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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50 싱글 돌싱클럽 / 여행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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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유 게 시 판 ┐ └ 좋 은 글 32. 마지막 한명까지 전사했다(황석산전투)
시리 추천 0 조회 60 24.03.13 15:53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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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3.13 22:26

    첫댓글 주요사항 보충 ~
    일본측과 국내의 뿌리깊은 일부 불순분자들은 황석산 전투중 사라진 약 3만~ 3만 5천의 왜군들이 서로 군공을 다투다가 아군끼리 전투가 벌어져 대량살육되었다고 한다 ..
    그럼에도 책임있는 왜장이 딱히 처벌받았다거나 그런 것은 없으며 그러한 기록을 내 눈으로 본적도 없다
    설사 기록이 존제한다고 해도 이미 진주성을 출발하여 두 차례 군사를 나눠보낸후 황석산의 조선군과 전투중 자기들끼리 편을 먹고 한쪽을 몰살시켰다는 것은 억만븐의 일 가능성도 없다고 할수있겠다

  • 작성자 24.03.13 22:08

    이원익은 이순신과 긴밀히 연통을 유지하며 수군의 전쟁수행을 위한 최선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수군의 육상 배후를 방비하였던 전라도 제찰사였다

  • 작성자 24.03.13 22:28

    진주성 지원으로 병력이 크게 결원되자 황석산 전투를 선제적으로 대비하여 증원군을 보낸 이도 전라도 제찰사 이원익 이었다

  • 작성자 24.03.15 21:17

    동래성 김해성이 절딴난지가 언제이고 왜군의 보급과 지원이 매일 상륙하는 김해의 목사나 부사 군대가 어데 있었다고 전라도 내륙의 성이었던 황석산성에 그것도 8도 도원수 권율장군도 아닌 전라제찰사 이원익의 명으로 김해성의 관군이 황석산에 증원군으로 갔다는 이 따위 거짓 게시물을 누군가가 올려놓았다 요즘 황석산성이 멸실된 성곽 일부를 복원했던데 전라도 내륙이었다는 사실을 가리고 경상도 고착을 호도하려는 저의가 드러나는 낭설이라고 봐야 맞고 따라서 김해부사가 식솔과 함께 황석산성에서 탈출했다는 것은 허위사실 이어서 생존자 전무하였다

  • 작성자 24.03.13 22:41

    이이구 게을러 터진 호남인들 속터진다 속터저 아 나뿐인가...!

  • 작성자 24.03.14 06:28

    이순신의 수군을 존제할수 있게 한 바탕은 전라절제사 이원익의 절대적인 병력과 군수 병참지원이 있어 가능했고 원균장군의 경상좌수영과 이순신의 삼도수군통제영이 한동안 통영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해서 진주성 전투 이전부터 호남병력이 대거 진주성에 입성해 있었고 군수지원의 상당부분을 호남으로 부터 받아 일이차 전투들을 치러냈다 그러나 진주성의 함락으로 3도수군통제영이 한산도로 되돌아가 자리하게 된다~ 회원수가 8천이면3~4천분은 읽어주셔야.두 다리로 직접 높은산에 올라 돌아보고 실제를 찾고 느낀 사실들을 복기해 쓸만한 의욕이 생길거 아닙니까 ~?

  • 24.03.15 11:50

    가입인원은 8천명 200명정도만 활동중이라고 되엇지만 ...
    잘읽었습니다

  • 작성자 24.03.15 12:43

    그러게요 만사가 귀찮은 시기인가 봅니다 생각건대 20~30분 정도 봐주시는 거 같고 정독해주시는 분은 서너분 정도일 듯 싶어요 남루한 거지만 중복클릭 불허로 설정하고 반수 회원님은 봐주셔야 자작하는 보람이 있을 거인대 ~ 감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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