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의 공동주택관리 담당부서는 민원이 많기로 정평이 나 있다. 도시지역 공무원들 사이에선 ‘민원 5대 부서’로 꼽힌다고 한다. 국민 대다수가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만큼 민원이 빗발치는 건 당연하다. 층간소음, 층간흡연에 이어 발코니에서 생선 말리기로 인해 층간냄새마저 갈등의 원인으로 떠올랐다. (본지 2월 9일자 5면)
단독주택에서라면 당연한 행위들이 공동주택에선 이웃을 괴롭히는 민폐가 된다. 각양각색의 생각지도 못한 민원을 접하다 보니 담당부서는 기피부서가 됐고 담당자들은 다른 부서로의 전출만 기다린다. 공동주택관리에 정통한 공무원이 희귀한 이유다. 어떤 공무원은 “나도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공동주택에 이렇게 많은 문제와 갈등이 있는 줄은 담당부서에 와서 처음 알았다”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지자체가 주택관리사를 공동주택관리 담당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것은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다년간 현장에 근무하며 체득한 경험과 내력은 다른 누구도 얻기 어렵다. 이 귀중한 노하우는 지방정부의 행정집행에 큰 도움이 되고, 인력소모와 시간낭비를 막아준다. 현재 주택관리사 출신 임기제공무원이 전국적으로 98명에 이른다. 경기도가 36명으로 가장 많고, 서울 21명, 인천 9명 등 아파트가 밀집한 수도권에서 많이 채용됐다. 곧 100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1면>
주택관리사 출신 공무원의 역사는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북 익산시가 2008년 전국 최초로 박설희 주택관리사(5회)를 공개 채용했다. 수도권이나 대도시가 아닌 지방 기초지자체에서 최초의 기록을 쓴 건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이한수 익산시장은 “공동주택 관리업무에 현장경험과 전문지식을 겸비한 인재가 필요해, 익산시민 주거의 질을 높이기 위해 주택관리사 공무원을 채용했다”고 밝혔다.
2011년엔 인천시가 광역지자체 최초로 이득상 주택관리사(1회)를 채용했다.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공무원은 일정하게 부서 이동이 이뤄져 전문성과 능률이 저하된다”며 “공동주택 관리업무는 지속성이 필요하므로 주택관리사 공무원이 정책 일관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2020년 10월 전국의 주택관리사 공무원은 78명이었다. 이후 16개월간 20명이 증가한 셈이다.
이달에는 오정남 주택관리사(10회)가 인천 서구청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그녀는 “14년을 근무한 단지를 떠나려니 입주민과 동대표들이 만류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면서 “행정부서와 관리현장의 가교가 돼 공동주택관리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입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때는 주택관리사 공무원 채용을 불안하게 보기도 했다. ‘늘공(늘 공무원)’의 입장에서 ‘어공(어쩌다 공무원)’에게 일을 맡기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고 한다. 수도권 모 자치구에 공채됐던 한 주택관리사는 한 구의원으로부터 “관리소장이 뭘 안다고 공무원이 됐냐”는 공개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갈고 닦은 현장경험과 법률지식을 활용해 복잡한 민원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자, 불안한 눈길이 사라져갔다. 이득상 주무관은 10년 넘도록 시청에 근무하면서 수많은 민원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금은 대부분의 지자체 팀원들이 “주택관리사 공무원은 우리 부서에 없어선 안 될 존재”라고 입을 모은다. 일반공무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장경험에다 공동주택과의 소통 능력까지 갖춘 핵심 인력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니 관련 행정이 원활해졌기 때문이다. 초창기엔 불편한 시선 탓에 중도하차한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문가로 대우받으며 보람을 느끼고 일한다는 주택관리사가 많다. 주택관리사 공무원 도입은 입주민과 행정기관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하다. 이들의 더 큰 역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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