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남 이희복 시 해설
그리움의 원형 혹은 ‘너’의 진실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너와 나’에 대한 그리움의 실체
현대시의 경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많이 바뀌어지는 현상을 목도(目睹)하게 되는데 대체로 살펴보면 현실적인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한 비평의 언어들이 난무(亂舞)하고 주제의 투영(投影)도 현실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고도(高度)의 참여적인 시법(詩法)을 대하게 된다.
시는 매슈 아널드의 말대로 본질적인 면에서 인생의 비평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시를 옹호(擁護)했지만, 그는 시란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고 다양하게 효과적으로 사물을 진술하는 방법이라고 평범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처럼 시의 본령(本領)이나 위의(威儀)는 우리 인간과 가장 밀접한 소재와 주제를 통해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인간의 근본적인 상상력과 배치(背馳)하는 경향으로 발현(發現)되어서는 시의 정신이나 목적에 합당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 해남 이희복 제3시집『너』를 일별(一瞥)하면서 왜 이런 담론을 먼저 끄집어내느냐 하면 요즘 시들을 읽어보면 너무 지나치게 지적(知的)인 주제를 탐색(探索)한다는 미명하(美名下)에 주지적(主知的)인 시어(詩語)나 내용을 분사(噴射)하는 예를 흔히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희복 시인은 우리 곁에서 소곤소곤 들려주는 정담(情談)어린 언어와 소박한 주제를 현현(顯現)해서 우리들의 심저(心底)를 울리는 작품으로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우선 그가 심취(深醉)한 ‘그리움’의 실체는 무엇인가. 시적 대상에는 그가 현실적이건, 상상적이건 ‘너와 나’라는 화자(話者-persona)가 대칭을 이루면서 ‘그리움’이라는 시적 원류(源流)를 형성하여 잔잔한 어조(語調-tone)로 우리들을 흡인(吸引)하는 특성을 이해하게 한다.
너와 난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인다
너와 난
바라만 보아도
한없이 정겹다
헤어져 돌아서면
그리움이 여울 되어
눈시울에 이슬이 맺힌다
언젠가 우린 함께
그리움의 넋이 유성 되어
은하수 건너 천국으로 가리라
--「너와나」전문
이희복 시인의 심중(心中)에는 ‘너와 나’의 상관성에서 ‘가슴 설레’이거나 ‘한없이 정겹다’는 ‘그리움의 여울’이 ‘천국’에 까지 도달하는 비장한 정감(情感)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는 이러한 연유(緣由)를 작품「당신」에서 ‘당신은 언제나 내게 그리움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해법(解法)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시적 구도나 상황(situation)은 이 시집의 표제시(表題詩)가 되는 작품「너」에서도 여여(如如)하게 표징되고 있는데 ‘세월이 / 그렇게 흘렀건만 / 아직도 널 생각하면 / 시린 그리움에 눈물이 글썽인다’는 어조에서 이해할 있듯이 그의 ‘그리움’은 언제나 ‘가슴 설레’이게 하고 ‘가슴 저’리게 하면서 ‘수줍게 미소 짓고 있’어서 ‘널 / 청순한 그리움으로 / 한평생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것이 / 멍에가 아니고 은혜의 삶이’라는 단정을 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천착(穿鑿)하는 ‘그리움’은 어떤 형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가 다음과 같이 일별할 수 있을 것이다.
- 그 오랜 / 그리움이 / 맺히고 맺혀 / 밤하늘 별이 되니 // 가없는 하늘 / 수많은 별들 / 얼마나 숱한 사연 / 간직하고 있을까(「그리움 . 1」중에서)
- 그리움은 / 강물처럼 흘러도 / 마르지 않고 // 그리움은 / 호수처럼 넓어도 / 머무를 수 없고 // 그리움은 / 텅 빈 하늘 채우고 / 채워도 그리워진다(「그리움 . 2」전문)
- 강물처럼 밀려오는 / 그리움 견딜 수 없어 // 차라리 악마에게 / 영혼을 맡기고 싶다(「그 리움 . 3」중에서)
- 그리움이 / 가슴으로 내려오면 / 영육은 전율에 몸부림친다(「임 그리워」중에서)
- 낙엽 따라 떠났어도 / 사무치는 그리움 / 윤회가 있다면 / 영겁을 기다리리(「기다림」중 에서)
- 나에겐 / 그리움의 날개가 있습니다(「그리움의 날개」중에서)
- 기약 없이 떨어지는 낙엽이 / 그리움을 세고 있다(「미련」중에서)
- 가슴엔 / 질긴 상처 씻기 우고 / 말간 그리움만 미소 짓는다(「장맛비」중에서)
- 한평생 /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나(「봉선화」중에서)
- 이루지 못한 사랑이 그리움 되어 / 외로움에 한이 맺혔나 보다(「나팔꽃」중에서)
그렇다. 이희복 시인이 ‘그리움’으로 표징(標徵)하는 것들은 일반적인 관념의 범주(範疇)에서 머무는 경향이 두드러지지만, ‘봉선화’, ‘나팔꽃’,을 비롯해서 ‘보리피리’, ‘단풍’, ‘목련’ 등 자연 서정에서도 애절한 그리움의 상징이 그의 주된 정서로 자리잡고 있다. 예컨대 ‘청보리 피리소리 / 그리움으로 흐르면 / 연둣빛 소녀가 미소 짓는다(「보리피리」중에서)’거나 ‘넌 / 소녀도 / 그리움도 아니다 // 넌 / 농익은 / 정숙한 여인(「목련」중에서)’, ‘그리움으로 / 물이 들면 / 노오란 단풍잎 // 아직 사랑하지 / 않았다면 / 푸르름으로 남는다(「단풍 . 1」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서정적인 사물에서도 그의 시심(詩心)과 부딪히면 모두 ‘그리움’으로 전이(轉移)한다.
특히 작품 「단풍 . 3」전문에서는 ‘네가 / 몹시 부럽구나 // 사랑하고 그리운 마음을 / 빨강 노랑으로 보여줄 수 있으니’라고 간명(簡明)한 언어로 ‘단풍’을 의인화(擬人化)한 시법은 상당한 설득력과 동시에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이와 같은 언술(言術)은 다음의 작품「단풍 . 4」전문의 메시지에서도 ‘그리움’의 절대성을 전달하고 있다.
깊고 말간 하늘에서
수많은 추억이 가을의
눈부신 빛깔로 내려와
순수한 그리움으로
고운 단풍이 되고
단풍은 그리움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면
대지로 내려와 바람에 뒹굴고
자신을 희생으로 윤회하며
그리움을 사윈다
2. ‘세월’과 삶의 시적 진실
이희복 시인은 다시 그리움의 진원지(震源地)인 시간성에서 탐색하는 ‘삶’에 대한 시적 진실, 이것을 고차원으로 절감(切感)하는 그의 철학이 적시되고 있다. 이는 그가 평소에 간직한 인생관이나 가치관과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이러한 그의 내면(內面)에서 용암(鎔巖)처럼 분사되는 시법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일찍이 톨스로이가 ‘삶의 의문에 대한 나의 탐구는 마치 내가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경험하는 것과 똑같은 경험이다.’ 라고 말했듯이 ‘삶’에 관한 시적인 설정(設定-creation)은 그 시인의 체험이 어떠한 감응(感應)과 동시에 실생활(real life) 또는 현실성(reality)과 합일(合一)해야 가능하게 된다.
이희복 시인에게서 시정신으로 감지(感知)할 수 있는 ‘삶’의 이미지는 ‘시간성(세월)’과 동행하는 동시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이는 그가 지각(知覺)하는 삶의 중심에는 인생의 문제가 인본주의(人本主義-humanism)의 근원을 이탈하지 않고 작품으로 승화(昇華)하는 주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겁의 시공에
어우러지는
유한의 환상
숱한 만남과
헤어짐 속에
사라져가는 존재
초록별에서
회로애락에
아우성치는 애증
차창에 스치는
찰나의 풍경으로
소멸하는 영상
--「삶 . 2」전문
저녁놀이 붉게 물든
하늘 너머로 여객기가
아스라이 점으로 사라진다
먼 훗날 내세(來世)로
오가는 하늘길이 열리면
모든 삶들이 선(善)하여 질까?
--「내세(來世)로 가는 길」전문
이 작품을 읽으면 김남조가 말하는「시간 속에서」에서처럼 ‘산다는 건 어딘가를 가는 일, 느린 목선(木船)을 타고 시간의 물이랑을 시간 동안만 흐르는 일이다. 영원을 향해 가고 있듯이 더 멀리 더 오랫동안 흐르고 싶어 한다.’는 명언과 같이 우리들의 ‘삶’은 바로 그 시간과 물이랑의 지향점(指向點)은 ‘사라져가는 존재’이거나 ‘소멸하는 영상’에 다름아니다.
이희복 시인에게 내재(內在)된 존재 철학의 일단을 경청(傾聽)하는 것과 같은 진실이지만, ‘희로애락에 / 아우성치는 애증’의 현상이 어쩌면 우리 중생(衆生)들이 밟고 넘어야 할 행로(行路)임에 틀림없다.
그가 ‘모든 삶들이 선(善)하여 질까?’하고 우선 의문형(疑問形)으로 작품을 종결하는 것은 아마도 ‘내세(來世)’라는 또 다른 세계를 예감(豫感)하는 그의 중대한 사유의 중심축임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수용하기에는 우리들이 간직한 오욕(五慾-식욕(食慾), 재욕(財慾), 명예욕(名譽慾), 수면욕(睡眠慾), 성욕(性慾))과 칠정(七情-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라는 ‘애증’을 모든 인간들이 ‘헤어짐’과 ‘사라져가는 존재’라는 자성(自省)의 언어로 분사하고 있다.
그러나 ‘내세로 가는 길’에서는 ‘먼 훗날 내세로 / 오가는 하늘길이 열리면 / 모든 삶들이 선하여 질까?’라는 미지(未知)의 정서로 결론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는 내세(來世)에 대한 의문이 ‘먼 훗날’이라는 시간의 개념과 동시성을 정서의 축(軸)으로 설정하고 있어서 ‘삶=시간(혹은 세월)’의 등식(等式)을 성립시키고 있다.
쪽빛 순수처럼 너를 사랑하고
작열하는 태양처럼 청춘을 함께 불사르고
샛노랗게 해맑은 은행잎처럼 너를 추억하며
파아란 하늘 흰 구름처럼 너를 그리며
밤하늘 아름다운 별들을 함께 세며
눈 덮인 오솔길을 함께 걸으며
흐르는 강물처럼 함께 세월을 보내고
노을 지는 수평선을 함께 바라보며
언젠가 밤하늘 은하수 너머로
너와 함께 가고 싶다
--「너와 함께」전문
이희복 시인은 ‘세월’과 ‘삶’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정서의 성역(聖域)으로 획정(劃定)하고 ‘너와 함께 가고 싶다’는 기원(祈願)의 의지를 강렬하게 분사하고 있다. ‘쪽빛 순수처럼 너를 사랑하고’라는 어조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이 시집의 주제가 되는 ‘너’는 ‘나’라는 대칭적(對稱的)인 함수(函數)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시적 원류에는 ‘너’를 통한(혹은 ‘위한’) 사랑과 그리움이 동시에 형상화(形象化)하면서 간절하면서도 인간적인 순수성을 작품으로 현현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궁극적(窮極的)으로 염원하는 사랑이나 그리움은 ‘작열하는 태양처럼 청춘을 불사르’는 대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注目)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각박(刻薄)한 현실적 ‘삶’에서 추출(抽出)한 이미지들이 사랑(좀더 확대하면 박애(博愛)나 자비(慈悲)와 같은 사랑)으로 승화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삶은 / 한 번의 물결로 / 순간에 오고간다(「삶 . 1」중에서)’라거나 ‘허망한 세월이 / 저물어 가니 / 삶이 미물만 못하노라(「삶 . 3」중에서)’, ‘긴 세월 맺은 정 / 서러운 한마디에 / 연기처럼 사라지네(「회한」중에서)’, ‘그만큼 세월이 흘렀어도 / 눈감으면 그립고 보고 싶은 / 그때 그 사람(「그때 그 사람」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연 / 세월에 흔들리며 / 시련을 극복하고 / 이겨냈을까(「노송」중에서)’, ‘석양마저 한해를 떠나고 / 산새들 숨소리 동면하면 / 가슴엔 그리움만 남는다(「세모(歲暮)」중에서)’, ‘유성처럼 사라지며 / 순간에 타버린 삶이(「영원한 이별」중에서)’ 라는 어조와 같이 삶과 세월의 등식이 그가 탐색하면서 추구(追求)하려는 시적 진실임을 이하게 한다.
3. 추억의 재생과 서정의 향기
이희복 시인에게서는 다시 과거의 ‘추억’에 몰입(沒入)해 있다. ‘내가 네게 갈 수 없는 건 / 그리움이 사위어서가 아니고 / 너무 멀리 와버려서도 아니다(「내가 네게 갈 수 없는 건」중에서)’라고 그리움에 대한 실상을 적나라(赤裸裸)하게 현현한 것과 같이 그는 과거로의 회상에서 재생된 추억에는 다양한 관념의 숲을 지나가고 있다.
사랑은
추억으로
영원히 머무르고
그 오솔길 시냇물소리
청아한 순정은
가슴에 메아리치는데
돌아갈 수없는
그날들을 추억하며
그날의 열정은 시들어도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 안개처럼
그리움으로 피어나리라
--「첫사랑 추억」전문
그렇다. 이희복 시인의 ‘추억’에는 역시 사랑과 그리움이 상존(常存)하고 있다. 그 사랑의 메아리는 ‘그 오솔길 시냇물소리 / 청아한 순정’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그의 추억은 자연 서정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데 주변에서 시각적(視覺的)인 이미지로 포착(捕捉)되는 자연 현상들이 작품의 소재로 현현되거나 ‘추억’의 주제를 동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찔레꽃」중에서는 ‘그때 그 숲 여린 가슴 / 가시에 찔린 아린 추억 / 영원히 지울 수 없네’라거나 「동백」중에서 ‘운명이라도 추억은 간직하고파 / 눈부신 백설에 빨간 미소 짓는다’,「백일홍」중에서 ‘지난 날 / 아름다운 추억 / 그리워 잊지 못해 / 백날을 하루같이’,「낙엽」중에서 ‘사계절 / 추억을 사위며 / 말없이 내려온다’ 그리고 「춘설 이별」중에서 ‘아픔 없이 보내려고 / 하얗게 추억을 덮는다’는 등의 어조로 ‘추억’을 형상화하고 이다.
이러한 자연 경관(景觀)에서 창출(創出)하는 이미지들은 모두가 지나간 ‘추억’에서 발현된 사랑과 그리움을 함축(含蓄)하고 있어서 그의 서정적 항기가 넘치는 공감(共感)을 유로(流路)하고 있다.
사랑 그리움 미움
운명으로 포옹하고
사랑으로 승화하자
아름다운 불꽃처럼
그러나
추억의 재는
남겨 두자
누군가의 만남이
인연의 바람 되어
허공으로 날려 버릴지라도
그 때까지
추억의 재는
남겨 두자
그날이 영원히
오지 않을지라도
--「추억」전문
이희복 시인이 정리하는 ‘추억’은 작품「추억」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미래지향으로 정서가 전환되고 있다. 사랑과 그리움과 미움, 우리의 관념 일체를 지금은 ‘운명으로 포용하’자 또는 ‘사랑으로 승화하자’라고 긍정(肯定)하면서 동화(同化)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의 의식(意識)에는 ‘추억의 재는 / 남겨 두자’라는 어조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 인간들의 여린 순정적인 이미지가 생성되고 있다. 이러한 ‘추억’은 누군가와의 인연들이 ‘허공으로 날려버릴지라도’라는 전제를 제시하면서 ‘추억의 재’를 남겨놓고자 한다.
그는 ‘빛바랜 앨범 위에 / 정겨운 얼굴이 떠오르면 /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추억을 찾아 / 늦기 전에 떠나라(「찔레꽃」중에서)’와 같은 결단으로 추억여행을 권하고 있다. 이처럼 내면에 잠재(潛在)한 그의 정서는 휴머니즘의 일단을 상기하면서 ‘나도 / 둥둥 떠다닌다 / 청명한 창공으로 /가을 속으로 / 추억 속으로(「가을 단상」중에서)’, ‘호반의 오솔길에 / 날리는 낙엽에도 / 사연이 머무르고 // 갈색 수채화에 / 수많은 추억과 / 그리움이 흐르네(「호반의 아침」중에서)’ 라는 서정과 추억이 동시에 현현하고 있어서 시의 향기는 더욱 짙게 풍겨지고 있다.
4. ‘오리엔탈 이방인’의 향수
이 시집의 특징은 이희복 시인이 세월을 통해 체험한 인생과 자연의 결집은 삶에서 파생(派生)한 이미지들로 순박한 사랑과 그리움이며 추억이다. 그러나 그가 그냥 버려둘 수 없는 이방인(異邦人)의 향수(鄕愁)가 가미(加味)된 추억과 사랑도 있다. 이 시집 제4부, ‘카리브의 추억’ 전체에서 읽을 수 있는 동양의 한 이방인이 미지의 세계 기행을 통한 시의 형상화이다. 대체로 그 여행지를 살펴보면 멕시코, 할리우드, 쿠바, 일본, 프랑스, 포르투칼, 스페인, 까보다로까, 인도네시아 등지를 돌아보면서 그곳의 풍물(風物)과 유적에서 교감하는 그의 이국관(異國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일찍이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베르는 그의 저서「서간집」에서 ‘여행은 인간을 겸허하게 합니다.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입장이 얼마나 하찮은가를 두고 두고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여행이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새롭고 신비한 지구촌의 현장을 깨닫고 또한 우리들을 겸허한 의식이 역사의 한 편 드라마를 상상하게 한다.
그는 필자와 함께 한국문인협회 해외심포지엄에 참석차 멕시코와 쿠바를 동행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 여행, 그것도 외국여행은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그것은 잠시라도 이방인이 되어 향수를 그리면서 ‘정신의 편력은 경험의 편력과 맞먹는다. 여행의 량(量)이 곧 인생의 량(量)이’라는 이어령의 언지(言旨)를 실천하는 것 같다.
그의 이방인이 띄어 보내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현현되고 있다.
- 원혼의 진홍빛 태양이 떠오르면 / 마야가 손짓하는 수평선 바라보며 / 지구촌 이방인 저 린 발길 돌리네(「마야의 전설」중에서)
- 이방인은 / 존재하면서도 / 사라져간다(「할리우드」중에서)
- 데킬라 한잔으로 이국의 향수에 취하면 / 낭만의 해변 별빛 유난히 아름다울 때 / 수평선 너머 마야의 전설이 우릴 부른다(「카리브의 추억」중에서)
- 지구촌 이방인 역사의 나그네 되어 / 비운의 체게바라 혁명의 소리 들리는 / 헤밍웨이 향 수 서린 해변을 거닐며 / 자유의 여신상 희망의 빛 기다린다(「아바나」중에서)
- 아이누의 영혼이 / 바람 따라 우는 소리 / 외로운 나그네 가슴 울리네(「아이누의 운명」 중에서)
- 파리의 긍지 자긍심에 / 자신을 잃고 자신을 찾으려는 / 영원한 오리엔탈 이방인(「파리 이방인」중에서)
- 오리엔탈 나그네 / 샤를드골공항으로 / 중세의 거리로 / 개선문으로 입성한다(「파리 원 정」중에서)
- 역사의 굴레에 벗어난 포르투갈의 애환이 / 대서양의 밤바다 파도 소리되어 / 나그네 시 름을 달랜다(「오리엔탈 나그네」중에서)
보라. 이러하듯이 ‘오린엔탈 이방인’이 각국에서 맛보는 이국의 정서는 ‘역사의 나그네’로 ‘헤밍웨이 향수 서린 해변을 거닐’거나 ‘아이누의 영혼’을 만나고 있다. 그는 ‘인류역사에 동행하고파 찾아온 이방인 / 지중해에서 지는 노을 바라보며 / 떠날 줄을 모르네(「지중해」중에서)’, ‘똘레도의 새벽달이 / 옛 영광의 그림자로 / 나그네를 환송한다(「마드리드 입성」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인류 역사에 동행’하는 별천지에서 유영(遊泳)하고 있다.
이러한 그에게서 시적 대상지가 되어 그곳의 역사와 정경(政經)을 묘사(描寫)한 곳은 ‘멕시코 칸쿤 마야유적지’와 ‘쿠바 바라데로 해변’, ‘북해도 아이누원주민 마을’, ‘파리 샤를드골 공항’, ‘포르투칼 서부해안’, ‘스페인 말라가해변’, ‘스페인 마드리드’, ‘자카르타 호텔’, ‘자카르타 고속도로’, ‘인도네시아 Kedation Golf And Country Club', '스페인 론다 투우장’, ‘유럽 최남단 땅끝마을’, ‘스페인 똘레도’, ‘스페인 꼰수에그라’, ‘스페인 세비야’, ‘포르투칼 대평원’,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안치된 신사’, ‘멕시코시티 아즈텍문화유적지’ 등 지구촌 곳곳을 여행하면서 축적한 그의 상상력이 재생되고 있다.
Nesscafe Coffee향에 젖어
새벽 창으로 바라보니
시야 끝까지 이어지는
야자수와 푸른 녹음이 펼쳐진
이국의 낙원이 한눈에 들어오며
커피향에 남국의 향수가 스며든다
--「자카르타의 여명」중에서
이희복 시인은 그의 풍모(風貌)처럼 안온한 성품과 함께 ‘이국의 낙원’을 즐기면서 시적 모티브(motif)와 연결된 진실을 승화하고 있어서 새로운 여행(기행)문학의 정수(精髓)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해남 이희복 제3시집『너』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어쨌거나 이희복 시인은 서정시인(抒情詩人)이다. 그의 고집스러운 관념어(觀念語)는 작품 전체의 이미지를 부각(浮刻)하는 경우도 있으나 어떤 경우에는 지나친 독백(獨白-monologue)으로 빠져버릴 염려도 있다.
이러한 시의 구성이나 구도가 그 시인의 시정신(poetry)과 체험의 순도(純度)에 따라서 변형되는 작풍(作風)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희복 시인의 작품들도 그가 간직한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ess)이 그의 시적 원류를 형성하고 있어서 그의 인간관과 자연관을 동시에 유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희복 시인이 갈구(渴求)하는 ‘그리움’과 ‘삶’과 ‘추억’들은 그가 생활주변과 내면에 잠재한 평범성을 이탈하지 않고 현대 생활(modern life)과의 접맥(接脈)을 통한 시법은 그를 잘 재현한 그의 인생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가 어떤 진리나 도덕을 노래하는 것은 어니지만, 희로애락의 우리들 심성에서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프랑스의 근대 탁월한 상징주의의 비조(鼻祖)로 알려진 보들레르의 언지를 경청할 필요도 있다. 시는 혼자만의 즐거움이 아니라, 공감의 영역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