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ublika ng Pilipinas 레푸블리카 낭 필리피나스, 영어: Republic of the Philippines), 약칭 필리핀(필리핀어: Pilipinas 필리피나스, 영어: Philippines)은 서태평양에 위치한 동남아시아의 섬나라이다. 북쪽의 루손 해협 건너편에는 중화민국, 서쪽의 남중국해 건너편에는 베트남이 있다.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필리핀은, 크게 루손섬, 비사야스 제도, 민다나오섬의 세 지역으로 나뉜다. 주요 도시로는 마닐라, 다바오, 케손시티, 세부 등이 있다.
인구는 1억명으로,[2] 세계에서 12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또한, 약 1,100만 명의 필리핀인들이 해외에 살고 있다. 필리핀에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존재한다. 선사시대에 필리핀에 거주했던 사람들 중에는 네그리토가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오스트로네시아어족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정착했고, 말레이시아의 문화와 힌두교, 이슬람 등이 전래되었다. 또한, 무역으로 중국 대륙의 문화가 필리핀에 영향을 끼쳤다.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 이후, 스페인이 필리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결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식민 지배 동안에 마닐라는 아카풀코와의 무역 연결점이 되었으며, 필리핀에 가톨릭이 널리 전파되었다. 19세기 말에 필리핀 혁명이 일어나고, 짧은 기간 동안 유지된 필리핀 제1공화국이 세워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 미국-스페인 전쟁과 필리핀-미국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이후, 미국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필리핀이 독립을 할 때까지,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점령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미국이 필리핀의 주권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지배를 계기로 영어와 서양 문화가 필리핀에 전해졌다.
2. 필리핀의 역사
1) 선사 시대
우라늄 동위원소측정법으로 6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칼라오 원인의 중족골은 오늘 날까지 이 제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유물이다.[3] 이전까지는 탄소동위 원소 측정법으로 약 24,000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팔라완에서 발견된 타본 원인이 가장 오래된 인류였다.[4][5] 네그리토인들은 또한 이 제도에 정착한 가장 초기의 사람들이었지만, 필리핀 제도에서 그들의 초기 정착은 언제였는 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고대 필리핀인들의 기원에 대해 상반되는 여러 개의 학설이 있다. 가장 널리 수용되는 언어학적, 고고학적 증거는 “타이완 유래설 모델”이며, 이것은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 량주 문화[7]와 같은 장강의 신석기 문명으로부터 온 후손이라는 대만에서 왔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들은 필리핀에 기원전 4000년 전에 왔다고 하는 것이다.[8][9] 기원 전 1000년경에, 이 제도에 살던 사람들이 네 개의 사회 집단으로 발전했으며, 사냥-채집을 하는 종족, 전사 사회, 고원 금권정치, 그리고 해양 항구 집단으로 나눠졌다는 것이다.
2) 스페인 식민통치 :
1870년대, 필리핀 원주민-중국계 혼혈 여성스페인의 식민통치
16세기 초반까지 여러 섬에 각기 다른 부족들이 나뉘어 있어 통일 국가는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1521년에 스페인 카를로스 1세의 후원으로 실시한 서회항로 탐험중에 마젤란이 세부에 도착하면서 필리핀이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1565년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Miguel Lopez de Legazpi)에 의해 식민지로 선언되었고,[11] 스페인의 필리핀 식민통치가 시작되었으며, 19세기 말까지 325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통치가 지속되었다. 이때 동남아시아 유일의 로마 가톨릭 국가가 된 필리핀은 수도사의 천국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나라이름은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11] 그러나 스페인에서 온 식민통치 권력과 결탁하여, 종교권력을 휘두르는 교회의 압제에 항거하여 필리핀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19세기 말 시작되어 각지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3) 미국의 식민통치 :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스페인 전쟁입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은 파리 강화 조약에 따라 미국에게 2,000만 달러를 받고 필리핀, 괌 등 지배권을 양도했다. 필리핀 혁명과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 필리핀인의 최초의 공화국인 필리핀 제1공화국이 건립되었으나 곧바로 미국의 불인정과 함께 식민화가 시작되어 이에 저항하는 필리핀인과 미국-필리핀 전쟁이 일어났다. 초대 대통령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지휘아래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력에 많은 희생자를 낳고 굴복하여 필리핀 제 1공화국은 붕괴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많은 희생으로 인해 미국의 통치는 스페인식 압제보다는 좀 더 자치권을 많이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1916년 필리핀의 자치법인 존스 법이 통과되었으며 이때의 미국의 필리핀 통치는 다른 서양국가와는 달리 비교적 자율적인면이 있었다. 그리고 필리핀의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필리핀은 식민지였기 자체적인 경제정책을 수립하지못해 바라던 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없었다.
미국의 식민통치때는 공중보건 개선과 무료 보건소 혜택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었고 이로 인해 인구도 큰폭으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남자와 여자가 같이공부할 수 있는 남녀공학제도 도입되면서 남성과 여성 도 똑같은 권리를 누리게되어 처녀도 혼자 외출할 수 있었으며 여러 전문직을 비롯해 어떤직장에서나 평등하게 일할 수 있게되었다. 새 토지 정책, 미국과의 자유무역, 농업성장, 교통 통신의 발달, 새로운 산업, 은행의 등장, 공중보건과 위생의 향상등으로 인해 인구가 약 3배 가까이 늘었으며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4) 반미항쟁
그 후에도 로마 가톨릭 사제와 수녀들이 주동하는 필리핀 민중들의 독립투쟁은 계속되고[12] 혁명 정부도 수립되었으나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34년 미국 의회에서 타이딩스-맥더피 법이 통과되어 10년 후에 필리핀이 독립하기로 예정되었다.
필리핀 독립[편집]
1935년에는 필리핀 연방이 조직되었고 마누엘 케손이 초대 대통령에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필리핀은 일본군의 점령하에 있었다. 일본은 1943년에 필리핀 독립을 승인했고 대통령에는 호세 파키아노 라우렐이 선출되었다.
전쟁이 끝난 1946년에 미국은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승인, 공화제를 채택한 필리핀은 마누엘 로하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 뒤 필리핀은 아시아권에서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하였지만, 국민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정치적/경제적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필리핀은 미국에게 경제적 원조를 받는 대신, 공군/해군기지를 빌려주기로 한다.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었다. 집권 초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민주 공화국'을 내세우고, 효율적 세제운영과 대외차관 유치 등으로 국가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해 이슬람세력 등 반정부세력들의 반발에도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독재와 장기집권, 본인과 일가의 부정부패로 인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외에서 거센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1983년 베니그노 아키노 2세의 암살을 계기로 마르코스의 인기는 끝없이 추락했고, 1986년 베니그노의 아내인 코라손 아키노가 야당 단독후보로 대선에 출마하자 숱한 선거부정으로 겨우 재선됐다. 이로 인해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게 되었고, 결국 마르코스는 하야했다 하지만 마르코스가 지나간뒤 필리핀 경재는 거의 파탄의집으로 변신하기 전에야 이르러 멈췄다 더 있다 하야 했으면 완전 필리핀 경재는 붕괴했을 거다 .
1986년 코라손 아키노가 필리핀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임기 초반부터 테러가 일어나,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1992년에는 아키노의 지명을 받은 피델 라모스가 대통령이 되었고, 1998년에는 영화배우 출신의 조지프 에스트라다가 대통령이 되지만, 부정부패로 국민들의 반감을 사 2001년 중도사임했다.
에스트라다의 사임으로 디오스다도 마카파갈(Diosdado Macapagal)의 딸인 글로리아 마카파갈아로요가 대통령이 되었다. 2004년 재선에 성공하지만,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결국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현재는 하원의원으로 재직 중이다.
2010년 코라손 대통령의 아들인 베니그노 아키노 3세(Benigno Aquino III)가 대통령이 되었다. 한편 아로요는 선거조작 혐의로 기소되었다([2]).
현재 2024년 아쉽게도 마르코스의 아들인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봉봉 [peredeinando marecos bongbong] 이 집권중이다 .
3. 종족
다양한 인종
2000년 인구조사에서 필리핀인 중 28.1%는 타갈로그족, 13.1%가 세부아노족, 일로카노족 9%, 비사야족 7.6%, 힐리가이논족 7.5%, 비콜족 6%, 와라이족 3.4%, 그리고 25.3%가 기타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다시 보다 뚜렷한 비종족 집단으로 쪼개어져 나눌 수 있으며, 모로족, 카팜팡안족, 팡가시난족, 이바나그족 그리고 이바탄족으로 나눌 수 있다.[15] 뿐만 아니라, 이고로트족, 루마드족, 망간족, 바자우족, 그리고 팔라완의 부족과 같은 토착민들도 존재한다.[16] 아에타족과 아티족 같은 네그리토들은 이 제도에 초기에 정착한 고대 민족으로 여겨진다.
이들 민족 외에 10%는 화교와 메스티소라고 불리는 혼혈족이 차지한다. 화교가 경제생활에 공헌하고 있다면 메스티소는 경제적으로 윤택하며 고등 교육을 받아 사회적으로도 상류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종교는 85%가 로마 가톨릭 교회를 신봉한다. 이 밖에 군도의 남쪽에 거주하는 모로족은 이슬람교를 믿으며 도이프가오족 등의 민족은 정령을 숭배한다. 복잡한 민족만큼이나 언어 또한 많아 70종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공용어는 영어, 타갈로그어, 스페인어이다. 필리핀 국민은 말레이족을 근간으로 하여 중국인, 미국인, 스페인인 및 아랍 혈통의 후손들로 구성되어 있다. 2000년 5월 기준으로 필리핀 인구는 76,500,000명이며 각 인종의 구별은 거의 없다. 서구 국가의 오랜 식민 통치 역사와 무역 상인들의 혈통이 섞여 외모와 문화 모두에서 동양과 서양이 독특하게 혼합된 국민이 나타났다. 중국어 사용 주민도 조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