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담배를 압수당한 중학생이 교감을 공격하고, 사소한 지적에 흥분한 여중생이 교사의 머리채를 낚아챈다. 집에서 어머니를 살해한 고교생은 시신을 옆에 두고 별다른 내색 없이 지낸다. 신문기사를 읽으며 공포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순진한 표정의 어린 좀비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가 꾸민 음모의 산물이다. 음모에 가담한 주범과 공범, 동조자와 방관자를 색출하고 교육파행의 인과응보를 받아들일 차례이다.
교육의 목적은 모든 학생들이 자기 적성을 찾고, 배움을 통해 성취감을 경험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국가와 개인의 미래가 보장된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이와 반대로 진행된다. 음모가 개재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음모를 시작한 주범은 교육행정기관이다. 모든 학생을 점수와 서열로 묶어 구속하고, 등급으로 학생의 잠재력을 동결한다. 음모의 공범은 학부모, 교사와 학원이다. 소신이 부족한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세태에 맡기기로 작정하였다. 자녀를 믿지 않고 등급에 매달리기로 한 것이다. 교사는 학교, 학부모와 학원 사이에서 시달리다가 교권을 포기하고 방관자의 길을 택하였다. 학원은 학벌사회의 현실을 부추기며 학부모에게 학벌투자를 권장한다. 철학이 부족한 기성세대가 각자의 안주를 위해 택한 비겁한 결정이 모여 거대한 음모로 변한 것이다. 좀비의 탄생과 출처도 이 음모에서 찾아야 한다.
학생은 이 음모의 가장 큰 피해자이다. 부모는 자녀의 장래를 걱정하다 보니 무리인 줄 알면서도 무작정 최고점수와 최고등급을 강요한다. 가족의 희생과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며 분발을 촉구한다. 시한을 정해 목표를 제시하고, 이에 미달하면 질책과 협박을 가하며, 점차 신세 한탄과 저주로 악화된다.
학원은 실적에 따른 보상체계와 상여금으로 무장한 강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신상품, 파생상품을 개발하여 학벌투자 분위기를 강화한다. 경제적 한계를 느끼는 부모는 학원이 평가한 경제등급으로 분류된다. 자기 집의 경제적 파탄 과정을 보며 자녀도 부모의 등급을 파악한다. 국가의 점수등급, 학원의 경제등급, 학생의 부모등급이 교차되며 서로를 탓하는 악순환으로 발전한다.
학생은 교사의 존재를 무시할 수밖에 없다. 수강료가 비싼 학원 수업을 따라가려면 학교에서 잘 쉬어야 한다. 학생·학부모와 교사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교사의 체벌이 금지된다. 법적 대응조치를 거론하는 학생을 보면서 교사의 공황증이 시작된다.
학생들은 항상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등하굣길에서, 학원과 집에서 스트레스가 쌓인다. 본인도 모르게 이상한 생각을 시작한다. 온순한 학우를 지목하여 집단으로 따돌린다. 오가는 길목에서 폭력에 말려든다. 내성적인 학생은 우울증과 자살충동을 경험한다. 자살 사이트를 방문하고 가출 경험을 듣는다. 가출과 동시에 점수등급 사회에서 범죄등급 사회로 이적한다. 부모를 생각하면 죄책감이 몰려온다. 억울한 사연을 당하면 적개심이 생긴다. 게임에서 본 복수장면이 머리를 맴돈다. 이 순간에 누가 나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마침 누가 나를 건드린다.
우리가 만든 좀비들은 이미 사회 전역에 진출하였다. 대학입학에 성공한 학생들도 새로운 활동을 시작한다. 신입생 환영회, MT, 동아리 모임에서 충동을 느낀다. 신입생 환영회는 선배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의식행사이다. 선배가 독주(毒酒)를 돌리는 순서를 시작한다. 환영회에서 과음으로 사망한 신입생 기사가 실린다.
취업을 준비하려면 스펙등급을 올리는 학원에 등록해야 한다. 스펙이 전공보다 중요하므로 전공을 포기한다. 전경(戰警) 숙소에서, 군부대 내무반에서, 지하철과 공공장소에서 좀비가 나타난다. 성실한 좀비는 그들만의 반격을 시작한다. 결혼에는 혼수등급, 결혼 후에는 출산등급이 있다. 우리 사회의 출산율은 세계 216위이다. 두 젊은이가 결혼하여 아기 한 명을 낳는다. 노령인구가 새로운 화두로 다가온다. 요즈음 학생들이 중년을 맞이할 즈음에 새로운 사이트가 화제에 오른다. 고려장(高麗葬) 사이트이다.
우리 사회의 좀비는 과연 누구인가. 세태에 타협하며 자녀들을 망치는 기성세대가 진짜 좀비 아닌가.
좀비의 반격. 지난 목요일 조선일보 아침논단에 실린 이면우 교수의 일갈이다. 통쾌하다. 그리고 아프다. 청춘만 아픈 게 아니다. 대한민국의 청춘들을 좀비로 만든 나 같은 기성세대도 아프긴 마찬가지다. 이 땅에 남은 성한 인간을 죄다 좀비로 만들기 위한 좀비 행렬에 나 또한 발을 질질 끌며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다. 영혼은 말할 나위도 없고 정신없이 오직 동물적 욕구를 쫓아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이면우 교수의 글 취지를 살려 극단적으로 윤리가 실종된 좀비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자.
#1
폭우가 내리는 날 검은색 비옷으로 몸을 감싼 사내가 주택에 침입해 두 노인을 칼로 잔인하게 살해한다. 범인은 피살자의 외아들. 유산 상속을 노리고 부모를 죽였다. 범인의 직업은 펀드매니저다.
#2
2011년 1월 21일 밤 11시 반, 대전시 탄방동 한 아파트에 검은색 오토바이 헬멧을 쓴 괴한이 침입해 어린 외손자들과 함께 있던 할머니를 등산화 발로 무자비하게 걷어차 갈비뼈 여섯 개를 부러뜨린 후 도망갔다. 할머니는 다음 날 새벽 가슴속 과다 출혈로 숨졌다. 용의자는 숨진 할머니의 큰아들. 경찰대 출신 엘리트 경관이다. 범행 동기는 ‘돈’이다. 수사관의 설명에 의하면, 평소 주식투자로 억대의 재산을 잃고 재산 상속을 노린 끝에 어머니를 죽인 것이다.
#3
2011년 3월 13일 서울의 한 고등학생이 방안에서 낮잠 자는 모친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그리고 모친의 시신을 8개월 동안이나 방에 숨겼다. 살해당한 모친은 평소 ‘전국 1등’과 ‘서울대 법대’를 강요하며 아들의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거나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괴롭혔던 것으로 밝혀졌다.
1번은 영화 <공공의 적>의 핵심 장면이다. 영화에서나 볼 성싶은 이야기가 한층 더한 전율로 현실에 나타난 것이 2번과 3번이다.(이밖에 차마 내용을 올리지 못하는 모친 강간살인 사건도 있다.)
경찰대학은 대한민국 상위 1% 안에 드는 성적 우수자들이 가는 엘리트 학교다. 경찰대 출신을 엘리트로 부르는 까닭이다. 나라 전체를 자괴감에 빠트리고도 남을만한 이런 엘리트의 패륜 범죄를 정부와 언론은 슬그머니 덮고 넘어갔다(*).
(*) 대부분의 언론은 이 천인공노할 극악 패륜 사건을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주말신문에 특이한 뉴스거리로 다뤘을 뿐이다. 이 사건의 주인공인 패륜 엘리트 경관이 이후 어떤 판결을 받았는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국가와 국민의 가치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거다. 작금의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절대 가치는 무엇인가? 그동안 조중동과 같은 주류언론이 줄기차게 세뇌한 대한민국의 지배적인 가치관이 무엇인가?
바로 ‘경제’다. 지난 십수년 간 정부와 기업과 언론과 학계가 일치단결하여 국민에게 ‘경제’에 올인할 것을 집요하게 주문해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해서 ‘경제지상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대한민국의 으뜸 이념으로 굳세게 자리 잡지 않았던가.
조중동과 같은 주류언론은 지난 정권 내내 ‘경제 문제’를 핵무기 삼아 정부를 공격했고, 결국 ‘경제’ 프레임으로 현 정권을 탄생시켰다. 그 배경 아래 현 정부가 내건 ‘747공약’은 경제지상주의의 종결판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국민 정서를 만들어 왔다.
친 기업적 경제정책과 종부세 폐지와 같은 부자 감세 정책 등 신자유주의적 경제성장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한국은 현 정부 들어 사상 최대의 수출 및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전 세계에 풀린 막대한 글로벌 유동성을 배경으로 자본 이익의 극대화를 노리는 투기 자본이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고 환금성 좋은 한국 자본시장으로 당연히 흘러들어왔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한국 증시의 상승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파편화된 한국 가정, 대가족화 되는 미국 가정
우리나라는 1인 가구와 2인 가구 비중이 50%나 된다. 4인 가구 이하가 전체의 95%를 차지하고, 5인 가구 이상은 5%에 불과하다. 한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옛날 대가족 울타리 안에서는 부모한테 혼쭐이 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편들어주고, 삼촌이 다독이고, 형제ㆍ사촌들과 고민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감정이 해소됐다. (조선일보 사설 2011-11-26)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PEW) 리서치센터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미국 가구들은 지금 핵가족 시대를 깨고 대가족화하고 있다. 한 지붕 아래서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다세대 가구(multi-generational homes)’가 2007년 4650만 명에서 최근 5100만 명으로 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런 현상이 가속화됐다고 한다. (중앙일보 2011-10-26)
다세대 가구, 즉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은 각각 따로 사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게다가 상술했듯이 인간의 악한 감정을 다스리는 좋은 성정(性情)을 함양할 수 있는 정서를 갖는다.
이면우 교수가 ‘좀비의 반격’을 통해 경고하는 현상의 본질도 현 한국 사회의 구조적, 정서적 ‘비인간성’에 있다. 경제지상주의가 낳은 인간의 물화(物化) 현상을 지적하는 것이다. 예수가 광야에서 기도할 때 돌로 빵을 만들어 굶주림을 해소하라는 사탄의 유혹을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는 말씀으로 물리치셨듯이, 인간은 땅의 양식인 빵과 함께 하늘의 양식인 ‘영혼(spirit)’을 잃지 말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혼에서 종교적 색채를 제거하면 ‘정신’이다. 즉 정신없이 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좀비로 산다는 것은 ‘정신없이’ 산다는 뜻이다. 우리가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살면 ‘경제지상주의’가 만들어내는 물화 현상을 경계하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지상주의 정책이 만들어낸 부조리들에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 종말적 패륜, 전국에 넘치는 불륜, 세계 최고의 이혼율이 말해주는 가정 해체 등의 부조리 현상 말이다.
가정의 파편화는 경제성장에는 플러스로 작용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많은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미국 사회의 사례가 그것을 증명한다. 한국 가정의 파편화에는 막장 드라마를 비롯한 온갖 불륜과 성 문란 풍조를 조성하는 언론의 기여가 크다. 물론 그 배경엔 주류 언론을 쥐락펴락하는 방통위, 문화부 등의 국가기관이 있다. 그리고 이들 기관의 언론 정책에 가이드라인이 되어온 ‘경제지상주의’ 정책이 최상위에 있었다.
하산하는 성장지상주의
실물 경제의 지속적인 침체에도 아랑곳없이 머니 ‘버블’ 게임으로 보너스를 수백억 원씩 가져가는 월가 사람들에 대한 99% 국민의 분노가 쌓여 부자들에 대한 거센 비판이 일자 자본주의 항모의 주인들은 배의 키를 ‘함께 잘 사는 자본주의’ 또는 ‘행복한 자본주의’ 방향으로 급히 돌리기 시작했다. 일반 국민에게 바람직한 이 방향으로 경제 정책을 선회한다는 것은, 그러나 투자자가 좋아하는 자본의 효율성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경제가 운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역시 양극화 심화와 함께 청년 실업 증가 등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자, 보수를 대표하는 조선일보가 ‘다 함께 잘 사는 경제’를 표방하는 자본주의4.0.을 대거 연재하고, 차기 대권이 유력한 후보 진영에서 성장보다 ‘고용’과 ‘복지’를 우선으로 하는 경제정책을 선언하는 등 자본주의 대전환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대한민국에 패륜공화국의 칭호까지 안겨준 ‘경제지상주의’, ‘성장제일주의’ 이념이 드디어 묘지를 향해 가고 있다. 시차는 있어도 역사적으로 증시는 경제 성장과 동행했다. 증시가 하락할 수밖에 없는 큰 이유다.
ps.
증시가 오른 것은 잘된 일이다. 연재 글을 쓸 동안은 증시가 하락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연재할 게 많이 남았는데 하락이 시작되면 글의 가치가 떨어질까봐서다.
글을 올리려니 좀비 한마리가 미리 와서 글을 기다리고 있다. 참 귀여운 좀비다. 나를 쫓아다니는 귀여운 좀비들은, 어느 좀비 영화처럼 영혼은 없어도 지능은 있는 것 같다. 내가 글을 쓰는 진정한 목적을 알고 있으니... 내가 이곳에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게 나를 쫓아다니는 좀비들의 미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