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길이 찾고 싶어지는 날
박두흥
집을 나섰다. 숲과 문화반에서는 1학기 종강을 겸한 답사여행으로 1박2일간 변산반도와 서천 국립생태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하늘은 비라도 쏟아질 듯 흐렸으나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자동차 엔진소리는 경쾌하다.
‘여행자! 나는 이 말을 사랑한다.’는 소로우가 생각난다. 그는 인생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여행이라고 한다. 개인의 역사란 결국 어디에서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이다. 이미 다져진 길 말고 새 길이 문득 찾고 싶어지는 날, 먼 길을 떠난다.
서너 시간을 달려 내소사에 도착한다. 능가산 품속에 살포시 안긴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 스님이 창건한 고찰이다. 원래 이름은 ‘소래사’였으나 나중에 ‘내소사’로 바뀐다. ‘여기 들어오는 모든 것이 다 소생되게 해 달라‘는 원력을 담고 있다.
전에도 와볼 기회가 있었으나 오늘에야 첫걸음을 한다. 첫선을 보는 심정으로 일주문을 지나자 곧장 전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양쪽에 길게 늘어선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푸르다. 침엽수 특유의 향이 코로 스며든다. 마음이 맑아진다. 바닥에는 고운 모래가 깔려있어 맨발로 걷는 사람들의 걸음에 활기가 넘친다.
천왕문에 다다른다. 목조 사천왕 불사를 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알고 보니 우람하고 험상궂은 사천왕이 아니라 플라스틱 인형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천년고찰로는 너무나 의외의 모습이다. 어서 불사가 끝나 제 모습을 찾길 바란다. 안에는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시야를 가리고 섰다. 스마트 폰 사진기로는 한 번에 담을 수가 없어 조금 뒤로 물러선다. 기록에는 수령이 천 오백년으로 되어있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봉래루를 지나 절의 안마당으로 들어선다. 3층 석탑 뒤로 정면3칸, 측면3칸의 대웅보전이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고색창연한 자태와 처마의 화려한 나무장식, 천 년을 지탱해 준 배흘림기둥, 국가의 보물(291호)로서 손색이 없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 인조 때 청민 선사가 중창하였다. 대웅전의 외부는 단청 하지 않았으나 꾸밈없는 모습이 오히려 당당하다. 겉과는 달리 내부의 단청은 아름답다 못해 신비스럽다. 용틀임하는 대들보와 우물정자의 천정에 상서로운 기운이 감돈다. 관음조가 아니고 사람이 그렸다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 모란과 연꽃, 국화를 조각한 문살이 화려하다. 바깥에서 본 꽃문양이 내부에서 보면 단정한 마름모꼴 그림자만 비친다.
불단 뒤 벽면에는 거대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다. 벽화를 올려다본다. 자비로운 보살님의 시선과 내 눈이 마주친다. 그걸 바라보고 정성으로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합장을 하고 눈을 감는다.
채석강은 변산반도의 가장 끝에 위치한 해안가 층암절벽이다. 이름은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에 취해 강물에 비친 달을 붙잡으려다 빠졌다는 채석강에서 유래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인근 식당에서 바지락전복죽으로 허기부터 면한다. 전복의 쫄깃한 식감과 바지락의 향긋한 갯내음이 입맛을 돌게 하는 별미다. 인정 많은 주인장의 푸짐한 대접에 배가 불러온다.
식사 후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바닷가로 향했다.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이었지만, 썰물 때라 바다는 저만치 물러가 있고, 주상절리 기암괴석들이 울퉁불퉁 근육질의 몸매를 드러낸다. 풍랑과 해수에 의해 깎이고 다듬어져 주변 산림과 함께 절경을 이룬다. 천천히 걸으며 절벽아래까지 다가간다. 어느 틈에 일행들 사이에서 바다를 노래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물때를 잘 맞춰 와서 채석강의 진면목을 마음껏 즐긴다.
다음 행선지인 선유도는 무녀도·신시도·갑리도·방축도·말도 등과 함께 고군산 군도를 이루며, 군도의 중심 섬이다. 본래는 3개로 분리되었으나 중앙에 긴 사주가 발달하여 하나로 연결되었다. 고려 때 최무선(崔茂宣)이 왜구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진포 해전기지였고, 임진왜란 때 함선의 정박기지이며 해상요지였다고 한다. 지금은 선유도, 장자도, 무녀도가 다리로 연결되어 육지처럼 오갈 수 있다.
아직은 본격적인 피서철이 아니어서 섬은 한산했다. 섬 가운데 짚라인 탑승장 시설이 흉물처럼 서있다. 위치가 그뿐이었는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어느새 일행들은 바닷가로 나가 백사장을 걷는다. 중앙에 길게 펼쳐진 명사십리는 선유8경의 하나다. 그 길이는 2㎞ 정도로 경사가 완만하며 물이 맑고 모래가 부드럽다. 이곳에 낙조가 지면 선유도의 하늘과 바다는 온통 불바다를 이룬다고 한다. 아쉽게도 하늘은 잔뜩 찌푸려있다. 가랑비까지 내린다. 명사십리 모래밭을 걷는 것으로 만족하고 장자대교를 건넌다.
새만금 방조제는 군산, 김제, 부안을 잇는 총길이 33km로 달리고 또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과연 세계 제일의 방조제답다. 중간지점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차를 멈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새만금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새만금(새萬金)'이란 명칭은 김제·만경 방조제를 더 크게, 더 새롭게 확장한다는 뜻이다. 예부터 金堤·萬頃평야를 ‘金萬평야'로 일컬어 왔던 ‘금만'이라는 말을 ‘만금'으로 바꾸고 새롭다는 뜻의 ‘새'를 덧붙여 만든 신조어다.
대규모 갯벌을 매립함으로써 갯벌 생태계 파괴, 수산 자원의 고갈, 해양 오염의 증가 등 여러 가지 환경 문제가 발생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국가의 백년 사업이니, 잘 진행되어 이 나라와 백성에게 큰 복덩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다시 선유도로 들어가 꽃게탕으로 저녁을 먹고 해가 서쪽 바다로 넘어갈 무렵에야 서천으로 향했다. 섬을 거의 벗어났을 무렵 기대했던 선유낙조는 얄밉게도 짙은 구름사이로 얼굴만 살짝 내밀며 우리를 배웅한다.
길이가 2km나 되는 금강하구둑을 지나 날이 어두워져서야 국립생태원에 도착했다. 정문에서 출입문제로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야간에는 옆 경비실로 가서 출입 절차를 밟아야 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같은 정문은 불이 꺼져있고 길은 가로대에 막혀 있어서 당황 했다. 다행히 그 소동을 알고 나온 직원 덕분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주반장이 예고한 대로 새벽 산행을 했다. 언제나 씩씩하게 앞장서서 가던 주반장은 허리가 아프다며 걸음걸이가 영 시원치 않다. 이번 여행을 기획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불편함을 감수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포장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니 ‘제인구달 길’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영장류 학자이며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의 방문을 기념하여 산책길을 조성하였다는 안내문을 읽는다.
오솔길은 생활관 뒷산으로 이어진다. 제인 구달 박사가 아프리카 곰베 밀림에서 사용한 것과 비슷한 텐트를 비롯해 침팬지 둥지, 도구를 이용해 일개미들을 낚시해 먹는다는 흰개미굴 모형 등이 재현되어 있다.
아침 산책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전날 저녁 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며 소통의 시간을 가졌던 우리였지만 새벽 산책에 빠진 사람은 없었다. 하루 밤이면 만리장성도 쌓는다고 했던가. 일행들 간의 보이지 않는 거리감도 많이 좁혀진 느낌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약속된 장소로 갔다. 인정 많은 동네 아저씨 같은 정박사께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그는 생태원의 부원장이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어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와주었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국립생태원은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연구, 생물 종 확보와 보전, 대국민 환경교육과 지속가능한 지역발전 도모를 목적으로 지난 2007년 9월부터 6년간의 준비 끝에 2013년 12월 27일 개원했다.”며 생태원의 내력을 소개한다.
이어서 정박사는 손수 우리를 체험장으로 안내한다. 박교수와의 친분이 고맙다. 인공으로 조성된 폭포를 돌아 언덕길로 올라가니 여기저기 바위들이 배치되어 있고, 이름표를 단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곳은 습지 환경에 적응한 식물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 한다. 조성 기간이 짧았는지 풀과 나무들이 뿌리 내리지 못해 아직은 어설픈 느낌이 든다. 습지 환경을 조성하기 전에 이곳이 알맞은 곳인지 부터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았을까?
언덕에서 전체를 조망해 본다. 숫자만으로는 어림잡기 어려웠던 생태원의 규모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독특한 형태의 건물이 보인다. 본부 건물인 ‘에코리움’이다. 이곳에는 기후대별로 열대관, 사막관, 지중해관, 온대관, 극지관 등 5개의 전시관이 있다. 각 전시관에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자라고 있으며 생태계에 관한 교육과 체험이 가능하다. 그 주변에 규모가 큰 온실들이 있다.
정박사의 안내를 받으며 산길을 한참 걸어가니, 갈대가 우거지고 새들이 노니는 호수가 나타난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조용하고 물이 맑았다. 그 너머 숲속에 오두막이 한 채 눈에 들어온다.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작고 예쁜 집이다. 길은 이 집을 향해 구불구불 연결되어 있다. ‘소로우 길’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생태주의 사상가이자 환경운동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를 기리기 위해 그가 살았던 월든 호수가의 작은 집을 재현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소로우의 숲 속 생활은 어떠했을까. 그의 저서 ‘월든’을 찾아 따라가 본다.
그에게 아침은 깨어나는 시간이다. 아침마다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보았으며, 호수에서 목욕을 하고 명상에 들었다. 오전의 남는 시간에는 농사를 지었다.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때가 되면 김을 맸다. 그 일이 끝나면 샘물 근처의 나무 그늘에서 점심을 먹고 책을 읽었다. 옥수수 가루에 호밀가루를 섞고 소금으로 간을 해 구운 빵으로 허기를 채웠다. 영혼의 허기는 동양과 서양의 고전들로 달랬다. 오후에는 거의 날마다 산책을 했다. 월든 주위의 숲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숲의 소리'를 듣고 나무를 보면서 숲과 호수의 여러 동물들을 관찰했다. 밤이 내리면 숲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등잔에 불을 밝히고 일기를 썼다. 소로우는 생생한 삶과 맞닿아 있는 그 글들이 자신을 여물게 한다고 느꼈다.
소로우 길을 걷는 동안 일행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아파트 생활에 식상해 있을 현대인이라면 한번 쯤 소로우가 되어 전원에 방 한 칸 딸린 작은 집을 짓고 무애무욕의 생활을 꿈꿔보는 것도 좋으리라.
에코리움 입구에는 여러 개의 대형 화분이 놓여있고 열대식물이 자라고 있다. 정박사와는 거기서 헤어진다. 중요한 업무를 뒤로 미루고 우리를 위해 아까운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다시 안내원을 따라 에코리움 내부 전시관으로 들어간다. 기후대별로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는 전시관을 돌아보면서 식물들도 동물만큼이나 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한다. 식충식물들의 종류가 그렇게 다양한 것에 놀라고, 도저히 생명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막에도 다양한 동식물들이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하며 살고 있음도 배운다.
1박2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우 긴 시간을 여행한 기분이 든다. 그만큼 이번 여행길이 알찼음이 아닐까. 새 길이 찾고 싶어지는 날, 먼 길을 떠났던 우리는 저마다 한 아름씩 깨달음을 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첫댓글 아름다운 글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