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라는 글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언제나 실수를 연발하고 살아가는지라
못난이라든가 바보같다는 소리가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고 일에 대한 효율도 높여준다.
왜냐하면 잘한다는 소리는 더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감을 주지만
못난 자리에서는 못해도 본전이고 잘하면 성취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내 실수와 약점을 잘 털어놓는다.
조직을 운영할때도 기반을 확고하게 구축할려고 도전적으로 일을 했다.
안해본 일에 대한 두려움은 가지고 있을 망정 망설이지는 않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도로 굴러 떨어져도 이미 못난이로 불리워지기에
더 이상 모나서 흠이 되거나 하지 않는 점도
과감하게 하는 한 요인이 된다.
못난이라는 것은 겉 생김이 푼수처럼 못났다는 것보다
두루원만한 완전에 도달하지 못한 그런 미완의 모자란 상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다 장점과 함께 단점도 갖고 있으니
신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면 거의가 못난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라는 글에서는
어떤 나무를 못 생긴 나무라고 지은이가 그런 글제를 달았을까..
설한풍에 허리가 휘어지고 뼈시린 울림이 있는 나무일까 아니면,
눈을 뜨고도 살피지 않고 지나간 사람과 동물에 밟힌 어린 나무일까
밑둥에 큰 구멍이 생겨 거미줄이 쳐지거나 벌집이 된 고사목일까.....
그 글과 관계 없이 세상의 모든 나무가
못 생기고 못났다고 나는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특히 겨울의 뼈대를 앙상하게 드러나는 나무들이야말로
정직하게 못난것을 드러내어
오히려 진솔한 아름다움을 풍긴다고 생각한다.
겨울이 되면 스님들은
동안거라고 칩거하여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지만
미술학도들은 겨울에 나무를 스케치하러 많이 다닌다.
겨울나무들의 그 빼빼마르고 앙상하게 헐벗어서 오히려 정직한
그 굴곡을 잘 스케치하는 것이 그림의 거름이 되기에....
실력있는 동서고금의 예술인들이 옷을 걸치지 않은
누드를 많이 그리는것도 그런 연유이다.
겨울이 되면 나 또한 붓을 잡는 시간이 늘어난다.
작품을 하는 시간이 아닌 고금의 묵적을 찾아서
다음 해의 법고창신을 위한 연마의 시간이다.
인생 또한 나무의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음과 영혼으로 통하는 사랑의 길은 生인 삶을 뜻하고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길은 人인 삶을 뜻하기도 한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이 잡혀지면
비로소 인생이란 평범하면서 아름다운
흔들리지 않는 평화와 자유를 얻을 수 있는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은 사랑의 길을 걷는 영웅과 위인과 천재들이
언제나 잘 생긴 우뚝 선 나무로서 존재하기를 바라며
그들의 등을 떼밀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하거나
그들 스스로 등을 돌려 인생을 포기하게끔 했다.
큰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후
대학강단의 인기 교수이며 여러 방송국에서도 여러 번 찍어가고
영화사에서도 교섭이 오는 고향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조용히 전원에서 균형잡힌 인생을 살고 싶어하지만
주변에서는 계속 정상으로 숨가쁘게 오르라고 채근한다.
자신들은 오르지 못하는 그 고개,
오를 생각도 없는 바람이 세차고 황량한 고개를 오르라고 한다.
본인의 작품을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매일 술을 마시며 괴로워 하는 동료에게 말했다.
네 소신대로 엎드리던, 날던 평화롭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세상은 네가 잘 생긴 나무일때 더 잘 생기기를 쳐다 볼 것이고
네가 살아있는 한 계속 늘 잘 생긴나무이길 원할것이라고.......
마치 트랙을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경주마처럼
숨가쁘게 살아가야 할 지 모른다고..
못 생긴 나무일 때 네 영혼이 깊은 잠을 잘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나도 두 손에 뭔가를 꽉 쥐고 살았다.
그리고 깊은 잠을 들지 못하고 조금만 긴장을 놓으면
생과 삶의 외줄타기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못난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두 손에 쥔 것을 놓고 빈 손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출발선상에 섰을때
나는 비로서 깊은 잠을 자는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었다.
고향친구는 괴로워하며 도시에서 버티다가 간도 나빠졌다.
가족의 반대를 물리치고 쉰이 다 된 나이에 대학강단에서
과감히 내려와 세상과 연락을 끊고
한동안 자연속에서 머리도 수염도 깎지 않고 살았다.
그러기를 십 년이상 하다가 최근에 몽당붓으로
인사동에서 전시를 했는데 그의 작품은 속기가 빠진 진솔함과
못 생긴 듯 보이지만 여유로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빼빼마른 못 생긴 나무를 그려서 국보가 된 아름다운 사례는
추사의 세한도(歲寒圖)에서 볼 수 있다.
제주의 유배지에서 언 먹물을 녹여 시린 손을 호호 불면서
세한도는 우연히 그려진 것이었다.
겨울에 나무가 빼빼한 골격을 정직하게 드러내듯
사람도 역경에 처하면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그렇다.
유배를 당하면 가족과도 생이별하는데
하물며 아는 사람도 몰라라 하던 시절....
추사선생의 제자중의 하나가 지필묵을 싸들고
제주도까지 찾아와 엎드렸다.
그 제자의 진정심이 마음에 닿아서
제자의 마음이 겨울에 진가가 드러나는
잣나무와 소나무같다고 그림으로....
논어에서 歲寒이란 글귀를 따고........
역관이던 제자는 스승이 준 그림을 중국출장길에 가져갔고
겨울의 언 먹물을 호호 녹여서 삐쩍 마른 붓털로 그려진
그 갈필과 고필의 뼈대그림에 서린 품격높고 소신있으며 청정한 기상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흔들었다.
중국의 명사와 우리 문인들 수십명을 감동시켜
세한도에 너도 나도 줄줄이 찬사의 시문과 제를 줄줄이 달아
지금껏 진품명품으로 전해온다.
추사의 세한도는 크고 작은 여러가지의 삼각형의 구도가
오묘하게 배치되어 견고하면서도
격조있고 그러면서도 포근한 안정감을 준다.
빨강. 파랑. 노랑의 크레용을 가지고 별을 그릴라면 삼각형을 그리고
또 거꾸로 거기에 역삼각형을 포개어서 그린 어릴때의 미술시간들......
동양학대학원을 다니며 동양학적인 학문을 접하면서
그 삼각의 원리는 단순도형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퇴계선생이 그 트라이앵글의 우주적인 논리를 풀어서 혼천의를 제작하고
석굴암의 빛의 반사와 굴절의 원리, 그리고 불국사와 감은사지와 문무대왕릉을
삼각으로 해서 우주의 힘을 끌어당겨 호국의 방편으로 삼기도 한
우리 조상들의 과학적인 지혜로움은 정말 감명 깊기도 하다.
추사의 세한도는 헐벗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말 청정하고 포근하다.
가족과 떨어진 그 추운 상황에서도 따스함은 이어질 수 있고
빼빼마른 못 생긴 나무도 국보가 되는 실화는 그냥 참 좋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살리는 생과 보이는 몸을 살리는 삶이
합해져 좋은 인생이 이루어지는 희망이
꿈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확실하게 보여주기에......
그냥 꾸밈없이 못 생긴 나무가 좋은 것이다.
못난 것의 미학 그 아름다움은
미완의 여백이 있어 바람도 공기도 머물거나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서 일 것이다.
사람도 못나면 누군가의 손을 저절로 내밀게 한다.
나의 가슴도 못나서 빈 자리가 있으면
자연의 많은 기운과 아울러
많은 인생의 아름다움이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첫댓글 늘평화님의 격조높은 수필한편을 보면서 많은 사유(思惟)를 하게 됩니다
아름문학상의 명세기 심사위원이라고 하여 거의 모든글을 다 읽어야 하는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늘평화님의 글은 소설에서도 또한 수필에 있어서도 깊은 철학과 내면의 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반듯하고 쓸만한 나무는 목재로도 쓰이고 용도가 다양하게 사용하게 될것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는 말이 있으며 ,"못난사람이 고향을 지킨다"는 속담이
나왔나 봅니다 깊이 있는 글 잘 보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많이 올려
수고를 하시게 하나 싶지만
장장 60일의 이벤트는
지속적인 동력이 있어야
불씨가 이어지니 즐겁게 참여하는데
큰 의미가 있어요
저도 행사주최해봐서 알거든요 ㅎ
잘 읽어주셔서 고맙기만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평온한 밤되세요 ~^^.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평온한 저녁되세요
오래 전에 구름위의 마을이란 뜻의 '운이덕'이란 산골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마을은 없고 고냉지 배추들 키우는 밭만 있었습니다.
튼실한 배추들은 다 팔려나갔고 남은 배추들은 부실한 배추들이었습니다.
늘평화님의 글 뜻과는 일치하진 않아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사진과 소회를 댓글로 갈음합니다.
***
건장한 이들은 대처로 나갔고
부실한 너희들만 고원에 남았구나
세상사 새옹지마라
대처로 나간 이들 외나무 다리 건널 적에
너흰 구름에 안겨 천수를 누리네
권세 누려 무엇하고
이름 남겨 무엇하랴
세상사 어느 삶이 너희보다 나으랴
저도 고냉지배추밭에 가본적이 있었어요
하필 배추밭 갈아엎던 시기라
대형참사의 밭이었지요
일차적으로 보면 참사이고
이차적으로 보면 땅의 자양분이고
삼차적으로 보면 이또한 생의 순환..
댓글 고맙습니다
오늘은 종일 못나게 동동거리다
급기야 급체한 하루였답니다 ㅎ
못난 것을 이야기했는데,
아주 잘난 이야기가 되었네요.
진솔한 마음은
잘 난 것에만 집착하지 않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잘 나지 않으려고 하는데
글이란 것이
참 간단하지가 않네요
좀 더 발밑을 쳐다보아야 겠어요 ㅎ
격조높은 수필 잘 읽었습니다.
추사선생의 세한도 이야기가 글중에 나와서 더욱 눈을 반짝이며 행간의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마음같아선 단숨에 정주행하고 싶습니다만, 시간을 두고 섭렵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붓글씨를 쓰면
체본에 가람이란 말도 자주쓰고
뫼란 말도 자주쓰지요
예스럽거든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평온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