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예루살렘이라고 처음 언급된 것은 여호수아(10:1)이며, 그 밖에 아리엘(사 29:1), 오홀리바(겔 23:4), 하나님의
성(사 60:14), 살렘(시 76:2), 모리아(창 22:2), 여부스(수 18:28), 시온(왕하 19:21), 다윗 성(삼하 5:7), 거룩한 성
(느 11:1, 마 4:5) 등으로 불렸다.
1. 다윗 왕 이전의 예루살렘
성경에서 예루살렘이 처음 언급된 것은 아브라함 시대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을 대접한 것에서
나온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으로 왔다고 했는데, 역대하(3:1)에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곳을 가리켜 “모리아 산”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하나님이 예비한 산양을 번제로 드리고 그곳을 ‘여호와 이레’라고 이름 붙였다. 주전 1000년 경 다윗이 여부스 사람들로부터 그 곳을 빼앗아 다윗 성이라고 했다
(삼하 5:7).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법궤를 옮겨 놓음으로써 예루살렘은 명실공이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다.
2. 솔로몬 때의 예루살렘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예루살렘을 지역을 넓게 확장하고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였다.
뿐만 아니라 궁전과 다른 건축물을 세워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했다.
그래서 강대국들의 사신들이 왕래하면서 국제적 도시로 변모해 갔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은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갈라졌고, 주전 586년 시드기야 때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다.
3. 포로기 이후 예루살렘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명에 따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다.
이들은 곧 성전과 성벽 재건에 착수하여 많은 방해와 어려움을 무릅쓰고 마침내 완성한다(느3장).
주전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였고, 주전 168년에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벽을
파괴했다. 주전 167 ~ 63년 사이에는 유대인들이 독립을 누렸지만 주전 63년에 로마가 점령하였다.
주전 37년 로마에 의해 유대 왕으로 임명받은 헤롯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솔로몬 때보다 더 웅장하게 성전을 짓고
아름답게 꾸몄으며 성벽을 수축했다. 헤롯 말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다.
4. 로마 통치하의 예루살렘
예수님의 예언대로 주후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주후 135년 로마 황제 하드리안이 바르코크바 혁명을 진압할 때 다시 파괴되었으며, 유대인은 추방되었고,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유대인은 사형을 당했다. 이때 하드리안은 유대인 말살정책을 실시하여 예루살렘 성전 터에 쥬피터 신전을
세우는가 하면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예수와 관계된 유적을 모두 없애 버렸다.
뿐만 아니라 그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하려고 골고다 언덕을 평탄하게 만들었고 예수님의 무덤도 아주 없애 버렸다.
예루살렘의 명칭 또한 앨리아 카피톨리나로 바꾸고 로마식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주후 326년 기독교로 개종한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수의 생애와 그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고, 헬레나의 노력에 의해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새로운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때 예수님의 무덤교회와 베들레헴 탄생교회가 건축되었다.
5. 로마 통치 이후의 예루살렘
그후 약 300년간 비잔틴에 의해 통치되었다가 주후 638년 칼리프 오말의 이슬람 군대에 의해 점령되어 이슬람 지배가
시작되었다. 1099년 십자군에 의해 탈환되어 성지 순례가 재개되었고 이슬람이 재침할 때까지 100년간 유지되었다.
1538년 오토만 터키의 슐레이만 대제에 의해 약 400년간 지배되었다.
이때 슐레이만 대제가 현재의 예루살렘 성벽을 쌓았다.
그러던 것이 1917년 영국이 터키로부터 탈취하여 영국의 보호하에 들어갔다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유대인과 아랍인의 전쟁이 일어났고,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 분할되어 있었다.
1967년 6일 전쟁으로 요르단 수중에 있던 예루살렘의 구 도시지역을 차지함으로써 예루살렘이 다시 통합되어
이스라엘이 관장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6일 전쟁으로 구 예루살렘을 요르단으로부터 합병한 이스라엘은 모든 건축물에 옅은 베이지 색의 돌을 사용하라는
이색적인 건축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석양녘의 예루살렘은 태양 빛을 받아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환상적인 모습이 된다.
예루살렘의 지역 구분
예루살렘은 크게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구 예루살렘, 성 북쪽에 있는 동 예루살렘, 그리고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는
신 예루살렘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1. 구 예루살렘(Old City)
약 4km의 성벽으로 완벽하게 둘러싸여 있는 옛 예루살렘 성이다.
약 2만 명의 인구가 조밀하게 살고 있고,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나 있다.
예루살렘 성은 다시 4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예수님의 무덤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인 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서북지역,
모리아산의 성전을 중심으로 이슬람교인들이 밀집된 동부지역, 1967년의 6일전쟁 이후 유대교인들이 모여 사는 남부지역, 동부 유럽에서 온 아르메니안 기독교인들이 모인 서남지역이 바로 그것이다. 성 안에는 매우 중요한 두 개의 성지가 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성전산 지역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승천하신 무덤교회이다.
그리고 성전의 서쪽에 위치한 '통곡의 벽'은 유대교인들에게는 가장 거룩한 장소로서 이들은 벽에 붙어 서서 여호와께
소원을 빌고 자신의 소원을 쪽지에 써서 벽에 끼워 넣기도 한다.
벽의 남쪽에는 여자들이, 북쪽에는 남자들이 기도하도록 되어 있다.
왜 이곳이 ‘통곡의 벽’으로 불리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성전이 파괴된 아브월(5월) 9일에 흰 비둘기가 벽 위에 나타나 유대인들과 함께 비통하게 울었다는 설과 이스라엘 멸망 후 아브월 9일에만 유대인들의 성전 출입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슬피 울며 이 벽에 모여들었다는 설이다.
이곳은 유대인들의 대규모 집회와 군인들의 선서식이 열리는 역사적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 동 예루살렘
동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성 북쪽 지역으로 나불러스 길과 살라 에드디니 길이 예루살렘 북쪽 벽을 따라 달리는 슐레이만
길과 함께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 다. 아랍인들이 운영하는 상점, 여행사, 환전소, 호텔, 식당 등이 밀집해 있는
아랍인들의 상권지역으로 관광객과 더불어 늘 붐비는 곳이다. 동 예루살렘에는 고고학 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록펠러
박물관, 솔로몬 채석장, 정원무덤, 왕들의 무덤 등이 위치해 있다.
3. 신 예루살렘(New City)
신 예루살렘 시가지는 한때 서 예루살렘이라고도 하였으나 사방으로 급속하게 뻗어나가 규모에 있어서 엄청난 확장과
발전을 이룩하였다. 신도시 지역에는 정부기 관과 상업 지역이 위치해 있고, 고급호텔과 카페, 식당 등이 있어서
여행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다. 도시 중심 바로 서쪽에 가장 싼 시장인 마하네 요다가 위치해 있고, 좀더 서쪽으로
크네셋(국회의사당), 이스라엘 박물관, 야드바셈, 하닷사 병원이 있다.
예루살렘과 주변의 인구는 약 45만 명. 그중 유대교인이 33만 명이며 극소수의 개신교인들은 핍박과 고립된 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는 유대교인들을 보면서 ‘아무리 훌륭한 선지자라도
자신의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의 의미를 절감하게 된다.
우뚝 선 회교사원, 빽빽하게 들어찬 기념품 상점, 유대교회당과 가정집들로 인해 예루살렘은 포화상태에 시달리고 있다.
성지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찾아온 순례객들은 금방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곳곳에 자리 잡은 유적들은 수천 년 전의 역 사를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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