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다즈의 개를 아십니까 아마도 국민학교 사학년 가을에 있었던 일이랍니다. 제가 일학년 때 혼자되신 어머니께서 책은커녕 공책이나 연필조차도 새것을 사 준적이 없었기에 동화책 같은것은 우리집 방에서 굴러다닌 적이 없었답니다.어머니는 겨울이면 마치 중환자처럼 앓아 누우셨고 저는 두살 터울의 여동생과 남동생을 챙기며 땔감을 해 나르라 달리 책을 접할 시간도 없었답니다.겨울 저녁때면 마른 풀이라도 뜯어다가 아궁이에 연기라도 쬐어야 설잠이라도 잘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사학년 여름 방학때 동화책을 알게되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방학때 책 좀 읽으라며 마을 단위로 동화책을 한 권씩 배분했었습니다. 우리동네는 네명의 학생이 있었고 책을 제가먼저 읽기로 했답니다. 제목은 [사랑의 학교]였었지요. 그 책을 내가 다 읽기도 전에 수해가(1972년도의 큰 수해) 나서 작은 개울가에 웅크리고 있던 우리 초가집은 가재도구를 건질새도 없이 흔적도 없이 떠내려 갈때 그때 그 책도 함께 떠 내려 갔었지요. 방학이 끝나고 반납을 해야했으나 감감 무소식처럼 버텼답니다. 그 동화 책으로 동화에 눈을 떳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에 학교책은 제게 오랫동안 그림에 떡이되었답니다. 그해 가을에 추억으로 남기기도 벅찬 사건이 생겼답니다. 메뚜기 잡기와 벼이삭을 줍던 때 였었답니다. 우리 마을의 면소재지는 그 당시 십킬로 이상 떨어진 먼 곳 이었는데 서커스가 들어와서 공연을 벌였었답니다. 그 사실이 우리마을 골짜기 골짜기에도 퍼졌었지요.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가고싶었답니다. 엄마 손길에 이끌려 다녀온 아이들의 자랑에는 신기함의 극치였었답니다. 어느 일요일 엄마는 아침일찍 벼베기 날품팔러 가셨고 저는 기회다 싶어 엄마가 감춰둔 백원짜리 종이돈을 꺼내 면소재지를 걸어서 갔었습니다. 멀고 먼 길이었음에도 주머니에 꾸겨진 그 백원짜가 원인모를 자신감을 심어주었었답니다. 세상이 다 내꺼 였었지요. 막상 도착하고 보니 먹거리들이 지천이었고 천막으로 가려진 써커스는 자연스럽게 관심밖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아까운 돈이어서 군것질 조차도 어려웠었는데 이상하게도 문구사를 겸한 서점에는 선뜻 발을 들여놓고 말았었지요. 그 때 눈에 띤 책이 [플란더즈의 개] 였었지요. 아마도 제목이 동물을 상징했었기에 호기심으로 고른 책이었었지요. 백원자리 지폐를 주니까 칠십원을 거슬러 주시더군요. 눈을 딱 감고 십원어치의 찐빵을 샀었씁니다. 고픈배를 채우고도 남을 양이었습니다. 두 동생들이 생각나서 조금만 베어물고 비닐봉지에 꼭꼭 쌌습니다. 입에 살살녹는 맛이었습니다. 참고로 우리 동네는 제원군 백운면에서 동강의 삼분 일 정도 크기가 되는 물길을 따라 걸어 십킬로 정도 내려오면 우리 동네에 닿는답니다.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그 내용은 바로 저의 이야기와 진배없었답니다. 동네에서 최고의 가난,겨울이면 앓아 누우시던 엄마,가장 풍요롭게 사는 같은반 정숙이에게로 향했던 짝사랑등은 바로 저의 이야기로 귀결되었었지요.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네로가 루벤스의 그림앞에서 가냘픈 어께를 뒤로하고 죽는 장면에서 한 없이 울면서 걸어내려 왔답니다. 서산에 지던 햇님조차도 내가 사랑하는 하늘에 붉은 눈물을 하늘가득 뿌려 주었답니다. 그날 저녀이었습니다.벼베기에서 돌아오신 엄마는 곧바로 돈이 없어진 것을 눈치채셨고 또 범인이 저임을 대번에 눈치 채셨었답니다. 저는 표정이 용의주도하지 못했었거든요. 다짜고짜 매를 들고 제가 까무렇칠 정도로 때리셨답니다. 까닭모를 설움들이 몰려와서 악머구리 처럼 서럽게 우니까 겁에 질린 두 동생들도 함께 울었었지요. 울다지쳐 골아 떨어진 나를 엄마가 깨웠습니다. 밀가루만 동동뜨는 수제비라도 먹고 자라고......그리고 물으셨습니다. 그 훔친돈을 어디에 썼냐고.얼른 플란더즈의 개와 남은돈 그리고 두 동생들 주려고 남겨왔던 빈 찐빵봉지를 엄마앞에 내놓았었지요. 그리고 업드리고 흐느끼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일체의 품목들을 점검하신 엄마의 얼굴은 당혹감이 언뜻 지나갔습니다.그것으로 제 죄는 씻은듯이 앞 개울물에 떠 내려갔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풍요롭게 가을해는 떠 올랐습니다. 까닥없이 저의얼굴을 마주보지 못하시는 엄마의 얼굴 눈주위는 아버지가 돌아가셨 을 때 만큼이나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이곳 우리방에 올려봅니다. 생각하면 생각 할 수록 가슴이 저려와서 무덤의 봉분처럼 덮어두었었지요.어머님은 지금도 그때의 매 만큼은 후회를 하신답니다. 사는게 어려워서 저 어릴때 눈앞에서 자살을 세번이나 시도하셨던 기구한 여인이시랍니다. 이제 그어머님이 팔십일세가 되셨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올해를 못 넘기실것 같아 제 마음을 아프게 하십니다. 대변처리도 잘 못하시고 아침이면 아침에 일어나 보면 화장실이고 방이고.....그래도 말없이 모시는 아내가 있어 다행입니다. 어머니와 저런 시절이 있었지요. 예전에 이곳에 올렸던 글인데 이제 오락가락 하시는 어머님을 보니 그때의 시절이 떠 올라와 다시 올려 봅니다. 어머님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봄밤의 아름다운 멋스런 선율~~~~~ 아름다운 봄밤의 선율 무시로 떨어지는 꽃잎들도 가만히 보면 다 음악인 봄날에 시와 음악이 만나 가곡이 되고 그 가곡이 순수한 사랑과 열정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불러진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좀 먼 서울로 향했습니다. 모처럼의 서울행이라 여러 가지 약속들을 한데 모은 스케줄들을 해결하면서도 마음은 마포의 이원문화센터로만 향했습니다. 지하철로, 지하철로 이용해서 이원문화센터 도착하니 이미 많은 분들이 아름다운 공연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카페지기님이신 이안삼선생님을 비롯해서 운영자님들, 가곡을 부르실 아마추어 성악가님들을 보면서 반갑고 또 행복했습니다. 한국의 가곡을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참신한 아마추어들의 향연이었기에 이색적이었고 시간에 쫒겨 설렁탕을 후루룩 먹다시피하고 공연장에 입장을 했습니다. 빡빡한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안삼선생님의 개회인사와 정애련작곡가님의 사회로 연주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깊어가는 꽃 봄밤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감미로운 가곡이 온 실내로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 채웠습니다. 약간은 미완의 풋풋한 음성에 넘치는 열정이 참 보기가 좋아서 아, 하고 탄성을 다 질렀습니다. 숨소리조차 죽이며 듣고 있는 관객들은 모두들 한곡 한곡이 불러 질 때마다 순수한 감동의 물결이었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가곡을 얼마나 연습을 하셨을까,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이었습니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휘몰아치는 바람소리처럼, 때로는 나풀나풀 쏱아지는 꽃비처럼, 때로는 어설픈 미완의음성들...... 모두 제 마음에서 파도를 이루며 흘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귀에 익숙한 곡들도 많이 들려왔고 모르는 곡들도 들려왔습니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모두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열정으로 부르는 연주자들을 격려했습니다. 가곡은 언제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노래임을 다시 느끼는 밤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시에 리듬이라는 곡을 붙여서 부르기 때문이지요. 가만히 듣고 있으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만큼 순수하고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전율이 내면 깊숙이 파고 들어 사람의 마음을 온통 시세계로 끌고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가곡을 음악예술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사실 저도 음악과 시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가곡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좋아했던 음악들보다 깊이 빠져들게 되었지요. 그러다보니 노학생의 비애를 실감하면서도 마치 어린날에 잃어버린 꿈을 다시금 되찾은 양, 공부를 하게 되었고 합창단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발성으로 미성의 고음이 만들어질 나이도 지난 나이지만 가능성이 단 1% 있어도 도전하고 말겠다는 게 제 의지이거든요. 머리가 하얗게 되신나이드신 분이 피아노 반주를 타고 온 정성을 다해서 부르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 순간 그분을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가슴으로 흐르는 서정의 물결이 이원문화회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든 가곡은 민요나 대중가요와는 달리 분명 고고한 멋을 풍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마추어들의 공연이었지만 멋스럽고 깔끔한 이미지가 넘쳤습니다. 흔히들 가곡을 품격있는 고전음악이라고 합니다. 많은 대중들을 상대로 하기엔 왠지 자연스럽지 못하고 부담스러워 하지만, 저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누구나 들을 수 있고 또 들으면 조금은 이해가 어려울지 모르지만, 느끼는 감성은 다 같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시를 이해하지 못해도 무언가 마음에 전해져 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마지막에 조정순선생님의 공연에서 저는 기절하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저토록 관객을 사롭잡는 혼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소프라노에 대한 저의 새로운 열정이 가슴에 고여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말 앞으로 광팬이 되어 남은 생애의 시절들이 또 다른 행복들이 샘물처럼 고여 들 예감이 가득했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들이 쏟아지고 감흥을 어쩌지 못한 채 상기된 얼굴들로 찍는 기념사진을 뒤로하고 이원문화원을 나서는데 봄밤의 바람이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카페 첫 회 가곡의 밤을 준비해 주신 이안삼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게 마음으로 고갤숙이며 두 번째 가곡의 밤에는 저도 꼭 준비를 해서 무대에 서 보리라, 다짐하며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낮에 비해서 아주 야해진 서울의 불빛들이 저를 배웅해 주었고 저는 이렇게 행복했던 음악회의 감동을 오래도록 간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이 덩어리로 안겨온 서울을 빠져나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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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인 문학상 수상하신 것..축하드립니다....빵빠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