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한선성
산성역 - 북문 - 우익문 - 수어장대 - 6암문 - 지화문 -연무관 - 좌익문 - 망월사 - 지수당 - 행궁 - 한남루입니다.
남한산성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의 왕성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2년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 이라는 기록도 있다.
조선 인조 4년(1626년) 중앙부의 본성이 완성 되었고, 병자호란 이후 방어력을 높이기 위하여 동쪽의 봉암성, 한봉성 등을 비롯하여 여러 차 례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인조 14년 청나라가 침략해오자 인조는 이곳으로 피신하여 47일간 항전한 곳이다.
2014년 6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남한산성 옛길 안내도
각 코스별 안내 입간판
동문 가는 길
남한산성의 동문인 좌익문
남한산성 안내문
수어장대
수어장대는 장수가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러 인조 2년(1624년)에 지어졌다. 5개의 장대 중에 유일하게 암아 있는 것이다. 원래는 1층으로 지었던 것이나, 1751년 영조의 명령으로 2층으로 지은 후 외부편액(건물의 명칭)을 '수어장대'라 하고 내부편액을 '무망루'라고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수어장대
수어장대
무망루
매바위
청량단
남한산성의 동남쪽 축성의 책임자로서 억울한 모함으로교수형을 당했던 이회의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이다. 남한산성을 청량산이라고 불렸던데서 기인하여 공식적으러 청량단 이라고 칭한다.
청량단
남한상성 16개 암문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6암문
남한선성의 남문인 지화문
지화문앞 느티나무 보호수
공덕비
천일홍
연무관
군사들의 훈련을 위하여 건립한 곳으로 인조 3년 남한선성을 쌓을 때 함께 지어졌다.
이 연무관은 규모가 크고 육중하며 높은 기단 위에 자리잡고 있어 멀리서도 그 자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연무관
신기전기화차
남한산성 동문인 좌익문
동문 안내문
망월사
남한산성 내에 있는 10개의 사찰중 가장 역사사 깊은 사찰로 망월암에서 유래하였다.
이 사찰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 할 때 한양에 있었던 장의사를 허물고 그곳에 있던 불상, 금자화, 엄경 등을 옮겨 창건하였다.
예 망월사는 일제에 의해 모두 소실되고, 1990년대 현재의 모습으로 예 망월사와 다른 위치에 새로 지었다.
망월사
망월사 일주문
망월사 부처
지수당
현종 13년(1672년) 건립한 정자로 건립 당시에는 정자를 중심으로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만 남아 있다. 정자의 동쪽에는 제 3 연못지로 추정되는 지역은 현재 밭으로 되어 있다.
지수당
남한산성행궁
임금이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행궁이라 한다.
남한산성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인조4년(1626년)에 건립되었다. 실제로 인조 14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정하였다.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이 여주 이천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한남루
남한산성의 정문으로 정조 22년(1798년)에 건립되었다.
남한루의 의미가 한강 암쪽 성진의 누대라 하였다. 한남루 정면과 후면 기둥에 8개의 주련이 걸려있다.
주련(柱聯) : 기둥[柱]마다에 시구를 연하여 걸었다는 뜻에서 주련이라 부른다.
<外面>
守一城講龍虎韜 (수일성강용호도) 한 성을 지킬 용호영에 병법을 강의하고,
鎭百里閱豼貅士 (진백리열비휴사) 백리를 진압할 군대의 군사를 열병한다.
良刺史宣上恩德 (양자사선상은덕) 덕(德)있는 자사는 임금 은덕을 베풀고,
大將軍御下威信 (대장군어하위신) 대장군은 위신(威信)으로 부하 다스린다.
* 용호(龍虎): 인조 때 신설 한 용호영(龍虎營: 軍營의 하나)을 말한다.
* 비휴(豼貅: 貔貅): 사자나 호랑이를 잡아먹을 만큼 강력한 맹수로,
북방의 초원 지역에 살며, 사람이 물리기만 해도 병에 걸린다하며, 임금이
이를 죽이면, 백성이 편안하다는 전설적인 동물의 이름이다.
잘 조련된 강력한 군대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內面>
是地兼繭絲保障 (시지겸견사보장) 이곳은 누에치고 길쌈일도 보장해야하고,
暇日卽雅歌投壺 (가일즉아가투호) 틈이 나는 날엔 사랑노래와 투호를 한다.
縱未能復讐雪恥 (종미능복수설치) 언젠가는 복수하고 치욕을 풀 수 있도록,
恒存着忍痛含寃 (항존착인통함원) 항상 고통을 참고 원통함을 품고 있으라.
* 견사(繭絲): 누에치고 길쌈을 해서 옷감을 마련하는 부업을 뜻한다.
* 아가(雅歌): 큰 까마귀의 노래라는 말인데, 남녀 간의 아름다운 연애를 찬양하는
문답체로 된 노래로, 기원전 2~3세기경에 나왔다 한다
행궁입구 한남루
귀여운 호랑이상
이제 9월이 들어서니 8월 같이 기온은높으나 상대적으로 습도가 낮으니, 그늘에 들아가면 시원한 느낌이 난다.
조선시대 인조가 청태종에게 굴욕적인 패배로 삼전도에서 항복한 곳으로 한 나라의 지도자 및 관련 신하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겪어야 했던 수모와 백성들의 처참함을 되돌아 봅니다..
400여년 전의 조선이 청나라에게서 당했던 역사적 치욕은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그런 상황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역사를 통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하루였습니다.
첫댓글 같은 장소 다른 느낌!
저는 남한산성을 닭백숙 먹을려고, 야경 보러 간 곳인데
이렇게 많은 유적지가 있는지 몰랐어요.
다음에 남한산성 갈 기회가 있으면 꼭 들러야 할 것 같아요.
역사탐방 하며
좋은글 올려주셔 항시 감사히 잘 읽고 있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