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12.주일오전 예배설교
설교본문/ 출애굽기 14:1~14(구약102쪽)
설교제목/ <가만히 있어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서론/
오늘 주일오전 예배 말씀은 <가만히 있어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는 제목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다같이 설교제목을 두번 읽겠습니다.
<가만히 있어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2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여러가지 상황을 맞으며 살아갑니다. 좋을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고, 건강할 때도 있고 아플 때도 있고, 잔잔할 때도 있고 풍랑이 일 때도 있고, 쉴때도 있고 땀흘러 일할 때도 있고, 고와 낙이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좋을 때는 한없이 다 좋아도, 어려울 때 위기의 때를 잘 극복하고 해결해야 진짜 좋은 사람이 되고, 승리하는 사람이 되고, 성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하여 첫 어려움으로 겪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400년간 애굽 나라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서 애굽 나라에 내리신 장자 재앙으로 해방되어서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 앞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오게 되었는데, 큰 위기, 큰 난관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위기속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인 반응이 무엇이며, 지도자 모세는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위기에 처하였을 때, 어려운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배우며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본론/
1.진퇴양난에 처한 이스라엘 자손들
첫번째로 살펴볼 점은 진퇴양난에 처한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1절부터 8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진퇴양난은 보통 어려움이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를 말합니다. 진퇴양난이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매우 곤란한 상태, 나아가지도 불러서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 홍해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알게 된 애굽의 바로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왕은 온 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추격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내리신 장자 재앙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속히 애굽땅을 나가라고 해놓고 마음이 변하여 <5절 이르되부터,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하고, 선발된 병거 600대(전차,땡크 600대)와 애굽의 모든 일반 병거를 동원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사로 잡으러 쫓아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진퇴양난의 큰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홍해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있었고, 애굽의 바로왕과 그의 군대들은 전 군대를 동원해서 잡아가려고 바로 앞에까지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배 한척도 없어서 홍배바다를 건너서 도망을 칠 수도 없고, 뒤로 물러가면 바로의 군대에 붙잡힐 상황이 된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독안의 쥐와 같은 상황이 된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진퇴양난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입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이 만든 것입니까? 아니죠~ 모세가 만든 것입니까? 아니죠~ 애굽의 바로왕과 그의 군대가 만든 것입니까? 겉으로보면 그런 것 같지만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진퇴 양난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뜻을 두시고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해서 홍해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셨고, 바로왕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을 추격하셨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잘 생각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게 하신 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4절말씀에서 알려주고 있는데, 애굽나라의 바로왕과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여호와로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애굽 나라와 이스라엘 나라와 온 세상 나라가 여호와로 알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여호와란 <스스로 있는 자, 스스로 존재하는 자, 유일한 창조주라는 의미가 닮긴 이름으로, 출애굽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셨는데,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하나님의 칭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여호와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게 하신 두번째 목적은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경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때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지 못하고 저러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 깊은 수렁에 빠진 것과 같은 상황을 맞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할 때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 여기에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을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퇴양난의 상황을 허락하신 것은 일부러 골탕 먹이고 어렵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바로왕과 애굽사람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이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듯이, 우리의 진퇴양난도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심, 도우심을 경험하게 위함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멘.
2.모세를 원망하는 이스라엘 자손들
둘째로 살펴볼 점은 모세를 원망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10절부터 1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보인 반응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왕과 그의 군대가 가까이 오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기들 뒤에 있는 애굽사람들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은 것은 기도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불평과 원망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원망하며 거세게 항의를 하였습니다. 다같이 11절을 읽어볼까요?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이뿐 아니라 12절에서 원망의 말을 이어갑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 우리를 내버려 두어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 말이 어떤 말입니까? 애굽땅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왜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냈느냐? 우리는 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으로 돌아가서 애굽 사람을 섬기며 신간 편하게 사는 것이 더 낫겠소?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자손들이 진퇴양난의 위기 앞에서 모세를 원망하는 말에 대하여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를 원망하는 말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분석을 해 보아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맞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원망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때 얼마나 잘못되고 어리석은 생각과 말을 하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 나라에서 이끌어 낸 것이 모세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죠? 애굽 사람의 종이 되어서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좋을까요? 비록 광야이지만, 자유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이 좋을까요?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장 눈 앞에 어려움 앞에서 종살이가 좋았다고 생각한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애굽 사람을 섬기며 굶지 않고 속편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진퇴양난의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에게나 목사님에게 불평과 원망을 하기보다 기도하며, 물어보고 상담을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길입니다. 원망을 하면 답이 보이지 않지만, 기도하고 상담하면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퇴양난의 위기, 환난날에 하나님을 찾아 기도할 때 응답해주시고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어려움을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시편 50편 1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약속해주셨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우리 성도님들은 원망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습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답고 도움을 얻어서 그 어려움을 해결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아멘.
3.가만히 있어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는 모세의 신앙
마지막 셋째로 살펴볼 점은 가만히 있어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는 모세의 신앙입니다.
13절과 14절에서 모세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하나님과 자신에게 원망의 말을 쏟아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맞대응을 하지 않고 조용히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돕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같이 오늘 말씀의 핵심 구절인 13절을 읽겠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모세는 자신에게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화를 낼 번 한 상황인데도, 정말 어의가 없는 상황인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타이르듯이 말해줍니다.
<여러분은 두려워하지 마시오,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행하실 구원을 보십시오, 오늘이 지나면 무섭게 다가온 애굽 사람들을 다시는 보지 않게 될 것이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싸우실 것이니 가만히 있어 구경만 하십시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전혀 비현실적인 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신앙의 눈이 아니었다면, 자신에게 원망하는 소리를 들을 때 나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나도 이제 모르겠소, 이판사판이니 함께 싸우고 죽읍시다,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도망처서 살아남으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모세는 놀라운 믿음의 말, 신앙의 말을 한 것입니다. 애굽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굳게 서서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가만히 있기만 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위해서 싸워서 저 애굽 사람들을 물리치실 것입니다.
여기서 <가만히 서서>라는 말이 참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너희 자리를 지키라, 그 자리에 꿋꿋이 서 있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가 어디이고, 어디에 꿋꿋이 서 있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하신 곳입니다. 있어야 시간에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 성도들의 자리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있어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는 모세의 신앙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저는 두 가지 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모세의 온유함이고, 다른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당황한 원망의 소리를 들을 때 온유함으로 참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모세의 온유함에 대하여 민수기 12장 3절을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 하더라>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망의 소리를 들을 때 같이 원망하며 불평하면 싸움이 일어나게 되지만, 온유함으로 참으면 더 이상 확산이 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게 하였듯이, 우리도 때로는 답답하고 힘들 때 가만히 굳게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야 합니다. 가만히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뭔가 하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다릴 때,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저도 목회를 하면서, 가만히 기다리 못하고 뭔가하려다가 후회할 때도 있었고(참 많음), 가만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다리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할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 자신에게 모세의 말로 말해보겠습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오전에 우리는 <가만히 있어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크고 작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지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 설 수 없는,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상황을 맞을 수 있습니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은 누구도 의외없이 맞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만이 힘들고 어렵다고 여기지 말고, 묵묵히 상황을 맞이 하고 해결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진퇴양난의 황을 해결하는 길은 누구를 탓하고 원망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떼를 써도 소용이 없고, 하나님의 종이나 주변 사람을 탓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다 원망하고 애굽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고 말할 때에 아니다 <가만히 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또 자기 자신도 하나님을 믿고 기다림으로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을 받아서 그 진퇴양난의 상황을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건강의 문제, 아픔의 문제, 자녀들의 문제, 손주들의 문제, 하나님을 섬기는 문제, 교회의 문제 등 수많은 일 들 앞에서 원망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누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공동기도> 다같이 따라서 기도하겠습니다.
1)하나님 아버지, 진퇴양난의 위기 앞에 당황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
여호와의 구원을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