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1-9
잘못된 관용 / 은혜목회정보
북왕국의 아합왕은 이스라엘 여인과 결혼하지 않고 베니게의 여인인 이세벨과 결혼했다고 했다.
그런데 아합왕이 이세벨과 결혼한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의 국토를 보면 대부분은 요단강 서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을 때 법궤를 앞세워서 요단강을 건넜지 않았는가?
그런데 사실은 요단강 동쪽에도 이스라엘의 국토가 조금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난 뒤에 요단강을 건너기 바로 직전에 갓, 르우벤, 므낫세 반지파가 가만히 보니까 요단강을 건너가기도 전에 너무 너무 기름지고 좋은 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은 요단강을 건너가서 전쟁을 함께 할 테니까 사는 것은 이곳 요단강 서쪽에 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중에 제일 먼저 땅을 분배 받았던 곳입니다.
그곳이 바로 길르앗 지역입니다. 요단 동쪽에 있다고 해서 트랜스 요르단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국토가 요단강 동쪽에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그 땅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는 사람들도 두 지파 반 밖에 안 사니까 그 사람들 가지고는 다른 민족들이 쳐들어 올 때 그 땅을 지킬 수없고, 또 누가 쳐들어왔다고 해서 요단강 서쪽에 있던 사람들이 군사를 보내면 군사가 가는 동안에 다 약탈당해 버립니다.
그러나 그 땅이 너무 기름진 땅이고 또 그 땅을 얻으면 동시에 홍해까지 이르는 무역로(당시에는 왕의 대로라 했다)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그 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합도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단강 동편에 있는 국토까지 다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국력은 눈에 띄게 시들어 집니다.
그런데 이 아합이 왕으로 즉위할 때 그 땅을 노리던 주변의 나라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아람이라고 하는 나라가 가장 크고 강한 나라였습니다. (아람은 다메섹으로도 불립니다.)
고민, 고민 하던 아합이 이럴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더불어 동맹을 맺어서 힘을 키워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혼한 것이 바로 페니키아의 공주인 이세벨과 결혼하게 된 겁니다.
동맹을 맺으려고 결혼했으니까 정략결혼이지요.
그런데 정력결혼을 했으면 부인을 적당히 돌보는게 보통인데 이 사람은 그만 푹 빠져버려가지고 페니키아가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우상을 대대적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이 아무리 정략 결혼을 하고 동맹을 맺어도 아람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람의 왕으로 있던 벤하닷이란 사람은 요단 동쪽에 있는 길르앗 때문에 자꾸 분쟁이 일으나니까 아예 이스라엘을 정복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군사를 몰아서 요단을 건너 쳐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벤하닷도 자기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주변의 여러 소수민족들과 동맹을 해서 왔는데 성경을 보면 32명의 왕들과 협력을 해서 군사를 일으켰다고 되어 있습니다.
벤하닷은 요단을 건너서 사마리아까지 진군했지만 이스라엘은 벤하닷의 군대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벤하닷은 그 많은 군사를 가지고 사마리아성을 완전히 둘러싸버렸습니다.
성만 무너드리면 끝이 납니다.
벤하닷이 성을 무너뜨리기 전에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에게 전갈을 보냈다.
항복을 하면 받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항복의 조건이 무엇인가?
1) 사마리아에 있는 은금은 다 가져오라는 겁니다.
2) 사마리아의 부녀자들을 다 데리고 가겠다는 겁니다.
결혼한 여인까지 뺏아가면 이스라엘이 어떻게 됩니까? 말이 안되는 소리지요?
3) 그 외에 좋은 것들은 무엇이든지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내일까지 시간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남자들만 죽이지 않는다 뿐이지 말 그대로 이스라엘에 있는 것은 싹 쓸어가겠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차라리 전쟁을 해서 전멸을 하더라도 싸우는 편이 훨씬 났습니다.
아니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메달려야할 때입니다.
다른 지도자들은 다 싸우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용기가 없었습니다.
군사력을 보니까 모든 면에서 비교가 안된다. 아람군이 너무나 막강하다. 전쟁을 하나마나입니다.
아합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막다른 길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바로 이런 아합에게 하나님의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아합을 도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13절을 보니까 이 일을 통하여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떠한 분 이신가를 아합에게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 그러니 이제까지 잘못해왔던 것 이번 기회에 회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라는 말씀이다.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아합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군사를 모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군사를 모으기는 모으되 어떤 이들을 군사로 모으게 하셨습니까? '소년들' 우습지 않습니까?
왜? 아무 힘도 쓸 수 없고 경험도 없는 소년들로서는 전쟁에 승산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벤하닷의 군대는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소년들을 세우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알라고.
아합은 이 소년들을 앞세워 전투를 벌였고 7일 동안 두 차례의 전투 끝에 아람군대는 완전히 무너지고 아람의 왕이었던 벤하닷은 도망다니다가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아합왕에게 투항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아합이 투항하는 벤하닷을 자기 병거에 올려주고 형제처럼 대해주고 서로 약조를 하고는 보내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합에게 진노하셨습니다.
42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저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저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 위기는 누구에게나 다 찾아온다는 겁니다.
아합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위기를 맞았습니다.
아합은 그런 위기 앞에서 용기도 없었고 또 아합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으니 하나님을 바라볼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가 섬겨오던 그 모든 우상들은 막상 이런 순간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마디로 끝이 난 셈입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 때문에 왕만 끝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끝이 나 버렸습니다.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이게 인생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생의 위기라는 것이 사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다 찾아옵니다.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지 않을 때는 자기가 최고인줄 압니다. 자기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막상 어떤 위기를 만나면 그대로 좌절하고 맙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서 어떻게 할까,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합니까?
2.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할 때에도 늘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합이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그는 끝났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사람들은 아합의 죄 때문에 모두가 멸망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합을 도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요? 아무리 범죄했더라도 아합도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잘못했다고해서 무조건 잘라내 버리지 않습니다. 언제나 또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의 생애가 다 할 때 까지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3. 누가 인생의 주인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합은 투항하는 벤하닷을 자기 병거에 올려주고 형제처럼 대해주고 서로 약조를 하고는 보내주었습니다. 관대한 태도입니까? 아닙니다.
벤하닷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모욕과 굴욕을 주며 용납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았더라면 벤하닷은 자기가 요구하던 엄청난 만행을 실천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합은 그런 벤하닷을 살려주면서 약조를 맺습니다.
자신이 무슨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처럼 거드럼을 피우는 겁니다.
실제로 위기속에서 아합을 건져주신 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실을 분명히 깨달으라고 군사를 세우데 소년들을 세우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위기속에서 아합을 건져주시니까 오히려 아합은 승리에 취해서 모든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참 능력을 알고 이제야말로 거짓된 우상들을 버리고 돌아서서 참 하나님의 뜻대로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은 그런 기회를 차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합의 거만과 거드럼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 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누구이신지 분명히 인식하고 그 주인앞에서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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