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 을 읽고
몇 달 전에 위연실(신공, 단비님) 작가님이 곧 출간할 수필집 제목이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했다. 그 제목에 자꾸만 이끌렸다. 천하에 재수 없는 한 여자가 생각났다. 이 책에서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은 누굴까 상상하며 출간 날짜를 기다렸다.
어제는 위연실 작가님의 책에 대한 감상평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글의 물줄기가 갓길로 내달린다. 감상평이 아닌 나의 수필 한 편이 나온 것이다.
2년 전, 그때 천하에 재수 없는 한 인간의 독설이 지금까지 내게 독화살로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위연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이 되지 않도록 자기점검을 해 본다. 요즘은 침잠의 시간을 가지며 지내는데 무척 좋다.
수필집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은 크게 4부인데 1부에는 수필, 2부엔 동시, 3부엔 시, 4부엔 디카시로 나뉘어진다. 편편이 공감이 가는 글이요 손수건을 옆에 놓고 읽어야 할 정도로 찡한 글이 많다. 글로서 독자를 울리려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글 쓰는 이들은 익히 알 것이다. 독자의 심금을 울린 글이라는 것은 그만큼 글에 진정성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자는 수필을 변방의 문학이니 하며 비하하지만 나는 수필이야말로 자기 고백, 성찰의 문학이라 진솔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한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면서 문학적으로 쓰기가 어디 쉬운가.
표제작인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부터 읽었는데 내 상상을 비켜 갔다. 나는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이 누굴까 상상하였으나 작가는 그 사람이 자기라고 겸손하게 표현한다. 그 표제작에 걸맞는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으로 읽히는 인물이 있었으니 「정상인」에 나오는 의사였다. 환자의 아픔을 생각지 않고 아주 독설을 날리는 의사. 나는 그 의사가 이 표제작의 주인공이다, 싶은 생각을 하며 화를 내며 읽었다.
자, 그럼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단비님이 책을 한정판으로 출간하셔서 책이 서점에 없다기에 전문으로 올려드립니다.
단비님 책이 좋으니 2쇄를 찍어 보심이 어떠신지요?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
위연실
어느 해 추석날 아침에 일이다.
가족이 모두 모여 명절 상차림으로 거하게 식사를 마친 후에 과일을 먹으며 T.V 시청을 했다. 마침 귀엽고 깜찍한 신동들이 나와서 저마다의 놀라운 재능을 펼치는 특집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수학 영재로부터, 악기를 기막히게 잘 다루는 아이, 암기력이 혀를 내두를 만큼 뛰어난 유치원생과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초등생 등이 나와 재주를 펼치는 모습에 우리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며 빠져들었다.
그때였다. 정신없이 화면을 보고 있던 초등학교 1학년 승민이가 “아빠, 저 아이들은 어떻게 저렇게 잘해요?”라고 묻는다. 평소에는 질문 내용이나 수준에 맞추어 차분하고 냉철하게 설명을 잘해 주곤 하던 애들 아비가, 그날은 흥미진 프로에 집중하고 있어 그랬을까? “저런 아이들을 천재라고 하는 거야”라며 다소 냉랭한 말투로 간결하게
답을 해주는데 순간, 뭔가 개운치 않은 기류가 흐르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표정이 약간 일그러지는가 싶더니만 “할머니, 천재가 뭔지 아세요?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이 바로 천재에요” 대뜸 내 귀에 대고 이러는 것이다.
꽤 영특하다고 소문난 승민이의 자존심이 건드려졌나 보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우리 승민이도 잘하는 것이 많잖아. 태권도 수준급이지, 야구는 선수급에다가 공부까지 잘하면서 뭘 그래. 승우는 과학을 좋아하고 줄넘기를 잘하듯이 누구나 뛰어난 부분이 다르단다. 그러니까 부러워할 것 없어.”라면서 아이에 마음도 다독이고 미묘한 분위기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이라는 비속성을 띤 그 말이 무슨 연유로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자꾸만 서성거리니 모를 일이다.
천재란 ‘보통 사람들보다 아주 뛰어난 정신 능력이나 재주를 지닌 사람’이라고 사전엔 쓰여있지만 어린 손자가 입을 삐죽이며 귓속말로 속삭인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은 혹, 나 같은 이가 아닐까 싶은 생뚱함이 맴을 돈다.
‘재수 없다’란 말뜻은 운수 따위가 순탄하지 못하고 나쁘다고 대략들 알고 있지만 그 말에 더하여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이란 말은 웬만하면 피해야 할 경계성 인물이란 의미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탤런트스마트’(TalentSmart)의 공동설립자인 트래비스 브래드베리 박사의 나쁜 사람 유형을 검색해보니 열 가지 중, 적어도 일곱 가지 조항 안에 내가 살짝살짝 들어 있음에 놀랐다.
* 소문을 좋아하는 유형: 모두 믿지는 않는다지만 풍문을 제법 흥미로워하며 귀를 바짝 기울이곤 하는 것은 사실이다.
* 신경질적인 유형: 진중하게 참지 못하고 발딱 성질을 내곤 하던 유년의 습성이 늦은 나이에도 버리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하고.
* 피해자 유형: 나만 손해 보는 거 아닌가, 이해(利害) 관계에 따져 들기도 함.
* 질투하는 유형: 동성 친구 사이에도 시기 감정이 슬며시 고개를 치켜들어 맘에 없는 발언과 함께 은근히 단점을 들추기도 한다.
* 부정적인 유형: 결코 긍정의 아이콘이라 할 수 없는 성향은 자타가 인정.
*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악당 유형: 경우마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남에 불행을 은근히 고소해하기도 했다는 거, 아니라고 도리질할 수만도 없다.
* 오만한 유형: 중요한 것은 오만함이다. 드러나게 잘난 것도 없으면서 남을 낮추보며 더러 그를 밟고 스스로 높아지기도 했다.
유감스럽게도 조항마다 일정부분 내가 있었다.
현명한 이는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운다더니, 어딘가 걸리는 부분이 있어 손자의 말에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는가 보다.
나를 알아야 세상사 바로 보게 되고, 스스로 고치는 것이 어떤 가르침보다 깨달음이 크다는데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은 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을 키운다.
목줄기에 힘주어 사느라 눈에 안 든, 옹이 지고 파인 부분까지 도려내고 땜질하고 상당 부분 개선해 본다면 또다른 천.재,인. 천하에 財數(재물이나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는 운수) 지닌 인물 되지 않을까, 라며 기어코 또 내 편을 들고 나선다.
테레사 수녀님은 모든 인간에게서 산을 본다고 하셨다는데 나는 모든 인간이 친구로 보이는 것을 어쩌랴.
기대어 의지하고 싶고, 퉁퉁 심술을 부려도 받아주고, 어지럽도록 도리질을 해도 품어 줄 것만 같은, 모두가 친구로 보여 그리 살아온 것을.
고로, 여러 말할 것 없이 나는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임에 틀림없다.
수필집 『천하에 재수 없는 인간』(렛츠북, 2023)
▲위연실 작가
에세이스트 99호 신인상으로 등단
문학시선 2020년 겨울호 신인상
제26회 대한민국 장애인 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제29회 동시 가작
첫댓글
한정판 출간이라 책이 서점에 없다기에 전문으로 올려드립니다.
단비님 책이 좋으니 2쇄를 찍어 보심이 어떠신지요?
2쇄 찍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그, 새봄님~
막내 아우처럼 성화를 대시더니ㅋ 그에 올리셨넹^^
고맙고 감사해요, 나보다 더 내편을 들어주시니..
이 맘을 어찌갚으리~ ㅡ
새봄님, 소개글과 감상평 글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잘 쓰셨네요.
저도 어렵게 어렵게 한정판 '재수 없는 인간'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요.
한 편 한 편이 공감은 물론이거니와 문장과 구성 탁월했습니다.
저의 한 마디 감상평은 ' 글 맛집이다!!!!'입니다.
목련님
감상평이라 하니 좀 쑥쓰럽습니다.
그냥 가벼운 촌평 정도로 말씀해 주세요.
목련님께서 글을 올려 주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냥 본문만 올리기 좀 거시기해서 살짝 곁들여 봤습니다.
맞습니다. 책이 '글 맛집!' 굿입니다.
두 분의 감사함을 주변머리없는 내는, 어찌 갚아보리요.
그저, 어느 좋은날이 주어진다면 따스하게 손 한번 잡아보고 싶습니다.
목련님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단비
단비님 이번에 책 내실 때 많이 힘드셨을 거 같아요.
독자들은 읽을 거리가 많아 좋던데 작가 입장에선 힘든 일이잖아요.
저도 이번에 시에세이집을 내 보니 일이 몇 배나 되더라구요.
단비님도 수필에 시에 동시에 디카시까지...
풍성한 읽을 거리만큼이나 작가 입장에서는 몇 배의 고통이 따르던데
그렇기에 독자 입장에서 고맙습니다.
뒤에 디카시 중에 '돌상', '찔레 장미' 울림이 커서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새봄
그니까요~
'벌거벗은 돌상' 을 보는 순간, 그것이 꼭 내가 지금 홀랑 벗고 나와 있는거나 아닐까 싶은것이..
나 이거 조현병 아녀, 새봄님? ㅋㅋㅋ
@단비
조현병이라니요.ㅋ 농담도 차암..
감정이입을 잘 하시는 거죠.
게다가 위트까지 있으니 이런 좋은 디카시를 쓰시는 것이구요
좋았습니다.
다재다능하셔요.
동시도 멋지던데..
"살고 싶어" 그 동시 읽고 울컥했어요.
젊은 날 발휘하지 못한 문학적 끼를
요즘 발산하시는 듯해서 보기 좋습니다.
제목부터가 왠지 단비님 위트가 풍기는 것 같아요. 축하드리며 잘 읽었습니다.
새봄님만 읽으고 정말 누구도 보여주지 않기를 바랐던 분 중에는
니체님도 계셨습니다.
왜냐구요?
아~, 모두들 좀 쟁쟁하시냐구요~오.
그저 할매글이구만 ㅊㅊ
여하튼 감사합니다.
니체님! 좋아하고 있습니다, 눈부시게 발전하시길...
맞아요 니체님
글이 심각한 듯 하면서 마무리엔 톡톡 위트로 시원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더 좋아요. 단비님만의 개성이 확실히 있어서 좋아여.
(디카시)
돌상
/ 위연실
환희의 연초록 5월의 공원
벌거벗고 웅크린 돌상
한참을 서성인다 내가 아닐까 하여
가슴이 뛴다
옷은 입고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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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행에서 빵 터졌습니다.^^
(디카시)
찔레 장미
위연실
장미가 그리움 될 줄은
찔레 장미가 가슴을 찌를 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하늘로 간 올케가 가꿔놓은 정원에서
아름다운 아픔이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것이 진정 그녀의 바람은 아니리라
애써 웃음 짓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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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해서 여기 올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