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i0h4rK18G2s?si=BfaKRgNhVIrdCOyB
성서와 불경내용 지구촌 곳곳의 해안가 전설에 비교해 구석기 생활상을 오르내리는 한반도 탄생설화에 나 만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 같다
그중에 사량도 설화라고 본시 고군산열도 멀리 실제하지 않을 무인도를 바탕으로 구전된 것이 있다
현제 웹자료에는 통영의 사량면 사량도가 이승만 때 설치된 것으로 기술돼 있다
그러나 해방과 동란을 지난 직후 상고설화의 연구 정리 초기부터 원래 그랬던 것처럼 꾸미기 위해 박정희 정부가 주물럭 거렸던 것이고 근래에 이승만 시기로 재조정 시켜 흘려 놓은 것일 뿐이다
실제는 영구집권을 획책한 박정희 대통령 시기를 지나올 때 고군산 무대의 설화를 경상연안 동해로 옮겨 소록도 앞 바위섬 설화로 변조하였다가 육지와 너무 가깝고 섬이 작아서 유야무야 되었다
이후 충남 태안군에서 의욕을 갖고 적극적으로 섬 하나를 사량도 명칭으로 공원화하려 했으나 알수없는 이유로 역시 유야무야 되었다
서슬퍼런 군사정부의 영향력으로 인해 국문학의 태두 이병기 양주동 이병도 이희승께서 공히 고군산 및 부안변산 일원에서 있어 온 설화임을 밝혀 둔 사실을 덮어버렸다
우리세대가 태어나 유소년기였던 유신헌법 직전 후 72~79년 사이 상고사 위변조에 대한 자기갈등 시기를 수년간 격다가
경상남도 통영앞바다에 행정지명을 정식 개편시킨 사량도로 이땅의 시작을 조성 정착해두고 있고 그 내용에서는 원형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설화내용은 손꾸락 아파 생략하려다 복기하는 것이니 읽어줘야 한다
천둥번개가 가득하고 하늘 땅 바다가 처음 열렸던 태고에 지금의 고군산열도 작은 바위섬에 한 부부가 있어 오두막을 짓고 어린딸을 낳아 세식구가 살았다
남편이 바다에 나가 조개줍고 고기도 잡아오면 텃밭 일구는 아내는 음식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나날이 행복했다
딸아이 이름은 가칭 분녀로 하니 예닐곱살이던 어느날 하늘이 뒤집어지는 듯한 폭우와 거대한 폭풍이 몰려와 남편은 분녀를 업고 꼭데기로 피했지만 엄마는 파도에 협쓸려 사라져버렸다
남자는 슬픔을 누르고 혼자서 분녀를 키우며 지냈다
남자는 외로웠고 차차 커가는 딸 아이를 보며 사람으로선 할수없는 음심이 일어났다
자고 있는 분녀의 방을 들어가 가만히 발목을 잡아보고는 돌아와 한숨을 쉬기를 수년이 지났다
분녀는 성장하여 가슴이 뽕긋해지고 발목도 한손에 잡히지 않아 어엿쁜 자태의 처녀가 되었다
아비는 더욱 잠들지 못하고 밤마다 한숨을 쉬었고 건넌방 문고리를 잡았다 포기하고 돌아오기를 여러달 지났다
분녀는 두렵고 걱정되어 안에서 문고리에 숟가락을 걸어두고도 아비의 한숨소리에 같이 잠들지 못하는 밤들에 근심했다
비바람 부는 어느밤 잠못들다 마침내 더 참지못한 아비가 분녀의 방문을 잡아채고 뛰어들어 안았다
분녀는 사력을 다 해 저항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이성을 잃은 사내는 미친듯이 애원하며 안으려고 했다
사내의 힘을 이길수 없었던 분녀는 아비에게 허락할테니 잠시 진정하라 이르고 말했다
아버지와 나는 부녀지간으로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남자는 아버지 하나이고 여자 또한 오로지 나 하나뿐인데 우리 둘이 아니면 인간의 종적이 끊어져 이어지지 못 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인두껍을 쓰고는 차마 있을수 없는 일로 금수와 같으니 아비께서 정 기어이 나를 범하시려거든 나는 뒷산 꼭데기에 있는 큰 소나무 아래로 가서 세상에 부끄러운 이 얼굴에 치마를 둘러써 가리고 누워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소가죽과 소머리 탈을 쓰고 우워 우워 소울음 소리를 내면서 오세요
끝내 아비가 포기하지 않고 그러겠다고 대답하니 분녀가 먼저 산에 올라 치마를 뒤집어 쓰고 누웠다
아비는 소가죽을 입고 소머리 탈을 쓴채 쏟아지는 빗속을 우워 우워 소울음을 물며 올랐다
마음을 돌리지 않은 아비가 마침내 다다르자 분녀는 절벽으로 몸을 날렸다
한반도 탄생설화중 하나인 사량도 설화는 이렇게 구전되 왔지만 결말은 유교 후조선을 지나오며 분녀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변형된 것이지
롯서의 두 딸처럼 아비와 동침 인간의 대를 이었다가 설화의 원형이었을 것이다
모악산도 매우 주요한 이 땅의 시초 이야기를 품고 있는대 산의 외양은 어머니가 앉아 아이를 안고 젓을 먹이는 형세로서 산의 앞은 구이 뒤는 금산사가 있는 김제쪽이다
마고설화의 핵심지역으로 거인여자가 모악에서 이 세상의 첫 아이를 낳고 일어나 남해로 첫발을 내디딘 첫발자욱이 고흥만 이었고 제주와 이어도에 각각의 전설을 남기고 바다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천산산맥 기슭에서도 구전되온 마고설화는 상고시대 황인 흑인 백인이 저 높은 천산산맥에 혼재해서 살고있었는지 삼색인종 기원설로 전해지고 있었다고 간단히 정리한다
진짜 손꾸락 아프다
(포항의 연오세오녀공원)
연오랑세오녀 역시 백제지역(백제인의 도일과 유구국) 법성포에서 태안반도 간 서해연안의 설화인대 지금은 엉뚱한 포항에서 자리잡고 있다
지반이 바다 아래로 침강하는 반도의 구토인 서해연안 전라 충청지역에서 발생한 설화들이 지반이 융기하는 신토지역인 경상지역에서 구전되어 온 것으로 모두 갖어가고 있어도 이를 인지하는 사람조차 없다
청을 거친 서구 축도법 영향을 받은 김정호 전후에야 지도개념이 생긴 것이 아니다
지구의 세차운동으로 인해 상고 선사시대에도 약 25000년 주기로 북극성중심 하늘에서 전갈자리 카시오페아 인가로 자전축이 바뀜에 따라 나타나는 기후변화로 빙하기가 반복되었다
최근의 간빙기 전후를 격으며 한반도와 왜 만주 중원에도 아우르는 남방도래인과 북방도래인이 빙하분포와 바다 수위를 따라 이동 혼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의 조상은 우랄알타이이 퉁그스계 스키타이 예맥 홍산 은허를 밟아 지나왔고 이것을 적자하면 참 지난한 글이 될 것이다
선사시대 다른 인간집단의 영역을 침범하는 여행은 그들에게 잡혀먹힐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모험이었고
빙하가 녹는 매년 여름철마다 천지를 진동하는 천둥번개와 폭우가 쏟아지는 저지대를 온통 뒤덥어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빙하를 피해 보다 높은 고지대에 위취한 종족일수록 우월한 인종으로서 선민의식도 강했다
매년 빙하가 녹는 수개월씩 대홍수의 시대를 전한 노아의 방주설화나 비슷한 천지개벽설화가 세계 도처 해안지대와 산악지대에도 구전되었고 노래로도 불려져 온 것은 이러한 기후변화에서 기인되었다
빙하세상 대홍수의 시대 고지대에 고립된 인류는 생존을 위해 일기를 살피고 점성술과 천문학에 정성을 쏟았다
그러한 천문학이 빙하기가 끝나고 평원으로 내려가 확산되는 인류에 의해 종교화 되는 과정을 격게 된 것이다
구석기 신석기 시대를 지나는 빙하기와 간빙기의 고립된 인류는 사량도 설화나 성서의 롯서 예처럼 아비가 딸을 취해 집단을 이루는 부녀혼 풍습이 필연적이었다
인간이 빙하가 증발하고 마른 평원으로 나아가 확산되며 물산이 풍부해 먹고사는 것에 어려움이 적고 생활이 윤택하여 문화가 발전하는 때는 모계사회로 전환하는 경향이 있었다
요즘도 회자되는 탄생설화중 하나는 환인이 단군성검에 의해 거대집단 국가인 고조선을 이루게 함에 호랑족과 곰족 중 곰족과 혼인동맹 하게 하였던 바 있었다
우리 민족을 일컬어 예맥족 이라고 하였으니 맥궁이라는 활을 만들어 쓰고 세상에서 가장 활을 잘 다루는 사람들을 일컷는 말이기도 했다
이것이 전해지길 시초에 아홉개의 해가 나타나 세상것들이 불타오르자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 온난화 헌상을 구전시킨 것일수도 있지만 구부족의 통합과정을 후대전승을 위해 구술화 한 것)
맥이 (맥은 제정일치 사회에서 군장이자 제사장으로서 하늘권력 그자체인 계급으로 뽀족한 두개골인 편두를 했음) 맥궁을 들어 활을 쏘아 여덟개의 태양을 맞춰 떨어뜨리자 땅에 떨어진 해들이 다리가 세개있는 까마귀들로 변했다(종주국 패권을 다투다가 복속되어 8제후국이 되었다)
중략..
손꾸락이 아파 예맥설화를 생략하지만 혹시 여인과의 술자리 처음처럼 뚜껑 두개를 까서 새 두마리를 만들거나 세가닥으로 뚜껑이 까지는 이슬이를 마시며 자주 하는 레퍼토리 이다
조금 더 이으면 맥을 배신하여 옆구리를 찌르고 달로 피한 월하미인 항아가 두꺼비로 변하게 되고... 이러한 고조선 강역의 설화가 더 이어져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고 국조이자 문장인 삼족오가 된 것으로 초기구려의 갈래인 백제도 고조선으로 부터 이어 온 고구려의 갈래로서 삼족오 문양을 국조로 하였으며 백제금동대향로에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이는 초기국가 발생기에 부족간의 전쟁과 이합집산 배신과 응징을 지나 고조선 부여 부여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계보가 고조선 이래로 만물신 사상을 갖고 있던 중에도 하늘아래 으뜸으로는 태양을 신성시 하는 국가로 지나왔음을 알수있다
따라서 한반도인은 태양의 후손이며 천손민족임을 표방해온 것이라고 할수있다
다행히 한반도와 만주의 제정일치 군장국가들은 태양을 신성시 했음에도 만물신 사상을 바탕으로 태양을 보다 신성시 한 정도였기 때문에 구약시대와 아즈텍문명의 유일신으로서 태양숭배와는 달리 인명번제의 풍습은 없었고 토지신을 숭배하는 어느 정도의 순장풍습은 있었다
모세의 십계 1조 나 외의 다른 신을 믿지 말라 는 군장계급의 발생초기 단계에서 여러 신들중 태양 하나의 신을 중심으로 민중을 결집시켜 반대파를 제거하고 그 대리자인 제사장 계급이 절대적인 하늘권력을 갖기 위한 조항이었고 만물신 사상을 바탕으로 이미 제정일치 군장계급이 완성되었던 단군조선에는 1조 같은 것이 필요없었던 것이다
어릴적 우리는 이미 총포의 시대를 살았기에 입으로 따다다다 하고 놀면서도 대나무를 휘어 활이라도 만들어 새사냥을 나갈라치면 어데서 어떻게 알게 되었는 지도 모를 언젠가부터 아래로 아래로 전해진 말을 이어 나는 맥궁의 명사수 백발백중이다 라고 말하곤 했었다
달두꺼비 삼족오 설화는 시간적으로 이렇게 오늘의 우리에게 까지 이른 것으로 진로 참이슬과 금복주의 두꺼비 그림으로도 붙어 있고 삼족오 유물을 통해 이어왔다
술을 좋아하는 내가 여인과 마주할라 치면 낭만을 위장해서 떠들어대는 레퍼토리가 달두꺼비 이야기이고 달나라에 사는 미인이야기여서 므흣한 관심을 만들기에 유용할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사상을 잃어버린 기업이 참이슬에 두꺼비를 지워버렸고 세갈래로 까지던 병뚜껑도 두 토막으로 열리게 하는 우매한 짓을 해놓는 바람에 할일없게 되었다
이러한 동북아시아의 토템은 몽골리안 루트를 따라 서쪽으로는 우랄알타이 산맥을 넘나들었고 동쪽으로는 남미대륙에도 흔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한민족의 이동에 꼭 따르는 특징이 아궁이 이고 알류산 열도에도 산재하며 베링해를 넘어 알라스카에 소수의 흔적이 남아있다
주로 한반도에 밀집분포 하며 간도와 만주일원에도 상당수가 한민족과 함께 했던 드물게는 산동반도에도 소수가 존재하는 고인돌에 절대적 영향을받아 아궁이가 생겨났다
북방계
(남방계)
고인돌은 한민족들의 왕래한 루트를 따라 북방계와 소수의 남방계가 존제하는데 한반도에는 많은수가 멸실되고도 7만개 넘게 널려있다
고인돌처럼 선돌위에 덥개돌을 올린 무덤방을 소형화 해서 이어 놓고 흙을 덥으면 어릴적 집집마다 있었던 부엌의 아궁이 이고 불길과 연기가 지나는 통로로 굴뚝에 이어진 방바닦을 덥히는 고래 구려 구들장이라 하였으며 연기 그을음이 뭉친 검댕을 고릿재 라고 불렀다
고대 중국인들은 우리 민족을 고래를 만들어 쓰는 사람들 이라는 의미로 고구려인 고려인으로 불렀다 라고 위지동이전에 적혀 있다
훗대에 중국 동북부에 진출한 중국인들이 우리의 고래 아궁이 영향을 받아 모방한 것이 동북지방에 한해서만 화광이라는 온돌문화로 나타났고 화광은 방이나 가옥 전체가 아닌 침대부분만 단을 쌓아 높혀두고 불길을 들여 난방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 땅 어디서든 조상님들이 눈 뜨면 보이는 고인돌 선돌을 만들고 접하는 중에 연상작용을 일으켜 고인돌과 완전히 흡사한 구조의 아궁이가 발명된 것으로 확신한다
거듭 말하지만 본시 화남한족에게 변변한 문화랄 것이 없었음에도 우리 동이문화가 중국화되어 복희씨와 여와 및 염제 신농씨 이제 항아미인 구전설화도 모두 중국의 것이 되어 가고 있어 안타까운 바 있다
이렇듯 상고의 선사시대에서 현제에 이르는 최소한의 지리개념과 문화를 공유해왔던 우리의 요하 홍산문명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성계가 바위에 글자를 새겼다는 성수산 산은 높지 않으나 시야가 전남 무등산을 넘고 군산 충북 충남 드넓은 산줄기와 강줄기를 모두 볼수 있다 )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조선을 창업할때 전국의 산신들중 역성혁명을 증오하는 반대파 산신들에게 기도를 다녔다 하고 임실 청웅에서 오백년 왕업을 예지받았다 한다
산신들이란 산성세력인 지방호족들을 지역정서화 시킨 표현이고 성수산 백련산 덕태산 선각산 일대의 청웅이 성계를 돕기로 한 것이 큰 힘이 되었던 이유는 순망치한 이웃인 마이산 장안산 지리산 산신 등이 군사를 일으켜 이성계에게 벌을 줘야 한다고 가장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여말선초의 정치적 혼란기 각각의 산성세력들이 합종연횡 하며 군웅이 할거할 위험으로부터 청웅이 솔선하였으므로 일대의 반대파 호족들에게 새조선의 찬성을 회유하는 좋은 실마리였기 때문이었다
마이산 산신이 청웅을 따라 새조선에 찬성으로 전향하자 성계는 크게 기뻐하고 그 후손들을 우대한다
그럼에도 지리산의 산신은 마지막까지 반대하였고 분노한 이성계가 산 전체와 인근 고을들까지 전라도였던 지리산을 경상도로 유배시켰다
마침내 8도에서 마지막으로 지리산 산신도 새조선에 찬성 귀부하였으므로 약 3년 반만에 다시 전라도로 복귀시켰다
지리산의 귀양과 복귀는 실록에 명확히 적혀 있는 사실이다
이성계의 창업에 무학대사와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두 사상이 신조선의 정치와 사회이념 위취를 다투었으나 행정조직과 군사권력을 모두 갖은 사대부들의 세상이 되었다
이후 오백년간 성리학 사대부들의 세상이 되었지만 똑같이 생겨서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글을 쓰고 같이 어울려 살고 있는 동포의 다수를 노예로 만들어 소유하는 동시대 전세계 어디에도 없었던 천인공노 할 세상으로 지났다
그렇게 지나온 조선 독립운동의 거목이라는 백범의 일지에서 일본군 장교를 때려죽인 업적을 자랑하고 있는데 나에겐 가장 가슴 아팟던 내용이었다
일본의 원주민은 빙하기 해수면이 낮아 대륙과 연결되었을 때 해안가를 따라 혼슈로 도보 진출한 남방계이며 이후 배를 타고 한반도에서 건너간 북방계가 우성인 혼혈 우리의 선대가 원주민을 홋카이도로 몰아내고 차지한 것이다
한반도의 전환기 때마다 삼국과 가야인들이 대거 들어가 지역별로 유력가문을 형성한채 백제계 천왕 아래서 세력쟁탈전을 벌였던 역사로 지나왔고 천왕제의 완전체는 메이지 유신으로 확립되었지만 일본사 내내 실효적 전국왕은 백제왕가의 도일로부터 기원 유지되어 왔고 현제 일본 천왕가도 밝힌 사실이다
일본군 장교는 한국인 핏줄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마침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임정에 들려던 백범과 마주처 장교로서 권총정도의 무장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여 경계를 풀고 상당시간 서로 친절하게 대했다
다부진 외향과 성격의 조선청년 백범에게 호감을 보여 작은 선물을 주기도 하였고 백범도 일말의 적의를 나타내지 않아 막역한 친분을 나누다가 일체의 경계감이 없었던 때 백범이 기습해서 죽였다
조국을 해 할 불구대천 원수 씹어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라고 가슴살을 배어내 씹어 먹었다 한다
솔까말 동학군을 물리치겠다고 스스로 불러들인 것인데 백범이 안두희의 흉탄에 가심은 물론 민족 제일 간악자 이승만의 농간으로 추측할수 있겠지만 그 과보라 생각한다
동학군은 용인까지 승승장구 진격했다가 연발총으로 무장한 초청 일본군에 막혀 10만이 죽어야 일군 하나를 죽였을까 대전과 계룡산으로 밀려났다
마지막 보루 대둔산 숨어 든 마지막 동학도들이 은거한 동굴입구에 불을 절렀고 생포한 일부를 일본군은 난이 끝났다 살려 한양으로 입송 재판을 받게 하려고 했지만 전주관군이 노소불문 남김없이 다 참수 해버렸다
백범같은 무자비 그러한 분이 독립시키고 다스리는 또조선은 과연 민중의 행복을 위해 반드시 옳은 것일까
여차하고 중농주의 성리학 조선이 망할때조차 다 갖은 양반 몇놈이 도장 몇 번 찍고 합방했었던 것이었다
대장경 금속활자로 짐작하더라도 초일류문명 으로서 몽골도 어찌할수 없었던 강국이었던 고려가 망한 것도 안따까운 바 있다
스스로 삼별초를 물리친 후 이땅의 동북면 함길도의 성주딸 기황후의 손자와 증손자가 대칸이 되어 전세계를 경영하긴 했지만 점차로 친원주의가 스며들어 무장해제 했었기 때문에 민족의 자긍심도 와해되었다
인도가 석가처럼 눈이 파란 색목족인 백인을 지배층으로 작고 검은 인종까지 다수의 종족들이 혼재하여 철저히 분리되고 차별했던 카스트 계급사회였어도 같은 땅의 인민을 노예로 소유하는 것은 아니었고 아예 섞이지도 않았다
만민평등 불교사상을 이용하여 황권을 강화하려고 했던 왕건의 혼인동맹과 누구나 시험칠수 있게 했던 과거제도 및 노비안검법을 시행한 광종은 사적인 노비소유를 금지하는 방법으로 사병을 혁파하고자 거부하는 호족들을 다 때려죽였다
현종 성종으로 이어 귀족들의 발호는 억제되었고 평민 이의민이 고속승진 유력자가 되었다 왕을 시해하고 최고권력자에 이르기도 하였다
이의민은 후조선 이성계의 전주이씨 가문을 있게 한 실제적 가문의 창시자 이지만 왕의 시해자기도 해서 이성계의 역성혁명 왕씨주살을 연상시켰음으로 충효이념을 국시로 삼은 성리학 전주이가 호적에서 빼버리고 싶었던 위인이었다
만민평등 개인의 능력우선 불교적 가치관으로 통일신라의 신분제를 철폐하여 호족세력의 힘을 약화시키고 양민을 늘려 중앙집권제 황실의 힘을 키우려고 했던 고려는 몽골에게도 당당할수 있었다
그러나 후조선의 등장은 배달민족 인권의 역사를 봉건군주제 하 동포의 노예화라는 극악의 저주받은 오백년으로 만들었다
나는 어릴적 얼마전까지 전라(북)도였던 충청남도 서천군 춘장대 해수욕장을 갔던 기억이 있다
박통과 김종필총리 정부는 1971~3년 호남 10개 군을 충청남북과 경남에 강제편입시키고 그 만큼의 충청남북도 동북쪽 여러개 군지역들을 경북으로 교차편입시켜 본래 남북으로 위취했던 충남북의 위취가 지금처럼 좌우동서로 배열되는 기형적인 지도가 되었다
그런후 지역이동된 민심을 고착하고 영남 선거필승을 조장하려는 목적으로 호남비하론과 차령이남은 등용하지 말랬다고 왕건의 훈요십조를 날조하여 뻐뜨렸고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축 개발 5개년 계획을 실행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왕건을 이은 2대 고려황제부터 호남 나주가문에서 낳은 자식이었고 농경국가 고려와 조선을 통털어 인명자원과 물산이 가장 풍부한 호남은 가장 우대받는 지역일수 밖에 없었다
라디오도 매우 드믈던 박정희 군부정권 그때야 총칼이 무서워 그대로 격었다손 치더라도 작금에 그랬었다는 사실은 바로 알아야 한다
박통의 3선 개헌 전후만 해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 행정단위 였다가 전라땅을 떼어 충청을 경유하여 경북에 강제편입 했거나 경남에 직접 편입시키는 과정과 결과로 인해 1976년 무렵 각도의 남북분할이 생겼고 후에 북한도 남북도 분할을 따른 것이다
박정희의 날조된 훈요십조 차령 이남사람을 등용하지 말라는 절대 존재하지 않았으며 강한 농업생산력과 인구분포가 높아 오히려 호남우대에 공을 들이는 정책을 폈었다
부연하자면 신분제가 엄격했던 후 조선 중기 지역별 양반의 비율에서 충청도가 10% 전라도는 20%에 가까워 8도중 가장 높은 비율이었고 경상도는 4%로 구성되었던 것만 봐도 짐작할수 있겠다
새조선 시대에 이르면 청나라의 발원지인 만주가 신성구역으로 인명의 출입을 통제 했을 만큼 우대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백년을 통털어 새조선의 발원지인 전주를 품고 태조 이성계의 찐 어진이 봉안된 호남을 비하한다는 것은 준반역 행위로서 감히 목숨을 보존키도 어려웠다
문무백관 나라의 누구든 이성계의 찐 어진이 있는 호남에 들어 전주를 들거나 지나자면 40리 밖 삼례의 하마비 앞에서 내려 세번 절을 하고 지날수 있었다
나랏일에 죄가 있어 죄를 물음에도 함부로 죽일수 없고 권력주변과 단절시킨채 가까이 두고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한 왕족들은 강화도로 유리안치 했고
가면 올수없고 가는 길에도 죽고 가서도 거의 반드시 사약을 받을자는 경상도로 유배하였으며
죄를 물어 처벌하되 정리가 있어 죽이지는 않으나 세상에 다시 나오지 말고 유배지에서 늙어 죽게 할 죄인은 제주도로 귀양을 보냈다
꼭 죽여할 역모가 아니면서 갖은 재주가 아까운 자는 죽으면 죽고 살려면 공을 세워 대속하라고 황해 함경 최전방 삼수갑산 군진으로 유배하였다
여러 상황으로 인해 생겨난 죄는 묻지만 당장은 초야에 묻혀 학문을 닦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덕을 쌓도록 한 후 후에 다시 크게 쓸 인사는 전라도로 유배하되
경중을 가려 서책을 접하기 쉽고 명망있는 인사와 교류가 용이한 보성 차밭으로도 보내고 아까운 인재이나 쓰기에 부담스러운 인사는 전남해안 외딴섬으로 귀양 보내기도 하였다
박정희는 김종필과 유신체제로 장기독재를 완성하려고 1970년대 초까지 경상보다 훨씬 크고 인구도 많았던 전라지역에서 10개 군지역을 일부는 중청도를 교차시켜 경상도로 병탈 편입시켰다
서천군 논산군 금산군 영동군 거창군 함양군 산청군 지리산 전역이 지금의 전라북도 행정구역이었다
하동군과 서진주시 접경 진양호 중간수역과 사천만을 경계로 남해군은 전라남도 지역이었다
지금은 이를 아는 사람이 공무원조차 별로 없고 알아도 알기를 거부하는 정도로 호남이 싫다는 정서가 박정희와 이어진 군부정권들에 의해 쇄뇌되어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아주 오랜 옛적 고삼국 쟁투를 지난 통일신라 때부터 고려시대 조선과 왜정 대한제국을 지나온 박정희 3선 직전까지 서천군 논산 금산 영동군은 금강라인을 따라 전북이었다
거창군 추풍령을 경계로 황악산 적상산 민주지산은 전북의 내륙이며 지금은 경상도가 된 금원산 기백산 황석산을 멀리 전북안쪽에 두고 수도산 보해산 박유산 감악산 합천호를 경계로 전라 경상이 마주하여 황매산 장수산 천왕봉 포함 지리산 전역이 전라북도였다
하동군과 진양호 수변을 경남 합천과 경계로 섬진강을 따르고 서진주시 목전에서 사천만을 갈라 남해군은 전라남도였다
위 사항을 기억해두셔야 앞으로 종종 쓰게 될 일제40년과 장기 군부독재에 방치되고 멸실된 임진 정유 왜란에서 3대 대첩을 능가하는 이순신의 배후를 든든히 지켜내던 호남방어전을 이해하실수 있다
과거 천수백년 동안 금강과 산맥을 따르고 섬진강 사천만으로 잇는 경계선은 효율적 행정과 군사적 필요에 의해 지켜졌던 영호남 지역구도로써 이순신 수군의 배후를 단단히 지키고 호남평야를 사수함으로써 왜군을 막아냈던 합리적 체제였다
대를 이어 독재하는 북한정권을 답습하여 박정희도 선거필승 대를 이은 영구집권을 획책한 강탈로 지금의 지도가 된 것이다
일본군 장교를 지냈던 박정희가 친일주의자였는 지는 그 심중을 알수없으나 영구집권을 획책한 것으로 보아 분멍히 친미주의자 일수는 없었고 남한사회를 미국식 자본민주주의 국가로 이끌어가려던 미합중국은 용납할수 없는 문제였다
지미카터 정부와 회담끝에 개자식 그냥 두지 않겠다 라는 카터의 혼잣말을 일화로 어느날 여인을 끼고 시바스리갈을 마시던 그가 급서함으로써 관상학적으로 쥐인 듯 쪽제비 인 듯 내것은 내것 니것도 내것 얼마인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스위스 계좌 등을 영영 알수없게 되었다는 설도 있었다
박전의 서거후 그의 비서이자 실세부서의 부장이 사망한뒤 한낱 부장의 운전사가 공소기한이 도과한 후 갑자기 출처를 알수없는 1조원이 넘는 건축물들의 소유자로 둔갑하여 등장한 실예도 있다고 한다
지난주 구미시 금오산 산행의 감회를 적어보았고 만날 여인 하나도 없는 지겨운 주말 토요일을 당해 멀리는 못가겠고 산좋고 냇물도 좋은 청웅이나 백련산으로 막걸리 몇 병 싣고서 이성계의 흔적을 쫒아 산책이나 다녀와야겠다
파란 바다를 가르며 뱃고동을 울리는대
성큼 다가와선 미끄러지듯 도망치는
작은 섬들
갈메기는 반갑다고 바지런히 손짓허고 잉
어찌꺼나 번짓수가 틀렸단다
고기한점 맛보자 싶었거든 낚싯배를 따랐어야지
이 맴도 반가워서 옛다 한잔술
꼬시레~
지금도 통일신라 문무대왕 왕릉의 위취를 정확히 알수 없다고 하는데
대왕암에 산골장례가 아니었고 릉이 실제한다면 풍수로 보는 문무왕릉 위취와 왕릉의 축조방법 등에 대해 두 차례 찾아가 살펴 보았던 저의 신빙성 있지만 지극히 사견을 적었건만 열실되어 복기가 쉽지 않다
후에 복기하여 적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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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웹 닉네임 시리는 늑대별 천랑성 시리우스로 불리는 가장 밝은 별을 줄여 붙인 것 그니까 늑대라는 뜻이다
이맘때 남쪽 하늘에서 볼 수 있고 달을 빼고는 샛별 금성보다 몇 배나 밝은 별이다
동서를 막론한 상고시대 지역별로 군웅이 할거하며 길고 날카로운 발톱과 긴 송곳니 한달음에 10미터를 뛰어 오르는 호랑이 같은 날렵한 맹수들을 반인반수로 상징화 해서 부족의 시조이며 용맹의 표상으로 하였다
국경과 민족 국가라는 개념이 없거나 희박하였었고 아시아의 한쪽끝에서 유럽 아프리카의 어디로든 반대로 남아메리카의 끝까지라도 이동하는 것에 여권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다
힘으로 밀어붙히거나 토착인들과 연합 하거나 했을 뿐 맹렬한 민족의 구분이 없었다
팔천년의 역사를 갖은 이집트와 이라크를 중심으로 하는 수메르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강가의 농경정착 문화이다
반면에 카자흐나 터키 신장 티벳 러시아와 몽골 만주의 대초원을 질주하던 북방계 인류 유목민은 농경정착이 아니어서 유물 유적이 남지 않아 4대문명으로 꼽지 않는다
그러나 흉노 선비 스키타이 유목민들은 가장 강력한 문명중 하나였으며 이들이 농경정착 문명에 나타나 휩쓸고 갈 때면 문명사에 대재앙이 있었고 수백 수천년의 역사가 흔적만 남고 사라지기 일쑤였다
극동에도 이집트문명 역사에 모자르지 않을 중원의 황화문명과 요하와 흑룡강 유역의 만주중심 홍산문명이 있었다
홍산 고조선과 흉노인이 배링해를 건너서 마야 잉카 아즈텍문명이 되었을 개연성도 상당하다
갠지스강을 중심으로 인더스 문명 대서양 바닷속에 잠든 아틀란티스 문명이 침팬지에서 인간이 분화한 이래로 명멸해왔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구상에 명멸한 이들 문명들에서 거침없이 동서교류의 산파역할을 한 인류가 유목민족인 투르크 돌궐로 불리는 흉노 선비 스키타이 몽골리안 들이었다
이들이 그리스 로마 이집트에 고루 혼혈되어 힛타이트족이 되고 유럽 프랑스지역 아리안 인종이 인도계 스키타이족과 혼혈하여 켈트족이 된다
지구의 동쪽과 서쪽을 관통하며 때로는 투쟁하고 때로는 합종연횡 하면서 인류사를 만들어 온 사람들 기마 목축인들은 샤머니즘 공히 늑대를 시조로 하였던 스키타이족 이었고 우리에게도 홍산 고조선 이래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홍산문화를 지나오며 시작하는 고조선이 동서양간 횡축으로 상고시대 샤먼 문화권의 종주국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상고 흔적은 성리학 사대주의 후조선에서 대부분 멸실되어 알기 어렵게 됬고 헝가리 터어키 등에서 고조선을 언급하는 자료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수있다
지금이야 유튜브에서 온갖 정보들을 접할수 있지만 나는 30년 전에 노스님들에게 듣기도 하였고 이런저런 사색의 기회로 생각하게 된 것들이다
여튼 단군조선은 황하유역 중원과 산동성을 변한 만주 연해주 내몽골을 진한 간도와 한반도 지역을 마한으로 구분하여 다스렸었다
이들 중 진한이 종주국으로서 삼한체제로 지나왔고 정확히 고인돌의 분포지역과 일치한다
샤머니즘 국가인 고조선을 세분하면 9개의 토템 제후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익히 알고 있는 호랑이족 곰족 늑대족 등이 있었다
우리는 일 월 화 수 목 금 토 한주를 반복하며 사는대 이러한 오행사상은 인간이 삶에 긴밀하게 접하는 순서이면서 인간이 신앙했던 시기적 순서 이기도 하다
일월성신을 숭앙한 것이 원시인류에게 가장 이른 신앙이고 불을 다루게 되면서 불을 숭앙했고 농경정착에서 수난이었던 물을 두려움과 숭상했으며 경외의 숲을 그리고 금속을 얻을수 있게 되면서 쇠를 숭앙했던 순서이다
따라서 오행사상은 청동문명인 고조선 시기에도 있었다
12간지와 궤효는 인도문명이 중서남아시아 문명으로 전래되어 한층 진화하고 중국으로 들어가 한반도와 일본에도 전해진 것이다
태호 복희씨와 여와 부부를 시조로 하는 중국한족들은 뱀을 숭앙하는 사족으로 한족이라고 뚜렷이 분류 할 정도가 아니었고 양자강 상류 산서성 섬서성 일부에 거주했던 소수족 이었다
그렇다보니 한족의 시초에 대한 특기할 창세설화가 없다가 고조선의 제후국인 은 허를 정복 포융하던 시기에 복희씨와 여와의 창세설화를 수융한 것으로 여겨진다
굳이 적자면 유비 조조가 쟁투하던 시기 손권의 오나라에 반고의 천지창조 설화가 있기는 한데 이 역시 한족과 무관 손견자체가 남만인으로 중국남쪽의 이민족 창조설화를 차용한 것이었다
유물론적으로 흔적이 분명한 은허 유적은 홍산문화 유적에 비해 시기적으로 빠르지 않다고 할수 있다
첫번째 이유는 고조선의 진한지역인 홍산문화에선 하늘님에게 천부인을 받아 강림한 천손민족을 표방한 것으로 보아 인류의 자연숭배 신앙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일월성신 신앙이고 은허 유역에선 농사와 불의 신을 태호로 신성시하였으므로 홍산의 일월성신에 후행했다는 것을 알수있다
둘째는 상고구전 설화를 적은 천부경에도 그렇거니와 은허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고조선을 일러 당시 최상의 병기였던 활을 잘 쏘는 경이롭고 존귀한 사람들 이라는 뜻의 동이라고 하였고 산서와 섬서성 한족들은 은허인들도 동이족이라고 했기 때문에 자연히 홍산문화가 은허 사람들보다 앞선 귀한문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수 있기 때문이다
근세 중국은 사실상 한족도 아니었고 이민족인 하씨가 양쯔강 상류 하나라를 건국했던 것으로 중국 최초 국가를 주장하고 있지만 고고학적 흔적은 전혀 없다
반면에 요하와 흑룡강 유역에 홍산문명의 흔적과 유물은 명백히 존재한다
유물론적으로는 황하에서 상나라로 추정되는 흔적이 마지막 수도를 은이라 부르며 문명왕조를 이루었다가 주씨들에게 멸망하였다
은을 멸망시킨 주씨의 주나라는 양쯔강의 중상류이고 중원의 북서쪽인 호경을 수도로 개국하였던 나라이고 이때부터가 한족으로 특정하여 뚜렷한 실체가 인정되며 후에 낙양으로 옮기면서 한족의 역사는 낙양중심으로 머물게 된다
주지해야 할 점은 낙양 중심 주나라 때 까지 한족은 고조선의 영향력에 속해있던 중원의 중심 장안에는 변방세력 이었으므로 황하강 중하류 은허지역은 애초에 아주 오랜 상고동안 한족과 연관이 없어 고조선의 영향속에 있었다
상고 빙하기가 지나고 대홍수의 시대 고조선의 탱그리 단골래 당골 단군이 지금에서야 샤먼으로 무당에 불과하지만 옛적에는 하늘과 땅을 잇고 대리하는 천지인 사이의 절대적 군장이었다
고조선은 제후국인 상나라의 팔년홍수 때 치수관 가문 출신이었던 주문왕에게 치수의 방책을 도와주고 맹약을 하여 덕을 잃고 수재를 있게 한 상나라가 멸함으로써 황하중상류 은허가 주나라에 복속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한글판 사기 한 번 훑어 본 것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단언하여 말할수는 없음이다
이후 주나라가 약화되며 북방민족들이 대거진출 외래인들이 천하를 다스리는 춘추시대를 지나 역시 북방인인 진시황의 진나라를 거쳐 비로서 한족 유방의 한나라가 개국한다
한고조 유방이 대취하여 귀갓길 거대한 흰 뱀을 단칼에 동강내어 죽여버리자 산발한 노파가 홀연이 하늘로 솟구치며 통곡하며 외치기를 적제의 아들이 백제의 아들을 죽였다라는 도록은 황제시대에도 아직 토템사상이 혼재되어 있는 형태이다
시황제는 고조선의 진한과 관계가 매우 깊은 인물로서 만리장성을 쌓으며 양쯔강을 자연지물로하여 내륙 산맥을 돌아 황하 상류에서 중원으로 감싸고 산해관을 끝으로 방어하도록 쌓았다 지만... 사실 역사라는 것이 십년 전의 기술도 액면대로 믿을 것이 못된다 하겠다
요즘은 수많은 후대의 성들을 연결하고 한반도 압록강을 넘어 들어온 것까지 그려진 지도를 만리장성 이라고 확장해놓고 있어 시황제때 장성을 쌓았었다는 사실외 당대 성축한 그대로우 라인을 파악하는 것조차 소수의 전문가라도 불가할 것이다
시황제 당시의 만리장성은 분명 황하강 북부와 동부 유역이 아직 진나라가 막고자 하는 고조선의 강역안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시황제가 만리장성으로 중원을 닫아 걸었다 몰락하자 다시 중원을 통일한 한나라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고조선의 구이족과 한나라간의 영토전쟁 역사전쟁이 벌어졌다
위만은 본래 명망있는 고조선 출신으로 한나라에 귀순했던 장수로서 위만을 한나라 군대의 수장으로 한 침략을 당함에 동포인 위만에 큰 저항없이 회유되어 위만조선으로 받아들여졌다
애초 고조선인으로 굳이 한나라에 나라를 들어 받치며 돌아 갈 이유가 없었던 위만이 부패한 조선국을 물갈이 하고 체제를 이어 흥했다 쇠퇴하면서 한사군이 설치되고 부여 고구려 여러 흉노 국가들로 중국시각에서 구이족 국가들로 산개되게 되었다
한나라가 멸망하자 중원에 다시 이민족들이 수많은 나라를 세우고 명멸하는 위진남북조 시대로 접어들었고 이를 수습하여 중원을 통일한 사람이 수문제로서 역시 한족이 아닌 고조선계 구이족 출신이었다
서쪽으로 시각을 옮겨보면 늑대족인 스키타이 시조설화는 이렇다
두 부족간 치열한 전쟁을 하였는대 한쪽이 전멸 단 하나의 어린 아이만 남았고 승리한 적은 수레바퀴 보다 작은 어린애는 죽이지 않는다는 초원의 법에 따라 팔다리를 잘라내고 들짐승의 먹이로 던져버렸다
암것늑대 한마리가 나타나 거두어 품고 키우니 자라서 그 암컷늑대와 교접. 10명의 아이를 낳았다
적들은 팔다리를 잘라 버린 사내아이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되어 추격하여 마침내 죽였다
암컷늑대는 열명의 아이를 대리고 숲으로 도망처 이들이 산악부족 국가들로 성장하였고 늑대의 후예임을 잊지 않겠다는 맹세로 늑대머리 문양을 깃발로 내 걸고 진군하였다
아시아의 산악부족이며 정복민족인 늑대족 스키타이의 후손 로물루스가 늑대의 머리 깃발을 내새우고 진군하여 초기로마를 건국하였다
스키타이족은 유럽백인 아프리카인을 상대로 잔인한 정복전쟁을 멈추고 유프라데스와 메소포타미아에서 혼혈하여 힛타이트 족이 되었다
힛타이트족이 수천년 장구하게 이어오던 파라오의 이집트를 격파 정복하고 13왕조 시대를 열게 되었으며 투탕카맨 등 아시아계 파라오들은 이들의 후손이다
이후로도 이집트 상층부와 결혼동맹하여 귀족 왕족 계층을 형성하여 근대까지 전승되었다
(동아시아계 황인종 혼혈 파라오 투탕카맨)
초기 로마제국의을 건설하고 유럽을 점령한 스키타이 전사들은 늑대머리 깃발을 내걸고 다녔는데 늑대머리 깃발은 몽골초원에서 천산북로를 두루 걸쳐 활동하던 초원부족의 문장이었다
구약 예레미아에 적혔기를 ''보라 스구다이인들이 북방에서 오며 큰 나라가 땅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니 그들은 활을 쥐고 창을 잡았으며 잔인하여 자비가 없다
그들이 벼락같이 다가오메 다 불사르고 죽이나니 시온 너를 치려하느니라"
스키타이와 흉노(흉노는 특정 부족이 아닌 중앙 서남동북아시아 동유럽을 넘는 강역의 초거대 연합국가로 선비족은 가한을 왕으로 했고 칸 마립...
스키타이 족들의 정치제도는 고조선의 삼한정치와 동일하였고 나라를 크게 세개로 나누어 삼왕이 다스리고 그중 진왕을 중심으로 휘하 많은 여러 제후체제로 유지 되었다
신라의 기마병들은 동복이라는 솥단지를 말잔등에 얹고 다녔는대 전형적인 스키타이 흉노 샤먼군주제의 병사들만 동복을 가지고 다녔고 동복은 중국에도 서구에도 기타 어떤 나라에도 없는 것이며 금관을 제작하여 군주의 표상으로 한것도 우리 민족과 스키타이 흉노에서 시작되었고 주로 사용하였다
다른 민족이나 국가들은 화려한 금관을 만들어 사용한 예가 존제하지 않았지만 그 영항을 받았던 이유로 귀금속을 장식한 모자 또는 두건의 형태로 비녀나 반지를 함께 착용하여 군주를 표상하고 칸 가한 마립간에서 유래한 킹을 호칭으로 하였다
인류사를 통털어 화려한 금관장식은 단군조선을 위시한 샤머니즘 문화권에만 있었다가 훗날 모자형으로 널리 퍼진 것으로 곡옥은 용을 단순상징화 시킨 것이다
고구려의 역사는 금와왕 동명 이전에도 존제하였는대 광개토대왕 비문에도 동명왕은 구려의 중창조 일 뿐 최초개국은 부여와 구려 사이에 고주몽 위로 수세기 여러 초기왕들을 적어 놓고 있다
단군조선을 직계로 태양신인 세발까마귀를 표상하여 천손을 이은 것 그 갈래에서 온조백제 비류백제가 이어져온 것이다
경주의 황남대총은 목곽을 안치하고 기단위에 고임돌을 세워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후 고임돌 부분을 돌을 쌓아 막아 묘실을 조성하는 지석묘 방식으로 전형적인 스키타이 흉노와만 상통하는 묘제이다
그것에 흙을 덥어 봉분을 만들고 잔디를 심어 토사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발전한 것이 목곽적석총이다
지금처럼 인적이동에 국경과 법제절차 민족개념이 없던 때 만주일원 고조선의 삼한중 진한역사가 부여로 이어졌다가 고구려로 전승되었고 평야와 강을 따라 남하한 고구려인들이 마한의 토착인들과 융합 백제가 되었다
신라는 우랄 몽골 시베리아를 이어 온 만주의 단군조선 진한에서 전래한 토착인들이 여섯마을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던중 흉노로 통칭되는 중국을 경유한 서역 위구르 등 북방인들이 산맥을 따라 대구 팔공산을 지나고 계림에 도래하면서 먼저 변한으로 자리잡은 토착인들과 투쟁과 합종연횡하여 지도층이 형성되었다
양산에 말이 울어 알에서 난 혁거세의 박씨는 북방 기마민족 도래설
석탈해는 캄차카반도의 다파나인 도래설
백제와 신라의 완충지대였던 김수로의 금관가야 대가야 아홉가야가 대가야를 마지막으로 신라화 되었다
팔공산을 넘고 돌아 경주 남산으로 향했을 우리의 대륙기질을 제대로 다 적어 설명도 어렵고 두서도 읎고 정리하자니 손가락 아파서 일단 마무리 한다
한반도에서 묘역이 가장 큰축에 드는 백제시대 나주소제 전방후원적석묘들이 상당수 산재해 있다
한반도의 고인돌 형태 그대로 위에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든 묘제가 적석총이고 전방후원식 묘제로 발전하여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일본 규슈 기타큐슈 혼슈는 다습하여 비가 많음으로 토사의 유출이 심하다
그런 이유로 일본묘제는 봉분의 주변에 도랑을 파고 해자에 물이 고이도록 하여 토사를 안정시키는 형태로 일본식 변화가 더 해졌다
나주에 산재한 거대한 고분들에서 일본식 영향이 짙다 이는 임나인본부설과 연관을 따져야 하는 문제가 있어 간단히 적을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https://youtu.be/QklBuSHDUCw
첫댓글 스크롤의 압박이~ㅋㅋ
모임있어 가까이 임실군 강진면 백련산에서 가볍게 산보하고 모임장소 주차장에 담배한모금 즐토되세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