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세의 나이로 요절한 가수 김광석 (金光石 1964년 ~ 1996년)은 대구 방천시장 번개전업사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서울로 이전 창신초등학교, 경희중학교, 대광고등학교를 나왔으며,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였고 대광고등학교 시절 합창부로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 1982년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가요를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 1984년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 노찾사 1집에 참여하였다.이후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일반 대중에까지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후1989년 10월 솔로로 데뷔하여 첫 음반을 내놓았으며, 이후 1991년에 2집, 1992년에 3집을 발표하였고, 1994년에 마지막 정규 음반인 4집을 발표하였다. 정규 음반 외에 리메이크 앨범인 다시부르기 1집과 2집을 1993년,1995년에 각각 발표하였다. 1991년부터 꾸준히 학전 등의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하였으며, 1995년 8월에는 1000회 공연의 기록을 세웠다.대표곡으로는 〈사랑했지만>〈바람이 불어오는 곳〉,〈서른 즈음에〉, 〈그날들〉,〈이등병의 편지〉,〈먼지가 되어〉<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이 있다.2007년, 그가 부른 노래 중 하나인 〈서른 즈음에〉는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되기도하였다 그러나 1996년 1월 6일 새벽 돌연 자택에서 전깃줄로 목 매 자살하였고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유서와 우울증이 없는것으로 타살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으나 본인외는 알길이없다 또한 2010년 그가 태어난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 거리'(행정명:김광석다시 그리기길)가 조성되어 350미터의 길에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다양한 벽화와 작품들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이상화 고택 (李相和 古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일제에 항거하는 저항을 기조로 하여 민족의 아픔을 시를 그려낸 저항시인.작가 .독립운동가인 이상화(李相和, 1901년 ~ 1943년)선생 은 대구에서 4형제중 둘째로태어났다 다삿살때 부친을 여의고 1948년 서울 중앙고를 중퇴 하고 18세때 인 1919년 대구에서 3.1운동 거사를 모여 밀정의 추적을 받고 소설가며 "천변풍경"의 작가 이며 시인인 구보 박태원(호세이대 예과중퇴 1909년 ~ 1986년) 선생의 하숙으로 피신 하였다 1921년 "운수좋은날" 의 소설가 현진건(玄鎭健1900~1943)의 소개로 소설가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 1901~1981)와 만나 〈백조〉 동인에 참여했고, 1922년 1~2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그후 작품 활동을 활발히 했다. 시뿐만 아니라 평론, 소설 번역에도 힘썼다.1927년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원 이종암(李鍾巖)사건에 연류 대구경찰서에 수감되기도하였다 1933년 교남학교(지금의 대륜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교가도 작사하였고 약소 민족은 주먹을 잘써야 된다며 권투부를 창살 하기도하였다 .1943년 3월에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대구 자택에서 숨졌는데 이상화의 오랜 친구인 소설가 현진건도 같은 날 경성부에서 장결핵으로 숨을 거두었다.1948년 3월 14일 김소운이 발의하고 이윤수, 구상 등이 참여하고 죽순시인구락부가 협찬하여 시인을 기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시비를 대구 달성공원에 세웠다. 선생의 형제중 독립운동가인 큰 형 이상정(李相定 신한민주혁명당 중앙위원 겸 군사부장, 중국군사령부 중장1897∼1947) 선생 이 있고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이며,서양화가, 독립운동가인 권기옥(국민군 공군소령 1901~1988)은 형수이다 또 사회학자이며,사학자· 독립운동가 .체육인,언론인,작가 인 첫째 아우 이상백(李相佰, 1904∼1966)선생이 있고,막내 아우 이상오(李相旿, 1905년~ 1969년) 선생은 대한민국의 정통 수렵가, 문필가, 저술가, 사격인, 바둑 유단자이다. 중구 계산동 계산성당 오른쪽 방향으로 10여분 걷다보면 이상화고택이 보인다
3/23일 오전 9시 대구에사는 엣 사업상 도움을 주었든 지인이 7년만에 연락이왔다 그저 보고싶다는 것이다 짜다리 잘 해준적도 없는데 아마도 나이가 들어가니 정(情)이 무척 그리웠든 모양이다 ...당장 대구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 아니 차! ‘그간 대구 근대화 골목과 김광석 길을 가보고 싶은지라’사전 역사탐방을 제의한후 바로 11시 Ktx에 몸을 실었다 동대구역에서 만나자 말자 김광석 거리부터 가자하여 해방후 만주와 일본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신천 변에 난전을 내기위해 시작된 방천시장 을 거쳐 김광석 거리`~ 약령시~ 구 제일 교회~ 계산 성당~이상화 고택 ~ 서상돈 고택 ~ 이상정 고텍~ 3,1만세 운동길계단 ~ 동산 의료 선교박물관 ~선교사 주택 ~ 청라언덕을 거치는 약 3시간의 너무나 값진 대구 근대화 투어를 탐방하였다 세상에! 대구 중심 번화가인 중구 동아,현대 백화점 부근에 우리 역사의 족적(足跡)들이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