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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에릭슨의 종교심리학에 대한 연구
一 발달이론과 종교이론을 중심으로 一
경희대학교 비폭력연구소 박사, 안 신
목차
서론
에릭슨의 발달이론과 종교이론
에릭슨 발달이론의 특징
에릭슨의 주관성에 대한 이론적 평가
결론
1. 서론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정신분석학은 종교의 기원을 지나치게 성이론(sexual theory)에 집중시켜 설명했다는 지적을 받으며 심리학적 환원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되어 왔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자연력을 신으로 형상화한다.’고 주장하며, 종교를 심리적 ‘환상’(illusion)으로 간주했다. 그에 따르면, 신은 자연의 공포를 제거하고, 죽음을 감수할 수 있게 해주며, 문명은 욕망을 억압하며 강요하는 고통과 박탈을 보상해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아버지에 대한 동경과 스스로의 나약함에 대한 자아의 인식 때문에 자신의 보호자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신을 심리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인은 억압된 욕망을 위장해서 실현하기 위하여 종교를 갖게 되었고, 이런 의미에서 모든 종교적 교리는 입증할 수 없는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종교를 “인류의 보편적인 강박증”(universal neurosis)으로 평가했고, 당시 인간문명이 진화하는 발달과정에서 이제 종교를 떠나 과학으로 나가야하는 중대한 시점에 놓여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종교를 극복되어야 할 심리학적 병리현상으로 간주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종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후기 프로이트주의자가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이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에릭슨이 발전시킨 후성학적(epigenetic) 인성발달이론을 종교의 역할을 중심으로 분석할 것이다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에릭슨이 어떤 측면에서 종교에 대하여 긍정적인 사회심리학적 자아심리학(ego psychology)으로 변용시켰는지를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론이 지닌 특징과 개선되어야 할 몇 가지 한계를 검토할 것이다.
먼저 분석에 들어가지 전에 에릭슨의 생애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보자. 에릭슨은 젊은 시절 예술가로 활동했고 유럽전역을 여행하며 그 분야의 지식을 쌓다가, 우연히 알게 된 정신분석학에 심취하게 되어 정신분석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독일 나치당(National Socialism)의 집권으로 유럽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독특하게 발전시켜 발달심리학과 자아심리학 분야의 권위자가 되었다.
에릭슨은1902년 태어나 독일에서 유명한 소아과 의사인 유대인 양아버지와 덴마크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하였다. 그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의 덴마크인 친부는 에릭슨을 임신한 아내의 곁을 떠났다. 그는 청소년시절 방랑자가 되어 미술을 공부하기 위하여 유럽 전역을 수년간 여행했고, 정식으로 미술을 공부하기 위하여 다시독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친구 블로스(Peter Bios)의 초대를 받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위치한 정신분석학 연구소(Vienna Psychoanalytic Institute)에서 아동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게 되었다. 이 연구소는 프로이트가 아동 정신질환자들, 프로이트의 동료들, 훈련생들을 위해 설립한 곳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에릭슨은 자연스럽게 6년간 프로이트의 최측근 정신분석가들 밑에서 정신분석학과 몬데쏘리 교수법을 수학하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기초한 자아심리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특히 그는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 1895-1982)에게 정신분석을 받을 수 있었다.
에릭슨은 1933년에 나치당이 집권하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있던 대부분의 유대인 정신분석가들처럼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미국식 대학교졸업장은 없었지만, 보스톤 시에 있는 유일한 아동분석가로서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정신분석학을 교수 하였다. 이후 예일대와 버클리대 등 대학교와 연구소에서도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인류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남부 다코타주의 수우족(Sioux)과 태평양연안의 유록족(Yurok)에 나타나는 아동심리를 연구할 수 있었다. 그는 1950년에 출판된 『아동기와 사회』(Childhood and Society)에서 종교를 포함한 사회의 가치가 개인의 인성발달에 주는 영향을 분석했다. 이 밖에도 그의 저서에는 마틴 루터의 정체성 의 혼란을 설명한 『청년 마틴루터』(Young Martin)와 중년을 맞은 마하트마 간디의 인성형성에 대한 심리학적 평가를 시도한 『간디의 진실』(Gandhi’s Truth) 등이 있다. 에릭슨에게 인간은 본질적으로 ‘종교적 인간’(homo religious)이며, 종교는 인간의 인성이 발달하는 데에 요청되는 필수요소였다. 물론 그가 사용한 종교의 개념은 제도화된 기성 종교전통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보다 엄밀하게 말해서 루돌프 오토(Rudolf Otto)와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성스러움’(Das Heilige)의 개념만큼 포괄적인 함의를 지닌다.
2. 에릭슨의발달이론과 종교이론
2.1. 인성의 기초로서 종교
에릭슨의 이론에서 종교성은 인성발달의 초석을 이루며, 출생 직후부터 바로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종교성은 기초적인 신뢰의 개념으로 출발한다. 에릭슨이 발전시킨 인성발달이론의 기초에는 프로이트의 자아이론이 전제되어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정신현상을 ‘무의식’(unconsciousness)으로 총칭하며, 인간의 정신계를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잠재되어 있으나 의식화될 수 있는 영역을 ‘전의식’(preconsciousness)이라 불렀다. 그리고 각 개인 속에는 정신과정을 일관성 있게 조직화하는 존재인 ‘자아’(ego)가, 본능적인 충동인 ‘이드’(Id)와 도덕률인 ‘초자아’(superego)와 함께, 정신의 구조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자아는 결국 인간을 둘러싼 외부 세계를 포함하여 이드의 충동과 초자아의 억압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그 관계를 조정하여 욕망을 억압하며 일종의 타협된 정체성을 유지해나간다.
프로이트가 이드의 역할에 집중한데 비하여, 에릭슨은 인성발달에서 자아의 중심적 역할을 보다 강조하였다. 프로이트처럼 과거 유아기의경험이 인간의 인성을 평생 동안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에릭슨은 자아가 일생을 통하여 사회적 상호작용과 생물학적 성숙을 통해 지속적이며 점진적으로 성장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인간 생애에서 전반기의 경험뿐만 아니라 후반기의 경험도 인성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인성이 발달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은 여덟 개의 결정적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위에 제시한 에릭슨의 모델은 단계별로 발달한다는 측면에서 발생학(embryology)과 유사하다. 그러나 발생학이 출생 이전 태아의 발달에 주로 관심을 갖는데 비하여, 에릭슨의 모델은 출생 후 자아가 ‘생애 전체를 걸쳐’ 어떻게 발달하느냐에 주목한다. 개인의 심리학적 성장은 유기체의 발전과 매우 유사하며, 각각의 유기체는 특정한 성장의 시기가 있듯이, 일단 성장한 후에는 기능적 측면에서 유기체 전체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다. 이전 단계의 발달이 다음 단계의 발달에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그의 모델을 “후성학적 원리’’(epigenetic principle)를 따른다고 평가되어 왔다. 프로이트의 발달모델은 성적 발달의 내적역동성에 주로 의존하고 있지만, 에릭슨의 모델은 자아가 외적환경에 대하여 스스로를 적응해가는 과정을 함께 중시한다. 종교는 더 이상 삶의 모호성과 죄의식에 대한 방어기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발달과정에서 사회에 대한 자아의 적응을 돕는 촉매제의 역할을 감당한다.
에릭슨의 모델은 각각의 단계에서 독특한 일종의 위기를 전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출생 후 1년간 유지되는 구강감각기 혹은 유아기에는 기본적 신뢰와 기본적 불신의 갈등 상황 아래 인성이 발단한다. 이때 신생아의 인성은 어머니와 갖는 관계의 양보다는 질에 따라 결정되며, 확고한 개인적 신뢰감의 정도에 의하여 이 시기가 판가름이 난다. 예를 들어, 이 시기에 기본적인 신뢰가 결여되거나 부재하게 되면 이후 성인기에 정신분열증이나 우울증이 나타날 확률이 높아진다. 반면에 건강하게 신뢰를 갖게 된 아동은 부모가하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됨으로써, 박탈감, 분리감, 혹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대항할 수 있는 방어기제를 구비하게 된다. 이처럼 어머니로부터 주어지는 경험의 일관성, 지속성, 그리고 동일감은 가장 기초적인 인간의 자아 정체감인 신뢰를 형성한다.
신뢰를 제공하는 부모처럼, 종교도 제도적인 장치를 통하여 신생아에게 믿음을 제공한다. 에릭슨에 따르면, 모든 종교들의 공통점은 영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행운을 베푸는 신
[공급자Provider 혹은 공급자들providers]에게 정기적으로 천진스러운 복종을 하는 것이다. 즉, 사람의 체격을 움츠리거나 겸손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인간의 왜소함을 보여주고 기도와 찬송에서 잘못한 행동, 잘못된 생각, 그리고 악한 의도를 인정하고, 하느님의 인도로 내적 통일성을 이루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그러므로 개인적 신뢰감이 하나의 공통적인 신앙이 되어야하고, 개인의 불신감은 공통적으로 형성된 악마가 되어야 한다. [중략] 원시적인 종교들, 모든 신앙에서 가장 원초적인 층위, 그리고 각 개개인의 종교적 층위에는 어머니의 자궁 (matrix)에 대항하는 모호한 행위들을 보상하려는, 또 스스로 하는 투쟁의 선함과 우주의 친절한 권능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려는 속죄의 노력으로 가득하다
에릭슨에게, 유아기의 어머니를 향한 신뢰는 이후 성장의 과정에서 타자에게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태도로 확대 적용된다. 이렇게 형성된 기본적인 신뢰가 초월적인 신을 대상으로 삼게 된다면, 평생을 통하여 종교적인 신앙으로 발전하게 된다. 종교현상에 대하여 인간의 반응은 이미 탄생 직후부터 형성된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신뢰가 인성발달의 가장 기초를 이룬다는 점에서 에릭슨의 모델은 종교의 역할에 대한 가치판단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2.2. 프로이트 모델의 창조적 변형
에릭슨은 인성발달이론에서 종교의 사회적 측면과 심리적 측면을 동시에 강조 했다. 그에 따르면, 인성은 발달하는 과정에서 역사와 사회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에릭슨의 발달이론의 특징과 주요덕목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번째 단계인 구강감각기 혹은 유아기는 출생 후 약 1년간 어머니가 아기를 수유하는 동안에 진행된다. 이때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기본적 신뢰감을 기반으로 유아는 건전한 희망의 덕목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 불신의 정도가 심해지면, 가치에 상관없이 모든 것을 무차별적으로 탐식하는 악덕을 갖게 된다. 유아기에 어머니의 젖을 빼앗기에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형성된 이러한 불신은 이후 발달단계에서 알코올 중독이나 일에 대한 지나친 집착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결국 미래에 대한희망은 유아기의 어머니와의 경험을 통한 근본적인 신뢰에 기초를 둔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가 건전한 환경에서 형성 되었을 때, 대상의 가치를 구별할 수 있는 건전한 불신도 가능케 된다. 따라서 프로이트가 강조한 구강적 측면과 함께 에릭슨은 유아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감각적측면도 고려한다.
둘째로 근육항문기 혹은 전기 아동기는 유아가 항문을 비롯한 근육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시작하는 2-3세에 진행된다. 이 시기에는 유아가 ‘자율성’을 확보하게 되는, 동시에 자기조절의 상실감과 외부적인 과잉 통제감으로 인하여 지속적인 ‘수치심과 의심’이 생성된다. 부모와의관계 속에서 근육 사용을 반복하며 스스로의 자율성을 키워간다. 이 시기에 유아는 배변, 보행, 식사, 언어훈련 등을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자율성이 타인에게 인정되지 않고 거부 될 경우에, 수치심을 느끼고 분노를 내적으로 쌓게 된다. 이 악덕은 신체적 남용, 언어적 남용, 자신에 대한 남용등의 형태로 표출된다. 혹은 분노를 억눌러 침묵 하다가 경우에따라 갑자기 폭발하기도 한다.
셋째로, 4-5세의 놀이기 혹은 운동남근기에는 어린이가 자신과 타인의 성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동성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이성부모를 독점하려는 오이디프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를 경험한다. 동성부모와 경쟁관계가 형성되면서 아동은 ‘주도성’을 추구하며, 과업의 수행과 계획에 대한독립을 요구한다. 이와 동시에 주도성을 갖고자 하는 의도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는 위험성에 노출될 수 도 있다. 이 시기에는 언어와 행동이 공격적으로 변하며, 관계하는 대상은 부모를 포함한 다른 가족으로까지 관계의 범위가 확대된다. 주도성을 보여 주기위하여 다양한 언어와 행위를 시도하는 가운데, 적절한 제한영역이 설정되지 않으면 한없는 탐욕이 발생하기도 한다
넷째로, 어린이가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는 6세부터 12세까지의 학령기에는 학교생활을 통하여 체계적인 훈육을 통하여 ‘근면함’을 개발한다. 이전 단계의 성적욕망은 잠복기를 맞게 되며, 어린이는 학업을 통하여 기술의 습득과 완수의 기쁨을 알게 되고 보람과 성취감을 경험한다. 그러나 학업관계의 경쟁에서 다른 어린이들로부터 뒤쳐지게 되면 열등감이 형성된다. 자신의 지위가 또래집단 안에서 평가 절하되었다는 느낌을 받아 열등감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처럼 친구들과 교사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면, 물질적 소유 혹은 개인적 자질에 대하여 타자를 부러워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 근면성을 적절히 형성하게 되면 능력의 덕목을 갖게 되어 자신감을 갖게 되고 사회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다섯째, 12세부터 20까지 진행되는 청소년기에서는 신체의 생리적 변화와 사회관계의 복잡화를 경험하면서, 정체성과 역할에 대하여 혼란을 느낀다. 청소년은 일관성 있는 자아로서 정체성을 추구하게 되는데, 사회관계가 가족과 학교를 넘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남으로써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도 다양한 형태로 요구된다. 동일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잠재적인 자아들은 거부되어 부정적인 정체성이 생긴다. 자아가 통일화된 자아를 확립하지 못하면 혼란을 경험한다. 에릭슨은 이러한 정체성과 역할의 혼란을 느끼는 단계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중심적 사고가 과장되게 되면 교만이라는 악덕으로 표출된다. 반면에, 자 기 자신을 포함해서타인에게도 진실함을 유지하면 충실이라는 덕목이 형성된다.
2.3. 통합을 향한 지속적인 발달
에릭슨은 과거지향적인 프로이트의 모델을 현재와 미래를 고려한 모델로 대폭 수정하였다. 그는 프로이트가 성적 욕망 중심으로 고안한 발달단계에 추가로 사회적 환경요인을 고려한 성인초기와 장년기 및 노년기의 단계로 확대하고 보강했다.
위에서 소개한 다섯 단계를 통하여 정체성이 형성된 후에, 여섯째 초기성인기는 약 21세부터 34세까지 지속된다. 이 기간에는 성인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동반자와 친구들과의 친밀감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친밀한 관계의 형성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가능할 때 실현된다. 특히, 사랑의 미덕이 발현되어 결혼생활을 하게 되기도 하고, 직장생활을 통해서도 동료와 상사에 대한 친밀한 우정과 유대 관계가 형성되는 동료애가 나타난다. 남성에 비하여, 여성은 동성과 이성모두에 대하여 친밀감을 더 잘 나타내지만, 남성은 이성관계에서는 친밀감을 보이지만 동성 간에는 다소 소원함이 나타난다. 이 기간에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에 실패하면, 정체성이 외부와 타인으로부터 고립되어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남과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의 영역에 대하여 위협을 느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아를 스스로 상실하는 사랑의 덕목과는 반대로 통제되지 않는 정욕은 성욕, 권력욕, 명예욕 등으로 표출된다. 이러한 고립과 정욕은 나눔의 사랑으로 극복된다.
일곱째, 35세부터 60세까지 이르는 성인기에는 생산한 세대를 지도하는 돌봄의 관심을 갖는 ‘생성감(generativity)이 형성된다. 이전의 단계와는 달리, 자아를 넘어 타자와 세계를 향하여 의미 있는 봉사를 실천하는 단계이다. 타자는 세계와 환경을 포함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일은 이러한 생성감의 표현이다 그러나 자기연민과 세계에 대한 불신은 침체성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인은 다음 세대를 위한마음을 갖기보다는 무관심으로 남을 돌보지 않게 된다.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읽지 못하고 일상의 반복에 지루함을 느끼며 공허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생성감은 생산성과 창조성을 넘어 자신의 자손들을 교육하고 돌보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구세대의 신세대에 대한 의존성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러한 돌봄의 과정을 통해 인간은 보다 성숙한 사회적 존재가 된다. 에릭슨은 종교를 포함한 모든 제도와 관습이 생성감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윤리를 성문화하고 있으며, 특히 이러한 돌봄의 덕목을 “궁극적 관심”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마지막, 여덟째 노인기는 60세 이후 사망까지의 기간으로 에릭슨은 이 단계에 인성은 자아통합(ego integrity)을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자아통합이란 “질서와 의미를 찾는 경향’이며, 동시에 타인에 대한 사랑이다. 이러한 궁극적 통합에 이르게 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반대의 경우엔 다가올 절망가운데 죽음을 두려워한다. 혹은 인생자체를 혐오하게 된다. 노인기는 성숙의 경지로서 갈등이 해결되며 삶을 만족과 감사로 수용한다. 타자에 대한 돌봄을 지나 이전 세대와 정서적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노인은 유아와 같은 순진성을 회 복하며 삶을 통해 얻은 지혜로 만인의 공감을 얻게 된다. 통합을 성취하지 못하면, 자신의 삶을 회한 속에 증오한다. 이런 경우에 노인은 고독과 원망 가운데 우울함을 느낀다.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삶을 초연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요컨대 에릭슨은 프로이트모델을 토대로 새로운 발달이론을 발전시켰다. 프로이트는 욕망에 기초한 정신분석학을 통하여, 청소년기 이후의 단계들(초기 성인기, 성인기, 노인기)에 발생하는 정신적인 문제들을 모두 청년기 혹은 그 이전의 경험으로 환원하여 설명하였다. 그러나 에릭슨의 모델은 인성의 형성에서 후반부인생의 변화 가능성을 인정했고, 사회적 요인도 생물학적 요인만큼 중시하였다.
에릭슨의 발달이론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경험을 조화롭게 공존시킨다. 전술한 바와 같이, 프로이트의 주장을 따라 인생의 후반기가전반기에 형성된 인성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에릭슨의 모델은 후반기에 새롭게 경험된 환경적 요인들로 인한 인성의 변용도 함께 고려한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여덟 단계들은 단절된 경계도 그렇다고 개인의 인성발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대와 세대를 거쳐 지속적으로 순환한다는 점에서, 에릭슨은 개별적인 인성의 발달보다는 공동체적 상호영향을 강조하였다. 이 점에서 인성의 형성에서 내적경험을 중요시했던 프로이트의 입장에서 더 나아가 융이 주장한 ‘집단적 무의 식’(collective unconsciousness)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씨갈(Robert Segal)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프로이트가 일률적으로 종교를 유해하다고 판단 할 때에, 에릭슨은 종교를 매우 유용한 요소로 평가한다. 그리고 프로이트가 종교의 오류를 지적하는 부분에서, 에릭슨은 종교의 진실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점은 에릭슨의 이론이 칼 융의 이론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분명한 것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반대했던 융과는 달리, 에릭슨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근본적으로 유지하고 보완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에릭슨은 의식을 자아, 이드, 초자아로 나눈 프로이트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자아가 보다 강하며 이드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프로이트에 비하여 자아의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에릭슨은 성적인 욕망만큼 의미에 대한 추구를 중요시했고 두 욕망 모두 내외적으로 조화롭게 발달해야 한다고 보았다.
에릭슨의 발달이론은 각 단계별로 두 가지 대립되는 가치의 양극을 상정한다. 기본적 신뢰, 자율성, 주도성, 근면성, 정체성, 친밀감, 생성성, 통합성이 한극을 이루면, 이에 반대되는 극에는 불신, 수치와 의심, 죄책감, 열등감, 정체성/역할 혼란, 소외, 침체, 절망과 혐오가 자리를 잡는다. 하나는 긍정적인 가치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가치로 제시되지만, 에릭슨은어느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양극이 상황에 따라 혹은 문화에 따라 적절하게 조화되고 통합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유아기에 대상에 대한 극단적인 신뢰만을 갖게 된다면 불신의 위험에 대한 자각 없이 모든 것을 과신하여 실 수를 범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불신만을 갖고 있다면,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고립시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것이다.
에릭슨은 무엇보다도 정체성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프로이트는 한 유아가 동성의 부모와 무의식적인 동일화를 하는 과정에서정체성이 형성된다고 보았지만, 에릭슨은 정체성을 한 청소년이 의식적으로 자신을 독특하고 통합된 한 인간으로 인식하는 사건에서 찾았다. 다시 말해, 정체성은 단순히 본능의 통제체계가아니라, 사회에 참여하는 가운데 직업이나 역할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종교는 이 과정에서 이념을 제공함으로써 자아 정체성의 확립을 돕는다. 사회와 우주에서 갖는 한 인간의 위치를 설명해주고 정당화함으로써, 종교는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종교를 욕망을 억압하거나 사회로부터 도피하는 기제로 간주하지 않았다.
에릭슨은 인성의 성장을 위한 교육적 측면이 사회심리적 위기에 내재되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은 지속적으로 환경과 조우하며 의미를 물으며 성장한다고 보았다. 생물학적 성숙과 함께 진행되는 다양하게 요구되는 사회적 가치에 대하여 개인은 반응과 변용을 계속해 나간다. 사회적 가치는 종교를 비롯한 제도와 관습 및 문화의 형태로 개인에게 자극을 주며, 인간은 이러한 자극에 적응해 가며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체성은 고정되어 있기 보다는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에릭슨은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통하여 인간이 본성적으로 삶 가운데 의미를 추구하며, 동시에 프로이트의 지적처럼 성적인 욕망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동시에 입증하려 했다. 그는 종교를 정체성의 문제로 환원시켰고 그러한 환원을 통하여 신앙으로서 종교와 과학으로서 심리학을 화해시킬 수 있었다. 결국 에릭슨은 프로이트의 종교에 대한 성이론 중심의 환원주의적 해석을 얼마간 종교주의적, 즉 종교전통의 내부자의 관점으로 선회시킨 정신분석학의 개혁자였다.
에릭슨의주관성에 대한 이론적 평가: 도구론과 과정론
미국 캘리포니아대 산타바바라에서 에릭슨의 고희를 기념하는 학회가 있었다. 이 모임에서 발표된 논문들 가운데, 그의 방법론이 지닌 특징에 대한논의가 있었다. 디티스는 에릭슨의 주관성이 갖는 도구적 의미를 강조했고, 월트 캡스는 에릭슨의 인성발달이론의 주요 개념들이과정철학과 긴밀한 연계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평가들은 에릭슨의 종교심리학에서 연구의 주체로서 그의 주관성이 갖는 중요성에 주목했을 뿐만 아니라, 연구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4.1. 주체와 객체의 만남: 디티스의 견해
예일대 종교심리학자 제임스 디티스(James Dittes)는 종교연구에서 주체로서 연구자 자신이객체로서 연구대상에 대하여갖는 관계성에 따라서, ① 불일치의 유형(incongruent type), ② 확장의 유형(inflated type), ③ 소개의 유형(introductory type), ④ 도구의 유형(instrumental type) 등으로 구분하였다. 이 유형들 가운데 디티스는 에릭슨의 연구유형을 도구유형에 위치시켰다.
첫째로, ‘불일치의 유형’은 연구의 대상에서 연구자의 개인적 관련성을 철저히 배제한다. 디티스는 기독교 칼빈주의(Calvinism)의 영향아래 있는 대부분의 북미 연구가들이 이 유형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속해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칼빈주의는 신에 의하여 창조된 우주의 규칙성을 완전히 신뢰하는 만큼, 인간의 내적감정이 지닌 불규칙성을 불신한다. 따라서 연구자의 주관성은 연구자의 연구와는 무관하며 오히려 연구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 유형은 인간 의 감성에 대하여 비이성적 두려움과 과학에 대한 합리적 철학을 과도하게대립 시킨다.
둘째로, 앞의 유형과는 반대로 ‘확장의 유형’은 연구자의 개인적 관련성이 연구 대상을 지배하는 유형이다. 전술한 ‘불일치의 유형’에 대한 강한 반동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유형에서는 주체와 객체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연구방법을 거부하고 대신에 자신의 내면에 대한 역사를 기술한다. 이미 주체와 객체 사이의 연속성이 전제되어 있으므로 연구자의 주체 자신에 대한 연구가 바로 연구대상으로서 세계에 대한 연구와 동일하다고 본다. 디티스는 이 유형에 현상학, 실존주의, 역사주의, 독특성(sui generis)을 전제한 연구, 상징적 현실주의 등이 속한다고 보았다. 이 유형에서는 초연한 연구보다는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하며, 연구자가 시도하는 자율적인 분석을 포기하는 대신에 적극적으로 대상을 경험하도록 요구한다. 디티스는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를 이 유형에 속하는 대표적 연구자로 간주한다.
나머지 두 유형은 위의 극단적인 유형 사이에 놓여있는 중립적 유형들이다 셋째로 ‘소개의 유형,은 연구자의 개인적 관련성을 실마리로 하여 본격적인 연구대상에 도달하는 유형이다. 그가 논의할 연구주제에 이르게 된 배경, 동기, 영향 등에 대하여 자서전적인 서문의 형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의 관심을 환기시키지만, 정작 연구의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전통적인 불일치방식으로 주체를 고립시킨 채 연구 대상에 몰입한다.
넷째로, ‘도구의 유형’은 연구자의 개인적 관련성이 연구의 본질적인 부분을 형성한다. 개인의 주관성이 연구를 지배하거나 연구로 안내하는 소개의 위치에 있기 보다는, 연구에 본질적인 기여를 한다. 이 유형은 ‘불일치의 유형’이 지닌 “청교도적인 초이성적 편견”을 수정하고, ‘확장의 유형’이 노출되는 연구의 “객관성에 대한 포기 없이” 개인적 관련성을 적당하게 연구의 영역으로 수용한다. 디티스는 도구유형의 대표적 사례로서 에릭슨의 저서들을 포함시킨다. 에릭슨은 자신의 주관성과 연구대상의 객관성을 연결시켜 인간 삶의 실체를 분석했기 때문이다.
에릭슨은 그의 저서,『청년 마틴 루터』와 『간디의 진실』에서 인간의 삶의 주기에 따른 정체성의 위기와 인성발단이론을 자신의 경험과 식견을 이용하여 설명하였다. 전자의 후기(epilogue)에서는 유아기→전아동기→놀이기→학령기→청소년기의 단계를 청년 루터가 경험하는 정체성 형성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고, 후자의 서언(prologue)에서는 본인의 인도경험과 간디의 지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종교적인 인간(homo religiosus)으로서 중년 간디의 인성이 발달하였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힌두교인이 경험하는 전통적인 인생주기(학생기antevasin→가주기grhastha→임주기vanaprastha→유행기samnyasa)와 자신의 발달이론사이의 유사점을 강조하며, 특히 중년 간디의 경우, 인성에서 생성감이 강화되었고 이웃과 세계를 향한 돌봄의 덕목을 실천했다고 평가하였다.
요컨대 디티스의 지적처럼, 에릭슨은자신의 경험과 주관성을 통하여 연구대상으로서 마틴 루터와 마하트마 간디의 정체성의 형성과 이타적인 인성의 발달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는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인간됨의 보편성이 편재함을 전제하고, 이해의 과정에서 주체와 객체의 만남을 중시하는 에릭슨의 방법론적기초를 보여준다. 결국 그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경험도 그러한 보편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도구가 됨을 잊지 않았다.
4.2. 통합을 위한 과정: 월터 캡스의 견해
캘리포니아대의 종교학자 월터 캡스(Walter Capps)는 에릭슨을 과정철학자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에릭슨의 모델에서 인성의 발달이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고는 있지만 그 목표를 구체적으로 달성할 수는 없어 보인다. 캡스에 따르면, 에릭슨의 “목표는 행복이나 쾌락도 아니다. 어떤 인간상도 아니고 이상적인 정황도 아니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잠재적 가능성의 실현도 아니다.” 에릭슨이판단할 때 인성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는 통합이다. 이 통합은 죽음과 생명을 동시에 직면하는 것이며, 삶의 존재를 확인하고 역사와 사회 안에서 삶의 의미를 읽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은 바로 에릭슨의 발달단계에서 마지막 노인기에 이르러 획득되는 덕목인 지혜로도 가능하다고 본다. 인성의 다양한 요소들은 종교적 삶을 위한 방향성을 결정해 주고, 모든 개별단계들은 하나의 통합을 위한 일종의 ‘과정’이다. 유아기의 기초적 신뢰가 형성되는 단계에서 시작되어 노인기의 통합으로 마감되는 발달단계는 개인적 차원 너머에 있는 공동체의 차원으로 나아가는 세대 간의 통합을 의미한다.
캡스는 에릭슨의 모델이 세 가지 전제에기초한다고 지적하였다. 첫째로, 목표(telos)는 심리적조화이며, 초자아, 자아, 이드 사이의 화해이다 둘째로, 이러한 목표는 개인의 성장을 동반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한 성장은 역동적이며 동시에 행동을 요구한다. 여기서 조화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과 장소의 구체적인 좌표위에 나타나는 전인적인 현상이다.
캡스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신에 대한인간의 믿음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는데 주된 관심을 기울였지만, 에릭슨은 인성의 조화에 보다 큰 강조를 두었다. 프로이트는 종교를 초자아의 구성 안에 위치시켜, 종교를 “초자아의 건설적능력에 의하여 야기된 위선과 환상의 산물”로 정의했다. 결국, 프로이트의 종교론은 초자아를 중심으로 발전해고, 에릭슨은 자아의 조절과 통합능력에 대한 종교의 기여를 분석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에릭슨이 분석한 종교적 천재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종교인들을 조명한 것이 아니었다. 루터의 경우, 그의 종교적 책무는 내세와 종교공동체의 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화전반에 대한 변용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는 정체성과 통합의 형성을 촉진하여 사회문화적변동기에 영향을 끼친 문화적 개혁자였다. 루터는 그의 헌신적 신행보다는 자아와 사회정신의 균형을 이루어나갔다는 점에서 에릭슨에게 종교적 천재로서 평가된 것이다. 간디의 경우도, 그의 혁명적인 행위에 연구의 초점이 있었고, 비폭력의 지혜에 대한평가가 이어졌다. 캡스의 지적처럼, 이념은 어떤 목표에 유용성을 지닌다. 종교적 인간은 자아와 사회정신 사이에 있는 긴장을 완화시키고 통합시킬 수 있는 이념의 유용성을 강화할 수 있는 인물이다. 캡스는 이념을 사회조직의 역동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는 점에서 에릭슨의 통합이론을 베버(Max Weber)와 뒤르깽(Emile Durkheim)의 종교사회학의 이론과 유사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점에서 에릭슨은 개별자들의 삶뿐만 아니라 국가나 공동체도 정체성의 갈등과 위기를 맞는다고 보았다. 나아가 디티스와 마찬가지로 캡스도 에릭슨개인의 발달사가 역사를 해석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어떤 해석자도 진공상태에서일하지 않는다.”는 그의 지적처럼, 해석학적 시도는 결국 연구자자신에 대한 지식의 확장을 포함하게 된다.
자아심리학은 인성의 발달과정에 주된 관심을 기울여온데 비하여, 종교학은 종교전통의 본질, 기원, 구조, 기능 등을 연구해 왔다. 지금까지 살펴 본 에릭슨의 자아심리학은 프로이트의 인성 발달모델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종교가 지닌 긍정적인 가치와 필연적인 역할을 강조하여 왔다는 점에서 그 방법론적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인성발달 모델도 다른 환원적 종교심리학의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더욱 논의를 통해 발전시켜야 할 쟁점들을 안고 있다.
첫째, 에릭슨은 동서양의 차이점을 초월한보편이론(universal theory)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서양의 유대-기독교전통의 맥락에서 발전한 심리학 이론의 틀을 힌두교 문화에서 성장한 간디에게도 적용하는 그의 시도는 문화, 언어, 종교 등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간과한 ‘제국주의적’ 시도로 보인다. 에릭슨이 사용하는 ‘정체성’의 개념도 기존의 주체성연구의 관점에서 평가하면 모호하다. 구성주의(constructionist) 관점에서의 정체성은 사회제도가 강제한산물이다. 이 입장 에서는 사회에 저항할 수 없는 무력한 사람들에게 지배이익에 봉사하도록 강요되는 것이다. 한편, 본질주의(essentialist) 관점에서 정체성은 젠더, 인종, 계급, 종교에 따라 특정한 범주 혹은 영역으로 고정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사회적이며 유전적 기원에서 벗어나기가 좀처럼 힘들다는 것이다 나아가 개인주의(individualist)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정체성은 개인스스로에 의하여 창조적으로 만들어진 자아의 이미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요 관점들과는 달리 에릭슨이 사용하는 정체성의 개념은 관계적(relational)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사회, 개인, 문화가 지속적으로 상호 영향을 끼치는 가운데 자아가 형성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에릭슨은 서양의개인 중심적 사고에 토대를 둔 자신의 정체성이론을 가지고, 공동체를 보다 강조하는 정체성의 개념을 지닌 아시아 문 화의 사례들을 너무 무리하게 설명하고 있다.
둘째, 에릭슨의 모델이 사회적 외부환경에 대한 요소를 강조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지닌 특징을 한계로서 지니고 있다. 그의 모델은 인성 형성의 근본적인 문제를 여전히 아동기 혹은 유년기에서 찾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가톨릭교회를 개혁했던 루터 사상의 근원을 엄격했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유래되었다고 판단했고, 간디의 비폭력사상을 유아기와 아동기에 있었던 부모와의 관계와 연결시켰다. 그리고 ‘종교적 인간이라는 범주를 중심으로 정신분석학을 적용하고는 있지만, 남성이 아닌 여성에 대한 분석에는 젠더에 따른 차별적인 모델 혹은 수정된 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은 간과한다. 이 점에서 자녀의 교육에 대하여 젠더로서 부모 양자의 비중이지역마다 문화마다 종교마다 상황마다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도 검토해야 할 부분으로 남아있다
셋째, 후성학적 발달이론도 문화적 맥락에 따라 발달주기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경우, 유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조선에서 조선인들이 지향했던 인간상과 개화기 서구에서 유래한 기독교 전통 아래에서 형성된 새로운 인간상이 동일한 모델을 기준으로 분석되고 해석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점에서 에릭슨이 제시한 각 단계별 덕목(희망, 의지, 목표, 능력, 충실, 사랑, 돌봄, 지혜)도 그 보편성을 확신하긴 어렵다. 인성의 갈등을 통하여 양극의 적절한 조화라는 것도 (동양사상에서는) 이상적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실질적인 과학적 검증의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모친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기본적인 신뢰가 이후 생애의 심리적 건강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는 점에서 프로이트 이론의 결정론적 영향과 한계가 남아있으며, 아동의 부모에 대한의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자율적인 부분을 간과한 채 피동적인 존재로 해석한다는 점도 지나친 일반화로 보인다. 또한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결혼관의 변화로 이혼율이 급증하고 출생률이 저하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에릭슨의모델도 단계와 적용 범위에 대한 재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주제어: 에릭 에릭슨(1902-1994), 종교심리학, 발달심리학, 종교, 인성, 정체성,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 정신분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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