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 어디로?
단톡방에 이렇게 글이 올라왔다.
KTX가 막 출발하자 친구에게 '출발했다'는 문자를 보낸다는 것이 이전에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 단톡방에 잘못 올라가 바로 지웠는데 봤나 보다.
이전 써 두었던 밀양 친구네 블로그 글을 올렸더니 사진과 함께 다시 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맨 아래.
청자 아부지 ㅋ
청자씨는 보건소 간호사인데 정말 유쾌하고 긍정적이며 에너지가 넘친다.
청자 이름 때문에 학교 다닐 때 놀림을 받아 청자라는 이름이 싫었다고 하는데 나는 청자 이름이 얼마나 좋으냐며 만나면 항상 '청자씨~~!"하고 크게 불렀고 청자씨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경찰관이셨던 청자씨 아버지가 어린 시절 화단에 채송화를 심어주셔서 채송화를 좋아한다는 청자씨를 위해 보건소 화단에 채송화를 가꾸기도 했었다.
전라도가 고향인 청자씨는 지금도 어느 누가 들어도 전라도가 고향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는 강한 사투리를 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서울말을 쓴다고 착각하고 있다.
사투리 때문에 이런 에피소드도 있단다.
청자씨가 전라도에 살다가 서울시 간호사에 합격하여 첫 발령지가 동부시립병원이었는데 그 당시 이곳은 노숙자들을 철장 안에 가둬 임시 수용하던 곳이기도 했었다.
싹싹하고 부지런한 청자씨는 정말 열심히 일하면서 노숙자 아저씨들에게도 참 잘해주었단다.
그리고 청자씨는 사무실에서도 노숙자 아저씨들에게도 완벽한 서울말을 사용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철장 안에 갇혀 있던 노숙자 아저씨가 청자씨를 보고 이렇게 말하더란다.
"전라도 아가씨~ 전라도 아가씨~ 여기서 좀 꺼내 주세요~!"
항상 유쾌하고 긍정적이며 에너지 넘치는 청자씨! 서울말 좀 못하면 어떤가.
청자씨가 말하면 사람들이 다 웃는데....
지금도 강북구 보건소에서 일하고 있는 청자씨와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의 추억을 더듬다 보니 어느덧 밀양역에 도착했다.
여느 때와 같이 친구 부부가 밀양역으로 차를 가지고 나왔다.
언제든지 찾아와도 부담 없는 친구가 있어 좋다.
서로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냥 있어도 편한 친구가 있어 참 좋다.
세컨 하우스를 가진 사람보다 그 친구를 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데 그런 의미에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좋은 친구를 43년 전, 1981년 군대에서 만났으니 3년의 군 생활도 고마운 일이다.
친구네 농장에 도착하니 오늘 서울에서 우리 부부가 온다고 친구의 막내 처제 부부가 바닷가에서 싱싱한 회를 떠와 기다리고 있다.
두릅순, 엄나무순, 옻순, 취나물, 머위, 산초 등 각종 산나물들과 파닥파닥 뛸 것 같은 싱싱한 회가 한상 가득이다.
향기로운 봄 향기가 입안 가득 차오른다.
친구네 세컨 하우스를 지은 사연은 이러하다.
건강이 좋지 않은 친구의 어머니가 절을 찾으면 마음이 안정돼서 친구는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수없이 물색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곳 사명대사 생가가 4km 정도 떨어져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와불이 있는 이곳 영산정사 옆 골짜기를 찾았단다.
이 골짜기가 처음에는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잡목과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이곳에 집을 짓는다고 했더니 동네 사람들과 산림청 직원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며 약간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더란다.
이곳에 나무를 베어내고 터를 닦고 길을 만들고 구찌봉 두릅 엄나무 등을 심고 가꾸는데 어느새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친구의 바람과는 달리 친구 어머니는 병이 악화되어 코로나 기간에 저세상으로 떠나가셨다.
대신 친구인 내가 언제고 이곳을 찾을 수 있어 친구의 어머니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일기예보에 내일 비가 온다고 해서 오후에 나물을 뜯기로 했다.
물이 흐르는 낮은 골짜기를 따라 머위가 지천으로 밭을 이루고 있다.
오늘은 엄나무순과 옻순을 따기에 딱 적기인데 두릅은 약간 먼저 피어나서 약간 몽우리로 피어난 것들보다 약간 피어난 상태이다.
그런데 야생 두릅이라 그런지 참 식감이 부드럽기만 하다.
옻나무순이다.
이번에 옻나무순을 처음 먹어보았는데 엄나무순이 쌉쌀한 맛이라면 옻순은 달달한 맛이 나는 듯하다.
엄나무는 두릅보다 더 억센 가시를 가지고 있어 순을 딸 때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엄나무순은 오늘이 따기에 적기인 것 같다.
한 주만 지나면 먹을 수 없게 억세질 것 같다.
이전에 나무 설명하는 분에게 들은 얘기인에 이렇게 억센 가시가 많은 것은 동물들이 맛있는 순을 따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큰 나무들을 베어내고 나니 각종 야생화들이 피어났다.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노란 꽃잎 위에 작은 검정 벌레들이 모여 있다.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겨울 동안에 가장 먼저 얼음을 뚫고 노랗게 피어나는 복수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자세히 보니 검게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복수초는 뿌리로만 번식하는 줄 알았는데 열매로도 번식을 하나 보다.
족히 수십 년은 될성싶은 진달래나무에 때늦은 연분홍 진달래꽃이 연초록 녹음과 어우러져 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소나무는 밤나무 상수리나무 등 다른 나무들과 함께 있으면 약해서 자라지 못하고 죽는단다.
잡목들을 제거해 주니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솟아오르고 있다.
산벚꽃이 지고 작은 열매들이 맺혔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것이 검게 익은 버찌가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도 따먹고 새들의 먹이도 될 것이다.
시골이라 그런지 밤이 되니 여름 같던 날씨는 간데없고 겉옷을 입지 않으면 추위가 느껴진다.
솥뚜껑에 삼겹살.
휙휙 하고 불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붉게 타는 불.
불을 때다 보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불멍인가 보다.
오늘 밤 불멍 담당인 아내가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날 밤 산속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이곳에 오면 항상 우리 부부 차지인 황토 찜질방에서 노곤한 허리를 지지며 곤한 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도 우리는 두릅순 엄나무순 옻순 취나물 머위 봄 산나물을 실컷 먹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산나물이다.
집에 올라가려고 짐을 챙기는데 다른 욕심은 별로 없는 아내가 봄나물 욕심은 많다.
"말로는 이것 다 가지고 가버리면 여기는 먹을 거 없잖아요." 하면서도 못 이기는 척하면서 이 많은 것을 다 가져왔다.
서울 와서 이웃들과 함께 나눠 먹고 싶은 욕심에.
친구 막네 처제네 부부가 우리 부부에게 준 선물이다.
2007년 10월 오가피 액기스. 18년! 거의 산삼 수준이다.
땡벌 밀양은 땅벌 집을 파서 담은 거라고 하는데 몸에 참 좋다고 한다.
집 옆에 참나무를 세워 기른 표고버섯도 싸준다.
받아 가는 사람은 그냥 그렇지만 이것 하나하나 따서 말려서 손질을 하는데 얼마나 정성이 들어갔을까 하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다.
아침 겸 점심 먹고 친구 부부가 KTX 밀양역까지 태워다 준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카카오 택시 부르니 바로 택시가 잡혔다.
집에 도착해서 오늘 수요일까지 두릅순, 엄나무순, 옻순, 취나물, 머위를 매끼 먹고 있는데 너무나 맛있다.
이렇게 나를 힐링 시켜주는 친구가 있어 참으로 좋다.
첫댓글 나무님의 포스팅을 통해 그렇게 궁금했던 철이님의 농장 구경을 하네요! 모국에 돌아가면 우리 공동체 회원들은 꼭 한 번은 방문해야 할 지역으로 될 듯 합니다. 정말 천국이 따로 없네요. 어머님에 대한 효성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더욱 귀하게 여겨집니다.
사명대사님이 태어난 동네로 산세가 아주 좋은 곳입니다.
넘 좋으셨겠어요. 나물귀신 여기 있는데 안타깝네요. 철이님도 이 공간에서 안부 전해주셨음 합니다.
좋은 친구를 두신 것은 본인도 그분에게 좋은 벗이 되어주신 탓이 아닐까요
나물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네요.
어느 분이 이렇게 말했더군요.
나이가 들어가면
첫째, 나물의 맛있어지고
둘째, 가요무대의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고요.
궁금했던 철이님 소식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우리 철이님 활동 하시려나요~~~
제가 금방 지은 노래 가사 입니다 ㅎㅎ
철이님 덕분에 시냇가에 나무님을 알게 되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가지셨으니 덩달아 행복합니다
도를 닦는 도인처럼 TV도 보지 않고 뉴스도 잘 보지않고 오롯이 자연과 대화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쩜 다 제가 좋아하는 봄 나물^^
빨리 역이민 가서 나물 뜯으러 가고 싶습니다.
시골에 친구가 없으니 제가 시골로 터를 잡아야 겠지요.
제일 많이 뜯는 것이 쑥, 고사리, 취나물 이런 것들입니다.
나무 순 중에 달달한 것은 두릅 쌉살한 것은 엄나무순, 머루 그리고 옻순도 약간 달달한데 양이 많지 않고 구하기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