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은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를 기획했다. 이때,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라는 문제의 <미인도>가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 전시된다. 이 미인도는 포스터로도 제작되어 일부는 홍보용으로, 일부는 유료로 판매했다. 우연히 이 미인도 포스터를 본 천경자 화백의 지인이 천 화백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천 화백은 인쇄물을 보고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미술관에 전했다.》
이것이 지난 25년간 이어온 <미인도> 진위 여부 논란의 시작이었다. 천 화백은 “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남들이 자기 그림이라고 하도 우기니 너무나 기가 차 아예 붓을 놓고 미국으로 떠나 버렸다. 결국 돌아오지 않고 16년 후 그 곳에서 운명했다. 이후에도 이 작품의 진위 여부의 논란이 끊이지 않자 천 화백 유족의 고소·고발로 검찰이 조사에 나섰고 검찰이 최근 진품으로 결론냈다.
그런데 이 작품 감정에 참여했던 프랑스의 한 전문감정단이 "미인도의 진품 확률은 0.0002%"라며 "고의적으로 만든 가짜"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 감정팀은 특수카메라로 논란의 미인도와 천 화백의 다른 그림 진품 9점을 비교했다. 그림들의 눈과 눈동자, 코와 입 등 9개 항목을 1600여 개 단층으로 세밀하게 쪼갠 뒤 숫자로 바꾼 결과 미인도는 모든 항목에서 다른 진품들과 값이 다르게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검찰은 이러한 과학적인 방법의 감정결과를 채택하지 않고, 이 작품의 유통 경로를 파악하여 진품이라고 결론 낸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假定)과 추측에 의한 너무나 원시적인 조사방법에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천 화백 본인이 자기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한 사실을 판단에서 배척한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본인이 자기가 그린 게 아니라는데도 남들이 기어이 그가 그린 그림이라고 우기고 그렇게 결론 낸 것이다.
지금 국회청문회에서도 이런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증인이나 참고인 등 본인들은 '아니다', '그런 일 없다'는 등 부인하고 있는데도 아무런 증거도 없이 신문에 난 의혹 기사를 긁어 와서 맞다고 우기고 있다. 이를 부인하면 거짓말 한다고 윽박지른다. 거짓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진술이 거짓일 수는 없고, 설사 거짓이 있더라도 이를 객관적 증거에 의해 거짓임을 밝혀내야지 호통을 치거나 비아냥거리는 식의 대응은 최악의 청문회 수준을 보인 것이다. 민주주의 실현이 아니라 인민재판의 현장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