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 최 원)
유다의 재판
‘탁도마’는 바쁘게 움직였다. 무더운 폭염에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다. 밤새 뒤척이며 궁싯거려 피곤이 가시지 않은 듯 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CBC 방송국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왕초보자였다. 그에게 중차대한 ‘유다의 재판’ 아나운서를 맡긴다는 것은 방송국 개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때는 2024년 무더운 여름 8월 초순, 가룟인 유다의 최종 판결이 있는 날이었다. 오전 일찍부터 법정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특별히 국민 참여 재판으로 진행되는 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지대했다. 이곳에는 벌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북적대고 있었다. 유튜버들도 이때를 놓칠세라 며칠 굶은 하이에나처럼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댔다. 경찰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한층 긴장한 듯 경직된 모습으로 도로 좌우로 쭉 도열해 있었다. 법원담당 직원이 메가폰을 들고 임시로 설치한 법정 입구 단상에 올라섰다.
“시민 여러분, 방청석은 제한된 인원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 공지한 것과 같이 지금부터 공정하게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받으신 번호표를 잘 보시고 호명되신 분들은 번호표에 확인 도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추첨이 진행되었다. 번호가 하나씩 발표될 때마다 건물 앞에 모인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식과 환호가 흘러나왔다. 당첨된 사람은 마치 로또 일등이라도 걸린 것처럼 기뻐했다. 유튜버들도 당첨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어제 대통령과 악수하는 꿈을 꾸었는데 대박이야. 완전 로또야. 이 역사적인 순간을 현장에서 보다니 운수대통이야. 우하하.”
“에이, 얼마나 기다렸는데 떨어졌어. 그놈 얼굴상이라도 볼까했는데 틀렸군. 중계방송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법원 직원이 공지사항을 알렸다.
“여러분 조용히 하십시오. 당첨되신 분들은 오후 12시30분부터 방청권을 받아 재판정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정문 앞에서는 여러 매체의 기자들과 리포터들이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CBC 방송국은 야외 현장에 스튜디오를 설치하고 만반의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실시간 중계방송을 위해서 ‘탁도마’ 아나운서도 생수를 연거푸 마시면서 목을 가다듬고 있었다.
“푸르르르, 푸르르르, 캑캑… 흠, 흠.”
그는 입술 털기를 몇 번 하다가 사레가 들려 캑캑거렸다. 방송 PD가 웃으며 손짓으로 진정하라는 표시를 했다.
“탁아나운서, 진정하세요. 실시간 중계니 생생한 현장감을 잘 살려야 합니다. TV를 시청하는 청취자들이 어떡하든 우리 방송을 많이 봐야 합니다. 적절한 애드리브도 괜찮으니 순발력을 발휘해서 알아서 멋지게 해 보세요. 극적인 장면을 잘 잡아내야 합니다. 오케이?”
“오케이!”
탁아나운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 재판에 대해 빠르고 공정한 보도를 하기 위해서 다른 때와 달리 며칠 전부터 중계 대본을 수없이 반복하여 숙지했다. 타 방송국보다 한 발 먼저 현장을 답사하기도 했다. 그는 생수 한 병을 다 마셨는데도 목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는 십자가 목걸이를 늘 하던 습관대로 만지작거렸다. 그의 어머니가 입사기념으로 선물한 세 돈짜리 순금이었다. 그에게 십자가는 마음의 긴장감을 달래주는 명약중의 명약이었다.
‘탁도마’ 아나운서의 가정은 3대 째 기독교 가정이다. 아버지는 교회 장로로 교회에서 살다시피 물질과 몸으로 충성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아픈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기도하며 어려운 성도들을 잘 도와 나름 존경받고 있는 권사였다. 그럼에도 도마는 부모의 기대에 썩 부응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도마라고 지은 것에 대해 늘 불만이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친구들이 툭하면 놀렸다.
“어이, 도마, 도마 좀 가져와라.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 줄거야?
그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가 얼마나 훌륭한지 아냐고 하면서 도마 같은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안중근의 세례명이 도마라서 더 자랑스럽다고 했다. 도마는 마지못해 교회에 나갔지만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신앙생활은 거의 뒷전이었다. 그러다보니 믿음도 부족했고 성경에 대한 의심이 들 때도 많았다. 대학을 다닐 때도 그랬고, 사회에 나와서도 그의 생각은 여전했다. 그에게 십자가는 그저 액세서리요, 잠시의 위안을 주는 우상일 뿐이었다.
법정 주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두 편으로 갈려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유다를 석방하라. 유다를 석방하라! 유다, 유다! 우리의 진정한 영웅, 유다, 유다! 유다는 아무 죄도 없다. 무죄, 무죄! 유다를 석방하라. 유다, 유다!”
유튜버들은 이들을 취재하느라고 분주했다. 그들의 콘셉트와 활동은 다양했다. 어떤 유튜버들은 ‘얼굴’이라는 콘셉트로 다양한 표정을 찍기도 했고, 또 어떤 유튜버들은 ‘법정 앞 광경’이라는 콘셉트로 촬영하기도 했다.
“유다를 처형하라. 처형하라! 자기 선생님을 고발한 유다를 처형하라. 유죄, 유죄, 유다는 회개하라. 회개하라. 유죄, 유죄!”
탁아나운서는 목청을 가다듬고 현장에 마련한 임시 스튜디오에서 유창한 말솜씨로 중계를 했다.
“국민 여러분, 지금 보고 계신 바와 같이 현장의 분위기가 양편으로 갈려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례없이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유다의 재판이 열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심과 2심에서는 유죄와 무죄가 엇갈렸습니다만 오늘 최종심에서 유무죄가 판결날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 여러분, 오늘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2018년 8월 1일 홍천에서의 41도가 대한민국 역대 최고 기온이라고 하는데, 오늘 현장의 열기가 그보다 훨씬 뛰어넘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흥분하지 마시고 건강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유다의 최종 선고 재판이 TV로 생중계될지의 여부는 아직 재판부에서 뚜렷이 밝히지 않아 허용 여부는 결정이 되는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탁도마는 연습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만족했다. 덥고 습한 기온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따라 목소리도 더욱 창창했다.
“국민 여러분, 먼저 오늘 방청석 관람에 당첨되신 시민 한 분을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탁아나운서는 카이젤 수염을 멋지게 기른 고양이 상을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는 자기 이름을 ‘조바라’라고 소개했다. 그는 키가 180이 넘어 훤칠해 보이는데다 펠트 소재의 챙이 위로 말린 청색 페도라 중절모를 쓰고 있어 남달리 중후해 보였다. 그는 한때 강도 행각을 벌인 사람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으나 운이 좋게도 증거불충분이라는 이유로 얼마 전에 무죄를 받고 풀려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얼굴 일부를 성형수술을 한데다가 감쪽같이 변장한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조바라씨, 어디서 많이 익은 얼굴 같은데 아무튼 당첨기회를 얻은 것을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은 가룟 유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조바라’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을 흘낏흘낏 바라보았다. 그는 왼손으로 수염 끝을 위로 쓸어 올리면서 말했다.
“에, 그런데 얼굴이 안 나오도록 모자이크 처리해 주세요. 에, 유다는 국민들을 시끄럽게 만든 죄는 인정하고 반성하는 진실한 모습을 보여야겠지요. 에, 솔직히 말해서 유다가 예수란 사람에 대해서는 그리 큰 죄를 지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에, 나는 그가 곧 무죄로 석방되리라 예상해 봅니다. 공정하고 바른 재판이 이루어질 것을 촉구합니다. 아무튼 … ”
그는 습관적으로 에, 에 하면서 어깨를 우쭐했다. 그는 재판에 대한 기대를 한껏 내비쳤으나 끝말을 흐렸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국민들께 죄를 지었나요? 예수께 죄를 지었나요? 말씀의 뉘앙스가 약간 이상합니다만 … 아무튼 저도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합니다. 두고 봐야겠습니다.”
‘탁도마’ 아나운서는 괜히 배알이 뒤틀렸지만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대기하고 있는 또 다른 사람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머리가 크고 키가 작지만 다부지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금세리’라고 하였다.
“이름이 만화주인공 요술공주 세리와 같군요. 세리씨 오늘이 최종 판결인데 예측을 해 주신다면 어찌 될까요?”
“사실 저는 너무 화가나 며칠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여러 나라를 순회하면서 재판을 벌이고 있는데, 저번 로마에서의 재판에서는 너무 느슨한 잣대로 판결되었지요. 오늘 우리나라에서의 최종 심판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유다는 자기의 죗값은 충분히 치러야겠지요. 캐스터님도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를 고치시고, 세리와 창기와 가난한 자들과 없는 자들을 불러서 밥상공동체 자리를 함께 하셨던 분이 아니셨던가요? 게다가 가룟 유다가 자기를 팔 것을 아셨지만 그의 발까지 씻기신 겸손하고 온유한 그런 분을 은 30에 팔아넘기다니. 결과적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한 그는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이 재판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지켜 볼 겁니다.”
그의 말대로 몇 날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초췌한 얼굴에 크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금세리씨,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탁도마’는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임시 스튜디오 바깥까지 나와서 취재했다. 그는 방송 PD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다음은 여성 한분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고개를 숙이고, 무척 슬퍼 보이는 여인에게 한 번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탁아나운서는 하얀 숄로 어깨부터 등까지 감싼 우아한 몸집의 여자에게 다가갔다.
“부인, CBC방송국 탁도마 아나운서입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요? 오늘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을 부탁드립니다.”
“어머, 부인이라뇨? 전 미스예요. 그런데? … 우리 동창 도마씨 맞지요? 요리를… 아, 죄송합니다.”
‘탁도마’는 깜짝 놀랐다. 그는 얼른 동창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방마리, 이건 공영방송이야. 말조심해!”
그녀는 ‘탁도마’를 보자 금방 안색이 바뀌어 반가움에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 미안, 미안, 도마야, 언제 한 번 보자. 호호.”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다니 행운입니다.”
“호호, 공영방송인데 제가 주책이네요. 아나운서님, 제가 CBC 방송에 나오나요? 방송 PD님, 저의 얼굴이 예쁘게 잘 나오도록 해 주세요. 호호. 저는 서울 토박이로 음식천국 유명 유튜버 ‘방마리’라고 합니다. 먹방으로 전국 최고지요. 호호. 저는 지금 우리 예수님을 생각하면 무척 슬프답니다. 예수님을 판 사람은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요. 사실 따지면 유다도 불쌍한 사람이지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팔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니, 방마리 씨,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모두가 죄인이란 말씀입니까?”
“따지면 그렇다는 말이지요. 탁캐스터님이라고 죄를 짓지 않았겠어요? 호호호.”
‘탁도마’는 뜨끔했다. 과거 고등학생 때, 잠시 공부를 하지 않고 방황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친구들과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기도 했었다. 같은 반인 마리가 그 사실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강도인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지 않았나요. 제자들까지 다 도망가지 않았나요? 뒤에 위대한 사도가 되었지만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정했지요. 우리도 그 무리 속에 있은 거나 진배없지요.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슬퍼요.”
“하기야 … 썩 틀린 말도 아니군요. 아무튼 방마리씨, 감사합니다.”
탁아나운서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옆에 서 있던 카이젤 수염은 여자의 말에 뜨끔했는지 얼른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서둘러 피했다.
“도마야, 유튜브 음식천국 구독 꼭 가입하고, ‘좋아요!’ 부탁해? 다음에 차 한 잔 하자. 안녕!”
그녀는 도마 아나운서에게 손을 흔들며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국민 여러분,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기뻐하십시오. 사안이 워낙 중요한지라 세계 여러 나라의 압박에 결국은 생중계를 허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고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
‘탁도마’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아직 개정시간이 되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다.
“국민 여러분, 다음은 어렵게 자리를 마련한 유명한 패널 몇 분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법원 정문 옆에 마련된 임시 패널석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패널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지요? 국민 여러분, 먼저 멀리서 일찌감치 오신 저명하신 신학 교수님 한 분을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음, 반갑소. 나는 천마루라고 하오.”
“이렇게 저명하신 천교수님을 만나서 영광입니다. 교수님, 요즈음 세태에 대한 말씀과 잠시 뒤 열리는 재판에 대해서 냉정하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음, 세태라? 맘몬주의와 우상이 가득한 이 세태를 보면 참으로 참담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진실 되게 믿어야합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펴보건대 유럽과 미국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는 점점 비어가고, 노인들밖에 없어요.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없어요.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제발 가정을 꾸리세요.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땅을 잘 다스리라고 했는데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하니 정말 큰일입니다. 나라에서도 청년들이 결혼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인구가 준다고 걱정만 하지 마시고, 아기를 낳으면 국가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주택을 무료로 임대해 준다든가, 아니면 1억씩 주시던가! …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만연한 오늘날의 문제가 아닐까요? 음, 그리고 재판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이전에 먼저 이 사안을 대하는 모든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와 사회지도자들께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안타깝지만 요즈음은 거짓지도자가 너무 많아요. 삯꾼 종교지도자들도 많지요. 권력에 탐하고, 명예에 탐하고, 물질을 탐하고… 쯔쯧, 제발 탐욕을 버리세요. 주님은 말씀하셨지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말입니다. 제발 사리사욕에 탐닉하지 마세요. 유다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자기의 선생님이신 예수를 거스른 사람입니다. 성령을 거스른 죄는 도무지 용서받지 못합니다. 배심원들께서는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지 말고 공정하게 판단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재판관님께서도 부디 사욕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배심원들의 의견을 잘 판단해서 정직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천마루’ 교수는 엄숙한 표정으로 단호하면서도 뼈있는 말을 하며 두 손을 깍지 꼈다.
“네, 고명하신 천마루 교수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정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 시대의 청년으로 깊이 새겨듣겠습니다. 옆에 계신 불교계 대표로 오신 자비가 온 세상에 넘치시는 근엄하신 온자비 스님께서 한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나무관세음 보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어험, 모든 것이 순리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나무관세음 보살! … …”
“스님,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신지요?”
‘온자비’ 스님은 두 손을 합장하여 고두백배하며 고개를 숙여 말했다.
“어험, 재판 결과는 내 알 바 아니요. 부디 자비롭기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나무 관세음보살!”
그는 연신 부채질을 하며 이마의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유난히 그의 머리가 빛나보였다.
“자비로우신 온자비 스님, 감사합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정말 촌철살인과 같은 의미 깊은 고언이십니다. 시민들 의견들이 분분한데 곁에 조용히 앉아 계신 부산 자갈치에서 오신 봉사명장 제갈봉 여사님께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여사님, 한 말씀 해 주시지요?”
독특한 플라워 패턴의 몸빼 바지에 등산 조끼를 입은 ‘제갈봉’ 여사는 얼른 마이크를 받았다.
“마, 참말로 두 분 말씀은 거창하게 하시는데 실천을 해야지요. 실천을 말입니다. 죄송합니데이. 지는요 평생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고 있는 자갈치 아지매라요. 지는 말입니데이. 부산역에서 노숙자 급식을 나눠주기도 하고, 장애인들을 위한 단체에서 봉사를 하고 있지예. 제가 무신 할 말이 있겠습니까마는 … 유다 그 양반은 물질에 너무 진심이라요. 예수님을 겨우 종의 몸값인 은 30에 팔아넘기다니 … 300냥도 아니고 말입니다. 300냥이면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아인교. 쯔쯧. 그리고 아무튼 이번 국민 재판은 최종이니만큼 바르게 나와야 하능기라요? 아무튼 유죄든 무죄든 내 알 바 아입니더. 국민 여러분, 제발 기부 좀 하고 사이소. 기부!”
그녀는 기부에 초첨을 맞춰 강하게 말했다.
“봉여사님,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제 한 몸 죽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았는가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잠깐! 국민 여러분, 방금 유다를 태운 호송차가 20분 정도면 도착한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 다음은 기독교계의 거목이신 서울 여의도에서 오신 목사님 한 분만 더 모시겠습니다.”
옆에서 조용히 염불을 외우고 있던 ‘온자비’ 스님이 탁아나운서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 잠깐만! 내 한 마디만 더 말하겠소. 나무관세음보살!”
그는 목탁을 두드리며 고개를 깊이 숙여 천천히 주문을 외우듯이 말했다.
“여러분, 부디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섬기시기 바랍니다. 자비를 베푸세요. 순리대로 삽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나무관세음보살.”
“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 맞습니다. 순리에 따르자는 말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오늘 재판도 순리대로 될 것으로 믿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
탁아나운서는 스님 옆에서 코까지 골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진선교’ 목사님께 마이크를 옮겼다.
“목사님, 많이 기다리셨죠?”
그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목사님, 목사님, 정신 차리시고,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탁아나운서는 그의 귀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아, 예, 벌써 새벽예배가 끝났나요?”
“목사님, 예배가 아니고 생방송 중입니다. 정신 차리세요.”
탁도마는 멘탈이 흔들려 은근히 짜증을 냈다. PD가 얼굴을 찡그리며 평정을 찾으라고 손짓과 눈짓을 했다. 탁 아나운서는 아차! 하며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목사님께 마이크를 드리겠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인도하신다고 무척 피곤해 보이십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보시기에는 유다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는 당황한 듯 풀린 눈을 위로 치켜뜨며 얼른 마이크를 잡았다.
“에, 저는 거듭난 교회 진선교 목사입니다. 그러니까? … 에, 국민 여러분, 우리 교회는 서울 여의도에 있습니다. 위로를 받고 싶으신 분이나 근심, 걱정과 질병에 고난을 당하시고 계신 분들은 언제든 거듭난 교회로 오십시오. 믿는 사람들은 자기만 잘 믿고 자기만 천국에 갈 겁니까? 전도를 해야 합니다. 전도는 강제이며, 필수이며 숙명입니다. 강필숙! … 명심하세요. 자기만 구원받으면 뭐합니까? 예배가 우리의 살길이며 전도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오늘 날 교회가 많이 쇠락했지만 교회의 존재 자체가 세상의 빛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에… 아나운서님, 그런데 뭐라고 했지요?”
그는 잠이 덜 깼는지 질문과 동떨어진 엉뚱한 말만 늘어놓았다. 탁아나운서는 영 마뜩찮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목사님, 전도는 나중에 하시고 유다의 죄에 대해서 말씀 좀 해 주시지요?”
“아, 그렇군요. 제가 잠시… 허허허.”
‘진선교’ 목사는 멋쩍은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침묵하더니 말문을 열었다.
“에, 사람은 누구나 죄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나 돌이키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유다는 도무지 뉘우치지를 않아요. 거듭난 삶이 무엇입니까? 중생해야 하지요. 유다는 회개하고 돌이킬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성령을 거스르고 사탄에 깊이 사로잡혔지요. 하기야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중생도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만 가능하지요. 그래서 성경은 거듭난 자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자녀라고도 하지요. 아무튼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유다가 지금이라도 후회만 하지 말고 진정 참회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거듭나면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무거운 죄의 짐을 진자들은 다 주님께로 오세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예배에 진정을 보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와 전도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는 거듭난 삶을 말하면서도 예배와 전도에 마지막 방점을 찍었다. ‘탁도마’는 모태 신앙이면서도 거듭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질책하는 것 같아 잠시 고개를 숙였다.
“목사님, 훌륭하십니다. 정말 하나님은 누구든 다 용서하실까요? 교회의 존재 자체가 빛이라는 말씀과 중생도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이때 검은 호송차 한 대가 서서히 법정 앞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앗, 국민 여러분, 드디어 가룟 유다를 실은 호송차가 서서히 들어서고 있습니다. 제가 유다를 만나서 인터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매체의 기자들이 뛰었다. 유튜버들도 뛰었다. 탁아나운서도 덩달아 뛰었다. 두 명의 건장한 호송관이 ‘가룟 유다’의 양쪽 팔을 붙잡고 차에서 내렸다. 그는 덥수룩한 누리끼리한 수염에 많이 피곤해 보였다. 유다가 취재 경계선인 노랗게 표시된 포토라인에 섰다.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그는 눈을 찡그리며 귀찮다는 듯이 입을 삐죽이며 한마디 했다.
“이 봐요, 거기 플래시는 끄고 사진 찍으소. 원, 눈이 부셔서… 이왕이면 잘 찍어 봐요.”
‘가룟 유다’는 전혀 죄책감을 못 느끼는 사람처럼 미소까지 띠며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표시했다. 오히려 세상의 관심과 이목을 즐기는 듯한 모습에 일부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유다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저, 저, 저놈 태도 좀 보소. 우라질 놈 같으니라고. 쯔쯧.”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유다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며 질문을 했다. 호송관이 그들을 제지했다.
“한 분씩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한 기자가 물었다.
“유다씨, 당신의 선생님인 예수를 은 30을 받고 진짜로 팔았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애초부터 정치적인 야심을 가지고 세작노릇을 하지 않았나요?”
“… …”
유다는 눈을 흘겼으나 묵묵부답이었다. 또 다른 기자가 물었다.
“유다씨, 국민들께서는 이번 재판에 관심이 지대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온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사람을 당신이 갈라치기를 했습니다. 잘했든지 못했든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한 말씀만 해 주시죠?”
“… …”
그는 씩 웃기만 할 뿐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이를 본 ‘탁도마’는 “이런 싸가지!”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는 화를 꾹 참으며 마이크를 그의 입에 바짝 대고 질문했다.
“가룟 유다씨,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하늘이 두렵지도 않은가요? 당신의 선생님을 왜 팔았으며 은화 30은 어디에 썼습니까?”
“… …”
여전히 쓴 웃음만 지을 뿐 묵묵부답이었다. 탁도마는 그의 상판대기를 한 대 갈기고 싶었다.
“유다씨,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한 마디만 얘기해 주시죠?
그의 얕은 질문이 가룟 유다의 묵묵부답의 어휘를 결코 누르지 못했다. 계속된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유다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내 뱉고 돌아섰다.
“… … 성실히 재판받고 나오겠습니다. 이제 그만…”
유튜버들은 유다를 찍느라고 난리였다. 150만 뷰를 자랑하는 ‘얼굴’을 콘셉트로 한 ‘함보다’ 유튜버는 유다의 다양한 표정을 연신 찍어댔다. 찡그린 얼굴, 화난 얼굴, 비웃는 얼굴, 슬픈 듯한 얼굴, 비열한 웃음을 띤 얼굴, 편안한 얼굴, 비린 얼굴, 경멸하는 얼굴, 저주스러운 얼굴 등 다양했다. 아마도 ‘함보다’ 유튜버가 찍은 많은 범죄자의 얼굴만 해도 수천은 될 듯싶었다. 그는 법원 앞에 모인 청중들의 얼굴도 연신 찍어댔다. 그는 모자이크 처리도 안하고 사진이나 영상을 내보내 고발을 당하거나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현수막을 든 사람들이 유다를 응원하며 무죄라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로 난무했다.
“유다를 석방하라! 유다, 유다! 진정한 영웅, 유다, 유다! 예수는 사기꾼이다. 유다는 아무 죄도 없다. 무죄, 무죄! 유다를 석방하라. 유다, 유다!”
‘가룟 유다’는 잠시 고개를 돌려 그들을 쳐다보면서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키가 작아 도열한 경찰들 사이로 얼굴을 빠끔히 내밀고 있던 ‘금세리’가 유다에게 공중주먹질을 하며 한마디 했다.
“저런 쳐 죽일 놈 같으니라고. 재정을 제 마음대로 주무르고, 급기야는 자기 선생님까지 팔아넘긴 저놈을 … 에라이 이 썩을 놈아!”
주변은 사람들로 뒤엉켜 아수라장이었다. 유죄라며 처형하라는 사람들의 구호도 만만치 않았다.
“유다를 처형하라. 처형하라! 자기 선생님을 고발한 유다를 극형에 처하라. 유죄, 유죄, 유다는 회개하라. 회개하라. 우리의 구세주인 예수를 팔았다. 유죄, 유죄! 유다를 처형하라.”
어디선가 운동화 한 짝이 휙 하고 날아들었다. 아슬아슬하게 ‘가룟 유다’의 얼굴을 스치며 떨어졌다. 그는 씩씩대며 발 앞에 떨어진 운동화를 힘껏 걷어찼다. 마침 ‘탁도마’ 아나운서의 얼굴에 운동화가 날아들었다. 퀴퀴한 쉰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이런 싸가지!…”
탁 아나운서는 기분이 상했지만 얼른 신발을 주워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신발 주인을 찾았다.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이 손을 흔들었다. 방송 PD가 얼른 다가와 카메라를 소년에게 들이댔다. 탁 아나운서는 소년에게 신발을 돌려주면서 물었다.
“학생은 왜 신발을 던졌나요?”
“저런 사악한 인간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해요. 돈 괘에서 돈을 훔친 것도 모자라 자기 선생님을 높은 놈들에게 판 인간이 아닙니까? 우리 사회에는 정의도 모르고, 정직하지 못한 못난 어른들이 너무 많아요.”
“아, 그래요? 훌륭한 학생입니다. 어른 된 입장으로 많이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이런 곳에 오면 안 됩니다. 국민 여러분, 보셨지요. 어린 학생도 이렇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탁 아나운서는 소년을 칭찬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가룟 유다는 야유하는 사람들이 못마땅한지 그들을 째려보면서 허공에다가 발길질을 해댔다. 호송관이 얼른 그를 제지했다. 유다는 끌려가다시피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국민 여러분, 법정 안에 마련된 공동 중계석으로 자리를 옮겨 재판 모든 과정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저희 CBC 방송을 시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공익 광고를 보내드립니다.”
탁아나운서도 뒤따라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법정 내부 분위기가 예전과 많이 달랐다. 법정 출입구 앞에 설치된 검색대에서는 입장객들의 소지품 검사가 진행되었다. 무기 소지는 물론 라이터와 같은 화기와 우산, 물병 등 의외로 많은 물건의 반입이 제한되기 때문이었다. 재판정에는 프레젠테이션과 대형 TV도 설치되어 있었다.
재판정 앞에는 판사와 배심원들과 속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난동이나 사고를 대비해 경찰관도 뒤에 서 있었다. 방청석에는 30여 명의 방청객들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여러 곳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좀 봐유. 아 글씨 말이여. 이렇게 당첨되다니 이런 행운이 없을거만유. 여러분들, 오늘 재판이 잘 될거만유. 근데 말이여. 재판은 뭐 하러 하는겨. 내 생각에 유다는 아무 죄도 없는디 말이여. 유다는 무죄를 받아야 혀.”
“얼라, 이 양반 보더랑가. 무슨 호박씨 까먹는 소리 하더랑가. 아따매 참말로 거시기 하네잉. 저 유다의 못된 상판 좀 보더랑가. 긍께 말인디 유다는 끝나븠어야. 거시기 유다는 유죄랑게. 쯔쯧”
“간나 새끼레, 조용히 아이 하겠슴메? 난 말임메. 검사들은 도무지 내 마음에 안 든다 이 말임. 내래 오늘 재판 과정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 보겠슴메. 뭐라고 해도 유다는 무죄임메다.”
“이 보시오. 너무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지 마소. 마, 유다 저 문디 짜식이 얼굴 낯짝이 보통 두꺼븐게 아니라요. 다른 양들을 죽이기 위해 도살장으로 인도하는 유다염소 같은 놈이라요. 저 놈은 유죄라요, 유죄! 아무튼 오늘 모두 봉 잡았심더. 하하하.”
서로 의견이 나눠진 방청객들의 신경전은 팽팽했다. 방청객 가운데는 CBC ‘탁도마’ 아나운서와 인터뷰를 했던 사람들과 패널로 참여했던 유명인도 있었다. 그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의미 있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재판의 모든 과정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드디어 역사적인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근엄하게 앉아있는 최고급 뉴프라다 안경을 쓴 재판장이 생중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잊은 듯 연신 코를 후비고 있었다. 왠지 천박스러워 보였다. 그는 코딱지를 돌돌 말더니 엄지손가락으로 톡하고 튀겼다. 멀리 검사석까지 날아갔다. 마치 ‘기사도’ 검사를 경멸하듯이. 그는 뚱뚱한 몸을 겨우 지탱하며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재판장의 이름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나빌라’였다. 그는 아파트와 빌라를 수십여 채나 가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대법원장으로부터 임명된 사람이었다. 그에 대해 치부책이 어딘가에 한 권 숨겨져 있다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재판은 사전에 피고인인 유다의 확인의사를 받고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배심원은 모두 9명이 앉아있었다. ‘나빌라’ 재판장은 이례적으로 재판과는 무관한 거창한 인사말과 사건 호명을 시작으로 공판을 열었다. 그의 언어는 메마르고 권위적이었으며 매우 지배적이었다.
“에, 먼저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 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나는 ‘나빌라’ 재판관입니다. 먼저 유례없이 중요한 사건이라 세계 모든 나라에 생중계됨을 말씀드립니다. 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유다에 대한 재판을 해 왔습니다만 오늘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유다의 재판은 대한민국의 정의로운 판결로 최종 결정되어질 것입니다. 어흠, 세계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이 평결을 본다니 개인적으로 참으로 영광입니다. 본 사건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회계와 재정을 담당한 가룟 유다가 자기의 선생님이신 예수를 은화 30에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그 무리들에게 팔아넘긴 사건을 평결하기 위함입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회색 뉴프라다 안경테를 위로 올리면서 ‘가룟 유다’에게 물었다.
“피고, 이름을 말하시오.”
‘가룟 유다’는 머뭇대다가 잠시 뒤 묻지도 않는 고향과 이름을 자랑이나 하듯이 천천히 말했다.
“나는 가룟인 시몬의 아들 유다라고 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전부 북쪽 갈릴리 촌놈들이지만 나는 이래봬도 선지자 아모스가 태어난 남쪽 유대의 예루살렘 부근의 케룟 도시 사람이오다.”
“피고는 묻는 말에만 짧게 말하시오. 피고의 이름은 가룟 유다 맞습니까?”
“예, 나는 캐룟 도시 사람으로 …”
그는 의기소침하여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어서 배심원들의 선서와 재판장의 배심원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특히 ‘나빌라’ 재판장은 배심원들의 의견과 평결과 양형은 법적 구속력은 없으며 다만 재판관의 평결과 양형에 참고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관은 이어서 말했다.
“에,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피고인 가룟 유다는 진술거부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럼 먼저 검사의 진술이 있겠습니다. 기사도 검사 말씀해 주세요.”
타원형 접시처럼 생긴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기사도’ 검사는 잠시 유다를 쳐다봤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의 우람하고 탄탄한 몸집에 유다는 움찔했다. ‘기사도’ 검사는 피고인에 대한 범죄 사실을 천천히 분명하게 진술하기 시작했다.
“가룟 유다는 유대인의 지도자들에게서 은화 30개를 받고, 그의 선생님인 예수를 팔아 십자가에 내 몬 장본인입니다. 분명한 것은 가룟 유다는 군인들과 미리 군호를 짜고, 예수께 입맞춤을 했다는 것입니다. 치밀하게 계획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분명한 증거는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구백만 원 정도 되는 노예의 몸값으로 자기 선생님을 땡 처리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즉, 유다는 저들의 모략에 넘어가 예수님을 정치적, 종교적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지요. 이런 천인공노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 … …”
‘기사도’ 검사는 최후의 만찬장에서 있었던 일과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볼에 입을 맞추어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무리에게 그의 선생님을 넘긴 것에 대해서 소상히 진술했다. ‘가룟 유다’는 검사의 진술을 들으며 입을 삐죽이며 냉소를 지었다. ‘나빌라’ 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유다에게 눈짓을 보내며 최초진술 의사를 물었다.
“피고인, 진술 하시겠습니까?”
“… …”
묵묵부답이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피고인, 진술 하시겠습니까?”
잠시 침묵하던 유다는 변호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변호인은 직접 말하라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다는 방청석과 법정 안을 훑어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 … 에, 저는 우리 선생님을 결코 은화 30에 넘길 의사는 없었습니다. 내가 돈이 없습니까? 집이 없습니까? 그리고 나는 캐룟 사람으로 촌놈들하고는 다르지요. 나는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이재에 밝은 세리인 마태를 젖히고, 돈궤까지 맡을 정도로 선생님은 나를 믿었지요. 재정과 회계에는 빠삭하지요. 그리고 팔아넘기다니요. 용어를 정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알려 준 것뿐이지요. 사실은 전지전능하신 우리 선생님을 잠시 시험해 본 것뿐입니다. 내 눈으로 오병이어의 기적도 보았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사건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물 위도 걷고, 병든 자는 물론,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죽은 나사로도 살리지 않았습니까? 나는 선생님이 유대의 왕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줄로 알았다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힘 한번 못쓰고, 허망하게 로마 병정에게 붙잡히시다니. 혈기 왕성한 베드로란 놈이 말고의 귀를 잘랐지만 선생님은 오히려 베드로를 꾸짖고 그 귀를 다시 붙여주었지 말입니다.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입니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속았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는 점점 목소리가 커지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방청석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런 패악스러운 놈, 우라질 놈 봤나. 쳐 죽일 좀 같으니라구.”
“잘한다. 역시 유다야. 어쩌면 저리 말도 잘 하는지. 아무렴 유다는 죄가 없지. 예수란 사람 말이야. 남은 살린다면서 자기는 왜 못 살려.”
‘나빌라’ 재판장은 코를 만지며 비린 웃음을 흘렸다. 그는 방청석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며 엄숙하게 말했다.
“방청석에 계신 분들은 조용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계속 법정을 소란스럽게 하시는 분은 강제로 퇴정시키겠습니다.”
방청석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다시 잠잠해졌다. 이어서 재판장의 쟁점 정리가 있었고, 증거를 하나하나 살폈다. 피고인 증거조사 완료 후 검사 신문이 시작되었다.
“다음은 공소사실에 대하여 피고인에 대한 신문이 있겠습니다. 검사는 신문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사도’ 검사는 유다를 유심히 바라봤다. 위압적인 검사의 눈빛에 유다는 움찔했다. ‘기사도’ 검사는 사건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다.
“먼저 유다가 기소된 것만 해도 자기 선생님을 은 30에 넘긴 것 외에도 횡령과 사기, 갑질, 게다가 자기 목숨을 하찮게 여긴 죄까지 무수히 많습니다. 피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 맞습니까? 애초부터 다른 의도는 없었는지요? 혹시 저들의 첩자로 선생님을 따르지는 않았나요?”
“첩자라니? 당연히 예수님의 제자 맞지요. 그리고 횡령과 사기라뇨? 말도 안 됩니다. 나는 갑질 한 적이 추호도 없습니다. 한 여인이 옥합을 깨서 그 비싼 향유로 선생님 발을 씻긴 사건이 생각납니다만, 내가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이지요. 오바는 했지만 그게 갑질입니까?”
유다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말했다. ‘기사도’ 검사는 못마땅한 듯 입술을 옆으로 길게 늘였다. 주름인지 보조개인지 볼이 깊게 패였다. 온갖 풍상이 그의 깊은 주름 속에 파묻혀있는 듯 했다. 그는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유다씨는 평소 돈을 맡아오면서 재정관리를 잘 했다고 스스로 말했는데, 증인들에 의하면 당신은 알게 모르게 도둑질을 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아니오, 도둑질이라니… 나는 돈을 불리려고 잠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줬을 뿐입니다. 검사님은 다섯 달란트의 비유도 모르십니까? 돈을 잘 굴려야 이자도 늘어나고, 주인에게 칭찬도 듣지요? 아직 회수는 못했지만. 그게 뭐가 어때서요?”
“다른 사람에게 빌려줬다는데 그들은 혹시 당신 가족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점점 물질에 대한 욕심이 생겨 결국은 선생님을 은 30에 넘겼다 이 말이지요. 조사를 해 봤는데 고향에 아파트도 사고, 차도 최고급 승용차로 바꿨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그리고 인근에 땅도 사고, 조랑말도 여러 필 사 놨다고 하던데 사실 맞지요.”
“… …”
묵묵부답이었다.
“좋습니다. 재판장님, 여기 자료를 PPT에 띄워주기기 바랍니다. … … 배심원 여러분, 한 번 보세요. … 제 말이 틀렸습니까? 여기 USB 증거자료를 재판관님께 제출합니다. … … 그리고 유다, 당신은 남에게 관심 받기를 좋아하고, 정치와 권력에 대한 야망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애초에 예수님이 임금이 되면 한 자리 할 것으로 생각해서 그를 따르지 않았습니까?”
“… … 말도 안 되는 소리를 … …”
“이것 봐요. 피고 가룟 유다씨, 솔직히 말해 보시오. 당신은 지금 하늘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이때 ‘손벌림’ 변호사가 검사를 제지하며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그는 ‘벌림법무법인’ 대표로써 변호사 수임료는 물론 성공보수와 소송비용 등이 일반 변호사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비쌌다. 그는 사법부에서 판사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비리를 저지르고 나온 사람으로 마당발에다 정치적인 입지도 매우 탄탄했다. 그러다보니 웬만한 큰 사건도 사바사바하며 쉽게 해결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변호사가 되어서도 유명 정치인에 대한 변호사비 대납 의혹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기도 했다. 대학교 친구들도 식사자리에 모이면 서로 낄낄대며 그를 흉보거나 비난하기도 했다.
“저놈 말이야. 벌림 자식은 나귀한테도 경고를 듣는 구약성경 민수기에 나오는 발람 같은 사기꾼이야.”
“하하, 자네 말이 맞아. 자기 이름처럼 손이나 벌리는 놈이지. 순전히 사기만 치고, 없는 사람 등을 처먹는 놈이지.”
변호사 협회에서도 변호사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그를 당장 퇴출시켜야 한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저 놈, 손벌림 변호사는 정의롭지 못해. 한 개의 저울추를 늘 가슴속에 숨겨두고 있는 놈이야. 글쎄, 돈만 되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도 아무 거리낌 없이 맡는다니까? 저 사람은 우리 얼굴에 똥칠을 하고 다니는 놈이야.”
하지만 그는 누가 무어라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분명 ‘가룟 유다’가 엄청난 변호비를 써서 그를 고용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손벌림’ 변호인은 ‘기사도’ 검사를 향하여 애매하게 검지와 중지를 모아 욕하듯이 흔들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재판장님, 정중히 말씀드립니다. 지금 검사가 따지듯이 위압적이고 강압적으로 피고를 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안과 관계없는 유도신문을 하는데 경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룟 유다’는 ‘기사도’ 검사에게 보이지 않는 가소假笑를 보냈다. ‘나빌라’ 재판장은 여전히 비린 웃음을 한껏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삿된 감정이 보이는 듯 했다.
“네, 변호인의 이의를 받아들입니다. 기사도 검사는 사건에서 벗어난 발언은 삼가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공방은 계속 되었다. 배심원들도 증거조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검사와 변호인의 주장을 경청하거나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도 했다. 방청석에서는 검사가 심하다느니 그럴 수도 있다느니, 유다의 말이 맞다느니 그렇지 않다느니 서로 공방하며 손가락질을 하다가 심한 욕까지 서슴지 않았다.
“아, 조용히 하세요. 법정이 소란스러운 관계로 30분간 정회하겠습니다.”
탁아나운서는 복도로 나와 잠시 쉬었다. 방청객들도 복도에 나와 커피를 한 잔씩 들고 끼리끼리 웅성대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한편, ‘가룟 유다’의 재판 날이 마침 탁도마 아나운서 할아버지 기일이었다. 그의 집에는 추모예배를 함께 드리기 위해서 일찌감치 친척들이 와 있었다. 매년 추모 예배 때는 ‘탁도마’ 아나운서의 집에 모이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었다. 오랜만에 집안이 북적거렸다. 도마 아버지와 그의 큰아버지는 함께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마약근절에 대한 공익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참, 큰일입니다. 마약이 만연하고 있으니 말세입니다. 마약이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에게까지 퍼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허허, 맞는 말이네. 정말 큰일이야. 큰일! 마약업자들은 씨도 말리지 말고 싸그리 잡아넣어야 해.”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어때요? 우리 아들, 탁도마 아나운서가 잘 하고 있지 않아요.”
“우리 집안에 아나운서가 있다니 자랑스럽군. 그것도 유명한 CBC 아나운서니 말이야. 그런데 좀… 편향적인 면이 있어.”
도마의 삼촌은 맞장구를 치면서도 은근히 흠을 잡았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형님, 오늘은 제발 서로 부딪치지 말고 예배나 잘 드립시다.”
“허허, 이보게 아우, 무슨 소린가? 자네가 명색이 장로인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탁도마 아버지인 ‘탁국수’와 그의 큰아버지 ‘탁국진’은 정치관이든 종교관이든 종종 의견이 배치되어 만나면 티격태격했다. ‘탁국수’는 보수적인 면이 많았으나 ‘탁국진’은 매우 진보적이었다. ‘탁국진’은 동생의 눈치를 보며 못마땅한 듯 한마디 툭하고 던졌다.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유다는 무죄를 받아야 해. 무죄!”
“… …”
‘탁국수’는 말이 없었다.
“나는 말이야. 저 검사가 마음에 안 들어! 택도 없는 질문만 던지고 말이야. ‘손벌림’ 변호인은 말도 잘하는 데다 인물도 좋고, 내 마음에 쏙 든다 말이야.”
“… …”
‘국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국진’은 동생을 힐끗 쳐다보며 대꾸를 하거나 말거나 계속 떠들었다.
“오늘 국민참여재판이라 흥미가 진진하군. 아무튼 ‘나빌라’ 재판관이 좋은 평결을 내려야 하는데… 유다는 무죄야 무죄!”
“… … 허 참, 형님, 좀 조용히 하고 봅시다. 그런데 저 놈, ‘가룟 유다’가 어째 무죄란 말이요. 비열하게 생긴 저 놈 상판대기 좀 보소. 당연히 능지처참할 놈인데 유죄지요. 유죄!”
‘탁국진’은 아우가 걸려들었다 싶어 자기 생각을 장황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어허, 무슨 소린가? 유다는 설마 자기 선생님을 팔았겠는가? 임금이 될 줄로 알고 따라다녔는데 도무지 그럴 기미가 없어 답답하기도 했을 거고,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 시험을 해 본 거 아니겠는가? 그리고 내 생각인데 솔직히 유다가 예수를 넘겼기 때문에 오늘날 자네들도 예수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가? 유다는 무죄야, 무죄!”
“… 형님, 무슨 말씀이오. 예수님이 오래 사셨다면 더 큰 전도와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 있어 죽음이 미리 예정되었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말은 바로 합시다. 우리가 십자가를 믿다니요. 예수님을 믿지요. 십자가는 상징이지요. 유다는 당연히 유죄입니다. 유죄! 마땅히 큰 형벌을 받아야 해요. 유다는 지옥에서도 제일 뜨거운 아랫목에 가야 해요.”
부엌에서 열심히 음식 장만을 하고 있던 국진의 부인이 한마디 했다.
“아이구, 두 분이 만나기만 하면 아옹다옹하고 있으니 원! 죄송하지만 우리 장로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요. 나도 유다가 당연히 큰 벌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해요.”
“어허, 참! 당신은 누구편이요. 제수씨도 한 말씀 해 보쇼.”
국수의 부인은 머뭇거리더니 남편인 국수의 편을 들어 맞장구쳤다.
“맞아요. 나도 우리 장로님과 마찬가지 생각이에요. 주님을 은 30에 팔다니 가룟 유다는 유죄예요. 죄송하지만 아주버님도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야지요. 우리 고모님께서도… 호호.”
“허 참, 부활이라니. 말도 아닌 소리 하지 마소. 제수까지 이러기요. 내 편은 하나도 없구만. 알았소. 그만합시다. 그래도 나는 유다가 무죄라고 생각하오, 무죄!”
“형님, 무슨 말씀을 … 유죄입니다. 유죄!”
둘은 서로 아옹다옹하며 지지 않으려고 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도마의 큰 고모도 한 마디 참견했다.
“아이고, 시끄럽소. 무죄든 유죄든 아무렴 어때. 난 상관없어. 쯔쯧, 제발 아근바근 싸우지들 말아라.”
어떤 종교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고모는 시큰둥한 모습으로 혀를 끌끌 찼다. 창 밖 하늘 높이 뭉게구름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방청석의 소란으로 잠시 정회가 되었던 재판이 다시 속개 되었다. ‘나빌라’ 재판장은 습관처럼 안경테를 위로 올리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에, 방청석에 계신 분들께서는 다시금 소란을 피운다면 강제로 퇴정시키겠습니다. 조용히 재판 결과를 지켜 봐 주시기 바랍니다. 검사는 마지막으로 양형에 대한 의견진술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사도’ 검사는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네, 지금까지 모든 정황을 볼 때 마땅히 ‘가룟 유다’에게 큰 벌을 내려야 된다고 마땅히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본 검사는 유다에게 자기의 선생님을 팔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죄가 크므로 무기징역을 구형하고자 합니다.”
‘가룟 유다’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 도리질을 쳤다. 거부하려는 확고한 의지와 신념의 몸짓이었다. ‘손벌림’ 변호인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검사를 경멸하듯 입을 삐죽였다. 방청석에서도 뜻밖의 구형이라는 듯 웅성거렸다.
“흠, 다음은 피고인과 변호인은 최종 의견진술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다의 변호인인 ‘손벌림’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판장님, 그리고 존경하는 배심원 여러분, 유다는 결코 죄가 없습니다. 유다는 그의 선생님 볼에 키스를 했을 뿐이지 별 의도가 없었다고 확신합니다. 세상 일부 사람들은 ‘유다의 키스’라고 저주스런 말도 하지만 얼토당토않습니다. 단언컨대 유다는 그의 선생님을 잡아가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뭐 대수라고 무기징역을 구형합니까? 그리고 다시 말씀 드립니다.”
‘손벌림’ 변호인은 중계석을 향해 어깨를 으쓱하며 주먹을 하늘로 힘차게 뻗으며 말했다.
“진정으로 유다는 죄가 없습니다. 사실 따지자면 종 한 사람의 몸값 밖에 안 되는 그 돈에 유다가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무기징역이라니 말도 아닙니다. 재판관님, 그리고 배심원 여러분, 부디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다는 입술을 길게 내밀면서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렸다. 사실 유다는 남보다 머리도 잘 굴렸고, 계산이 빨랐다. 그러다보니 재정을 도맡아 살림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물질에 욕심도 많았고, 정치적 야망이 그 누구보다 컸다. 한 쪽에 나란히 앉아있는 배심원들은 반응들이 각각이었다. 눈을 감고 있거나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귓속말로 옆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배심원도 있었고, 턱을 만지며 고민에 빠진 듯한 배심원도 있었다. 가관인 것은 졸고 있는 배심원도 있었다.
유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한쪽으로 치켜 올리며 천박한 웃음을 흘렸다. 재판장은 이어서 물었다.
“피고인, 최종 의견 진술 기회를 주겠습니다. 할 말 있습니까?”
‘가룟 유다’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우리 선생님이 유대의 왕 뿐만 아니라 만민의 왕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쓸데없이 가난한 병자들이나 고쳤습니다. 게다가 변변한 집도 없이 광야에서 자거나 무전취식을 했지요. 재판관님, 생각해 보세요. 정글 같은 이 세상에서 물질도 없이, 권력도 없이 어찌 살아가겠습니까? 도무지 우리 선생님은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죄입니다. 그 분은 스스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했습지요. 저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니까요? 처음에는 교훈에 감화도 되었고 놀라운 능력에 탄복했지요. 그러나 병정들이 선생님을 붙잡으러 왔을 때 아무 능력도 발휘하지 못했지요. 그렇게 허망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다니. 아이구, 자기 자신도 구원 못하시는 우리 선생님! 흐흑… 분명히 말씀 하건데 저는 결코 죄가 없습니다. 굳이 죄를 따지자면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있지요. 다 선생님 탓이지요. 나는 무죄입니다.”
그는 사탄의 영에 사로잡혀 죄책감조차 없는 듯 어쩔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소망 없는 종말의 단어와 문장을 끝없이 나열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예수가 메시아임을 알지 못하고 그저 랍비 정도로만 여겼던 사람이었다. 중계석에 앉아있는 ‘탁도마’는 그를 보면서 아나운서의 공정성을 잠시 망각했다. 탁아나운서는 실망과 분노로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비록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는 못했지만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그의 발언에 자신을 돌아보면서 말없이 독백했다.
‘주여, 혹여 우리가, 아니 내가 가룟 유다가 아닌지요? 날마다 주를 팔고 있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
‘나빌라’ 재판장은 배심원에 대한 최종 설명을 했다.
“에, 배심원의 유죄와 무죄에 대한 평결과 양형에 관한 의견은 권고적 효력을 지닐 뿐 법적인 구속력은 없음을 재차 말씀드립니다. 다만 재판부에서 배심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평결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배심원들의 평의와 평결을 위해 잠시 정회하겠습니다.”
청중석의 앉아있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의 얼굴에 오후의 백색광이 길게 비쳐들어 왔다. 백색광은 서서히 스펙트럼을 만들며 사방으로 퍼져갔다. 스펙트럼은 사람들의 육신과 마음과 영혼 속으로 스며들었다. ‘탁도마’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드디어 배심원들의 평의와 평결 시간이 되었다. 배심원은 만 20세 이상의 국민 중 무작위 방법으로 선정되었는데, 이번은 특별히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관할 지방이 아닌 전국을 대상으로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선정되어 배심원 후보 예정자 명부를 작성했다. 배심원들은 유다는 죄가 있느니 없느니 치열하게 토론했다. 그들은 서로 의견이 갈려 분분했다. 결론이 빨리 나지 않았다. 토론은 계속 이어졌다.
생방송이 계속되는 가운데 재판정 복도에서는 이례적으로 ‘탁도마’ 아나운서의 사회로 패널들의 결론적인 이야기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이제 곧 평결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패널로 참여하셨던 분들에게 고언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패널 여러분, 결론적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천마루’ 교수는 조용히, 그러나 엄숙하게 말했다.
“유다의 죄가 어찌 가벼울 수 있겠습니까? 이 참에 교회와 우리 신앙인도 바뀌어야 합니다. 알게 모르게 유다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교회와 성도가 없지 않아 많지요. 물권주의, 패권주의, 지역주의, 다원주의, 종교주의를 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이 곧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유다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도덕적, 사회적, 문화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온자비’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순리에 방점을 찍으며 조용히 말했다.
“다 바뀌어야 됩니다.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삼천 배도 나를 위한 삼천 배가 되면 아니 되오. 남을 위한 삼천 배가 되어야지요. 순리대로 삽시다. 가룟 유다는 삼천 배를 하고 속죄하시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나무관세음보살!”
그는 삼천 배를 하듯이 연신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했다. ‘내 알 바 아니오’라고 했던 그의 처음의 말과 달리, 유다를 향해 속죄하라는 그의 변화된 심경을 엿볼 수 있었다. 탁아나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봉’ 여사는 본질에서 벗어난 발언을 했으나 봉사명장답게 여전히 기부를 강조했다.
“베풀어야 합니다. 좀 더 많은 기부를 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유죄든 무죄든 내 알 바는 아입니더. 노숙자들과 전쟁고아들을 위해서 기부 좀 하이소. 국민 여러분, 그리고 기업가 여러분, 장애인 센타 건립을 위해 기부 좀 하이소.”
계속 눈을 감고 있던 ‘진선교’ 목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그는 힘 있는 어조로 말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신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 친다할지라도 사람의 열심이 하나님의 뜻을 앞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튼 가룟 유다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도무지 회개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배심원들은 판사를 배석시킨 가운데 여전히 치열한 쟁론을 벌였다.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자 최종적으로 다수결에 의해 평결하기로 했다. 유죄 6명, 무죄 2명, 기권 1명으로 결론이 났다. 배심원들은 심리에 관여한 판사와 양형에 관하여 토의했다. 징역 10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마지막 평결은 징역 10년에 벌금형으로 예수님을 팔아넘긴 은화 30의 열 배인 은 300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나빌라’ 재판장에게 넘겨졌다. ‘기사도’ 검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손벌림’ 변호사는 긴장 탓인지 계속 목을 돌렸다. 다만 피고인 ‘가룟 유다’는 표면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전신이 옥죄어 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청중석의 사람들도 긴장하며 나빌라 재판관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TV를 시청하고 있는 탁도마 아나운서의 집안에서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주목하고 있었다. 국내 사람들은 물론 세계의 이목이 대한민국 법정에 집중되고 있었다.
‘나빌라’ 재판장은 배심원들의 의견과 양형을 한참동안 살펴보고 있었다. 그는 마치 야바위꾼이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는 듯한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근엄하면서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본 법정은 가룟 유다의 죄를 가늠할 수 없어 선고유예를 선고한다. 다만 배심원들의 의견대로 자기 선생님을 고발한 그 행위는 가볍다하지 않음을 말씀드립니다.”
‘기사도’ 검사는 허탈한 웃음을 웃었다. ‘손벌림’ 변호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우리가 이겼다는 손가락 표시를 하며 환하게 웃었다. 다만 ‘가룟 유다’는 무슨 이유인지 눈을 감고 아무 내색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환호 소리와 탄식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배심원들도 자신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데 대하여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허탈한 모습을 보였다.
‘탁도마’ 아나운서의 선한 분노의 감정은 발끝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머리로 차올랐다. 그는 억제할 수 없는 감정에 그만 소리를 치고 말았다.
“야, 이 비열하고 패역한 나빌라! 너가 판사냐? 빌라도 같은 놈! 왜 선고유예야?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고 있어! 너 같은 놈은 예수님을 팔아먹은 놈과 진배없어. 당장 법복을 벗어버려! 그리고 발람만도 못한 손벌림 변호사, 아부와 비리와 거짓으로 가득 찬 패역한 놈들. 너희들도 모두 한 통속이야. 물권주의와 권력에 빌붙어 사는 나쁜 놈들아, 인간 같지도 않은 이 놈들아! 모두 지옥에나 가 버려!”
‘나빌라’ 재판장은 아무 반응도 없이 여전히 비릿한 웃음만 보내고 있었다. ‘탁도마’는 판사석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나빌라’의 멱살을 잡았다. 경찰들과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팔짱을 끼고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다. ‘탁도마’와 ‘나빌라’ 재판장은 얼크러져 나뒹굴었다. 검사와 변호사도 주먹질을 해대고 치열하게 싸웠다. 방청객들이 판사석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야유를 보내더니 갑자기 물건을 집어던지고 자기들끼리 몸싸움이 벌어졌다. 법정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사방에서 박수소리와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탁도마’는 양손으로 허공을 저었다. 어머니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도마야, 무슨 잠꼬대는? 오늘 같이 중요한 날에 늦잠 자면 되겠니?”
정신이 아득했다. 마치 몸이 공중에 뜬 것 같은 착각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꿈이었다. 왠지 자신이 의로웠던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는 문득 ‘가룟 유다’가 불쌍했다.
‘유다가 회개하고 다시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돌아왔을까?’
도마는 독백하듯이 조용히 기도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는 가룟 유다와 같이 날마다 주를 팔았던 죄인입니다. 이제부터 거듭난 삶을 살겠습니다. 두 개의 저울추를 가지지 않겠습니다. 정직한 아나운서가 되겠습니다. 오늘도 저의 입술을 제어하여 주시고 동행하여 주옵소서.”
도마는 무거운 멍에를 내려놓은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도마야, 오늘 CBC 첫 출근인데 샤워도 하고, 빨리 준비해야지? 그리고 저녁에는 할아버지 추모예배를 드리는 거 알고 있지? 큰아버님과 고모님도 오시니 일찍 들어와야 한다. 기도할게!”
어머니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예, 어머니, 늘 중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마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빨간 미니카 한 대가 그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도마야, 안녕! 내 차 타고 같이 가자.”
“어, 방마리? 웬일이야?”
“호호. CBC가 우리 방송국이잖아. 오늘은 첫 출근이니 같은 직원으로 내가 특별히 모신다. 아무튼 입사를 축하해. 멋진 남자가 온다고 벌써 소문이 파다하더라. 호호.”
‘탁도마’는 지난 밤 꿈을 생각하면서 시익하고 웃으며 말했다.
“어, 그런데 너 먹방 유튜버 아니야?”
“도대체 무슨 말이야?”
“하하, 그런 게 있어.”
‘탁도마’는 하늘을 쳐다봤다. 오늘도 무척 무더울 것 같다. 그럼에도 상쾌한 해방감이 그의 온 몸을 엄습해 왔다.
[프로필]
사진, 그대로
예동교회 장로,
활천문학회 회원,
성결교단 역사편찬위원 역임,
소설집 장편<어머니의 곶감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