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호(雅號)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사실 호(또는 아호)를 사용하는 것은.. 선인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답니다.
처음에는 아호를 쓴다는 것이 예술가나 저명인사들이나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어느정도 사회적인 연륜도 있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또는 어머니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아호 하나쯤 가지는 거 큰 무리는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아호란 것이 다소 생소할지도 모를님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다음 몇가지를 안내드립니다.
1.아호의 유래 및 사용 취지
지어주던 관명(冠名),족보에서만 사용하든 보명(譜名),공로가 있는 신하에게 나라에서 내려주던 시호(諡號), 그리고 평상시에 가장 많이 애용하던 호칭,아호(雅號)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이 아호를 애용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친근감을 나누었답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이들이 자신의 ID를 많이 쓰고 있지요.
그러나 이것들만 가지고는 좀 아쉬운 측면이 없지 않지요.
중후한 맛..친구간의 멋과 우정,사회적인 정취, 살아온 세월에 걸맞는 분위기 등을 고려해 보면 아호사용은 그 나름대로의 멋이 아닐까 합니다.
2. 아호는 어떻게 만드나 이러한 아호를 가질 때에는 보통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만드는 방법과 타인이(부친,스승,또는 친구 등..) 만들어 주는 경우입니다. 또한 보통 글자수가 두자나 세글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한글 아호도 있으나 통상 한자 아호가 대부분입니다.
아호를 만든 사례를 몇가지 소개하자면
ㅇ 자신의 출생지나 생활 근거지의 지명(地名)을 따라서 지은 경우 -(예) 율곡(栗谷), 퇴계(退溪), 오리(梧里:이원익) 등
ㅇ 자신의 가치관을 반영한 경우
ㅇ 신체적 특징을 반영한 경우 -(예) 예관(신규식:사팔뜨기), 벽옹(김창숙: 앉은뱅이) 등..
ㅇ 자신의 취미나 취향을 표현한 경우 -(예) 백사(白沙:이항복), 고산자(古山子:김정호), 다산(茶山:정약용) 등..
ㅇ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을 추모하여 지은 경우 -(예) 사임당(師任堂: 신씨-이율곡선생의 모친)
간단히 아호의 작법(作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 뜻이 있는 문자를 사용하여야 한다. (인생관이나 좌우명을 알수 있다.) 이러한 작법 아래 소재를 선택하셔서 지으면 됩니다. 개인의 성격과 직업에 따라서 소재를 변화 시킬수 있습니다. 예로 역사적/현재의 유명한 인물들의 아호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포은 (圃隱), 정 몽주(鄭 夢周 1337~1392) 성리학의 시조이며, 고려의 마지막 충신(단심가) 매죽헌(梅竹軒), 성 삼문(成 三問 1418~1456) 단종복위를 꿈꾸던 사육신의 대표적 인물 매월당(梅月堂), 김 시습(金 時習 1435~1493) 절개의 기인 학자. 퇴계 (退溪), 이 황(李 滉 1501~1570) 성학십도(聖學十圖)의 작가이며, 성리학의 달인. 율곡(栗谷), 이 이(李 珥 1536~1584) 조선시대 최고의 석학으로 신사임당의 아들. 토정(土亭), 이 지함(李 之函 1517~1578) 토정비결의 저자로 주역(周易)에 능통한 정치가. 녹두(祿斗), 전 봉준(全 琫準 1855~1895) 녹두장군으로 기억하는 동학군의 영수.
김 대중 (金 大中) - 후광 (後廣) 김 영삼 (金 泳三) - 거산 (巨山) 김 종필 (金 鍾泌) - 운정 (雲庭) 이 회창 (李 會昌) - 경사 (俓史)
아호 짓는 법 아호는 흔히 스승이나, 어른이 지어주는 경우와 스스로 자작 (自作)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대에는 주로 자작의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아호는 겸손을 미덕으로 하여 높고 고귀한 문자보다 소박하고 정감있는 문자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겸손에 있는 것이다. 간단히 아호의 작법(作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 뜻이 있는 문자를 사용하여야 한다. (인생관이나 좌우명을 알수 있다.) 아호 (雅號)의 소재 (素材) 아호를 지을 때 가장 기초가 소재의 선택이다.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춘우(春雨) 라는 아호를 가지고 싶지 않을까. 즉, 개인의 성격과 직업에 따라 소재를 변화 시킬수 있는 것이다. 소재를 분류시키면 다음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첫째 : 이상 (理想)과 신념 (信念)의 소재 (素材) 형이상학 (形而上學)적인 표현이나 의지(意志)의 표현으로 승화(昇華) 시키는 문자로 아호를 만든다.
그리고 허주 (虛舟) 김 윤환 의원등으로 백범의 경우는 白 + 凡 즉, 모든이가 평등함을 추구한 뜻이 있고.
무애 (无涯)는 끝이 없는 일을 하려는 의지로 볼 수 있고 허주(虛舟)는 빈배이니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아호입니다.
둘째 : 지명(地名)의 소재 (오행분류 土) 사랑하는 사람의 고향 등을 사용하는 경우다.
율곡은 경기도 파주의 율곡촌을 뜻하고. 우남은 서울의 중구 도동 우수현 (雩守峴) 남쪽, 화담은 개성의 화담을 지칭한다. 셋째 : 산(山)과 바위, 고개 등 자연의 소재 (오행분류 土) 지조(志操)나 의리(義理)의 대표적인 비유다.
거산 (巨山) 김영삼 등의 인물을 대표적으로 볼 수 있다. 넷째 : 강 (江) 호수(湖水) 바다 (海)의 소재 (오행분류 水)
그리고 자연의 칭송(稱訟) 등의 뜻으로 사용하며
심 훈, 해공(海公) 신익희, 만해(萬海) 한용운 등이 있다. 인간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하늘에 있다고 판단하여 기원(祈願)과 소망(所望) 그리고 희망(希望)의 소재로 월남(月南) 이 상재, 몽양(夢陽) 여 운형 등이 사용하였으며 해(日)와 별(星)은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여섯째 : 초목(草木)과 꽃의 소재(오행분류 木) 낙엽(葉), 숲(林) 등을 소재로 하여, 의지(意志)와 불변(不變)을 또한 아름다움과 힘을 나타내는데 적합하며 대표적으로 다산(茶山) 정약용, 중수(中樹) 박정희, 도원(道圓) 김홍집 , 송제(松齊) 서재필 등이 있다.
일곱째 : 기후(氣候)와 계절(季節)의 소재와 기타 개성(個性)과 의지(意志)를 표현하고 그 외 모든 분야에서도 소재를 찾을 수 있다.
글자 이외에 호(虎) 견(犬) 용(龍) 구(龜) 학(鶴) 조(鳥) 돈(豚) 계(鷄) 등의 동물이름자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아호를 짓는 시기 아호는 성인이 되면서 누구나 가질 수 있으나 직업이나 집안 내력 주변환경에 의하여 가지게 되는데 대부분 어떠한 분야에 입문하는 시기나 또는 특별한 계기에 짓는 것이 좋다.
연령의 한 고비를 보내면서 아호를 짓는 경우가 많다. 역사 속 인물들의 아호
이제 유명인사들의 아호를 하나 하나 감정하면서 그 깊이를 알아보기로 하자. 각 인사 개인의 성격과 삶 그리고 인생관을 읽을 수 있다. 포은 (圃隱) 정몽주(鄭 夢周 1337~1392) 성리학의 시조이며
만해(萬海) 한용운(韓 龍雲 1879~1944) 스님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현재 정치인들의 아호 김대중(金 大中) .......... 후광 (後廣) 아호 실예 평강(平江) 평평하다. 바르고 깊다. 청계 (淸溪) 맑고 깨끗한 시내(윗물이 맑음으로서 아래물을 정화시킨다)
죽암(竹巖) 대나무와 바위(절개와 우직함) 청운(淸雲) 맑은 구름처럼 욕심없이 정처없이 자유로움. 해암 (海岩) 넓은 바다에 바위처럼 꿋꿋하게 언제나 변함없이. 해당 (海堂) 모든 것을 포용할수 있는 집. 인우 (仁雨) 비는 세상을 풍요롭게 베푸는 仁(어짐) 송향(松香) 소나무의 푸르청청한 /고귀한 향기. 해엄 (解嚴) 경계나 단속을 풀다 송재 (淞齎) 삼천 (三泉) 수산 (水山) 호암 (晧岩) 성원 (盛原) 영재 (榮栽) 한송 (閒松) 혜천 (惠天) 석촌 (夕村) 인향 (仁鄕) 상경 (尙敬) 월산 (月山) 현매 (賢梅) 산방 (山房) 하주 (何洲) 용천 (龍泉) 금산 (金山) 백암 (白岩) 오원 (梧園) 소담 (素潭) 예광 (藝光) 란파 (蘭坡) 향곡 (香谷) 운야 (雲野) 현재 (玄栽) 광덕 (廣德) 풍산 (豊山) 와평 (瓦坪) 대천 (大川) 운현 (澐顯) 월랑 (月朗) 동암 (東岩) 소백 (素伯) 창봉 (昌奉) 곽제 (郭齊) 예암 (藝岩) 예당 (藝堂) 송산 (松山) 남제 (南濟) 일봉 (一峯) 정암 (頂岩) 우성 (友盛) 월곡 (月谷) 무문 (無門) 연농 (蓮農) 남산 (南山) 만경 (晩耕) 원심 (圓心) 청경 (淸耕)
관복재(觀復齋) 恩江(은강) 의암(毅庵 ) 학포(學圃) 학포(鶴圃) 우사(尤史) 귀농당(歸農堂) 고산(孤山) 만휴당(晩休堂) 하전(夏篆) 범재(凡齋) 수와(睡窩) 이호(梨湖) 허주와(虛舟窩) 단헌(檀軒) 연가재(然可齋) 식암(息庵) 주곡(酎谷) 송와(松窩) 검재(儉齋) 동강(東岡) 운양(雲養) 죽와(竹窩) 춘주(春洲) 인재(忍齋) 퇴신재(退愼齋) 경의재(敬義齋 서은(西隱) 율호헌(栗湖軒) 당계(棠溪) 삼화당(三華堂) 三和堂 (삼화당) 만휴당(晩休堂) 경승재(敬承齋) 석암(石菴) 퇴은(退隱) 망헌(望軒) 농월당(弄月堂) 치재(致齋) 농산(農山) 매일당(梅一堂) 호양제(浩養齋) 축은(築隱) 농와(農窩) 연우(練宇) 백헌(柏軒) 오석(梧石) 금암(錦巖) 죽강(竹岡) 구호(龜湖) 계은(溪隱) 겸산(謙山) 신묵재(愼默齋) 춘오(春塢) 구와(苟窩) 야초(野樵) 이낙재(二樂齋) 청우헌(淸愚軒) 졸재(拙齋) 우성(又誠) 야암(也庵) 춘원(春元) 동창(東窓) 낭산(朗山) 초산(樵山) 모재(茅齋) 지지노(知止老) 죽사(竹史) 운강(雲岡) 무재(無齋) 월봉(月峰)
야은(野隱) 은청재(隱淸齋) 모하당(慕夏堂) 난곡(蘭谷) 수봉(秀峯) 매촌(梅村) 수월당(睡月堂) 초은(樵隱 근시재(近始齋) 석정(石鼎) 목발(目拔) 회은(檜隱) 촌암(村岩) 둔재(遯齋) 만초(晩樵) 도연정(道淵亭) 귀근(歸根) 순재(純齋) 극재(克齋) 직재(直齋 단원(檀園) 노은(魯隱 신재(愼齋) 탁계(濯溪) 일여(一如) 열재(悅齋) 낙천와(樂天窩) 휴은(休隱) 만취헌(晩翠軒) 동연(東淵) 삽봉(揷峰) 낙안당(樂安堂) 국신헌(菊信軒) 연포(蓮浦) 松湖(송호) 괴애(乖崖) 만초(晩樵_ 취곡(醉谷) 양한재(養閑齋) 회헌(晦軒) 벽암(碧巖) 청천(聽泉 송원(松園 월여(月如) 경붕(景鵬) 백화(白華)
아호(雅號)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우리에게 본명은 그리도 귀한 것이라 함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장가를 들면 새로 이름을 지어 불렀는데 이것을 자(字)라고 하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게 되면 만들어 부르던 이름이 있으니 그걸 아호(雅號) 혹은 호(號)라고 했습니다.
그걸 시호(諡號)라고 하니 이순신의 시호가 바로 '충무'라 우리는 충무공 이순신으로 부르지요. 임금님들도 죽은 다음에 시호(諡號)를 받는데 그건 시호라고 하지 않고 특별히 묘호(廟號)라고 하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태조, 세종, 성종은 임금님의 묘호랍니다. 가끔은 성군이 아니라 묘호를 받지 못한 임금님이 있으니 광해군, 연산군이 바로 그런 임금님이지요.
호는 2종 이상의 이름을 가지는 풍속〔複名俗〕 또는 본이름 부르는 것을 피하는 풍속(實名敬避俗)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중국의 경우, 호의 사용은 당대(唐代)부터 시작하여 송대(宋代)에는 보편화 되었고 우리 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원효(元曉)의 호는 ‘소성거사(小性居士)’, 효자인 성각(聖覺)의 호는 ‘거사(居士)’, 낭산(狼山) 아래 살던 음악가의 호는 ‘백결선생(百結先生)’이라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이러한 호는 자신이 짓기도 하고 남이 지어 부르기도 하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호는 아호(雅號)와 당호(堂號)로 나누기도 한다. 아호는 흔히 시·문·서·화의 작가들이 사용하는 우아한 호라는 뜻으로 일컬음이요, 당호는 본래 집(正堂과 屋宇)의 호를 말함이나 그 집의 주인을 일컫게도 되어 아호와 같이 쓰이기도 한다. 落款(낙관) 낙관! 낙관하는데 도무지 낙관은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어떤부분을 낙관이라 하나 落款이란 落成款識(낙성관지)를 줄인 문구입니다.
落成이란? 竣工(준공) 또는 完成(완성)이란 말인데 보통 집짓고 난 후 낙성식을 갖는다. 말하는 것이 이런 완성되었다는 절차를 의미합니다,
款識(관지)란? 陰刻(음각)과 陽刻(양각)을 말함이요. 款(관)은 陰刻에 속하고 識(지)는 陽刻에 속합니다.
이 落款의 시작은 매우 오래되었는데 중국의 殷(은)나라와 周(주)나라의 시대에 鐘(종)이나 鼎(정)을 製造(제조)하고 年紀(연기)와 頌辭(송사)를 表記(표기)하는데서 시작이 되었으며 이때에 쓰여진 글자를 鐘鼎文(종정문)이라고 합니다.
이후에 세월이 흘러 여러가지 작품이나 그림 서화 도자기 등에 제작연대와 만든이의 이름을 기록하고 印章(인장)을 捺印(날인)하였습니다.
이후에 제작연도 뿐아니라 다양한 기록들을 서술하는 방식을 택하였는데 너무 방법이 많아서 기술을 생략키로 하겠습니다.
다만 낙관이라는 말을 일반인들이 작품에 찍는 인장을 보고 착각하여 전시장에서 작품을 해석하거나 문하생을 가르치는 상태에서도 전각을 찍은 모양을 보고 낙관을 잘못 찍었다는 잘못된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아 이를 바로 잡기 위함으로 서술합니다,
보통 낙관을 하실적에 雅號(아호)를 적는데 아호가 무엇인지는 알아야겠지요? 雅號(아호)란 스스로 만들어 짓는 이도 있고 스승님이 賜號(사호)를 하는 것도 있으며 부모님이 지어주신것도 있지요.
◈別號(별호)와 堂號(당호) 같은 것도 雅號의 경우와 같이 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외에 공로를 참작하여 죽은 후에 追敍(추서)하여 諡號(시호)까지 下賜(하사)하게 되는 경우가 예전에 공공연히 있었지요. 별칭도 많습니다 **居士(거사), **居人 **道士, 등 무수히도 많이 적절하게 자신의 신분이나 처지 또는 고향까지 적절하게 이용하여 별호를 짓는경우가 있습니다. (예문) 道人, 山樵(산초), 山民, 山家, 山寺, 山居, 山林, 山門, 山莊, 山齋<산재>, 山中, 虛士, 野人, 野老, 野民, 野生, 迂人<우인>, 漁史<어사>, 漁夫, 釣徒<조도>, 癡人<치인>, 癡頑<치완>, 癡愚<치우>, 逸客<일객>, 逸士, 隱人<은인>, 隱士, 散人<산인>, 散士, 散材<산재>, 閑人<한인>, 閑客, 學人, 등이지만 이외에도 적절하게 쓰여지는 文句가 많이 있습니다.
한글 서예를 하는 이들은 수수한 한글로 아호를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갈물, 찻잎, 솔뫼, 꽃뜰, 갈뫼, 돌샘, 등등
이 외에 낙관을 할때는 年 齡이나 年月日時 그리고 작품의 내용을 적거나 기록한 이의 아호를 적는 경우가 많습니다. 落款의 記入 方法은 다음에 다시 거론 하기로 하고요.
오늘은 낙관이라는 말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 것인지만 기록 하기로 하겠습니다,
즉, 낙관이라는 것은 작품에 찍는 인장을 가리켜 말하면 잘못된 표현이겠지요.
낙관은 이미 말했듯이 제작 년월일, 글쓴이 의 아호 또는 아호+ 이름.
그리고 작품의 특성을 말하거나 기록하는 문구를 누가 썼는가를 기록한 모든 문구를 말하거나 쓰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인장을 날인하는데요. 인장에는 음각과 양각으로 새긴 인장이있습니다. 보통 전각이라고 하는데 이 전각을 찍을때 이름을 먼저 찍고(음각) 다음에 아호(양각)를 날인하는것이 상례입니다.
호(號) 예술인의 예명이나 작가의 필명처럼 본이름 외에 따로 지어 부르므로써 대중과 친숙하고 활동에 도움이 되고자 사용하거나 정치가 서예가 문장가 등 품격높은 사회생활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
자(字) ㅇ자(字):관례(冠禮:성인식)때 성인이 되었다는 징표로 새로 지어주는 별명이다. 본명(本名)은 태어났을 때 부모에 의해 붙여지는데 비해 자는 윗사람이 본인의 기호나 덕을 고려하여 붙이게 되며 자가 생기면 본명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본명을 휘명(諱名:부르기를 삼가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흔히 줄여서 "諱" 라고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로부터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글을 아는 사람이면 성명외에 字 와 號를 가졌는데 이는 2가지 이상의 이름 가지기를 좋아하는 복명속(複名俗)이나 실제의 이름 부르기를 꺼려하는 실명경피속에서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윗사람에게는 자신을 실명으로 칭하지만 동년배 이하의 사람에게는 자를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호(號): 본명이나 자외에 편하게 부를수 있도록 지은 이름을 雅號,別號라고 한다. 호는 대부분이 거처하는곳(所處以號)이나 자신이 지향하는뜻(所志以號), 좋아하는 물건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거처하는 곳이 바뀜에 따라 호가 달리 사용되기도 했으며 좋아하는 물건이 여럿인 경우 호가 늘어나게 마련이었다. 호의 종류에는 아호,당호(堂號), 택호(宅號),시호(諡號)등이 있는데 아호는 문인,학자,화가,서예가등이 풍아(風雅)한 취미를 즐겨 썼고 당호는 본래 집의 호를 말한 것으로 그 집의 주인을 일컫기도 한다. 택호는 벼슬이름이나 출신지를 붙여 그사람의 집을 부르고 시호는 선왕의 공덕이나 재상.학자등의 행적을 칭송하여 임금이 추증하였고 제자나 고향사람들이 지어올린 사시(私諡)가 있다. 아호나 당호의 경우는 뚜렷한 구별없이 혼용되기 일쑤였다. 고려후기 대표적인 문신 이규보의 경우 초기에는 시,술,거문고 세가지를 좋아하여 三酷好先生 이라 칭하였다가 나중에는 구름에 묻혀있는 자신의 처지를 좋아하여 白雲居士로 호를 바꾸기도 했다.
조선후기 秋史 金正喜는 알려진 호만 해도 약500여개가 된다. 이는 김정희가 시, 서, 화에 두루 능하였던 예술인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그 대표적인 호는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선객(仙客),불노(佛奴),방외도인(方外道人)등으로 유, 불, 도, 삼교사상을 망라하는 호를 사용한 것이 주목된다. 퍼온글- |
첫댓글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어떠하신지 궁금합니다.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