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위소보의 불법 강의 시위들이 떠나간 후 위소보는 방장을 뵙고 황명에 따라 내일 청량사로 떠나겠다고 말했다. "응당 그렇게 해야겠지요. 사제는 태어날 때부터 지혜를 타고 났으며 부처님의 뜻을 터득하고 있소. 사제는 어떤 승려들을 데리고 가려 하 오?" "반야당의 수좌 징관 사질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나한당의 십팔 명 사질도 데려가겠습니다." 그는 다시 십여 명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승려들을 뽑았다. 이튿날 이른 아침 위소보는 삼십 육 명의 승려들을 데리고 방장과 고별 했다. 산허리로 내려와서는 홀로 쌍아를 보러갔다. 쌍아는 민가에서 기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위소보가 나타나자 놀람과 기쁨에 어쩔 줄 몰라했다. 장강년 등으로부터 주인이 이미 소림사에서 출가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런데 이때 친 히 그가 중대가리에 승포를 걸치고 있는 모양을 보자 다시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쌍아, 어째서 우느냐? 내가 그동안 너를 찾아오지 않았다고 우는 것이 냐?" 쌍아는 울면서 말했다. "아니......아니에요......그대......그대...... 상공께서 출가를 하셔 서......" 위소보는 그녀의 오른손을 잡고 손 등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며 웃었다. "바보 같으니, 화상이 된 것은 가짜란다." 쌍아는 부끄러워서 귀밑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위소보는 다시 그녀의 얼굴을 뜯어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초췌한 편이 었고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그러나 키는 훨씬 자라 있었고 몸매도 숙 성해져 있었다. "그대는 어째서 여위었지? 매일 나를 생각하느라고?" 쌍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되었다. 이제 빨리 남장으로 바꾸어 입고 나를 따라가자꾸나." 쌍아는 크게 기뻐하여 더 묻지도 않고 남장으로 갈아입었다. 여전히 서 동 차림을 했다. 며칠 후 일행은 오대산 아래 이르렀다. 네 명의 승려가 맞은편에서 내려왔다. 앞장을 선 한 명의 노승이 합장 을 하고 물었다. "여러분들은 소림사에서 오셨소?"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승려는 일제히 절을 하며 말했다. "선사께서 청량사의 주지로 오신다는 사실을 알고 이미 산 아래서 기다 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징관이 소림사로 돌아간 이후 청량사는 노승 법승(法勝)이 주지승이 되 어 있었다. 강희는 따로이 사람을 보내 법승에게 밀지를 내렸던 것이 다. 위소보 등은 청량사로 들어섰다. 그리고 법승과 임무를 교대했다. 뭇승 려들은 일일이 와서 인사를 했다. 옥림과 행치, 그리고 행전 세 승려는 오지 않았다. 법승은 이튿날 산을 내려가 서쪽 장안으로 갔다. 위소보는 청량사의 주 인이 되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방장이 되었지만 그런대로 그럴싸하게 절을 이끌어 나갔다. 그가 청량사에 은혜를 베풀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승려들은 모두 감복하 고 있었는지라 그를 잘 따르고 받들었다. 위소보는 쌍아로 하여금 절밖 의 조그만 집에 기거하도록하여 부르면 즉시 달려올 수 있게 하였다. 청량사의 주지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노황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 었다. 그는 지객승에게 물어 옥림과 행치, 행전 세 승려가 여전히 뒷산 의 조그만 절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정심대사와 상의한 후 사람을 시켜 그 조그만 절간과 반마장 떨어 진 동서남북 사방에 각기 한 채의 초가집을 지어서 여덟 명의 승려들이 차례로 그 초가집에서 세 사람을 지키도록 했다. 모든 일이 일단 정해지자 그는 장강년과 조제현이 전해 줄 편지를 기다 렸다. 녹의소녀의 성명과 내력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몇 개월을 기다 렸으나 전혀 소식이 없었다. 적막할 때면 징관과 초식으로 대전을 했 다. 때로는 쌍아가 거처하는 조그만 집으로 달려가 그녀와 우스갯 소리 를 하고 그녀의 조그만 손을 만져 보곤 했다. 때로는 다음과 같은 생각 도 했다. (나는 홍교주의 표태역근환을 먹었다. 만약 일 년안으로 한권의 경서를 신룡도로 보내 주지 않는다면 독성이 퍼지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볼 도 리가 없을 것이다. 이제 몇 개월 남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무료하여 홀로 오대산 곳곳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그는 그 녹색옷을 입은 소녀를 생각했다. 어느 산개울가에 이르게 되었 을 때 한 그루의 수양버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한 그루의 버드나무가 만약 녹의를 걸친 나의 마누라라면 나는 조 금도 예의를 차리지 않고 다가가서는 대뜸 끌어안고 말겠다. 그러면 그 녀는 반드시 응하지 않을 것이고 일초의 곤륜파의 천암경수(千巖競秀) 라는 수법으로 잇달아 나를 몇 장 후려치겠지. 허나 그것도 별 것 아니 다. 나는 즉시 연문탁발(沿門托鉢)이라는 일초를 펼쳐 점잖게 해소시키 고 말 것이다. 곧이어 지주재악(智주在握)이라는 일초를 써서 왼손으로 그녀의 왼손을 잡고 오른손으로 그녀의 오른손을 잡아 놓아 주지 않을 것이며 나의 목을 친다고 해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는 기분이 좋은 김에 손에다 힘을 주고는 일초 일식을 펼쳤다. 퍽퍽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은 각기 하나의 버드나무 가지를 움켜잡게 되었 다. 그리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별안간 한 사람이 거친 음성으로 말했다. "저것 보게. 저 소화상은 실성한 것 같군!" 위소보는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았다. 세 명의 홍의라마가 정 히 그를 손가락질하면서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얼굴을 붉혔 다. 위소보는 총총히 그 자리를 떴다. 산길을 꺽어 돌자 맞은편에서 다시 몇 명의 라마들이 나왔다. 오대산에 는 라마들의 절이 무척 많은 편이라 위소보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 았다. 한 명의 라마가 입을 열었다. "위에서 내리는 법지에 따르면 우리들로 하여금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오늘 오시 전에 오대산에 올라가야 한다고 했소. 그러나 정작 산위로 올라와 보니 아무 일도 없구려. 이것이야말로 장난이 아니겠소?" "위에서 안배한 것이니 이유가 있을 것이외다. 그대는 대동성안의 그 젊은 계집애와 헤어지기 아쉬워서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오?" 위소보는 생각했다. (이 라마들은 술을 먹고 계집질도 하는구나. 내가 만약 출가한다면 차 라리 라마가 되었으면 되었지 화상이 되지는 않겠다.) 청량사로 돌아갔을 때 징통이 산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마중을 나오며 나직이 말했다. "사숙, 아무래도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왜 그러시오?" 징통이 손짓을 했다. 그리고 위소보는 그와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 절옆 의 조그만 봉우리 위로 걸어 올라갔다. 남쪽에 한 무더기의 무수한 노 란 점 들이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니 그 노란 점들은 바로 몸에 황의를 걸친 라마들 이 아닌가. 천 명은 되지 않아도 구백 명은 될 것 같았다. 삼삼오오 짝 을 지어 나무 숲과 산 바위 사이에 흩어져 있었다. 위소보는 깜짝 놀랐다. "저 많은 라마들은 무엇을 하려는 것이죠?" "서쪽에도 있습니다." 위소보는 눈을 돌려 서쪽을 바라보았다. 수천이나 되는 라마들이 무더 기를 이루고서 혹은 앉아 있거나 혹은 서 있었다. 햇살은 동쪽에서 비 춰 죽 있었는데 하얀 광채가 번뜩이는 것이 뭇라마들은 몸에 무기를 지 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무기를 가지고 있군요. 혹시......혹시......" "사질의 짐작으로도 역시 그럴 것 같습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북쪽과 동쪽으로 돌렸다. 북쪽과 동쪽에도 수백 명의 라마들이 있었다. "제기랄, 적어도 사오천 명은 되겠군." "일백 이십 오 명의 두목데다 삼천 이백 팔십 명의 라마들이 있습니 다." "정말 대단하시오, 그토록 똑똑히 수를 헤아리다니!" "이제 어떻게 하죠?" 위소보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상대방에서는 삼천여 명이나 되는 사람 들을 불러 모아 겹겹이 에워싼 것으로 보아 모든 계획을 치밀하게 세운 듯하지 않은가? 위소보는 징통이 그와 같이 묻자 역시 물었다. "글세 어떡할까?" "상대방은 아마도 행치대사를 사로잡아 가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십중 팔구 밤을 기다렸다가 사방에서 포위공격을 해올 것입니다." "어째서 지금 공격을 하지 않지요?" "만약 낮에 남들이 보는 앞에서 공격을 해온다면 반드시 여러 청묘(靑 廟)가 청량사를 응원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우리들은 즉시 사람들을 내보내 각 청묘의 주지들에게 통지 하여 그들에게 많은 화상들을 보내 주십사 하고 청하도록 합시다." "그런데 오대산의 각 청묘에 머물고 있는 승려들의 십중팔구는 무공을 모른답니다. 설사 무공을 아는 자라 하더라도 그 무공은 평범하게 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응원하러 오지 않겠구려." "응원을 오는 사람은 있을 것이지만 온다 하더라도 헛되이 목숨만 잃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대로 투항해야 한단 말이오?" "우리들이 투항하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만 행치대사는 반드시 그들에 게 잡혀갈 것입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행치대사의 신분을 소림사의 뭇승려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들이 대거 공격해 와서 행치대사를 사로잡아 가려는 것은 도대체 어 떤 영문일까?" "행치대사는 반드시 크게 내력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중원 무림의 흥망성쇠와 관계되는 사람이 아니면 바로 청묘와 황묘의 다툼에 어떤 중대한 관련이 있는 사람이겠죠." 위소보는 몸에 황제께서 친필로 내린 어찰(御札)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을 상기했다. 이 어찰만 있으면 문무관원들을 조달할 수가 있었다. "지금 사정이 다급하게 되었소. 우리 소림사의 무공이 고강하다고는 하 나 중과부적이오. 삼십 칠 명의 화상이 어찌 삼천 명이나 되는 라마들 을 상대해 낼 수 있겠소? 나는 즉시 산을 내려가 구원을 청하겠소." "아무래도 멀리있는 불로서는 가까이에 난 불을 잡을 수가 없을 것 같 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행치대사를 호송하여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소." "보기에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빈 틈을 뚫고 달려나간다는 것 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행치대사와 그의 사부 옥림대사가 응하지 않을까봐 두렵구려. 그들은 생사가 차이가 없으며 도망치나 도망치지 않는것이나 차이가 없 다고 했소." "그렇다면 사숙께서 아무쪼록 그들에게 권고를 하도록 하십시오." "행치대사를 권고하여 설복하는 것은 방법이 있소이다만 옥림노화상을 권고하는 일은 나로서는 패배를 시인할 수밖에 없소이다. 이것이야말로 쥐가 거북이를 잡아당기는 격으로 주둥이를 갖다댈 만한 곳이 없는 형 국이외다." 날이 어두워지기만 하면 삼천여 명이나 되는 라마들이 우르르 몰려들 형편이다. 이렇게 되면 청량사의 화상들은 그저 우리 부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옵 소서 하고 부르짖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제기랄! 내가 왜 화상이 되었지? 만약 내가 라마가 되었다면 지금 이 때는 의기양양해서 거들먹거렸을 것이고 조금도 걱정을 하지 않았을 것 이 아닌가? 평시에 고기를 먹고 계집질을 하는 것은 계산에 넣지 않는 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계집질을 한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영감이 번쩍 떠 올랐다.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말했다. "빌어먹을! 나는 선방으로 가서 한숨 자야겠소." 징통은 아연해져서는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위소보는 그를 아랑 곳하지 않고 곧장 조그만 봉우리에서 내려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징심, 징관, 징광, 징통 등 네 승려가 일제히 와서 뵙자고 청 했다. 위소보는 네 사람을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각자의 얼굴에는 놀람과 당황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는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한후 귀찮다는 투로 물었다. "여러분들은 내게 무슨 볼일이 있소이까?" 징심은 말했다. "산 아래에 라마들이 떼를 지어 모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본사에 대해서 불리한 행동을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방장 사숙의 대응책을 듣 고 싶습니다." "나는 반나절동안 생각했으나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잠을 잘 수밖 에 없었소. 모두들 액겁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라마들의 칼이 얼마나 예리한지 한 번 목을 내밀고 받아 봐야 하지 않겠소?" 징심 등 네 승려는 그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 다. 징관은 말했다. "뭇라마들이 들고 있는 칼들을 보기에 무척 예리한 것 같고 우리들의 목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숙, 출가인은 세상과 다투지 않고 어떠한 역경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칼이 들어오 는데 목으로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지나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달마조사께서도 사람에게 칼을 맞으면서 반항하지 말라고 가르친 적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들 무공을 배울 필요가 없었겠지요."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징관 사질의 의견으로서는 칼이 들어올 때 목으로 받으면 안된다는 것 이오?" 징관은 말했다. "안 되지요. 그러나 주먹을 질러 올 때 가슴으로 맞이하고 발길질을 해 올 때 배로 받는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는 내공이 매우 심후했다. 내공을 돋구게 된다면 상대방의 주먹이나 발길질이 되려 튕겨 나가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들 라마들은 모두 다 계도나 선장을 가지고 있소. 무슨 방법을 쓰면 그들이 무기를 사용하지 않게 될까?" 징관은 어리둥절해졌다. "그 라마들을 상대로 이치를 따져 이야기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 들로 하여금 사람 잡는 칼을 내려놓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것 참 곤란하게 되었군. 네 분 사질은 어떤 묘책이 없소?" 징심이 말했다. "지금의 계책으로서는 오로지 모두들 옥림과 행치, 행전 세 분을 보호 하여 빈틈을 뚫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행치대사를 사로잡아 가려고 할 뿐이니만큼 절안의 승려들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을 것입니 다." "좋소, 우리는 세 분의 노화상에게 이야기하러 갑시다." 그는 즉시 네 명의 승려를 이끌고 뒷산의 조그만 절간으로 달려갔다. 옥림 등은 주지가 왔다는 말을 듣고 문을 나서서 맞아들였다. 옥림, 행 치, 행전은 모두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세 승려는 신임 주지 회명선 사는 소림사의 회총방장의 사제이고 또 나이가 무척 젊은 고승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로 위소보가 아닌가? 옥림과 행치는 대뜸 어떻게 된 영문인가를 깨달았다. 황제가 안배하여 부친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임을 알아챈 것이다. 어쨌든 주지는 한 절간의 주인이었다. 옥림 등은 예의를 다해 인사를 했다. 위소보는 삼가 공손하게 반례하고 함께 선방으로 들어갔다. 옥림은 그를 중간의 방석에 앉혔고 나머지 사람들은 양쪽에 시립해 서 도록 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크게 흐뭇해했다. (내가 중간의 자리에 편안히 앉고 노황야마저 옆에서 시중을 들게 되었 으니 소황제보다 더욱 위풍이 있군!) 그는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입을 열었다. "옥림대사, 행치대사, 두분께서도 아무쪼록 앉으십시오." 옥림과 행치도 앉았다. 옥림이 말했다. "방장대사께서는 청량사를 이끌어 나가시고 계신데 소승 등이 미처 찾 아가 뵈옵지 못한 첨 양해해 주시구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소납(小衲)은 세 분이 다른 사람의 방해를 좋아 하지 않기 때문에 줄곧 세 분을 뵈로 오지 못했습니다. 만약 오늘 한 가지 큰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소납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노화상이 스스로를 일컬어 노납이라 하는 말을 듣고 속으로 자기 는 나이가 어리니 자연 소납으로 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뭇승려들은 그가 희한한 발상으로 칭호마저 스스로 만들어 내어부르자 속으로 우스 꽝스럽게 생각했다. 위소보는 말을 계속했다. "징광사질, 그대가 세 분에게 말씀을 드려 주십시오." 옥림은 새로운 주지의 법명이 회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소림사의 회자 항렬은 징 자 항렬보다 한 항렬 높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소화상이 개구장이 같은 얼굴을 하고 청량사의 먼저번 주지이고 장엄하 고도 자상한 덕망 높은 노승에게 사질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고 웬지 어 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징관은 공손하게 대답하고 절 주위에 수천 명의 라마들이 겹겹이 에워 싸고 있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옥림은 눈을 감고 한동안 생각하더니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방장대사께서는 어떻게 대응하시고자 하오?" "그들 라마승들은 본사 주위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데 그저 풍경을 구 경하고 있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곳의 풍경이 우아하고 조용해서 그들은 산천 구경을 올 수도 있지 않겠소이까?" 행전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만약 풍경을 구경하러 왔다면 본사를 겹겹이 에워싼 채 몇 시진이 되 도록 물러가지 않을 리가 없죠. 틀림없이 그들은 행치사형을 잡아가려 고 하는 것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들이 행치대사를 모셔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세 분 대사를 흠모하여 세 분을 라마의 절로 모셔가서 불경을 논하고 설법을 들으려 하는 것이 겠죠." 행전은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고는 볼 수 없소이다. 그렇다고는 볼 수 없소이다." 징관이 말했다. "방장사숙, 그렇다면 그들은 어째서 무기를 지녔죠?" 위소보는 합장했다. "그들은 모두 선장과 계도를 들고 기세등등한데 어쩌면 정말 본사 승려 들의 목을 자르려고 하는지도 모르지요. 부처님께서는 내가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고 누가 지옥으로 들어가겠느냐고 말씀하시지 않았소? 우리 들은 마땅히 칼이 들어오는 것을 목으로 받아야 할 것이오. 이것이야말 로 내가 남에게 목을 베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목이 베어지는 것이 아니겠소? 생겨나지 않으면 멸하는 것이 없고 더럽지 않다면 깨끗함이 뭔지 모르는 것이지요. 머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잘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부처님에게 세 가지의 큰 덕이 있는데 대정(大定), 대지(大 智), 대비(大悲)이외다. 뭇라마들이 칼을 들고 오는 것을 우리들이 듣 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또 구경하지도 않는 것은 대정이라고 할 수 있 소이다. 그들은 칼을 들고 내려치고 하는데 우리들이 그 칼을 공이라 생각하고 공(空)은 바로 칼이라 생각하는 것은 바로 대지이며, 한칼 한 칼이 우리들의 민숭민숭한 대머리를 모조리 베어내어, 오호 애재라! 모 두 이 속된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대비라고 할 것이외 다." 그는 절에 오랫 동안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적잖은 불경을 암송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한참 씨부렁거려 본 것이었 다. 징관은 말했다. "방장사숙, 대비라는 비 자는 자비스럽다고 할 때의 비자이지, 비애라 고 할 때의 비자가 아니외다." "사질의 말씀도 옳소. 생각해 보시오. 우리 부처님께서는 살을 잘라 독 수리에게 먹였고 몸을 던져 호랑이를 키우려고 했으니 그야말로 실로 대자대비한 일이 아니겠소? 그들 라마들은 비록 흉악하나 고약한 독수 리나 사나운 호랑이보다는 어쨌든 조금 나을 것이오. 그렇다면 우리들 이 몸을 던져 고약한 라마들의 소원을 풀어 주는 것도 역시 대자대비한 마음이 아니겠소?" 징관은 합장했다. "사숙의 지혜는 실로 존경과 탄복을 금할 수 없습니다." "출가인은 세사와 다투지 말고 거슬리는 일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 니 청량사에 만약 어떤 재앙이 닥친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외 다. 우리들이 고약한 라마들의 칼 아래 원적하게 되고 함께 서방 극락 세계로 간다면 길을 가는 동안 무척 시끌벅적할 것인 즉, 꽤나 재미있 을 것 같구려." 뭇승려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위소보가 불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로지 징관 한 사람만 깊이 믿어 의심치 않 았으며 기뻐하고 또 찬탄했다. 뭇승려들은 잠자코 있었다. 행전이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스스로의 생사는 상관이 없으나 백성들이 그들에게 업수이 여김 을 당하게 되고 압박을 당한다면 커다란 죄업(罪業)이 아니겠습니까? 사부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못된 짓을 마구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고 하셨소이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형의 그와 같은 말은 매우 일리가 있으며 소납의 의견보다는 더욱 한층 고명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라마의 세력이 크니 우리 들로서는 중과부적이랍니다." 행전이 말했다. "우리가 사부와 사형을 보호해서 빈틈을 뚫고 나간다면 고약한 라마들 도 감당해 내지 못할 것입니다."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면 뭇라마들의 목숨을 해치거나 상처를 입히는 일이 벌어질까봐 두려운 것이외다. 아미타불, 우리 부처님께서는 호생 지덕이 있소이다.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면 그야말로 칠층의 불탑을 쌓는 것보다 낫다고 했소.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야말로 팔층 의 불탑을 부수는 것이 아니겠소? 불가의 계율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계율은 바로 살생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행전은 말했다. "그들이 달려와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고, 우리들은 부득이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것뿐이외다.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가장 좋지만 그렇다고 눈을 멀거니 뜨고 그냥 앉아 죽임을 당할 수는 없지 않겠소이 까?" 갑자기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소림의 징각(澄覺)이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 들어오더니 말했다. "방장 사숙에게 말씀드립니다. 산 아래의 라마들이 일제히 산위로 올라 왔습니다. 그러나 약 일백 장 정도 가까이 다가오더니 다시 멈췄습니 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째서 어느 정도 길을 올라왔다가 멈추었을까? 갑자기 우리 부처님의 감화를 받아 회오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고개를 돌리면 언덕이라는 구절에 담긴 내용을 깨달은 모양이군!" 행전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외다. 아니외다. 그들은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일거에 공격해 들 어오려는 것이외다." 그는 옛날 정황기의 대장이었다. 그리하여 중원으로 들어올 때 무수한 싸움을 치루었고 군사를 이끌고 싸움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 가 후에 순치의 어전시위총관이 된 것이다. "그들이 본사의 대웅보전으로 들어와 우리 불여래(佛如來)의 장엄한 보 상(寶相)을 대하게 된다면 갑자기 마음이 변해 하려던 것을 멈출지도 모르는 일이오." 행전은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 소방장께서는 실로 터무니......터무니......아, 그럴 리가 없겠 지." 그는 본래 너무나 터무니 없이 멍청하다는 말을 하려고 하다가 상대방 은 방장인데 자기가 무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입밖까지 나왔던 말 을 되삼킨 것이었다. 옥림이 끼여들었다. "행전, 너 자신이야말로 실로 멍청하다. 방장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헤 아려 보고 있으며 계획을 가슴속에 품고 계시다. 네 어찌 쓸데없는 걱 정을 한단 말이냐?" 행전은 어리둥절해졌다. "아, 본래 방장께서는 이미 묘책을 세우고 계셨군요." 위소보는 갑자기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저에게 묘책은 없습니다. 삼십육계가 상책이라고, 모두들 뚫고 나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니 뚫고 나가도록 합시다. 하지만 부득이 할 때가 아니면 절대로 많은 사람의 인명을 해쳐서는 안됩니다." 행전과 징심 등은 일제히 옳다고 말했다. 위소보가 말했다. "그렇다면 모두들 물건을 챙기도록 하시오.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그들 이 아직 손을 쓰기 전에 우리가 먼저 달려 내려가도록 합시다. 부평현 (부平縣) 현성(縣城)안으로 달려 들어가게 된다면 그 라마들이 아무리 고약하다고 하더라도 공공연히 현성을 공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행전 등은 또 모두 좋다고 했다. 행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나는 불길한 사람이외다. 지난 번 이미 나 때문에 적잖은 목숨이 사라 졌소. 이번에 위난에서 도망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나를 단념하지 않을 것이외다." 행전은 말했다. "사형, 그 고약한 라마들은 그대를 사로잡아 간 다음 천하의 백성들을 잔인하게 해치려고 한단 말입니다." 행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 세상의 화근이라고 할 수 있네. 그들이 달려오면 내 스스로 몸을 불살라 그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마음을 단념토록 하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행전이 다급히 말했다. "황......황...... 아니 사형, 그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외다. 제 가 사형을 대신해서 분신자살을 하겠소." 행치는 빙그레 웃었다. "자네가 내 대신 분신자살을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들은 나를 잡아 인질로 삼자는 것이 아닌가?" 옥림은 말했다. "선재로다. 선재로다. 행치는 이미 커다란 도를 깨달았도다. 이것이야 말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누가 지 옥으로 들어가겠느냐'라는 구절에 담긴 참뜻이로다." 위소보는 속으로 욕을 했다. (냄새나는 화상같으니! 그가 말하는 것이 참이라면 내가 말하는 것은 가짜라는 건가?) 옥림은 다시 말했다. "나중에 뭇라마들이 달려오게 되었을 때 노납과 행치가 함께 몸에 불을 지를 터이니 방장대사와 뭇사형들은 저지하지 않도록 하시오." 위소보와 뭇승려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모두 다 아연해했다. 행치는 천천히 말했다. "옛날에 성을 공격하고 곳곳에서 약탈을 일삼고 또한 백성을 도탄에 빠 뜨렸으니 소승은 이미 백 번 죽어도 죄를 사할 수가 없소이다. 백성을 위해 몸을 던져 옛날의 죄값에 대한 보답을 하려는 것이오. 만약에 이 로써 뭇라마들이 감화하여 악한 마음을 떨쳐 버리고 착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더욱 좋은 일이 아니겠소이까?" 그리고 몸을 일으키더니 위소보와 소림의 다섯 승려에게 합장하고 허리 를 굽혔다. 위소보는 삼십 육 명의 소림 승려들을 불러서는 그 소식을 알렸다. 뭇 승려들은 하나같이 두 분 대사가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 태운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때 가서는 무력으로라도 저지를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외다. 모두들 나의 말을 들으시오. 그대들 서 른 여섯 분은 이제 절에서 달려 내려가 일제히 동쪽을 격하시오."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