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 주한규
올여름 서울에서는 국지성 호우로 도림천, 탄천 등 하천이 범 람 하 여 가 로 등 과 도 로 가 파손되고 수천 대의 차량이 침수되는 큰 피해가 발생했다.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는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는 부지불식간에 7명이 희생되는 불행이 있었다. 작년 미국 텍사스 지역의 한파, 올봄 유럽의 폭염, 중국의 가뭄 등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이상 기후 현상에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확인한 여름이었다.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는 이상 기후는 온실가스 증가에 의한 지구 온난화가 원인이다.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는 인류의 화석연료 사용 증가에 따라 지난 40년간 매 10년에 5% 정도씩이나 급격히 증가하여 1980년대 340ppm 정도 하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현재 410ppm을 넘게 되었다. 이러한 급격한 이산화탄소 증가세를 멈추지 않으면 수십 년 내에 기후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는 위기의식 아래 세계 주요국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여러 실현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발전 부문뿐만 아니라 수송이나 제조 산업 같은 비전력 에너지 부문에서도 이산화탄소를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열의 형태도 사용되는 에너지를 전기 형태로 바꾸고 그 전기를 무탄소 방식으로 생산해야 한다.
그 무탄소 전기 생산 방식으로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것이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이다. 일각에서는 무탄소 에너지를 전부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것, 즉 RE100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만 통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재생에너지의 태생적인 약점인 변동성 극복을 위해서는 막대한 규모의 에너지저장 장치(ESS)가 필요하고, 여기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낮에만 발전하는 태양광은 ESS와 짝을 이루어 운용돼야만 온당한 독립 발전원이 된다. 낮에 발전한 전기의 반 이상을 ESS에 저장했다가 밤과 새벽에 방전하며 쓸 수 있어야 RE100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배터리가 주종인 ESS는 현재 매우 고가이지만 여기 투입되는 리튬, 니켈 등 원천 재료의 다량 소요 필요성 때문에 급격한 가격하락을 기대할 수 없다. 수출용 화물 컨테이너 정도 크기가 되는 1MWh ESS에 약 7톤의 물질이 소요된다. 탄소중립 목표 이행을 위해 에너지 사용에 있어서 전기화율이 훨씬 높아질 2050년 우리나라 평균 전력 수요는 현재의 2.2배인 140GW로 전망되는데, 이 전력의 50%를 태양광으로 공급한다고 가정할 때 하루 생산 태양광 전력의 약 반 정도를 저장하는데 약 1,160GWh ESS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컨테이너 116만 개 규모로서 800만 톤의 ESS용 물질이 필요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ESS가 이런 규모로 확충된다면 과중한 물질 소요 필요성 때문에 재료의 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수요 공급 균형에 따라 결정되는 ESS 가격이 쉽사리 내려갈 수 없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향후 태양광 기술의 향상에 태양광 발전단가가 더 떨어지면 전력 저장에 필요한 ESS 운용 비용이 발전 비용보다 비싸질 수도 있다. 즉 배(발전비용)보다 배꼽(저장비용)이 더 커지므로 재생에너지 운용의 고비용성은 불가피하다. 혹자는 ESS 대신 재생에너지 잉여 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하여 에너지 저장 수단으로 쓸 수 있다고 주장하나,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때문에 고가의 물전기분해 장치의 이용률이 15% 남짓밖에 안 되게 되므로 수소 생산비용이 아주 높아지기에 재생에너지 수소도 효과적인 방식이 못 된다.
이러한 재생에너지의 분명한 한계 때문에,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주요국에서는 무탄소 에너지인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분류하고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혁신 원자력(Advanced Nuclear)이라는 기치 아래 소형모듈 원자로(SMR)를 다양한 형태로 개발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중국도 고유한 SMR 개발에 적극적이다. EU는 최근 택소노미에 원자력을 포함시켰다. 최근 14기 원전 건설계획을 발표한 프랑스를 위시해 체코, 폴란드,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신규 원전 건설 압력에 EU가 부응한 결과다.
세계적인 원자력 확대 추세의 기저에는 원전과 사용후핵연료의 안전성에 대한 재평가 결과가 자리 잡고 있다. EU가 택소노미에 원자력을 포함할 때 원자력의 생명 안전성에 대한 객관적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 그 결과는 치명률 0.5명/조kWh로 나타났다. 우리나라가 지난 40여 년간 원자력으로 발전한 전력이 약 4조kWh이다. 이는 그동안 생산된 총 전력의 1/3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이다. 이 발전 전력에 치명률을 곱하면 2명 정도가 원자력으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예상치가 나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원전 사고나 이상으로 인한 사망자도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실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원전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일반 국민들에게 잘못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원자력은 그동안의 오랜 가동 이력으로써 높은 생명 안전성을 입증해왔다.
사용후핵연료는 현재 기술로도 안전한 지하 처분이 가능하다. 내부식성이 매우 높은 구리로 5cm 정도 두께의 용기를 만들고 사용후핵연료 4~5다발을 장입하여 밀봉 후 지하 500m 암반에 구멍을 뚫고 묻고 그 주위를 벤토나이트라는 점토질의 방수재로 채우면 3중 방벽이 형성된다. 그러면 용기 안에 있는 방사성 물질이 지상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실질적으로 영(0)이 된다. 청동기 시대 유물이 수천 년이 지난 현대에도 별 부식 흔적 없이 깨끗한 상태로 출토된다는 사실, 방수재 벤토나이트는 물을 머금으면 딱딱해지면서 더 이상의 물의 침투를 막는다는 사실, 지하 500m는 지하수 결핍 환경이란 사실을 종합하면 수천 년간 사용후핵연료로부터 방사성물질 유출 가능성은 0일 거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입증하는 비근한 예가 2024년 운용을 목표로 건설 완료 단계에 와있는 핀란드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이다.
탄소중립에 대한 원자력의 기여는 일차적으로 대형원전 증설을 통해 가능하다. 대형원전은 막대한 전력을 무탄소로 생산하는 것은 물론, 전기분해 수소 생산을 통해 비 전력 분야 무탄소 에너지 공급에도 기여할 수 있다. 원전은 안정된 전기 공급 능력과 싼 발전 단가 덕택으로 이미 상용화된 저온 알칼리 전기분해 방식만으로도 수소 생산의 채산성이 있다. 나아가 원전의 고온열을 활용할 수 있는 고온 증기 수전해 방식까지 활용하면 정부 목표인 1kg당 3,000원 이하에 수소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생산된 수소는 대형 트럭과 같은 수소연료전지 기반 수송 수단, 수소 환원 제철을 통한 철강 생산 등의 무탄소 에너지 이용 방식을 통해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대형원전 건설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기술 경쟁력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원전 산업계는 세계에 진출하여 원전을 통한 세계적인 탄소중립 실현에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근래 많이 회자되고 있는 소형모듈 원자로 SMR은 용량이 작기에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증진하는 다양한 혁신 개념 구현이 가능하다. SMR이 본격적으로 설치될 2035년 이후에는 탄소중립 실현의 핵심 에너지로서 원자력의 역할이 더욱 부각될 것이다. 신개념 SMR 중 액체금속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미국 테라파워의 ‘나트륨(Natrium)’이라는 SMR은 고온 용융염을 열 저장체로 활용해 낮에는 발전을 덜 하는 대신 용융염을 가열하고 밤에는 가열된 용융염에서 에너지를 뽑아 증기를 만들어 발전하는 방식으로 재생에너지와 연계 운용할 수 있다. 이런 장점을 앞세워 빌 게이츠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2027년 가동을 목표로 Natrium SMR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또 다른 개념의 SMR인 XE-100은 헬륨 가스로 냉각하는 원자로다. 800도 이상의 열을 공급할 수 있어 고효율 수소 생산, 화학공정, 난방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머지않은 장래에 원자력은 탄소중립 실현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다양하게 활용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형원전 수출뿐 아니라 원자력 수소와 SMR을 포함한 다양한 원자력 활용 방식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당위가 여기에 있다.
필자 소개
1996, Purdue대학 원자핵공학 박사(Ph D). 한국원자력연구소
(14년 기간)에서 재직,
2004-현재,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장
한국원자력학회 펠로우,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