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에서 밈(MIM)이란 낱말이 있습니다. 이 낱말의 뜻은, 사람들의 정신세계도 도태와 비약이 그리고 약육강식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즉, 논리성, 편의성, 도덕성 등이 뛰어난 사상은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다른 사람의 머리속으로 교육이나 정보의 습득이라는 과정을 통해 복제해 가는데, 이때 경쟁력 없는 사상은 결국 퇴보하여 없어지고 만다는 이론입니다. 진화론을 생물학에서 사회 문화학으로까지 적용시킨 글쓴이의 주장에 모조리 동의하진 않지만, 말글살이 공간에서 한자의 몰락은 피할 수 없는 겁니다. 한자는 과거 지배자들의 피지배자들에 대한 매우 효과적인 도구였습니다. 글자의 보급경로를 옭아메려면, 글자의 습득과 독해가 어려워야 하는데, 이러한 지배자들의 요구에 가장 적합한 것이 바로 한자입니다. 우리 겨레에게 한자가 보급되기 시작한 싯점과 과거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즉, 한자는 권력으로 가는 매개체라는 뜻이죠. 그리고 한자는 수많은 언어들을 표기하는 데에 적합하지 못하고 또 글로벌화 되어가는 세계에서 언어와 언어의 교류를 처음부터 가로막는 장애물이죠. 치나도 현재 이때문에 고민하고 있고, 1단계 작업으로 간자체를 보급했으나, 어차피 이는 한자의 획을 줄였을 뿐, 그 근본은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또, 한자는 압축률이 좋다고 하나, 그 또한 어디까지나 선입견일 뿐, 말글은 쓰기 나름이죠. 브리튼어 USA도 압축한 표의문자입니다. 물론, 한국어 '노.찾.사'도 압축된 표의문자이죠. 사실, [표음문자]라는 낱말은 터무니 없는 개념입니다. 음소문자의 대명사를 보통 알파벳이라고 하는데, 한글도 이 알파벳에 속합니다. 그런데, 세계 그 어느 알파벳도 자신을 스스로 소리글자(표음문자)라고 깍아내리는 알파벳은 없습니다. 표음/표의를 나누는 짓은 한자박이들이 한글은 어딘가 부족한 알파벳이라는 응큼한 꼼수를 부리기 위한 너부림일 뿐입니다. 모든 알파벳은 뜻(맞춤법)에 따라서 표기하는 순간부터 뜻글자(표의문자)입니다. 때론, "한글은 양이고 한자는 음이니 서로 어울리는 것이 어떠하리오."라는 삽질을 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한글에는 이미 음양의 조화가 오롯이 갖춰져 있는 알파벳입니다. 홀소리는 양음으로 구분되고 닿소리에는 오행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물론, 한글이 음양오행 원리에 따라서 만들어 진것이 아니라, 사람들 말소리를 한글에 담아보니, 사람들 말씀에는 이미 음양오행이 구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지요. 따라서, 한글은 보조문자가 필요없는 오롯한 알파벳입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한자어]는 말소리를 바탕으로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한자어를 많이 쓰면 쓸 수록 한국어의 음양오행의 법칙은 깨저버립니다. 모음조화가 현대 한국어에서는 겨우 흔적만 남았고, 현대 튀르키에(터키)어에서는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것은 튀르키어에는 한자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굳이 이렇게 자세히 말씀드리는 것은, 한자박이들의 응큼한 꼼수에 많이들 넘어가시기에 안타까워 드린 말씀입니다. 한자로된 옛책들을 해석하는 데에 수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인코딩하되 디코딩법이 정해지지 않은 좀 어이없는 말글법칙때문입니다. 한자를 알면 옛 한문을 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오류이며 거짓말입니다. 알파벳(음소문자) 계통의 히브리어/산끄리트어/셈어 등등 세상밖으로 드러난 옛글들 대부분 해석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고대한자는 해석할 수 없는 경우가 많죠. 이게 다 디코딩 문제 때문입니다. 더군나나 옛한문은 한국어가 아니라 대부분 치나어(당/송나라)입니다. 오늘날, 정보의 지배자는 과거 신문이/방송국에 근무하는 언론인이나 기자나 고위층이 아닙니다. 인터넷 때문에 우린 스스로 정보의 지배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인 기자, 1인 평론가, 1인 수필가, 1인 소설가가 가능해진 세상이죠. 정보의 특성은, 정확함과 빠르기가 생명인데, 한자는 과거 습득과 독해가 어려운 시절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즉, 아무리 우리가 한자를 지키려 해도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우리가 접하는 한자는 새로운 정보 전달 과정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고, 이러한 대세는 천재적인 누구 하나가 등장하여 한자를 변화시키지 않는 이상 이 흐름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글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듯이 표현력, 유연성, 생산력, 유용성, 정보의 저장과 전달성 등등 거의 모든 면에서 한자는 한글에 견줄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렇게 쓰자고 해서가 아니라, 편리하니 많이 쓰고, 많이 쓰니 여기 저기 복제되어 더 쓰게 되는 "밈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는 것 뿐입니다. 덧글: 제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책 속에 황금이 있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나이들어 생각해보니, 그 말씀은 '진리탐구에 대한 정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씀이였습니다. 할배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온 말씀이죠. 즉, 옛날에는 과거시험과 관련된 사서삼경 같은 치나책을 학습하면, 그 치나책을 통해서 암묵적인 카르텔을 형성할 수 있다는 말씀이였습니다. 더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과거제를 통해서 치나역사는 끊이없이 반복학습되고 우리역사는 점점점 지워졌다는 겁니다. 과연, 조선시대 선비들 중에 고구려/백제/신라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겠습니까. 대륙의 수많던 겨레들도 다들 그렇게 사라져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