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측 주장
이 군도는 1885년 오키나와에 살던 후쿠오카 현 출신 사업가 고가 다쓰시로(古賀辰四郞)가 발견한 뒤 일본 정부가 무주지(無主地)임을 확인하고 1895년 1월 14일 오키나와현에 정식 편입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 정부가 대만과 펑후 제도(澎湖諸島)를 포기하였음에도 이 군도를 미국이 류큐 열도의 관할 안에 두고 통치한 것은 이 군도가 대만이 아닌 류큐 열도의 섬과 암초들이기 때문이다.
류큐 열도가 미국으로부터 반환될 때 이 섬들도 류큐 열도와 같이 반환되었으므로, 이 군도는 일본 영토이다.
중국측 주장
1863년에 작성된 지도(皇朝一统舆地全图)에 이미 이 군도는 중국 푸젠성(福建省)에 부속한 댜오위타이 군도(釣魚台群島)로 표시되어 있던 중국 영토이다. 중국 영토였던 이 군도를 1895년 청일 전쟁 와중에 일본 제국이 무주지(無主地)라며 자국 영토로 강제편입시킨 것은 불법이며, 당연 무효다.
이 군도는 과거 푸젠성에 속했던 타이완성의 부속도서이다.
대만 반환 이후에도 미국이 이 군도를 중국측에 반환하지 않고 류큐 열도의 관할 안에 두고 통치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회의에 중국이 초청받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로, 중국측은 이 섬들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점거를 승인한 적이 없다.
일본이 이 군도를 센카쿠 제도라고 표기하기 시작한 것은 청일 전쟁이 종결된 이후이며, 그 이름 역시 1884년 영국 해군이 붙인 '피너클 제도'에서 본뜬 것이다. 군도 중 가장 큰 섬의 이름을 우오쓰리섬으로 한 것도 중국명 댜오위섬에서 본뜬 것이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