데오에 들어갈 수 있나요?”
몇 해 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고민 상담 문구다. 이 고민이 얼마나 진지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성실한 대답들에 자신감을 얻었다는 댓글까지 단 것을 보면 농담은 아니었던 것 같다.
휴가 나온 군인말고도 같은 카테고리에는 비슷한 질문을 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옷을 이러이러하게 입을 예정인데, 이렇게 입고 압구정에 가도 되겠느냐는 질문도 많았다.
아마도 압구정은 가장 럭셔리한 젊은이들의 거리이자 유행의 첨단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생각에 유행에 뒤떨어지는 옷차림을 하고 있으면 벌금이라도 물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나 보다.
여기서 말하는 압구정이란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에서 시작해 디자이너클럽이라는 고릴라가 매달린 건물의 맞은편에 이르는 로데오 거리를 말한다.
사실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는 럭셔리한 패션숍이나 레스토랑이 거의 없다. 명품 브랜드는 청담동 일대에 모여 있고, 정작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는 대중적인 브랜드 숍 몇 개와 커피 전문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을 뿐이다. 그대신 보세 관련 숍들이 많다.
압구정 로데오에서 쇼핑을 하려면 이 숍들을 공략해야 한다. 거리 특성상 연예인과 모델 등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보세숍이라고 해도 브랜드 신상품보다 빠르게 최신 트렌드를 따른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 쉽지 않은 희소성 있는 디자인의 옷들도 자주 눈에 띈다. 외국에서 직접 수입한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과 한정판 슈즈, 백들도 눈여겨보아야 할 품목.
그러다 보니 웬만한 브랜드 제품 가격보다 비싼 경우가 허다하지만, 품질은 좋은 편이다. 물론 계절이 바뀔 때에는 한 켤레에 1만원밖에 되지 않는 구두들도 흔하다.
남성들을 위한 숍이 많지는 않지만 정장이 아닌 캐주얼 쇼핑은 할 만하다. 명품 디자인을 따르는 스니커즈, 특이한 프린트의 티셔츠들이나 정식 수입되지 않는 모자, 넥타이 등 액세서리 등을 골라 볼 수 있다는 것이 압구정 로데오의 가장 큰 장점. 가격은 1만원대에서부터 수십만원대까지.
주의해야 할 점은 흔한 동대문 제품들까지 값비싼 제품들 사이에 끼어 있어 비싸게 살 수 있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보고 구입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젊은 남성들을 위한 쇼핑 거리
건대입구 로데오
▲ 아무거나 골라잡아도 내 스타일
건대입구에 대한 이미지는 각양각색일 것이다. 이미 이곳을 다녀간 지 몇 년이 지났다면 술집과 시장이 늘어선 거리로 기억할 것이고, 롯데백화점을 중심으로 들어선 멀티 플렉스로 좀 더 깔끔한 이미지의 건대입구 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쇼핑하고는 좀처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곳도 브랜드 숍이 늘어선 로데오 거리가 있다. 마치 백화점의 한 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곳은 사회 초년생이 쇼핑하기에 적당하다.
본, 지오 송지오, 코모도 등 젊은 20~30대에게 인기가 좋은 남성 정장 브랜드들이 즐비하다. 정장 브랜드들이 끝나면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 숍들이 연이어 있다. 컨버스, MLB, 콜럼비아 등이 있어 멀리 갈 필요없이 비슷한 제품들의 비교 쇼핑을 할 수 있다.
건대입구역 롯데백화점 맞은편에서 시작되는 골목은 길지는 않지만 알차다. 문정동처럼 아웃렛 숍이 아니기 때문에 신상품도 구입할 수 있고 학생 할인, 그리고 시즌이 지난 상품들도 구비해 놓아 저렴한 쇼핑도 가능하다.
로데오 맞은편의 시장 골목은 여전히 인기 많은 주점들로 꽉 차 있어 오후 시간에 쇼핑을 시작해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은 건대 로대오만의 특징이다.
▲ 문정동 큰 길 대로변에 있어 시원스럽다.
다양한 브랜드 제품들을 한 자리에
문정동 로데오 거리
▲ 문정동 입구의 랜드마크 진짜 로데오!
▲ 365일 세일, 또 세일
▲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브랜드
문정동 로데오는 오래 전부터 브랜드 아웃렛 숍이 모여 있는 거리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지역에도 아웃렛 숍이 많아지고 또 값싼 인터넷 쇼핑몰이 늘어나면서 요즈음에는 그 위상이 옛날 만큼 못한 것이 사실.
하지만 백화점만큼이나 많은 브랜드들을 만날 수 있고 꼭 아웃렛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지 않아도 통상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활용만 잘한다면 문정동 로데오는 여전히 쇼핑을 즐기기에 괜찮은 곳이다.
문정동에서는 최신 트렌드 제품보다는 기본적인 아이템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언제나 무난한 컬러의 일자형 청바지만 고집하거나 프린트가 없는 티셔츠, 기본 셔츠 등을 주로 쇼핑할 예정이라면 문정동은 최고의 쇼핑 장소 중 하나다.
신제품이 아닌 한 시즌 지난 제품이거나 정식 수입 제품이 아닌 병행 수입 제품들이기 때문에, 스테디셀러 위주의 제품들을 찾아본다면 브랜드 제품을 절반도 되지 않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리바이스의 시즌이 지난 501 제품들은 약 3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DKNY나 CK부터 디젤 등의 프리미엄 청바지들도 일반 가격보다 큰 폭으로 싸게 팔기 때문에 선택의 폭도 넓다.
튀거나 최신의 유행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싼 가격으로 좋은 제품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문정동의 가장 큰 장점.
빈폴이나 폴로 같은 매 시즌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들을 고르는 것도 아웃렛 쇼핑의 노하우가 될 수 있겠다.
이 거리에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주변에 맛집이나 커피 전문점이 많지 않아 쇼핑하는 재미가 조금은 떨어질 수 있다는 것. 보세 숍에 비해 이른 시간에 문을 여니 저녁 시간보다는 이른 시간을 이용해 실용적인 쇼핑을 하는 것도 좋겠다.
진짜 로데오 거리는 어디?
원조 로데오 거리는 미국 비벌리 힐즈에 있는 명품 쇼핑 거리. 이 이름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번화가 대부분을 로데오 거리라고 부른다.
위에서 설명한 로데오 거리 외에도 서울 시내에는 목동, 신림동, 천호동, 가리봉동 로데오 거리가 있다. 전국적으로도 대부분의 시내에는 로데오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원조 로데오 거리와 가장 흡사한 곳을 찾으라면 아마도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청담동 사거리에 이르는 명품 거리일 것이다. 또 로데오라는 이름은 붙어 있지 않지만 상수역에서 합정역에 이르는 뒷 골목들은 병행 수입한 명품과 트렌디한 보세 옷이 혼재한 새로운 쇼핑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