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깨어나 멋있게 살자 / 경봉 대선사
[법좌에 올라 주장자로 법상을 세번 치고 이르셨다.]
깜깜한 밤에,
자동차가 다리 위를 급히 달리다가 사람을 치어서 죽였다.
운전자와 함께 탄 사람은 크게 당황하다가,
그 시간에 다니는 차가 없고 본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여,
죽은 이를 물속으로 던지고 달아났다.
이때 웬 총각이 자동차가 사람을 친 다음 물에 집어넣고
도망을 치는 것을 보고
자동차번호를 적었다.
이튿날 경찰이 와서 '어떤 놈이 이렇게 사람을 죽였는지'
탐문을 하고 다니자,
총각이 차량번호를 알려주면서 '잡으라'고 하였다.
그 자리에 사람 없는 것만 알았지,
뒤에서 번호를 적는 것은 몰랐던 것이다.
*****
또 어떤 놈이 설악산에서 사람을 다섯이나 죽이고 달아나면서,
집에 불까지 질러버렸다.
죽은 송장까지 집과 함께 불타버려서 알 사람이 없었는데,
날마다 눈만 뜨면 죽은 사람이 나타나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사람을 죽였다'며 자수를 했다.
*****
죄를 지으면 죄지은 사람이 법을 받지,
다른 사람이 받지 않는다.
인(因)을 지으면 반드시 과(果)가 있으니,
어떻게든지 나쁜 인을 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불자가 부처님의 집안으로 들어오는 첫 관문은 인과를 믿는 것이다.
인을 지으면 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죄를 짓지 않고 선행을 하게 되고,
선행을 하고 도를 잘 닦으려면 무상(無常)을 알아야 한다.
어떤 이가 염라대왕의 사자에게 잡혀서 저승으로 가자
염라대왕이 물었다.
"너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였느냐?"
"예, 장가들어 아들딸 낳고,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면서 처자식을 먹여 살렸습니다."
"네, 이놈!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복을 지은 것, 남을 위해서 좋은 일 한 것을 말해보라는 것이다."
"대왕께서 '잡아가겠다,'는 소식을 주셨으면
좋은 일들을 많이 하였을 텐데,
이렇게 빨리 잡혀 올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네, 이놈! 몰랐다고? 너의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고,
얼굴에 주름이 깊어지고, 밝은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지는 것들 모두가 이 '염라대왕의 소식'이었거늘,
어찌 몰랐다고 하느냐?
이놈을 옥에 가두었다가 나쁜 곳으로 보내어라."
*****
사람들은 '무상(無常)'이라는 단어부터 싫어한다.
그래서 즐거운 삶으로 무상함을 넘어서고자 한다.
공허한 행복을 찾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자기 향상(向上)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향상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모든 인간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향상이 안 된다.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행위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뉘우치고 반성할 줄 알아야 향상을 할 수 있다.
한 점의 구름이 저 태양을 가리면 어떻게 되는가?
세상이 밝지가 않다.
이처럼 내 마음 가운데 어두움이 있으면 향상을 못 한다.
그러므로 밝은 지혜로 비추어서 멋들어지게 살아가야 한다.
이 삶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진실을 추구하고 스스로를 밝혀나가면
틀림없이 향상을 할 수 있다.
그럼 지금의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
어느 때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목숨이 어느 사이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한 제자가 대답하였다.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너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겠구나."
부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한 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너도 공부를 하지 못하겠다."
이번에는 부처님께서 한 제자를 지목하여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어느 사이에 있느냐?"
"예, 호흡(呼吸) 간(間)에 있습니다.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그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너는 공부를 잘할 수 있겠구나."
*****
생사가 한 호흡 사이에 있다는 것,
이것을 아는 이는 불교 공부를 잘할 수 있다.
공부뿐만이 아니다. 인생을 잘 살 수가 있다.
인생이 무상(無常)한 줄 알아야
인생을 잘 살 수가 있고,
무상(無上)한 대도를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게송으로 일러주셨다.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내가 받고 있는 것이 그 일이다.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그 일이다.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
욕지내상사(欲知來生事)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
사실 번뇌 망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은 꿈과 같은 것이다.
전생도 꿈이요 금생도 꿈이며 내생도 꿈이다.
사람들은 밤에 잠을 자다가
특이한 꿈을 꾸면 해몽(解夢)을 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 꿈이 나에게 좋은 꿈인지
나쁜 꿈인지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 꿈만 꿈이 아니다. 번뇌 망상 속에 빠져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바로 낮 꿈이다.
밤 꿈이든 낮 꿈이든 꿈은 허망한 것이요,
허망하기 짝이 없는 꿈이라면 해몽을 할 필요가 없다.
꿈의 진짜모습이 무엇이더냐? 우리의 '한 생각'이다.
우리의 한 생각이 곧 꿈이다.
한 생각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 그것이 꿈인 것이다.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
어느 나라에 유명한 해몽가(解夢家)가 있었다.
그런데 그 나라의 임금은 꿈을 허망한 것으로 여겼고,
꿈을 풀이해 주고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사람을 속이는 행위라고 단정을 지었다.
임금은 그 해몽가를 대궐로 불러들인 뒤에,
벌을 주기 위해서 거짓으로 지어낸 꿈을 풀이하도록 시켰다.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대궐의 기왓장 하나가 비둘기로 변해서 날아갔노라.
이것이 무슨 꿈인가?"
해몽가는 주저없이 아뢰었다.
"예, 궁중 안에서 사람이 한 명 죽을 꿈입니다."
해몽가가 꾸지도 않은 꿈을 거침없이 해석을 하자,
임금이 엉터리 수작이라 확신을 하여,
해몽가를 즉시 옥에 가두도록 명하였다.
하루 정도를 지낸 뒤에 세상을 미혹하게 하는
요사스러운 자를 처단하여,
다시는 해몽에 현혹되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작정을 한 것이다.
그런데 한나절이 지났을 때 궁녀들끼리 싸움을 하다가
한 궁녀가 죽고 말았다. 임금은 나무나 이상했다.
'꾸지도 않은 꿈 이야기를 지어내어서 한 것인데,
어떻게 해몽한 대로 사람이 죽는다는 말인가.'
임금이 해몽가를 불러서 마음속의 생각을 털어놓자
해몽가는 답을 하였다.
"사실 꿈은 허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잠을 잘 때 꾸는 것만 꿈이 아닙니다.
눈을 뜨고도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이 곧 꿈입니다.
저는 임금님의 일어난 한 생각을 풀이한 것입니다."
이 말에 크게 깨달은 임금은 해몽가에게 후한 상을 내려 돌려보냈다.
*****
이 꿈 이야기처럼,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한 생각 일어나면 그것이 곧 꿈이다.
무엇을 허망된 꿈이라 하고 무엇을 참된 꿈이라 할 것인가?
마음이 어둡지 않으면 모두가 참됨이요,
마음이 밝지 못하면 모두가 허망한 꿈이다.
기쁨도 꿈이요 슬픔도 꿈이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가 꿈속의 일이다.
기왕 꿈일 바에야 맑고 밝은 마음으로 꾸는 참된 꿈이여야 하고,
나와 남을 함께 살리는 깨어 있는 꿈이어야 한다.
그러나 중생은 꿈속에서 다시 꿈을 꾼다.
밤 꿈도 계속 꾸지만, 낮 꿈도 끊임없이 꾼다.
더군다나 마음을 그릇되이 사용하면
번뇌의 안개가 더욱 짙게 시야를 가려서,
몽롱한 꿈속을 배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제자들은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믿고
스스로를 닦아가야 한다.
올바른 생각으로 자신을 지키고 진실한 생각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
헛된 꿈에서 깨어나서 참으로 멋들어지게 살아갈 수가 있다.
느긋한 마음으로, 당기면 늘어지고
놓으면 오므라드는 신축성을 가지고 모든 일을 대하면서,
관대하게 다른 삶을 포용하며 살아라.
결국 인생살이의 실패가 무엇이더냐?
허망한 꿈속에 갇혀서 허둥거리다가
죽어가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더냐?
부디 번뇌 망상과 근심걱정이라는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서,
물질과 삶을 초월한 정신을 가지고 멋들어지게 살아가야 한다.
암소 잡은 요량을 하면서!
*****
옛날 경주에 정만서(鄭萬瑞)라는 이가 살았다.
어느 때 한양으로 가던 도중에 노자가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돈이 없어 한 이틀을 굶게 되자,
눈이 쑥 들어갔고 걸을 힘조차 없어졌다.
선비의 체면도 팽개치고 주막으로 들어간 정만서는
소의 불알을 삶아서 달아놓은 것을 보고 '썰어달라'하여
술과 함께 배불리 먹었다. 그런데 돈이 없었던
정만서에게는 그다음이 문제였다.
술과 음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로 자리가 차기 시작하였지만,
값을 치를 수 없었던 정만서는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마침내 참다못한 주모가 소리쳤다.
"여보시오, 이제 그만 회계를 대고
다른 손님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시오."
"주모, 사실은 나에게 돈이 없소."
"무어라? 돈도 없이 술과 안주를 먹었단 말이오?
어림없소, 빨리 회계를 대시오."
주모가 사납게 다그치자 정만서는 말하였다.
"주모, 암소 잡은 요량 하소. 암소 잡은 요량..."
불알이 없는 암소를 잡은 셈 치고 돈을 받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주모인가?
실랑이가 길어지자 뒷방에 있던 주모의 남편이 뛰쳐나왔다.
'소의 불알을 먹고는 암소 잡은 요량 하라니?
세상에! 술장사 30년에 저런 놈은 처음일세.'
남편이 눈알을 부라리면서 소리치는데,
정만서는 오히려 인사를 나누자면서
자기소개를 한다. 남편이 들으니,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천하의 잡놈
'정만서'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술값을 받을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남편은 도리어 청을 했다.
"고깃값 대신에 소리나 한번 해 보시오"
정만서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온갖 장기를 다 펼쳤다.
그러자 길을 가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연 그 주막에 있던 술과 안주들은 모두 동이 나서
주막을 연 이래 최상의 매상을 올렸다고 한다.
*****
우리도 사람과 물질에 걸려서 번뇌 망상과
근심걱정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면
정만서의 '암소 잡은 요량'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애초 불알이 없는 암소를 잡은 요량을 하면,
한 생각 막혔던 것이 풀리고 꿈에서 깨어날 수가 있다.
곧 한 생각 애착을 비우고 생생한 산 정신으로 일하면
'절후(絶後)에 갱생(更生)이라',
끊어진 곳에서 다시 사는 수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아
연극 한바탕 멋지게 하기 바란다.
그까짓 근심 걱정은 냄새나고 죽은 생각이다.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 산 정신으로 살아가기 바란다.
'할(喝)'
[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불교신행연구원/ 월간 <법공양> 통권 350호 에서
출처: 금음마을 불광선원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