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감독 그는 누구인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그의 성장환경이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우선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앞서 그가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영화계의 거장이 되었는지를 알아보려한다.
1958년 7월 17일 중국 상해에서 태어났다. 1963년 문화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에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홍콩으로 이주했다. 영화광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시절부터 많은 영화를 보았으며, 아버지가 사들인 중국 문학책들을 읽거나. 상해에 남아 있던 형과 누나가 편지에 적어보내곤했던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고전 문학들을 읽으며 자랐다. 이공대학에서 그래 픽 아트를 공부하면서 잠시 사진작업에 열중했고, 2학년 때 홍콩 FVB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실시 하는 연수과정에 참가했다. 대학 시절은 그가 이탈리아 영화들과 고다르, 브레송등의 유럽영화와 일본 거장들의 영화를 접할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프리랜서로 스승인 왕핑양과 함페 50여편의 영 화 시나리오를썼다. 그중에서 영화화된 10편 정도의 작품 중에서 왕가위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담가명 감독의 (최후의 승리)이다. 담가명은 후에 (아비정전)과 (동사서독)의 편집을 도와주었다, 촬영장을 오가면서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던 그는 60년대의 인기 배우이자 제작자인 등광영으로부터 기회를 제공받아 88년에 데뷰작을 만들게 된다.
촬영기법
왕가위의 영화에서 기술적인 특징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이 스텝프린팅을 이용한 것이다. 그 기술은-누구나 느꼈겠지만- 물체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표현하기도 했고, 반대로 느린 물체를 표현하기 위해 이 스텝프린팅을 사용했다. 물론 이 기법을 이용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효과-빠른 물체는 빠르게 보이게 하고, 느린 물체는 느리게 느끼게 하는 등의-를 노린 결과이다. 그렇다면 왕가위가 사용한 스텝프린팅은 무엇이며 그로 인한 또 다른 효과는 무엇인가?
왕가위는 촬영시에 영화의 일반적인 초당 프레임 수를 무시한다. 바로 초당 프레임 수를 원래의 것, 24fps보다 훨씬 적은 4-12fps로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편집작업에서 그만큼의 스텝프린팅을 한다. 예로 4fps로 찍은 것이라면 한 프레임을 6번 보여준 후에 그 다음 프레임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 다음 프레임도 6번 보여져야 한다. 그래야만 실제의 시간과 같은 느낌으로 영화가 보여지는 것이다.
이 기법은 여러 가지 효과를 동반한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조명에 관한 것이다. 초당 프레임 수를 적게 함으로써 노출 시간을 늘리고 그리하여 어두운 곳에서도 조명을 쓰지 않고 촬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한 효과는 어둡더라도 자연상태의 빛에서도 자연스러운 색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원래의 초당 프레임수로 촬영을 한다면 최대 노출(*) 시간은 약 1/30초가 된다. 최대 노출 시간이 그렇게 짧다는 것은 영화가 조명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효과로는 노출 시간이 길어짐에 따른 물체의 잔상효과이다. 사실 4-12fps로 찍은 필름을 스텝프린팅 기법을 이용하여 실시간에 맞춘다면 소위 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영화나 TV가 초당 프레임을 24~30으로 정한 이유를 다시 상기해보자- 그런데 왜 왕가위의 영화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까? 그것은 과다한 잔상효과 때문이다. 노출시간이 길다는 것은 노출되는 동안 물체가 필름에 담긴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 움직이는 물체의 경우에는 윤곽선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게 된다. 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과다한 잔상효과로 연결된 스텝프린팅 기법은 우리의 눈을 또 다른 형태로 속이고 있는 것이다.
왕가위감독의 영화색채
그의 첫작품인 '열혈남아'는 마틴스콜세지의 '비열한 거리'를 떠올리게 하고, 두 번째 작품인 '아비정전'은 마느엘피그의 '하트브레이크 탱고'를, '중경삼림'은 무라야미 하루끼의 '노르웨이 숲'과 비슷한 정서를 보이고 있고, '동사서독'은 무협소설가 김용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미지를 차용한 흔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왕가위도 인정했다고 하는 일반적인 내용이다. 현대적 의미의 창작이란 100% 독자적인 아이디어라기 보다는 창작자에게 영향력을 끼진 다른 창작품들을 얼마나 자기 색깔을 부여하여 재창작하느냐는 문제로 전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체험을 독특한 감수성과 영상미로 끌어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항상 혼자이다. 외면적으로는 각각 설정된 인간관계 속에서 얽혀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각자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상호연관이나 사회적 결합으로서의 인간관계는 지극히 부재한 것이다. 인간의 개별적 아이텐티티와 고독에 대한 왕가위 나름의 철학과 미학이 홍콩이라는 미래가 불투명하고 혼돈과 일탈이 뒤섞여있는 허무적인 사회적 배경과 뒤섞여 느와르라는 장르로 이끄는 것이다. 영화속에서 사용되는 로맨스나 액션 등은 하나의 오브제로 사용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단지 소품으로서 사용될 뿐 작품 전반의 이미지를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왕가위 감독의 영상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각적인 화면과 주요인물의 스토리를 내러티브 중심으로 보기보다는 '느와르'라는 장르속에서 가지는 극적인 이미지와 홍콩이라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영화적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의 영상에서는 정지란 없다. 무한정 빠르게 진행되고, 쇼트와 쇼트 하나도 짧고 간결하다. 뮤직비디오나 커머셜 필름을 연상시키는 힘이 있고, 감각적인 영상이 있다. 이러한 '왕가위식 영상미학'이 산만하고 혼란스러운 내러티브의 전개 속에서도 하나의 일관된 흐름과 이미지를 창출하는 원동력인지 모르겠다. 무론 이런 영화적 표현이 일반관객에게는 지루함과 난해함을 경험하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 어차피 상업영화라는 것이 대중을 위한 것이기에 이런 점들은 하나의 실험적인 작가정신으로만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작품별이해
1) 열혈남아 (유덕화, 장학우, 장만옥 출연)
왕가위 감독은 1987년 열혈남아로 데뷔하게 된다. 원제는 몽콕하문이다. 이 작품은 영화수입업자의 무지와 상업적 이익추구욕에 희생되어 한국수입시 따로 한국판 버전이 만들어져서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 관객들이 본 열혈남아와 왕가위가 처음 의도한 영화 몽콕하문과는 조금의 차이를 가져온다고 한다. -한국의 영화수입업자들의 이러한 작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도 그러했고, 심지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품 수입에서도 상업적인 이해타산으로 인해 영화가 자체 편집이 되어 영화를 위한 러닝타임이 아니라 극장을 위한 러닝타임으로 바뀌어지는 것이 발견되곤 한다
그 당시 홍콩영화의 주된 흐름은 총과 마약이 주된 소재인 갱영화가 주요하던 시기이다. 영웅본색의 화려한 등장이후 그 아류에 해당하는 영화들의 범람이 가져온 상업적으로 홍콩영화산업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다. 그런 시기 왕가위가 제작한 영화 역시 당시의 홍콩영화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재 면에서 갱영화임에는 분명하나, 일반성으로 대변되는 폭력성으로서의 의미만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었다. 폭력과 의리, 총격과 살인 등이 교차하는 가운데 사랑(이성간의 사랑을 비롯한 홍콩에 대한 사랑까지도)이 자리잡는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허무도 영화전반에 짙게 베어있다. 영화 속에서 단지 현실에만 안주하는 인간군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홍콩의 현실인 셈이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어둠이 계속된다. 시간적 배경에 있어서 밤이 영화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처음 도입부에서는 유덕화의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가지고 한참을 끌어간다. 장만옥이 창을 열기 전까지 거의 이십여 분 간 화면엔 어두움만이 계속된다. 도시적 이미지의 유덕화와 향토적 이미지의 장만옥의 배치도 흥미롭다. 화려하고 자유로운 도시에서의 폭력과 일탈, 불확실한 미래 등이 유덕화의 모습이라면,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병 치료를 위해 잠시 도시로 온 낯설음과 이성, 순정과 사랑 등이 장만옥의 모습으로 서로 상반된 구도를 취한다. 이는 도시적 이미지의 홍콩과 대국적이고 향토적인, 아직은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체제의 국가인 중국의 관계설정을 암시하는 듯하다. 홍콩의 불확실한 미래, 예견된 종말, 중국에 대한 사랑 등과 함께 안정적이고 계획적인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가올 중국반환을 앞둔 홍콩의 현실과 미래를 잠시 언급한 것 같다. 갱영화에서 다루어지는 폭력의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이 영화에서의 총격과 폭력, 죽음은 일종의 미학을 가진다. 장학우가 총격을 가하고 죽어가는 장면에서의 흘려찍기는 잔인하거나 폭력적이지 않다. 단지 자연스럽고 편안하기까지 할 뿐이다.
그의 고유특허인양 사용되는 흘려찍기나 오브제로 주로 사용되던 쥬크박스의 등장, 홍콩의 현실에 대 한 암시와 언급 등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예사롭지 않는 예감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사실 왕가위가 이 영화 한 편으로는 그렇게 크게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 이후 그가 만들어나가는 영화류의 기본이 되었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왕가위식 표현의 정형화한 기본을 보여주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이며, 그래서 초기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이후의 영화들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텍스트 격이라는 것이다.
2) 아비정전 (장국영, 장학우, 유가령, 장만옥, 유덕화 출연)
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왕가위의 이름을 확인하던 영화이다. 베니스의 인정을 뒤로하고서라도, 얼마전 한창 유행했던 맘보춤의 소개로 더 알려진 영화이기도 하다. 역시 왕가위 영화전반에 보여진 허무와 불안이 녹아있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장국영이지만 그의 친어머니에 대한 집착만큼은 남다르다. 과연 친어머니가 가지는 의미란 무엇인가? 바로 홍콩의 모국이 중국이 아닌가. 여기서도 그는 중국반환문제를 거론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적인 도시국가이자 상업적인 무역항인 홍콩이 그토록 자유로울 수 있던 20세기 전반이 이제 세기말의 반환이라는 테제를 앞두고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영 화속 아비에게는 이상이란 없다. 그에겐 단지 현실이 있을 뿐이다. 그에겐 사랑도 존재하지 않고 단지 모성회귀본능적인 현실성 뿐이다. 그에겐 미래나 이상이란 전혀 없는 듯 하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 가져온 현실만족과 안주, 패배주의와 허무주의가 스크램불된 듯 한 스타일이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강조되던 그날, 1960년 4월 16일은 인간이 처음으로 우주로 진출하여 인공위성을 띄운 날이다. 바로 새로운 시도, 변혁을 이루고, 인간탐구의 폭을 넓힌 그런 날이다. 장국영과 장만옥이 만난 그날에 대한 특별한 역사성을 부여한 것이다. 실제로 역사 속의 1960년 4월 16일과 영화 속에 등장하는 '1960년 4월 16일'은 별개의 일이다. 같은날이 새로운 역사를 이룬 서양의 하루였다면, 동양의 홍콩 그곳에서는 그저 특별한 의미 없는 생활 속의 보편적인 하루로 보여진다. 이또한 왕가위의 작위적인 상관관계 설정이 아닐까?
결국 장국영의 죽음으로 치닫게 되는 결말은 작품 저변에 깔려있던 허무주의가 느와르적인 성향을 받아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보여지는 장학우의 변신가능성이-화면에서는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롭게 변신할 홍콩의 미래를 어렴풋이 보여주는 희망적 단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왕가위 감독이 마지막에 하고자 했던 말은 이것이 아닐까?
"지금의 홍콩은 암울하다. 그리고 뭐든지 불투명하고,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러나 홍콩의 미래는 낙관적일 것이다. 홍콩은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새로운 홍콩으로 다시 설 것이다."
3) 중경삼림 (금성무, 임청하, 양조위, 왕정문 출연)
마마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을 세계적으로 다시 흥얼거리게 한 공로는 바로 중경삼림에 있을 것이다. '영화의 대중적인 인기는 제작기간이 긴 것보다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것이 더 크다' 라는 아이러니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동사서독의 후반작업 중에 진지함과 심각함을 탈피하고자 대중적인 도시인의 이야기로 짧은 시간에 제작한 '중경삼림'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왕가위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반면 '동사서독'은 대중적인 인지도는 지극히 낮은 단지 왕가위 매니아만을 위한 컬트가 된 아이러니에 대해서 말이다.
미래가 없는 사회, 가상도시 중경에서 벌어지는 두 커플의 사랑에 대한 짧은 단편들이 마치 뮤직비디오나 CF를 연상시키는 스피디하고 감각적인 화면 속에서 펼쳐진다. 몇 해 전부터 옴니버스적인 구성방식 -극 전개의 의도적 분할이라고 정의하고 싶은-을 취하는 영화가 붐을 이루며 다시 등장하는데, 이 영화에서도 두가지 각기 다른 이야기를 중경이라는 가상으로 설정된 공간 속에서 테마의 유사성으로 보여줌으로써 이런 경향을 차용한 흔적을 옅보게 한다.
유통기한을 하루 남긴 파인애플을 편집증적으로 수집해서 먹는 금성무, 매일 샐러드만 사는 경찰관 양조위가 보여주는 의도적 유사성과 금발가발에 선그라스, 레인코트를 걸친 임청하의 적극성(남성적이기도한)와 양조위의 집을 몰래 찾아가는 것으로 그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 왕정문의 소극성이라는 상반성이 대응구조를 이루는 인물설정의 축을 이루고 있고, 이 네명, 아니 각각의 두 남녀는 현재의 홍콩의 분위기를 은유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현대 홍콩인의 직업은 경찰 아니면 갱(킬러)이다. 이 작품 속에서도 금성무와 양조위는 직업이 경찰이다. 가장 정부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이 보여주는 불안정함으로 현재의 홍콩의 모습과 상태를 암시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상반의 입장을 가진 갱(킬러) 역시 불안정함으로 표현된다. 마치 홍콩의 빛과 어둠, 합법적임과 불법적임 모두 일탈한 혼돈을 겪고 있음을 강조하리라도 하듯이 말이다.
통조림의 유통기한과 홍콩의 중국반환일자와의 상호관계와 그에 따른 불안심리가 발현한 이상의 땅 캘리포니아, 그리고 언제 비가 올지, 언제 다시 태양이 뜰지 몰라 레인코트와 선그라스를 함께 착용하는 임청하는 홍콩이 중국과 영국의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명확치 않아 갈등하는 배경을 암시하고 있다.
현실이 아닌 이상과 미래의 공간이 바로 캘리포니아인 것이다. 실제로 홍콩인들의 대다수가 외국 비자를 가지고 있고 그증 6, 70%가 미국이라고 한다. 상황이 악화되면 바로 이상의 땅으로 날아갈 수 있을 만큼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존재기반의 유지를 위해 영국에게 빼앗겼던 홍콩, 과거 중국이 살기 위해 역사적으로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홍콩이 이제 새로운 도피처를 찾아나서는 홍콩인들로 인해 도시국가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는 해피엔딩이다. 역시 현실사회의 혼란이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불식시켜버리기라도 하듯이 한없이 밝고 긍정적이었다.
4) 타락천사 (여명, 이가흔, 금성무, 양채니 출연)
중경삼림의 세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와 함께, 베니스 영화제 촬영상에 빛나는 바로 그 영화 '타락천사', 역시 왕가위식 영상미학과 느와르라는 일반화된 장르에서의 포스트모던한 일탈을 경험하게 된다. 네 명의 주인공이 벌이는 갈등구조가 혼재된 구성양식 속에서 내러티브로서가 아닌 이미지로서 나타난다. 처음에 관객이 바라보는 것은 3인칭의 관찰자시점이지만 영화 전반에 흐르는 독백으로 인해 영화속에 등장하는 대상인물과 관객자신의 동일화로 전화하게 된다.
특히 중경삼림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라도 하듯 유사한 소재나 구성을 차용한다. 킬러라는 인물설정에서, 경찰이라는 직업설정과 선그라스, 쥬크박스, 파인애플 통조림 -특히 유통기한을 명시한-, 대화보다는 독백위주의 스토리 전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속에서 홍콩과 영국, 그리고 중국과의 갈등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많다는 것은 유심히 영화를 지켜본 관객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양채니와 극단적인 갈등구조를 벌이는 금발령이란 가상인물의 설정과 축구경기를 빗대어 표현하는 '우리가 어떻게 금발을 이기겠어?'라는 자조섞인 대사 등을 통해 영국에 패한 중국이 홍콩을 제물로 바친 역사를 우회적인 방법으로 꼬집고 있고, 금성무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설정함에 있어서 초반부의 전혀 일체감 없이 갈등하는 것에서 이후 관계는 완화되나 그 시점에서 아버지의 죽음이 묘사되는 등 1997년이후 홍콩과 중국의 매끄럽지 못한 관계를 예견하고 있는 듯하고, 이가흔과 결별한 킬러 여명이 감각적이고 환타스틱한 화면속에서-여기서도 흘려찍기가 사용된다- 죽음으로 영국에게서 중국으로 다시 반환되는 홍콩의-영국과 결별한 홍콩- 불투명한 미래를 극단적인 영상으로 표현한다.
스위시팬의 사용과 이동하는 시각방향의 반대로 급격하게 흘러가는 피사체의 이미지 연출과 광각렌즈를 사용한 화면굴절 등으로 대상인물의 상황이나 심리묘사를 더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금성무가 보여주는 슬랩스틱 코미디적인 장르일탈도 두드러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런 일탈은 영화흐름의 단절보다는 편안함과 안도감으로 느와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5) 해피투게더 (장국영, 양조위 출연)
왕가위 감독의 6번째 작품이자, 그의 작품 활동이래 가장 큰 환호와 갈채,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전작 <중경삼림>과 <타락천사> 연작이 왕가위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세계인의 가슴을 흔들며 왕가위라는 이름 석자를 강하게 각인시킨 후 발표된 신작 제작 기획 소식은 뜻밖에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낯선 도시에서 동성애자들의 외로운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춘광사설",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워킹 타이틀을 거쳐서 결국은 <해피 투게더>로 귀착된 이 작품은 제작기간동안에도 엄청난 관심의 촛점에 섰고, 삼성영상사업단이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더더욱 빨리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장국영과 양조위의 낯설과 끈끈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발 소식지는 세계를 돌고 돌아 98년 그제서야 한국에 도착했다. 전 세계는 이 영화에 경의를 표시했고, 깐느느 왕가위에게 최우수 감독상을 안겨주었다. 철저한 내러티브의 파괴와 열려있는 플롯, 실험적인 카메라 앵글로 요약되던 '왕가위 스타일'은 <해피 투게더>에서 절정에 올랐고, 그의 영화에서만 마주칠 수 있는 가슴을 울리는 매력은 완벽하게 재현되었다.홍콩 최고의 배우라 할 수 있는 장국영과 양조위는 뜻밖에도 동성애자 역을 맡아 더할 나위 없는 열연을 선보였다.
왕가위 감독은 원래 콘티 없이 제작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배우들에게 촬영 직전까지도 시나리오나 대사 등을 알려주지 않다가 거의 즉흥에 가까운 연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는 영화 사상 초유의 40만자라는 엄청난 분량의 필름을 찎어냈다. 제작 기간도 원래의 기획안과는 다르게 상당히 연장되었고, 그는 더욱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매진했다. <해피 투게더>를 두고 '동성애영화'라고 이야기하는 시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해피 투게더>의 사랑은 성별과는 무관한 사랑이다. 시간에 관한, 사랑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관한 빗겨가고 놓쳐버린 감정들을 그려내고 싶었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인간관계,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운데 둔 인간들의 의사소통에 관해 다룬다.
<중경삼림>이 그랬고, <타락천사>가 그랬다. 시대물이자 무협물처럼 보이는 <동사서독>마저도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엇갈리고 빗겨가는 사랑이 화두가 된다. 그래서, <해피 투게더>의 사랑은 그의 영화들이 언제나 그랬듯 감성적이다. 크리스 토퍼 도일 - 이제는 두가풍이라는 한자 이름이 꽤날 잘 어울리는 <해피 투게더>의 촬영감독은 왕가위 감독과 함께 독특한 영상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스텝프린팅이나 핸드핼드 카메라의 기법은 이제 너무도 많은 표절과 모방으로 익숙해져버렸고, <해피 투게더>에서는 이전의 영화들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시도하기로 한다. 바로 모노크롬과 칼라 사이의 전환이 그것이다. 영화속의 인물들, 아휘와 보영, 장의 심리와 스크린의 색채는 함께 움직인다. 혼자 있을때는 모노, 그리고 함께 있을때는 칼라.하지만 반드시 그런것만은 아니다. 물리적으로 함께 하더라도 서로가 외로움을 느낄때는 불쑥 모노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과거오아 현재를 나누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거리와 시간은 영화를 이채롭게 하는데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주기도 했다. 인물들 사이의 거리가 한없이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들 사이에 자리한 시간의 벽이 때론 멈춤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왕가위와 크리스토퍼 도일읠 이전보다 더욱 스타일리쉬한 테크니션으로 보이게 한다.
사회적영향
제작편수만을 따진다면 아직 그의 작가정신을 충분히 가늠하기 어려운 신예감독이라 할수있다.그러나 그가 가지는 세계영화계의 영향력은 가히 중견감독급이라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유럽에서 재능있는 동양의 유망감독으로 알려지고 있고, 미국에서도 쿠엔틴 타란티노의 도움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다고 한다. 특히 한국의 젊은 영상세대들에게는 가장 선호하는 감독으로 손꼽히면서 뉴웨이브와 느와르적 성향에 흘려찍기 기법을 사용한 영상 등을 소위 '왕가위식 표현'이라고 하는 고유명사까지 만들어내고 있을 정도이다.
97년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수입이 금지됐던 왕가위 감독의 여섯 번째 작품 <부에노스 아이레스 해피 투게더>가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끈 왕가위 감독의 작품 스타일과 분위기는 이제 각종 CF, 뮤직비디오 심지어 TV 코미디 프로에서도 차용하는 일종의 트랜디가 되었다.
<중경삼림>은 영상세대로 불리는 신세대들의 감각적 취향과 예술적 취향의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들을 동시에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서로 엇갈리는 남녀간의 관계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미완의 사랑이라는 외형적인 줄거리 속에 홍콩 반환을 앞둔 젊은이들의 상실감과 고독과 허무가 내재된 <중경삼림>은 왕가위 감독 특유의 대사와 나레이션 그리고 스탭 프린팅기법과 광각렌즈의 사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원래 뮤직 비디오에 쓰인 기법을 창조적으로 차용한 스탭 프린팅기법은 장-뤽 고다르 감독의 점프 컷과 비유되며 새로운 영상언어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영화음악을 사용하는 왕가위 감독의 감각이 두드러지게 표현된 작품이기도 한데,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의 맘보춤을 삽입해 관객들에게 매혹적인 기억을 남겼듯이 <중경삼림>에서는 70년대에 유행했던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사용해 대히트를 시켰고, 크렌 배리스의 을 주연배우인 왕정문이 불러 히트를 시켰다. 이런 그의 음악적 감각은 <해피투게더>에서 탱고를 사용해 탱고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왕가위 감독의 자신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복고적인 음악과 결합시키며 독특한 분위기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관객들은 하루라도 빨리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줄을 섰고, 왕가위는 다만 대중적인 찬사에서 그치지 않고, 연일 영화전문지의 지면을 장식하는 스타의 자리에 올라섰다. 일부평단에서 '가벼우며 상업적'이라는 조심스런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고, 그의 영화를 비난하는 관객들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이미 왕가의 영화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는 점점 확산되어 가고 있는 추세였고, 이 작품들은 최소 10만에서 15만의 관객을 확보하며, 그의 인기가 허수가 아님을 증명했다.
몇 편의 한국영화는 왕가위 영화에 대한 표절시비에 올랐고, 설사 표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거의 영화의 스타일을 차용한 작품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광고의 드라마에서도 그가 즐겨 사용하는 영화적 스타일과 분위기를 본뜨기도했으며, 단편영화들에서도 그러한 분위기들이나타나곤 했다.
이것은 그의 영화가 새로운 감수성과 낯설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영상 이미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며, 부유하는 홍콩 젊은이들의 사랑과 방황 고독이 효과적으로 작품에 투영되어 있다는 점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유럽의 예술영화에서도 한국영화에서도 자신의 이미지를 발견하지 못했던, 젊은 세대들이 세기말적 분위기의 도시적 감수성과 세련됨으로 무장한 새로운 홍콩영화의 출현에 매혹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왕가위 영화에 대한 비난과 깍아내림은<해피투게더>가 97년 깐느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도 어느 정도불식되었고, 그의 신작을 기다리던 관객들을 설레게 했다. 그런데 남성 동성애 장면을 문제삼은 공륜의 수입불가치로 새로운 영화를 갈망하는 관객들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되었다. <바운드>나 <투윙푸>, <프리실라>등 동성애를 다룬 영화들이 개봉된 것을 볼 때, 당시 공륜의 조치는 상당히 경직되고, 비난받아 마땅하며, 곧이어 열릴 퀴어영화제를 겨냥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영화를 기다리던 젊은 관객들이 카페에서 학교에서 비디오로 이 작품을 감상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영화의 흥행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영화사는 많은 우려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몰리고 있다는 소식으로 보아 아직 왕가위의 열풍이 식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왕가위 열풍의 긍정적인 점은 관객들이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발견하고, 그 영화에 열광하기 시작했다는 점인데, 천편일률적인 오락영화들만이 관객을 동원했던 90년대 초반 분위기와도 관객들의 태도가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고, 특정영화에 특정한 관객층이 형성된다는 의미에서 아직은 엷지만 다양한 관객층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로 꼽힐 것이다. 부정적인 측면이라기 보다 아쉬운 것은 이런 대중적인 확산과 열기에 비해 그에 대한 영화적인 문화적인 연구작업이나 접근은 별로 활발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