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 서거 후 주요 영연방서 '탈 군주제'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찰스 3세 즉위 후 치러진 로이 모건 설문 조사에서
호주인 6:4로 '입헌군주제' 지지율 반등세를 보였다.
HIGHLIGHTS
18~24세 영국인 40%, “입헌군주제 필요 없다”
여왕 떠나자 영연방서 ‘탈 군주제’ 논의 급물살
호주인 60%, 현재의 입헌군주제 유지에 찬성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국장이 1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됐습니다.
호주 의회는 2주간 휴정했고, 호주 정부는 9월 22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정해 여왕의 서거를 깊이 추모했습니다.
호주 지폐와 동전에는 이제 찰스 3세가 등장하고,
“God Save the Queen”을 부르며 자란 호주인들은 “God Save the King”을 노래합니다.
여왕 서거로 공화제 전환 논쟁이 재부상되고 있는가운데, 최근 실시된
로이 모건 조사에서 호주인의 입헌 군주제 지지율이 6:4로 거의 최고 수준으로 반등했습니다.
컬처 IN에서 들여다봅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나혜인 PD (이하 진행자): 여왕 서거 이후 지난 2주간 전 세계 방송과 지면은 여왕의 추모 물결로 장식됐는데요.
19일 여왕의 장례식이 엄수됐고, 호주는 22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정해 여왕의 서거를 추모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논쟁이 있죠. 바로 공화제 전환의 목소리가 다시금 불거지고 있는데요. 자세한 내용에 앞서
호주의 입헌군주제에 대해 먼저 간략히 짚어 보죠.
유화정 PD: 영국 여왕은 영연방 국가이자 입헌군주제 국가인 호주의 형식적인 국가원수입니다.
호주의 현재 왕위 계승 법은 군주가 사망하는 즉시 왕위 계승 서열 1위에게 왕위가 넘어가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찰스 3세 국왕을 호주의 국가수반(head of state)으로 유지하게 됩니다.
입헌군주제라는 말은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집약될 수 있겠는데요.
일반적으로 왕이나 여왕은 국가의 수반이기 때문에 군대의 통수권이라든가 아니면 입법과정에서도
왕이 반드시 동의를 해야만 법이 만들어지고 총리를 임명할 권한도 가지는 등 여러 가지 권한들이 있지만
입헌군주제에서의 왕실은 실제로는 이런 권한을 전혀 행사하지 않고 의례적인 일들만 수행을 할 뿐입니다.
진행자: 전 세계 사람 대다수가 알고 있는 유일한 영국의 군주,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향년 96세의 나이로 서거하기까지
군주로 지낸 기간만 70년이 넘습니다. 영국 역사상 최장수· 최장기간 재위한 인물로 영국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상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재위 기간 거쳐간 영국 총리가 십 수명이 된다고요?
유화정 PD: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2년 선왕인 조오지 6세의 갑작스러운 부고로
25세에 왕위에 올라 이후 70년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4개 영연방 국가를 통치하는 수장이 됐습니다.
그 어떤 영국 통치자보다 더 오랜 기간 ‘대영제국’을 이끌었는데, 여왕은 70년의 재위 기간 동안 윈스턴 처칠부터
14명의 총리와 함께 일했습니다. 호주 총리는 로버트 맨지스 총리에서 앤소니 알바니지 총리까지 17 명,
미국 대통령은 11명, 한국도 이승만 대통령부터 현 윤석열 대통령까지 13명에 이릅니다.
진행자: 영국 입헌군주제의 상징과도 같았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모인 인파가
700만 명을 넘은 것으로 보도가 나왔죠? 온라인에선 여왕에게 마지막 경의를 표하기 위해 런던을 휘감아
길게 늘어선 시민들에 대한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영국인들에게 여왕이 과연 어떤 존재였는지를 새삼 깨닫게 하는 장면들이었어요.
유화정 PD: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참배하기 위해
모인 추모 인파들로 런던· 타워 브리지 등을 지나 템스강변으로 7km에 이른 긴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참배 행렬은 끊어지지 않았는데요.
서른 시간 이상 노상에서 아예 텐트 치고 밤 샘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영국의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도 일반인들과 함께 13시간 줄을 서서 여왕의 관에 참배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는데요. 전해진 바로는 검은색 넥타이 차림의 베컴은 새벽 2시 경 줄을 서기 시작해
오후 3시 30분에서야 여왕 관 앞에 섰습니다.
진행자: 대단한인내심을 갖고 대기하면서 천천히 여왕의 관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시민들에 대해 SNS상에는
"줄 서서 기다리기는 영국 전통일까?" "점잖고 참을성 있게 대기하는 건 전형적으로 영국다운 건가요?"
등등의 많은 질문들이 올라오기도 했죠?
유화정 PD: 스티븐 코트렐 요크 대주교는 이에 대해 "우리는 현재 여왕을 사랑하는 마음과
줄 서기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위대한 영국 전통 2가지를 기리고 있다"고 발언해 눈길을 끌었는데요.
줄 서기에 대한 영국인들의 집착은 적어도 지난 20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의 일부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영국인들이 교양 있게 줄 서는 시민들의 이미지를 형성한 시점은
제2차 세계 대전 시기로, 전쟁 당시 가난한 이들은 자선 물품 등을 얻기 위해 줄을 서야 했고,
줄서기는 불확실한 시기에 정부가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썼던 방법이었습니다.
이후 질서 정연하고 점잖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현대 영국인들에겐 자랑거리가 됐습니다.
진행자: 얘기의 중심으로 돌아가 보죠. 이런 애도의 분위기, 추모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영국에서는 군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점을 한편 간과할 수 없는데요.
유화정 PD: 영국은 1066년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래로 줄곧 입헌군주제를 유지해왔습니다.
왕실의 뿌리가 깊은 만큼 전체 영국 국민들의 여론 또한 여전히 왕실 유지를 지지하는 의견이 지배적인데요.
그러나 세습제로 유지되는 영국 왕실의 타당성이나 여왕의 권한 등에 대한 문제제기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영국의 젊은 층
다수가 왕실 유지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설문 결과가 나와 이를 입증했는데요.
영국의 글로벌 여론조사업체 유고브(YouGov)가 영국인 48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입헌군주제 관련 설문조사에서
18세~24세 사이 응답자의 41%가 “이제는 선거로 국가의 대표를 선출할 때”라고 답했고,
“왕이나 여왕이 있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1%에 머물렀습니다.
진행자: 결론적으로 영국 젊은 세대들은 왕실의 전통적 가치보다는 진보적인 변화를 원한다는 것을 시사하는데,
자국뿐 아니라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 후 주요 영연방(Commonwealth)서 ‘탈 군주제’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양상을 보이고 있죠.
유화정 PD: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와 관련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영국 왕실과의 관계를 재편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영연방에서 활발해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영연방에서는 이전부터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하고,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찰스 3세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이러한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는데요.
영연방은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독립국 56개국으로 구성된 연합체로 이 가운데 영국을 제외하고
영국 국왕이 국가 수장을 맡는 국가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현재 총 14곳입니다.
진행자: 호주에서는 1999년 군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민투표(republic referendum)에서 부결된 바 있죠?
유화정 PD: 호주는 1999년 공화국 제정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10% 차이로 부결됐습니다.
당시 이 국민투표는 전체적으로 과반 이상의 찬성과 6개 주/2개 준주 중 절반 이상이 찬성을 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수반했는데요.
당시 존 하워드 총리는 강력한 입헌군주제 지지자 였습니다. 이후 군주제 폐지와 공화정 전환은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고, 수년간의 여론 조사를 통해 많은 호주인들이 공화국 전환을 지지하는 것으로 부각돼 왔습니다.
진행자: 호주 의회는 여왕의 서거를 추모하기 위해 지난 9일부터 의회가 장기 휴회에 들어갔고,
22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소매업자들이 입는 피해가 15억 호주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팽배했는데요. 앤서니 앨바니지 연방 총리,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첫 임기 동안에는 공화국 전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소신을 피력해 주목받기도 했죠?
유화정 PD: 알바니지 총리는 지난 5월 총리직에 오르기 전부터
국가 체제를 입헌군주제에서 공화정으로 바꾸고 호주 원주민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었는데요.
알바니지 총리는 "지금은 엘리자베스 2세에게 경의와 존경을 표해야 할 때"라면서
"공화국 제정보다 원주민 헌법상 인정(an Indigenous Voice to the Parliament)이 시급한 이슈로
이를 우선 추진할 것이며, 첫 임기 중 공화국 제정을 위한 국민투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여왕 서거로 호주에서 입헌군주제 지지율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는지 질문에 대해서는 "지켜보자.
지금은 애도 기간"이라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한 가지 특이점이 여왕 서거 이후 치러진
가장 최근 조사에서 호주인들의 입헌군주제 지지율이 반등 현상을 보였다고요?
유화정 PD: 찰스 3세의 즉위 선포 직후 실시된 로이 모건 설문 조사에서 호주인 60%가 현 체제 군주제 유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종전보다 약 5% 상승한 것으로 거의 최고 수준의 지지율 반등인데요.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는 주요 이유로는 호주가 수십 년 동안 안정화되고 또한 안정적인 정부가 출범하는 입헌군주제가
기여했다는 주장입니다. 이 같은 결과가 여왕 서거로 인한 일시적인 반등인지
언제까지 상승세를 탈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진행자: 호주 공화국 제정은 갈 길이 더 멀어진 것 아닐까 싶네요. 오늘 소식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