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장. 武林의 後起之秀들.
하철수의 말에, 그중 한 농부가 눈빛을 차갑게 굴리더니 말했다.
"알고 보니 너희들은 중주삼살이로군 그래?"
'얼씨구?'
하철수는 이들이 자신들을 알아보고도 여전히 태도가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자신들은 오늘 지랄같은 운세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가능하면 일을 쉽게 끝내기 위해 짐짓 포권하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들의 존성대명을 일러주면 우리는 잠시 자리를 피해드릴 수가 있소."
그것은 그야말로 하철수가 최대한의 양보를 한 것이었다. 하철수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만이 불길같이 일어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이 하철수는 성질이 많이도 죽었구나!'
헌데, 적반하장이랄까? 이 세 명의 농부는 하철수를 향해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며 다시 싸늘하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흐흐, 네놈들이 감히 우리의 이름을 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만일 세 번 셀 동안에 모두 꺼져버리지 않으면 모두 황천으로 보내주겠다."
이어, 그 농부들 중 하나가 차가운 음성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하철수는 이것을 보자 일순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이제 더 이상은 물불을 가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즉시 어헝 하고 벼락같은 고함을 지르면서 그중 숫자를 세고 있는 농부를 향해 허리에서 장검을 뽑아들어 비호처럼 덮쳐갔다.
쌕쌕쌕!
하철수의 검 끝에서 마치 그물 같은 검망이 일어나며 일순지간 그 농부의 전신을 뒤덮어 버리는 것 같았다. 하철수는 비록 생긴 것이 미련하고 뚱뚱한 돼지와 다를 바가 없어도 일단 무공을 펼쳐내기 시작하자 그 몸놀림은 그야말로 비호같았다.
상대방인 농부는 이것을 보고 다소 의외인 듯 잠시 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경악이 아닌 그저 단순한 감탄일 뿐이었다.
하철수의 장검이 그자의 머리에 닿으려는 찰나, 그자는 어떻게 움직였는지 이미 옆으로 석자나 움직여서 하철수의 공격의 예봉을 피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자의 쌍수 가운데 우수가 아주 느릿하게 움직였다. 아니, 느릿하게 움직인 것 같았는데 어느새 하철수의 지척에 이르고 있었다.
그때는 이미 하철수는 전력을 다한 검세를 거두지도 못한 상태였으므로 거의 무방비상태였다.
그러나, 하철수는 이때 내심 부르짖었다.
'얼씨구!'
동시에 그는 장검을 들지않은 좌수를 휘둘러 그자의 우수에 정면으로 맞부딪쳐 가는 것이었다. 비단 이 순간의 농부의 움직임도 괴이하고 빨랐지만 이 하철수의 변초 또한 그의 육중한 몸뚱이에 비해 몹시 신기할 정도로 빠른 것이었다.
이때 사실 하철수가 얼씨구를 부른 것은 이유가 있었다. 사실 하철수는 천성적으로 굉장한 힘을 타고나서 주먹의 힘이 막강했다. 비록 나중에 내공을 연마했더라도 그 주먹의 힘을 그는 결코 소홀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파천석과 저수량을 만나 함께 멸절검법이란 것을 배울 때에도 은밀하게 혼자서 좌장을 쓰는 법을 연마했었던 것이다.
그의 좌장은 그야말로 회심의 무기인 셈이었다. 그는 워낙 연마에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그 좌장은 마치 금종조 철포삼 등의 횡련기공을 연마한 것처럼 도검이 불침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때 하철수가 회심의 일수를 전개해가고 있는 순간, 갑자기 저수량이 크게 소리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멈춰!"
하철수는 이 둘째인 저수량에 대해서 어느 정도 깊이 감복하는 바가 있었다. 비록 모든 일에 대해서 그는 항상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만, 이 저수량의 두뇌가 없었다면 아마 그들은 일찌감치 목숨을 버렸어야 했을 것이다.
따라서, 저수량이 갑자기 그렇게 소리치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급히 손속을 멈추었으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으악!'
하철수는 일순간 내심 비명을 내질렀다. 농부의 우장이 다가드는 순간 갑자기 시뻘건 기운이 전신을 뒤덮으면서 마치 용암 속에라도 들어간 것처럼 무서운 열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하철수는 순간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뒤로 벌렁 나동그라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우당탕,
갑자기 요란한 소음과 함께 하철수의 좌우에서 두 사람이 일제히 장검을 휘두르며 아까의 그 농부를 향해 무섭게 덮쳐들었다. 그 기세는 가히 하철수의 것을 능가했고, 특히 파천석의 검법은 무려 사방 사오장을 뒤덮고 있었다. 때문에, 마악 하철수의 얼굴에다 다시 일장을 가하려던 그 농부는 잠시 주춤하고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다른 두 명의 농부가 저수량과 파천석을 향해 각각 쌍수를 휘두르며 맞이했는데, 그들은 비록 빈손이었지만 신법이 기민하고 쌍장의 기운이 위력적이어서 금방 두 사람을 압도해갔다. 특히, 두 사람의 쌍수에서 발출되는 두 가닥의 지독하게 뜨거운 열기는 저수량과 파천석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뒤로 일장이나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두 명의 농부는 당장에 저수량 등을 어쩌지는 못했다.
그들이 펼치는 멸절검법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동귀어진을 꿈꾸는 너죽고 나죽자는 식의 악랄한 검법이었으므로 자연 위력을 배가하는 것이었다. 단지 하철수는 미련하게 공격을 하다가 그만 당하고 만 것이다.
허나, 이때 하철수는 쓰러뜨린 농부는 이제 방해자가 없게 되자 슬쩍 하철수의 앞으로 다가들었다. 그리고는 손을 번쩍 쳐들어 곧바로 그의 머리위에 일장을 후려치려다가 문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손을 위에 고정시킨 채로 소리쳤다.
"너희들은 모두 손을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이자를 박살내겠다."
그것은 단지 농부가 흔히 쓰는 수법으로 한번 외친 데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중주삼살은 서로가 세상 사람들이 치를 떠는 악인들로서 서로를 향하는 동병상련의 우의가 기이하게도 강했다. 따라서, 그들은 그만 하철수가 죽게되자 손속을 멈추게 되었고 아주 손쉽게 두 사람의 농부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흥, 꼴에 제법 의리는 있어서 함께 죽겠다는 말인가?"
그 농부는 차갑게 소리치더니 후려치려던 손속을 바꾸어서 손을 내밀어 지풍으로 하철수의 전신혈도를 점해버렸다. 그리고는 이미 혈도가 제압된 저수량 등을 들어다가 하철수의 옆에다가 내려놓았다. 그들은 아마 일시에 세 사람을 죽여버릴 속셈인 것 같았다.
헌데 이때, 농부들 중 하나가 짧게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앗, 시간이 없다. 이자들은 이대로 두고 우선 자리부터 정리하자!"
그 말에, 다른 두 명의 농부는 즉시 수긍의 뜻을 표하면서 달려들어서 주변의 탁자를 깨끗하게 정돈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순 두려운 듯 계속 소리치며 몸을 움직였다.
"공자께서 오시기 전에 일을 마쳐야 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것은 실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이 세 사람의 절정의 무림고수가 무예를 쓰는 광경은 이미 주루안의 모든 사람들이 보았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마치 쥐가 고양이를 두려워하듯이 쩔쩔매는 꼴이라는 것은 가히 가관이지 않는가? 대체 그들이 말하는 공자라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를 그토록이나 두려워하는가?
이윽고, 세 명의 농부는 부리나케 몸을 움직여 겨우 창가에 있는 가장 전망이 좋은 탁자 세개를 깨끗하게 정돈해 놓았다. 그들이 그렇게 해놓는 동작은 아주 숙련이 되어 있어서 설사 십년간을 점원생활을 하면서 굴러먹더라도 가히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이들은 아마 늘상 그 공자라는 사람을 위해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었다.
일단 그렇게 아주 깨끗하게 자리를 정돈하자, 그들 삼인은 즉시 탁자의 좌측으로 가서 부동자세로 꼿꼿하게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보고 하철수는 내심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원래, 하철수는 농부의 뜨거운 일장을 맞고 거의 초죽음이 된 줄로 착각을 하고 뒤로 벌렁 넘어졌었다. 그런데 실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비록 넘어져서 전혀 꼼짝도 하지 못했지만 사실은 하나도 상처를 입지 않았던 것이다.
아까 하철수는 벌렁 바닥에 드러누워서 그런 점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가 농부의 일장에
상처를 입었다면 마땅히 내상을 입거나 하다못해 머리칼이나 눈썹이 그을리기라도 했어야 할 텐데 그는 전혀 그렇지를 않았다. 허나 그가 만일 당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은 왜 이렇게 꼼짝을 못하는 것인가 하고,
하지만, 이 괴이한 점은 그의 우둔한 머리로 밤낮을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들에 의해 마치 짐짝처럼 한쪽에 쌓여져서 이런 꼴을 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주인을 생각해냈다.
원래 그는 너무도 분격해서 잠시 백검운을 잊고 있다가 이제야 그들이 옆에 있었음을 기억해낸 것이다. 그는 이미 백검운이 무공이 매우 고강하여 신비롭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백검운은 어째서 아직 그들을 구해주지 않는 것일까?
내심 궁금증이 치밀어, 그는 커다란 눈알을 디룩디룩 굴려서 백검운과 곽소봉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헌데, 곽소봉은 등을 돌리고 앉아있어서 잘 모르겠는데, 지금 백검운은 역시 담담하게 웃으며 곽소봉과 나직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철수는 그것을 보자 일순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아니, 혹시 내가 이렇게 된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 이봐요! 빨리 나를 구해주쇼!'
하철수는 내심 계속해서 그렇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결코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는 이미 아혈까지 제압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하철수는 그만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이었다.
허나, 정말로 그가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백검운과 곽소봉이 불과 옆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들은 원래 처음부터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워낙 기이한 일인 것 같아서 잠시 두고 보기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철수를 구하고 나서 그를 꼼짝못하게 만든 것은 바로 곽소봉이 백검운의 뜻을 알고 암암리에 그렇게 해 준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철수는 이미 그가 기다리고 있었던 구운 돼지고기와 똑같은 몰골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어쨌든, 백검운은 비록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눈앞의 상황이 의아해졌다. 그리하여 그는 전음으로 곽소봉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이 어디에서 온 자들인지 알고 있소?"
곽소봉은 잠시 생각하다가 역시 전음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바로 장곡에서 온 사람들이예요."
- 장곡,
장곡이란 바로 오패의 하나를 말하는 것이다 .
백검운은 다시 물었다.
"그들이 장곡에서 온 인물들이라면, 지금 그들이 기다리는 공자라는 사람도 역시 장곡의 인물이란 말이오?"
곽소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거예요. 그는 아마 소곡주의 아들일 거예요."
"소곡주의 아들?"
겨우 소곡주의 아들이라는 사람을 저런 절정의 인물들이 두려워서 벌벌 긴다는 것은 정말로 괴이쩍은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장곡이란 곳이 그렇게도 대단한가? 당금의 오패는 모두가 무황성에 버금간다고 하는 만큼 자연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백검운은 전에 역시 오패의 하나인 신검문의 소문주인 좌자묵을 보았었다. 그런데 이제 오패의 다른 인물들을 보게 된다니 자연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헌데 백검운은 갑자기 곽소봉이 다소 긴장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설마하니, 이제 곧 나타날 자가 그녀마저도 어쩔 수가 없는 절대의 고수라는 말일까?
그러는 가운데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이층 계단의 입구에 돌연 한 사람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 홍의인,
그가 나타난 것은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라 일시 그곳을 은연중 주시하고 있던 사람들도 그가 갑자기 허공에서 불쑥 튕겨져 나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홍의인은 대략 나이가 서른 살쯤 먹어 보이는 사내였는데, 다소 준수하면서도 음탕한 기질이 있는 듯 눈빛이 혼탁하고 전신에는 불그레한 기운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이 홍의인은 다만 기이한 인상을 줄뿐 그다지 무섭게 생긴 사람도 아니건만 그 농부들은 그를 마치 사갈처럼 두려워하는 것일까?
홍의인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그 농부들이 정돈해 놓은 탁자의 주위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마악 자리에 앉으려다가 문득 한쪽에 마치 짚단처럼 쌓여있는 중주삼살을 발견하고는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세 명의 농부에게 물었다.
"저건 뭐냐?"
그의 말이 떨어지자, 세 명의 농부는 즉시 전신을 덜덜 떨기 시작했고, 그중 한 사람이 겨우 대답했다.
"그들은 저희들의 일을 방해하는지라........ 시, 시간이 없고 해서 그냥 저렇게 두었습니다.
만일 지금 치우시라면 즉시......"
홍의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이어, 홍의인은 다소 불만이 서린 음성으로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지금 하다니? 시간이 있는 줄 아는가? 하려면 벌써 했어야지."
그것은 별로 질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가 한두 마디 정도 중얼거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세 명의 농부들은 안색이 창백하게 싹 변하더니 덜덜 전신을 떨어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 실로 금방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표정도 이보다는 덜 가련할 것이다.
안색이 시퍼렇게 변한채 전신을 덜덜 떨고 있는 이 세명의 농부들은 그야말로 가련의 극치였고 실로 불쌍하게 느껴졌다. 아마 아까의 그 무서운 무예를 펼치던 광경을 보지 못했다면 주루안의 사람들은 몇 사람쯤 그들에게 다가가서 위로의 말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홍의인은 그러한 그들의 모습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별로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한차례 주루 안을 둘러보더니 가장 밖이 잘 내다보이는 전망좋은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편안하게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아래쪽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벌써 그가 오는군."
그의 이 말을 듣고 주루안의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일부러 길게 목을 빼어 밖을 내다보기도 했는데 일순 그 수많은 인파 중에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과연 한 사람이 주루 이층의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이곳 이층에는 누구라도 들어올 수가 있어서 지금 들어오는 사람이 홍의인과 과연 연관되어 있다고는 단정을 지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보는 순간부터 어떤 숙명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대번에 그가 바로 홍의인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때, 지금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 일남일녀,
한 사람은 스물셋 정도의 준수한 흑의청년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스무살 정도의 흑의여인이었다.
허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사람은 바로 두 사람 중에 용모가 준수한 흑의청년이었다. 그 흑의청년에게서는 실로 기이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을 정신없이 휘말려들게 하는 사이한 마력 같은 것이었다.
그러한 음침한 기운이 눈빛에서 발산되지 않았다면 이 흑의청년은 아주 준수하게 보여졌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중인들로 하여금 홍의인의 동행이라고 여기게 된 사항이었다.
허나, 흑의인의 옆에서 걸어오고 있는 흑의여인에게서는 음침한 기색보다는 매우 노골적인 요염함이 사방으로 번져 나오고 있었다.
원래 이 흑의라는 것은 별로 요염하지 않은 색깔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일단 그녀가 그 옷을 걸치자 그렇게 뇌살적이고 요염하며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일시 흑의청년의 숨막힐 듯한 분위기에 눌려서 그녀를 자세히 살피지 못했지만, 일단 그녀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가벼운 탄성을 발했다.
그것은 곽소봉의 남을 범접하지 못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절로 유혹하는 미태
였기 때문이었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악의 꽃이라고나 할까?
과연, 흑의청년은 중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았다. 홍의인은 그 흑의청년이 나타나
자 몸을 일으켜서 반색을 했고, 이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부르짖었던 것이다.
"아, 모용형! 어서 오시오. 이게 대체 얼마 만이오?"
그 말에, 흑의청년은 가만히 있는데 옆에 있는 흑의여인이 가만히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풋, 염 오라버니는 우리가 헤어진지 이제 겨우 사흘도 되지 않는데 또 다시 그런 말을 하는군요?"
이어, 그녀는 웃음을 정말 참을 수 없다는 듯 깔깔거리며 웃었다.
중인들은 그 웃음소리를 듣자 일시 갑자기 속이 다 메스꺼워지는 것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골머리가 다 아파왔다. 아까부터 이런 인간들을 계속해서 주목하고 보고 있자니 마치 자신들이 머리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장내의 중인들은 감히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분위기에 눌려서 감히 숨소리하나 크게 내지 못했다.
이때, 그 염가라는 홍의인은 다시 흑의여인을 향해 말했다.
"모용소저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진단 말이야? 그러다간 대체 그 아름다운 얼굴이 남아날 리가 없을까봐 걱정이오."
흑의여인은 일순 그 말뜻을 알아낼 수가 없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그건 왜 그렇죠?"
홍의인은 능글맞게 대꾸했다.
"그건 소저가 너무나도 아름다우면 세상의 모든 사내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소저의 살덩이 하나라도 더 뜯어가려고 너도나도 덤빌 테니 말이오."
그것은 평범한 내용의 말이었지만 아주 음란한 표현이었다. 헌데, 흑의여인은 그 말을 듣자 일순 까르르 웃었지만 결코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호호, 염오라버니의 혓바닥은 갈수록 더욱 오묘해지는 것 같은데요?"
홍의인은 그 말에 걸죽하게 웃어젖혔다.
"하하, 나야 뭐 이 혓바닥외에 더 볼만한 것이 있겠소?"
이때, 흑의청년이 홍의인의 앞으로 다가들며 입을 열었다.
"염형, 당신은 여기서 기다린지 오래되었소?"
홍의인은 다소 이 흑의청년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흑의여인과 히히덕거리던 그는 일순 흑의청년의 질문을 받자 안색을 엄숙하게 고치더니 정색을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나는 방금 전에 왔으니 모용형은 너무 개의치 마시오."
흑의청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보다 일찍 오려고 했었으나........"
홍의인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단 말이오?"
흑의청년은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일은 내게 생긴 것이 아니라, 바로 심 낭자에게 생겼소."
- 심낭자,
그가 말하는 이 심낭자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흑의청년의 말에, 홍의인은 일순 두 눈이 크게 휘둥그레 졌다.
"아니 그게 정말이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말이오?"
흑의청년은 그러나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 바로 방내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오."
"........?"
홍의인은 눈을 크게 뜨고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아마 그는 이 심낭자의 일을 매우 중시하여 하나도 빠지지 않고 그 얘기를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흑의청년은 그 심유하고 음침한 시선을 들어 홍의인을 마주 바라보더니 말을 천천히 이었다.
"원래 그 성수방은 금릉의 전 부자와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소. 그리하여 일단은 그의 딸인 전보보를 치료하지 않으려고 했소. 그런데 어디선가 한 사람이 나타나서 그 전보보의 병을 치료해 버렸다는 것이오. 그래서 성수방에서는 그들의 명망이 땅에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오."
이 말은 이미 백검운 등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다름 아닌 백검운 자신이 그 병을 치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홍의인은 그 말을 듣자 일시 크게 분격한 듯 소리치며 주먹으로 탁자를 한번 내리쳤다.
"빌어먹을! 대체 어떤 녀석이 감히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말이오?"
그 바람에 농부들이 애써 마련해 놓은 탁자 하나가 마치 콩가루처럼 부서져 나갔다. 그냥 탁자를 쳐서 부수기는 쉽지만 그것을 이토록 균일하게 가루로 부셔버리기는 지극히 어려운 노릇인 것이다. 그런데 이 홍의인은 그것을 마치 어린애들이 장난을 하듯이 아무렇게나 해 내고 있으니, 과연 세 명의 농부들이 크게 두려워서 떨만 하다고 생각했다.
흑의청년은 콩가루로 부서져나간 탁자를 한번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그는 바로 한명의 서생이라는 말을 들었소."
홍의인은 두 눈을 부라렸다.
"빌어먹을, 그 녀석은 서생인 주제에 감히 그런 짓을 저지르다니, 천하의 의원들이 모두 성수방의 휘하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이오?"
이어, 홍의인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대체 그녀석의 이름이 뭐요?"
흑의청년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자는 만박서생이라고 자칭하는 백검운이라는 자요.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남궁세가에 있었는데 오늘은 이미 그곳을 떠났다고 하는구료."
백검운등이 남궁세가를 떠난 것은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이 흑의청년이 낱낱이 알고 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만박서생 백검운? 무림에 그런 인물도 있었던가?........"
홍의인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다 흑의청년을 향해 다시 물었다.
"그래, 심낭자는 그 일 때문에 오지 못한다고 합디까?"
흑의청년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지는 않소. 그녀는 일단 상황을 알아봐야 하니 소생더러 일단 염형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소."
그러자, 홍의인은 일순 입이 커다랗게 벌어지며 급히 공수를 하고 말했다.
"물론이오, 물론이오. 그까짓 기다리는 것이 뭐가 어렵겠소? 나는 사실 열 시간이라도 기다릴 수가 있소이다."
흑의청년은 그것을 보고 다소 씁쓸하게 웃었다.
"염형을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오이다. 이제 잠시 후면 그녀가 도착할 테니..........
아, 마침 저기 오는군?"
흑의청년은 말을 하다가 말고 창 밖을 가리켰다. 그러자, 홍의인은 만면에 희색이 가득하여 즉시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쪽을 바라보던 그의 안색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는 그곳에서 사람을 보지 못한 것일까?
헌데, 그의 중얼거리는 말이 다소 아리송했다.
"빌어먹을, 저 자식은 왜 같이 오고 있는 거지?"
..........
중인들은 비록 감히 움직일 수가 없었지만 그 말을 듣고 다소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대체 누가 오기에 이 공포스런 홍의인은 대번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일까?
그리하여 자연 모두의 시선은 은근히 이층 주루의 입구에 모아졌다.
과연, 이윽고 그 입구에 사람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일남이녀였다.
남자는 대략 이십 오세 가량의 청년이었는데, 비단 그 용모가 수려할 뿐만 아니라 선이 가늘고 지극히 심유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일견하기로도 그에게서는 깊은 혜지가 일렁이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그런 사람이 나타나자 주루안의 사람들은 일시에 정신이 번쩍 나는 것 같았다.
이 청삼청년은 바로 조금 전에 나타난 흑의청년과 아주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인 것 같았다. 비슷한 점은 둘 다 아주 용모가 수려하고 눈빛이 심유하여 그 깊이를 측정할 길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하나는 사악하다면 다른 하나는 광명정대한 맑은 빛이 가득하다는 사실이었다.
중인들은 비록 세상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이렇듯 분명하게 대조적인 사람들이 있을 줄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두 청년은 서로가 천적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어 청년의 옆으로 시선을 옮긴 순간, 중인들은 다 함께 입이 헤벌어지고 동공이 크게 열린 채 멍하니 넋을 잃고 말았다.
두 명의 여인,
그들은 그야말로 지극히 아름다운 미모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연청색의 옷을 걸치고 있는 청의여인이고, 다른 하나는 은은한 담황색의 장삼을 걸치고 있는 황의여인이었는데 각기 특색이 있는 용모였고 하나같이 천하절색이었다.
중인들은 이미 곽소봉이 들어온 이후에 흑의여인이 들어오자 눈에 염복이 가득 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곽소봉보다 결코 못하지 않은 두 명의 천하절색의 미인이 다시 안으로 들어서자 일시 이 주루 안은 화려하게 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청의여인이나 황의여인은 둘 다 똑같이 나이가 대략 십팔세 정도나 되었고, 한창 아름다움이 극치에 올라 있었다.
청의여인은 용모가 대체적으로 아주 깨끗하고 선명하여 두 눈에도 아주 맑은 지혜가 어려있는 것 같은 것이 다소 청삼청년을 닮았다. 그녀를 보자니 마치 인세의 사람이 아닌 한떨기 영롱한 이슬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구름같이 일었다.
이어 황의여인은 아주 고요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는데, 전신의 피부가 옥과 같이 은은하게 빛나고 그 아름다운 눈빛은 성결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주위에는 그녀의 시선을 받은 모든 것이 성스럽게 빛나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이런 인세에서 보기 드문 사람들이 주루 안으로 한꺼번에 올라오자 사람들은 저마다 목을 길게 빼서 그들을 보려고 했고, 마치 주루 전체가 찬연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이때, 홍의인과 흑의청년 역시 다소 반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들이 반긴 사람은 다만 황의여인일 뿐이었다.
황의여인이 그들의 앞으로 나오자 청삼청년과 청의여인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이쪽의 태세를 관망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황의여인이 다가서자 홍의인은 일시 크게 반색을 하며 떠들었다.
"아, 심낭자! 어서 오시오."
바로 이 황의여인이 그들이 기다리던 심낭자인 것 같았다. 황의여인은 홍의인이 떠들썩하게 소리치자 다소 우스운지 흡사 파뿌리같이 흰 손으로 입을 가리며가리며 가볍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약속시간을 어겨서 미안해요. 염소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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