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새벽의 빛깔을 지닌다, 권옥연 ‹상형(象形)›
권옥연, ‹상형(象形)›(1959) 캔버스에 유화물감, 155.5x112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AI가 들려주는 박혜성 학예사의 명화이야기모든 것은 새벽의 빛깔을 지닌다, 권옥연 ‹상형(象形)›
순수를 꿈꾼 ‘무의자(無衣子)’의 시적 회화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을 담아라.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Auguries of Innocence)’ 중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이 실은 껍질일 뿐이라고 한다면, 진정한 알맹이는 그 껍질 속에 들어있는 알맹이를 감지하는 마음의 눈이 아닐까. 한 톨 모래에서, 한 송이 들꽃에서, 평범한 손바닥에서 무한, 영원, 우주, 삼라만상의 조화를 발견하는 정신적인 눈. 우리는 단어 하나에 우주를 담으려 고뇌하는 시인이 이런 귀한 눈을 가진 드문 존재임을 안다. 이번 호에서는 시인의 순수한 눈을 지닌 화가 권옥연(權玉淵, 1923~2011)의 예술세계를 소개한다. 권옥연은 한 인터뷰(1986)에서 “동심은 인간의 아버지”라 주장했던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를 인용하면서 “단순하고 순수하고 창조적인 인간만이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어머니의 태(胎)에서처럼 ‘벌거벗은 아이’라는 뜻의 호= 무의자(無衣子) 권옥연의 절제되고 단순한 회색조 캔버스에는 시인이 지향했던 ‘태고의 순수와 영원’이 흐른다.
권옥연은 지난 호 소개했던 김종하와 마찬가지로 일본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또 권옥연은 김종하와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로 건너가 ‘그랑 쇼미에르 아카데미(Académie de la Grande Chaumière)’에서 삼 년간 수학했다. 함흥의 대단한 명문 집안의 5대 독자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게 한자와 붓글씨를 배우고 바이올린에 능한 아버지 덕에 자연스럽게 서양음악을 익혔다. 그리고 서울로 내려와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화가의 꿈을 다졌다. 이 학교는 권옥연 외에도 유영국(1916~2002), 장욱진(1917~1990), 이대원(1921~2005) 등 훗날 한국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를 여럿 배출했는데, 이렇게 된 데에는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27년 한국에 건너와 제2고보에서 미술교사를 지낸 사토 구니오(佐藤九二男, 1897~1945)의 역할이 컸다. “그림을 그릴 때에 꽃이면 꽃, 그것을 보는 앞에서 그리지 말고 뒤로 돌아서서 그려라”던 스승의 가르침은 평생 눈에 보이는 외피 너머의 세계를 추구했던 권옥연 예술세계의 근저(根底)에 자리 잡았다.
권옥연, ‹양지›(1956) 캔버스에 유화물감, 153x193.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권옥연은 전쟁이 한창인 시절 동경에서 충실히 서구 모더니즘 미술을 학습했다.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고향›(1948, 한국산업은행 소장)과 이 작품과 여러모로 흡사한 ‹양지›(1954)는 황량하고 너른 산하를 뒤로하고 상의를 벗어 검은 피부가 더욱 눈에 띄는 한 무리의 여인들을 그리고 있다. 그럴듯하지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과 향토적 풍경이 만들어 내는 연극성, 그리고 강렬한 원색은 타히티 시절의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을 상기시킬 만큼 원시주의적 감성이 물씬하다. 이 초기작 어디에서도 도불 이후 작가의 시그니처가 된 회색과 추상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현실 너머의 세계에 대한 그의 관심이 이미 청년 시절 배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권옥연, ‹꿈›(1960) 캔버스에 유화물감, 71x10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옥연, ‹회고›(1965~73) 캔버스에 유화물감, 116.5x91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1957년 도불 이후 권옥연의 작품 세계는 완전히 변한다. ‘우화’, ‘신화’, ‘전설’, ‘비전(秘傳)’, ‘회고’, ‘태동’, ‘꿈’ 등의 제목을 지닌 도불 시기 작업은 한국적 또는 향토적 초현실주의라 평가받는다. ‘초현실주의’라면 초현실주의 선언(1924)에서 정의된 ‘오토마티즘’, 또는 “해부대 위에서 만난 재봉틀과 우산(로트레아몽),” ‘편집증적 비평(살바도르 달리)’ 등 도발적이고 번뜩이는 작품들이 연상되고, ‘초현실주의’라는 용어로 이 연배 한국 작가의 예술세계를 수식하는 것이 어색할 수 있다. ‘환상적’이라 해도 충분할 텐데 유독 사용하기 조심스러운 이 단어가 권옥연에게만은 너그러이 사용되는 이유는 초현실주의 운동을 이끈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1896~1966)이 권옥연의 작품에 "동양적인 쉬르(초현실성)"가 있다고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브르통이 발견한 “동양적 초현실성”이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 사실 브르통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와 계속해서 초현실주의의 정체성을 재구축하고 경계를 확장해 나가던 참이었다. 그와 초현실주의 동료들에게 ‘초현실’은 결국 혁명을 통해 다다르고자 한 유토피아였고, 동시에 유토피아에 이르는 방법이기도 했다. 브르통은 초현실이 “삶과 죽음, 현실계와 상상계, 과거와 미래, 소통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높은 것과 낮은 것이 모순적으로 감지되기를 그치는 어떤 정신의 한 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다다르기 위해 초현실주의자들은 다른 모더니스트들처럼 전통과 결별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대신, 무의식, 꿈, 놀이, 전통, 신비주의, 그리고 동양(오리엔트)을 포함한 이색적인 문화를 자유롭게 끌어들였다. 초현실주의가 특정 시간과 공간에 제한된 하나의 예술 사조에 머물지 않고 생의 신비와 비밀을 드러내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자 바란 것이다. 당시 브르통은 한국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이미 1920~30년대 이후 일본 초현실주의자들과 진지하게 교류했기 때문에 아시아 문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권옥연, ‹풍경›(1957) 캔버스에 유화물감, 53.5x64.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파리에 도착해서야 동양적 정체성에 눈을 뜨게 된 권옥연은 어려서 조부에게 필묵으로 한자를 배웠던 체험을 바탕으로 갑골문, 한자 등 상형문자를 작업에 도입했다. 문자면서 동시에 형상인 상형문자는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한 진정한 ‘이미지’ 즉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이자 “시적 상상력의 산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미지’는 “친숙한 현실과 사물을 독특하게 결합 또는 변형해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들고 현실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만든다. 한편 작가는 유화 본래의 반짝이는 질감을 없애려고 신문지로 기름기를 빼내고 석재와 방해말을 써서 오래된 퇴적물처럼 풍부한 시간의 층을 내포한 마티에르를 만들어냈다. 이는 에른스트(Max Ernst)가 만들어낸 초현실주의 기법 중 하나인 프로타주(frottage)처럼 의도치 않은 심상을 만들어 낸다. ‹상형›(1959)에서처럼 형태와 물질에 의해 촉발된 이미지는 “환시적(幻視的)이고 주술적인 형상”으로 변한 “태곳적의 어떤 기억” 혹은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집단적 상징”을 소환한다.
브르통은 제2선언에서 초현실주의의 “심원하고 진정한 은비(隱秘)”를 요구한 바 있다. 그는 우주에 깃들어 있는 은밀하고 우월한 어떤 체계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한 신비주의를, 상대적인 모순들이 화합하고 융합하는 정신의 지고한 지점 즉 삶과 유리되지 않은 ‘초현실’에 이르게 하는 길 중 하나로 여겼다. 권옥연의 예술세계는 신화 혹은 꿈의 세계와 현실 세계, 정신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 추상과 구상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초현실’에 가까워지는데, 현실 너머의 영역을 ‘지금 여기’로 끌어오는 데 오브제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권옥연, ‹토기›(1964) 캔버스에 유화물감, 72x108.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권옥연, ‹목정(木精)B›(1964) 캔버스에 유화물감, 130x12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옥연의 작품에는 상형문자 이외, 동물도 식물도 광물도 아닌, 원생체 같은 둔중한 형태가 화면을 가득 메운다. 때로는 유기물 때로는 무기물처럼 보이는 형태는 토기, 목기, 청동기, 한옥이나 장승, 솟대 등 토속적인 오브제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권옥연은 특히 신라 토기를 집중적으로 수집했는데(그리고 정말 ‘초현실적’이게도 남양주에 궁집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한 고택(故宅)을 모았다), 그에게 오래된 기물(器物)은 민족적 정체성과 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데 멈추지 않고, 화가 자신과 관람자를 환상과 상상의 세계로 진입시키는 매개물이 되었다. 권옥연은 사물을 변형함으로써 사물 자체의 한계와 시공간의 유한성을 초월한 세계를 만들어 냈는데, 이러한 연금술의 영토는 매우 가변적이고 원초적인 생명의 이미지로 충만하다.
작은 구멍이 여러 개 뚫린 청동기를 소재로 한 ‹목정(木精)B›(1964)는 그 특유의 짙푸른 색감이 심해의 생명체 혹은 광활한 우주 속 행성을 연상시킨다. 무기물이 유기물로 바뀌고, 시간과 공간은 무한하게 이동한다. ‘목정’은 메탄올의 북한 말로 생명에 치명적일 만큼 유독하지만 용매나 화학물을 생산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 독특한 제목은 작가가 마치 연금술사처럼 ‘변화’ 혹은 ‘융합’에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주고, 작품은 제목이 암시하듯 모든 물질로 변화 가능한 근원성에 대한 탐구로 읽을 수 있다.
작가 특유의 회색 역시 그러하다. 회색은 검은색과 흰색 ‘사이’에 위치한 중간색이다. “팔레트에 짜 놓은 원색 물감을 보면 나는 거부감을 느낄 때가 있어. 어떤 때는 무섭기도 해”라고 고백했던 그가 보기에 “어지럽고 산란한 원색의 화폭”에는 “다정다감한 시인의 밀어가 없고 대화”가 없었다. “색이 없는 듯하면서도 있고, 앙금처럼 차분히 가라앉은” 회색은 새벽의 색이다. 밤에서 낮으로 가는 통로와도 같은 시간, 항상 다시 시작하는 재생의 시간, 죽음 안에 삶을, 삶 안에 죽음을 내포한 시간. 그리고 세상을 점차 희미하나마 빛으로 뒤덮으며 모든 대립하는 경계들을 무너뜨리는 이질적인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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