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희
나는 잠을 자면서 꿈을 많이 꾼다. 바다를 다녀온 날은 잠을 청하며 눈을 감으면 출렁이는 파도 소리도 들린다. 꽃을 보러 간 날은 예쁜 꽃 속을 거닐기도 한다. 그런 날은 꿈속에서도 모래사장을 거닐고 있다. 꿈은 낮에 생각하는 것들의 연장이거나 원하는 것들을 이루는 상상의 세계다. 남편은 잠자기 전 무서운 영화를 보면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피하고, 스도구처럼 머리쓰는 일도 잠을 방해한다며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내 생각에 꿈은 보통 새벽에 꾼다.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개운 하련만 나는 꿈을 자주 꾸어서인지 아침에 일어나면 오히려 무겁다. 피곤함을 느끼는 것이 꿈 때문인지 잘 모르지만 일어날 때가 제일 힘들다. 어느 날은 꿈속에서 남편에게 방금 꾼 꿈 얘기도 하니 참 웃긴다.
잠을 깬 뒤 기억나는 기분 좋은 꿈도 있다. 아버지가 떠나시고 몇 달 후, 내 마음에 아픔으로 남아있는 짐을 벗겨준 꿈이다. 아버지가 삶의 문을 닫으려는지 아무 미동도 없이 숨만 쉬고 계신 밤이었다. 가족이 모두 돌아간 깊은 밤 병원에 아버지와 단둘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안으며 귀에 대고 "아버지, 엄마는 우리가 잘 보살펴 드릴테니 힘든데 걱정하지 말고 떠나도 되요. 아버지 딸이라 행복했어요. 사랑해요"라며 말했다. 몇 시간 후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마지막 이사를 떠나셨다. 내 마음은 후회와 아픔으로 가득했다. 아버지가 눈을 감고 계셔도 귀로는 다 들으셨을 텐데... 가시지 말라고 해도 떠나셨을 텐데...왜 나는 조금 더 참지 못했을까? 아무리 아버지를 위한 마음으로 드린 말이었다 해도 듣는 아버지는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한동안 그 마음이 짐이 되어 아파하며 지내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내 꿈속으로 찾아와 주셨다. 회사에 근무하는 중이었다. 누가 찾아왔다는 말에 밖에 나가니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저만치 서 계셨다. 꿈에서도 얼마나 반갑던지 어린아이처럼 마구 달려가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아버지의 목에 매달린 나를 두 팔 벌려 안아 등을 토닥거려주신 꿈이다. 그 꿈은 나를 더 이상 아파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메세지였다.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꿈으로 인해 안 좋은 기억도 있다. 신혼 초, 악몽을 꾸는 나를 남편이 깨웠다. 무슨 꿈을 꾸느라 그렇게 끙끙거리느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나는 눈도 뜨지 못한 채 남편에게 말해주었다. 계단이 하늘까지 닿을 듯 높이 있는데 어떤 남자가 나를 계속 쫓아와 도망가는 중이었다고. 너무 무서웠다는 내게 어떤 남자를 생각하고 잤길래 꿈까지 꾸느냐며 남편은 화를 냈다. 나는 그런 남편이 어이없어 토라지고. 그 꿈으로 결혼 후 처음 몇 일 을 냉전 상태로 지냈다. 보통 꿈을 꾸고 깨면 가물거려 생각이 안 나는데 그 꿈도 생시처럼 잊히지 않는다.
지난주 일요일이다. 가끔 교회에서 집으로 올 때 장로님 차를 함께 타고 온다. 그 날은 얘기 중 꿈 얘기가 나왔다. 갑자기 권사님이 운전하는 남편을 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당신이 얘기해드려" 하고 또 웃는다. 잠시 후 장로님이 웃으며 꿈 얘기를 했다. 일찍 잠자리에 든 날인데 늦은 밤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왔단다. 한창 꿈속에서 황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 전화 때문에 깨어 속상했다며 말했다. "제가 왕족이었어요, 파티를 열어 무도회장에서 가면을 쓴 멋진 여성들과 돌아가며 춤을 추는 중이었는데... 너무 좋았는데 그 전화가 오는 바람에 ..." 지금도 아쉬워하며 말하는 장로님의 표정에 나도 덩달아 웃으며 안됐다고 했다. 뒤이어 하는 말이 더 우스웠다. 왜 그 사람은 그 시간에 전화를 했는지? 조금 더 늦게 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에 많이 속상했단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잘 때 그 꿈을 계속해서 꾸고 싶었는데 안 꾸어지더라며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말하면서도 계속 아쉬워하는 모습에 "장로님도 남자셨군요" 라는 내 말에 셋이 합창을 하듯 크게 웃었다.
꿈을 자주 꾸는 나에게 악몽을 꿀 때면 나름대로 방법이 한가지 있다. 핸드백이나 빨간 지갑을 잃어버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당황하며 찾아 헤메는 꿈을 가끔 꾼다. 어느때는 여행중 일행을 잃고 덩그러니 남아 애를 태운다. 어쩔줄 몰라 하다가 "이게 꿈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 거짓말처럼 깨곤 한다. 눈을 뜨고 휴 한숨을 쉬며 "아! 꿈이었네, 다행이다" 혼자말을 한다. 악몽을 꿀 때는 " 이건 현실이 아냐, 꿈이야, 꿈이야" 하고 외치면 정말 꿈에서 깨어나는 경험을 많이 한다.
우리가 살면서 이루고 싶은 꿈과 잠자며 꾸는 꿈은 같은 옷을 입은 쌍둥이 단어다. 잠든 동안 구름 위를 날아 내 영혼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꿈속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화가가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보고 싶다. 출렁이는 파도를 타며 춤을 추는 서퍼도 되고 싶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에게 주시지 않은 것들을 꿈속에서나마 이루어보고 싶다.
오늘 밤에는 꿈을 꾸고 싶다. 인생길 함께 걸어온 벗들과 뒷 뜰에 모여 따듯한 차 한 잔 나누는 꿈을. 멀리 있는 옥희에게도 전화해야겠다. 오늘 밤 내 꿈속에서 만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