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탐방 50-대전 "성심당" 빵집
11월20일 영천에서 대구로 가서 대구에서 KTX로 대전역에서 Arizona에 사는 동문 김문국 조카만나 김문국 누님집에 가서 누님 만나뵙고 대전의 명소 "만나당"에서 저녁을 먹고 성심당 빵집으로 갔습니다.
성심당(誠心堂)은 1956년 대전역에 시작된 대전의 자부심을 자부심과 자랑으로 향토기업으로 성장된 명소입니다.
대전역에 가면 사람마다 성심당 빵 종이가방을 쉽게 눈에 뜁니다. 전국에서 대전에 왔다가는 사람은 성심당 빵을 사가지고 가는것을 봅니다.
비프렌차이즈 전국제과점중 매출1위로 전국 3대빵집중 가장 인지도가 높습니다. 미술랭 소개된 적있는 빵집으로 대기업중심 프랜차이즈 제과점업계 경쟁에 지고 1997년 외환위기라는 대폭탄에 맞아 도산할 뻔한다가 극적으로 부활해 은행동 일대 6개의 지점을 보유할 정도로 잘 나가는 지역 자영업계의 대표적인 모범업체입니다.
워낙 유명한 장소이다 보니 대전시민들도 대전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성심당을 꼽는 사람이 많습니다. 2017년 대선때 SBS 선거방송 "2017 국민의 선택"에서 성심당에서 빵을 사기위해 줄선 사람들의 모습이 대전의 상징배경으로 나왔습니다. 대전역에 내리면 다음코스는 성심당일 정도입니다.
성심(誠心,Sacred heart)이라는 이름에도 짐작하듯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창업자 임길순 암브로시오가 1956년 대전역 앞에 찐빵집을 차리면서 시작됐습니다.
고향이 함경남도 함주군 인 창업자 임길순 암브로시오는 흥남 철수때 월남해 경상남도 거제시와 진해구를 거쳐 1956년 생계를 위해 가족을 데리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가 열차고장으로 대전에 내리게 되었다.
대전에 얼떨결에 정착하게 된 채 살길이 막막해 찾은 천주교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 성당에서 주임 오기선 요셉신부가 밀가루 2포대를 내어주는데 그 밀가루를 본인가족을 위해 모두 소비하지않고 찐빵을 만들어 대전역 앞에 천막을 치고 찐빵장사를 시작한것이 성심당의 시작입니다.
본점앞에는 늘 줄서있습니다.
초대 창업주시절부터 "당일 생산한 빵은 당일 모두 소진한다"라는 원칙이 있어 따라서 팔다가 남은 빵이 있으면 전쟁고아나 노숙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빵기부는 지금까지 이어져와 성심당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지역민들에게는 윤리적경영의 우호적인 이미지로 형성하므로 '절대 오래된 빵은 팔지 않는집'으로 신뢰도 함께 쌓아갔습니다. 어떤날은 워낙 빵이 잘 팔려 남은빵이 기부하기 부족하면 빵을 더 만들기도 한다고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튀김소보로 이곳의 인기 빵입니다. 한쪽은 바싹바싹하고 내부는 부드럽습니다.
1987년6월10일 항쟁 시위로 인해 팔지못한 빵을 시위대와 전의경들에게 나누어주었다가 시위대동조세력으로 지목되어 사장이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시위대 진압에 동원되었던 전경들이 "우리도 그빵 먹었어요"라고 해명하면서 무마되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현재의 은행동 본점도 중앙로가 허허벌판이었던 시절 "성당 옆에 가게를 지어야한다"라며 다른사람들의 만류에도 창업주가 고집한 위치라고 합니다.
빵을 기부하는 등 윤리적인 경영을 하는데에도 카돌릭이념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성심당입니다.
2005년1월22일 화재로 1~3층이 불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고 공동경영자인 김미진이사가 가게를 접으려고 생각하였으나 직원들이 직접 비교적 쓸만한 기계들을 수리하고 청소하는것을 보고 복구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2014년에는 프란시스코 교황 방문당시 프란시스코 교황이 KTX로 이동하며 아침식사를 이곳의 빵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창립60주년 맞이하여 프란시스코 교황은 자신의 친필 사인이 저혀진 대 그레고리오 교황 기사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물론 교황의 식사를 책임진것에 대한 보답은 아니고 60년이 넘게 불우한 이웃에게 빵을 기부한 카톨릭정신을 인정한 것입니다.
2015년 한해 매출이 4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군산의 이성당과는 다르게 대전 이외 지역에는 점포확장을 하지 않습니다.
최근 본점위치가 대전야구장과 가깝기 때문에 야구경기 열리는 날 한화이글스를 비롯한 나머지 9구단 유니폼을 착용하고 방문하면 튀김소보로 1개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