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어제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요.
지하철을 환승 도중에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스포츠 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맨 얼굴이었는데 (상대방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의 성별은 잘 모르겠더라고요.
한데 뭘 웅얼웅얼~하면서 왔다갔다 하는 겁니다.
"너가 그랬잖아~~" 식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와 말을 주고 받는 것 같아
'ㅉㅉ 안됐네~~~~'라고 생각하였는데
그 사람이 두줄로 서 있는 줄의 바로 옆으로 와서는
저를 쳐다보더니
계속 나즈막한 소리로 말을 하는 겁니다.
"저리 가~~~ 멀리 가~~~~" (웅얼 웅얼~~~~)
지하철에서 간혹 그런 사람들을 만났던 경험이 있긴 합니다만
설마~~나한테 한겨??? 헉~~~나한테??????
순간 귀신이 저한테 말했다는 생각으로 섬찟~~~
묻지마 폭력을 행사해올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 겁이 나서
바로 속으로 기도를 했습죠. 몇 초 정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순간 그 상황이 우습더라고요.
'내가 왜 귀신을 무서워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겁니다.
그때 지하철이 도착하여 문이 열리자
그 사람이 잽싸게 먼저 타더라고요.
내릴 사람이 다 내린 것을 확인한 뒤 타면서
그 사람 옆으로 가볼까 하다가 귀신이를 싫어하는데다
거짓말 등에 능한 귀신에게는 건질 것이 없는 관계로 ㅎ
다른 쪽으로 가서는 제 목적지를 향해 갔습죠.
왜 지하철에서
정신줄을 놓은 사람들을 종종 만나는 것일까요?
그런 사람들은 예전에도 그러더니
왜 자꾸만 저한테 가라고 하는 것이고요?
제 생각엔 니가 다른 곳으로 가믄 되는 것이고
나도 말이죠~~~ 가란다고 가고, 말고 하는 사람이 아닌데요.
다른 분들도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바가 없어서.
귀신을 무서워하면 더 달려든다고 압니다.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무서워하지 않을 때 맥을 못추는 존재일 것이고요.
이길 수 있는 힘은 주님의 권능인 것이고요.
예전에는 그런 상태라면 강제 입원이 가능했었다는데
지금은 가족이라도 쉽사리 입원을 시킬 수 없다고 압니다.
인권이란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궁금한 부분이 있습니다.
정신줄을 놓은 이들이 영화에서처럼 공포스러운 존재란 의미가 아니라
입원을 어렵게 해놓아 오히려 치료의 기회 등을
박탈시키는 것일 수도 있어서요.
귀신이에게 장악을 당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뇌 기능 등에 문제가 생겨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는지라
입원치료가 도움이 돨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잘은 모르겠지만
장악을 당한 상태의 사람이 돌아다니면
그 주변에 있던 이들도 영향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발산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간혹 무방비로 있다가 불화살을 퍽~ 맞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장 먼저 올라오는 것이
제 경우엔 화가 나면서 순간 판단력이 흐려지는 듯 합니다.
상황에 대한 파악을 잘 하지 못하면서 흥분하게 되는 듯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알죠.
'나 지금 공격 당했다'라고요.
순간 두통이 오기도 하고
심장이 덜컹 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안좋은 쪽으로 흥분이 되거나 (화가 치밀어 오른다거나~~)
순간 겁을 먹거나, 참소를 하게 되는 등 그렇게 되던데요.
마음이 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요동을 칩니다.
그럴 때는 바로 기도를 합니다.
장소가 여의치 않다면 어쩔 수 없으나,
크게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이 빠르게 정리하는 방법이던데요.
기도하다보면 어느 때 속이 확 풀리면서 편안해집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평안해질 때까지 해야 하겠죠.
마음이 정리된 후
다시금 상황을 바라보면 과장되게 부풀려서 판단했던 것들이
제대로 보이고, 알아지더라고요.
그러니 마귀에게 순간 공격을 당했거나 눌렸거나 등의 상태에서는
온전한 판단이나 생각 등이 돌아가지 않음을 경험적으로 압니다.
목사님 설교에서도 나옵니다.
악한 날 등~~그럴 때는 계약이나 결정 등을 해서는 안 된다고요.
그 이유가 바로 저 이유겠다 합니다.
한번은 억울함과 불쾌감 등이 올라오면서
특정인에게 시비를 걸뻔 했었죠.
혼자서 몇 시간 정도 씩씩~ 거리고 있었는데
점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더라고요.
하여서 전후사정을 다시 따져보면서 직접 확인해보자 했었고
곧 강력한 이간이 숨어 있었다는 알았습니다.
특정인과 저의 사이가 완전 등을 돌린 상태가 되도록 하기 위한.
그리되어지면 제가 큰 손해를 당하는 상태가 되어지고요.
악한 영은 얼마든 특정인의 말 등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력~~ 즉 방어력이 없을수록
악한 영이 쏜 화살에 쉽게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화살을 쏘아본 적이 있을 겁니다.
단지 알고 있었던 지식을 이야기한 것에 불과했는데
결과 화살이 되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후 전개되는 상황을 통해 유추해보니
상대방이 화살을 이미 맞았던 상태에서
제가 한번 더 쏘아준 격이 된 듯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렇듯 누구라도 주님 안에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악한 영이 그 사람의 말 등을 얼마든 이용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라믄 어제도 화살을 맞았던거여?"
아니죠~~
모르는 이인데 그 사람과 저가 상관할 죄가 뭐가 있갔시요?
판단이나 비판 등을 했던 것도 아니고
다만 저를 해할 것 같은 공포감으로 인해 순간 겁을 먹었다가
두려움에 대해 바로 깨닫고는 평안해졌었는데요.
이런 부분들을 경험하고 알아질수록
주님이 아니시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알아집니다.
그리고요~~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로 거룩한 것, 그렇지 않은 것으로
세상사를 나누려고 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당사자가 혼자서 그리 생각하는 것이라면 가타부타할 이유가 없으나
만일 제게까지 강요한다면
"그렇다면 이 세상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 됩니다"라고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러시아가 공산화되기 직전
러시아의 사제들이 벌였던 논쟁에 대해 적었더랬죠.
성수에 파리가 빠졌을 때 파리가 성화된 것이냐,
성수가 오염된 것이냐라는~
생각해봅시다요.
대체 그게 뭐가 중요헌디욧~~~~~
본질과 비본질조차도 헷갈려 했던 이들이 아닌감요?
본질은 우리 주님이실 뿐인데
파리가 물에 빠지던 말던 뭔 상관이라요.
설령 파리가 성화되면 대왕~~파리라도 되나요.
파리는 걍 파리처럼 살다 죽는 존재에 불과하고
그것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질서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영이 없는 존재가 대체 ~~어캐~~성화가 될 것이며
성화되어진 파리를 대체 어디에 쓴대요?
사람들은 나비에 대해 이쁘다고 하지만 나방은 대체로 싫어합니다.
저도 싫어요.그렇다고 해서 나비는 거룩한 것,
나방은 거룩하지 않다라고 분류하면 맞는 분류법인지요?
나방이도 꽃가루 등을 수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나비와 같지 않은지요?
우리가 항상 거룩 거룩~~근엄 근엄~~
나아가 경건 경건~~만을 따져가면서 살아야 한다면
오로지 그것이 주님의 원하심이라면
대체 이 세상은 왜 만드셨으며
사람들에게 왜 자유의지라는 것을 주셨을까요?
사람들이 지닌 욕망을 따라 막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주신 질서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시기에
그리 지으심을 해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요~~~
여태 고냥이들이 거룩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바가 없시요.
강쥐들이 근엄하다는 이야기 등을 접한 바도 없고요.
더러븐 응가를 하지 않고 산다는 사람이 있는가도 모르겠고요.
응가와 거룩함의 상관관계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시와요.
아니~~자신을 보고 모르나요?
사람은 거룩하고자 해도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요. ㅎㅎ
"그거슨 당신만 그랴~~~"
넵~~~저만 그런 것 가타욥 ㅋㅋㅋ
지음을 받은대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곧 주님을 영광되게 하는 것임을 알아갑니다.
남자는 남자의 모습대로 여자는 여자의 모습대로 등
아기가 응가를 해서 엉덩이에 진창 누런 것을 묻혀놓았을 때
엄마들은 웩~~웩~~~거리면서도 씻겨주죠.
거기서 근엄 근엄을 대체 어떻게 찾을 수가 있겠나요?
시할머니가 아기에게 종이 기저귀를 쓰지 말라고 하여
천 기저귀를 채웠던 적이 있는데
똥 기저귀를 생전 처음 빨아보면서 인상을 쓰고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아가*에서 나오던 정 사각형의 면으로 된 기저귀가 있었죠.
아무리 자기 자식이여도 똥은 싫던데요.
"계속 천 기저귀를 사용했어?"
아뇨~~
처음에만 잠깐 그러다가 1화용 기저귀를 사서 채웠어요.
할머니가 뭐라고 하시든 말든 귀를 닫고서~~
정리하면
목사님이 종종 설명해주시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 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원하심이고 주님을 영광되이 하는 것 중
하나~~~인 줄로 입니다.
교회는 거룩하고 경건한 곳이어야 함이 맞습니다만,
지나치게 경건만을 강조한다면
역시도 미혹이거나 편견일 수 있다 합니다.
어디라고 딱히 말하지는 않으나 교황이 있고 그런 데가 있시요.
종교성을 드러내는데는 완전 ~~~짱입니다요.
스테인드글라스를 포함해
건물이 미려하며 섬세하게 예쁜데다
사제들의 옷도 근엄해 보이고 봉사도 많이 하고 등
그래서 개신교에서 그리로 개종하여 옮겼다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이 진리의 길을 따라간다고만은
보이지가 않음이 문제입니다.
교회는 곧 주님의 표상이다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한데 교회가 근엄 근엄만으로 넘쳐야 한다면
주님은 무미건조 드라이한 분이시란 의미 또한 되지 않겠는지요?
웃을 줄도 모르시고, 농담 등도 하시지 못하고 등
오로지 엎드려서 기도하고, 시키는 것만 순종하도록~하시는 분요.
사람들의 웃음 등은 사람들이 스스로 창조한 것인가요?
원숭이도 사람처럼 웃고, 개도 웃으면 혀가 나오면서 입꼬리가 올라가던디요.
그것은 또 무엇이고요. 단지 사람을 흉내내는 것일까요?
제 생각이 다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는 기쁘고 좋고 편안한 곳이어야 하고, 기도의 장소가 되어야 하며
치유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은 기쁘면 웃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합니다.
슬픔으로 가득한데도 웃고 춤추고 그러면 다들 그라죠.
"ㅉㅉ 제정신이 아닌개벼~~~"
분명 주님 안에서 성도로서의 기뻐함은 주님이 영광을 받으심입니다.
저는 그리 여기는데, 아니다라고 하실 분은 없으실 겁니다.
"주님 내 집을 가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즐거워한다면
역시도 어찌 주님의 영광을 받음심이라고 여깁니다.
다만 조건이 붙겠죠.
주님보다 세상의 욕망이 더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오로지 나의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에 대한 감사함만 진짜이다~라고 한다면
역시도 미혹의 종류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셨음에 대해 감사해 하는 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깊은 본연의 감사함이라는데 이견이 없습니다만
우리는 아직까지는 이 땅에서 발을 디디고 사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내가 오늘 먹고 입고 자는 것 역시 감사함인 것이지
그것은 세상 것이고 육적인 것이다 식의 단순한 이분법으로만
나누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제 집에서는 현재 저만 믿습니다.
저는 믿기에 깨끗하고 선하며
다른 가족은 그렇지 않기에 더럽다고 여긴다면
저는 오히려 미혹의 길을 가기가 쉬워질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가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가정에 충실한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겠죠.
율법 아래에선 먹지 못하는 음식들도
정하게 하셨기에 믿음으로 먹어도 된다고 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니 주님의 교회라면 그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먹는 것 등이 어찌 죄가 되어진다고 할 수 있겠나 합니다.
믿는 이에겐 우울증이란 없다~라고 한다면 거짓입니다.
하지만 좋은 상태는 아니겠죠.
우울증이 이어진다면 은혜를 까먹기가 쉬울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얼마든 우울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을 겪는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육체의 피로가 쌓이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뗄에야 뗄 수 없는 것이기에 몸이 피곤하면
마음 또한 따라가게 되어집니다.
그런 경우엔 휴식을 취하면서 웃고 떠들고 놀면서
푹 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불신자들도 이에 대해서 잘 알아요~~
힐링이라 하면서 휴가를 떠나고 그러던데요.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니는 대체 왜 그러나?"히면서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앞으로만 가라고 때리고 재촉을 해댄다면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는 오히려 믿음을 잃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광야로 도망갔을 때를 생각해봅니다.
천사가 가져다 준 음식을 먹고는 충전하여
걷고 또 걸어서 하나님을 만나러 가죠.
아마도 그 시간 동안 엘리야에겐 오로지 하나님 외엔 없었을 겁니다.
광야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놓은 채
기도하면서 걷고, 피곤하면 또 자고 ~그랬을 것 같거든요.
이를 다른 측면으로 보면 휴식입니다.
이전에 악인들과 싸우느라
많은 에너지(영력) 등을 소모한 상태였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육신이란 한계성이 있으니까요.
우울증이 오면 웃음이 사라지고 표정이 굳어지죠.
아니면 가식적으로 과장되게 웃거나.
여기서 웃음이나 즐거움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내 마음을 지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안그런가요?
"다 좋은디~~~~대체 결론이 뭐여?"
ㅎㅎ
주님 안에서
불필요한 편견 등을 자신의 잣대로 만들지 말고
허용해주신 안에서 속박되거나 매이지 말고 즐거이 살아가자 ~~
뭐 그런.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은 그리 살고 있는거여?"
에 .......그게
글이 참기름이라도 바른 듯 반질거릴 수도 있는디요.
그렇다기보다는 그려려고 한다니까요~~~~ (헤헤~~~)
그러나 정형화된 틀을 만들려고 하지 않게 되었음이 감사합니다.
말씀을 통해 규정하신 바가 없는 부분에서
정형화된 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바리세인 같은 믿음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어서요. 그럴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다르듯
그 사람의 상황이나 처지가 모두 다를 수 밖에 없어
각기 다른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데
정형화되고 고착화된 틀을 지니고 있다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유연하게 감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바리세인들의 경우
그들이 학수고대하던 주님이 오셨는데도
자신들의 틀에 갖혀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어요.
오히려 주님을 죽이려 했고 실제로 죽이기까지 했음을 봅니다.
그들의 거룩함이란 정의를 벗어나지 못해.
틀~~
즉 편견, 자신의 아집 등을 지닌다는 것은
주님이 가시는 길에 반하는 행위가 되어지기에
(어느 선을 넘어간다면~~~~)
그것은 마귀에게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이 마귀를 불러들이는 것이 될 수도 있겠죠.
|
첫댓글 감사합니다, 집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