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인천향교(仁川鄕校) 추기석전제(秋期釋奠祭)
금년(2022년)은 공자님이 태어나신 해로 보면 공기(孔紀) 2573년으로, 인천향교에서는 9월 28일에 추기석전대제(秋期釋奠大祭)를 올렸는데 황공하게도 참례하는 행운을 잡아 기록으로 남겨본다.
인천향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터넷에서는 건립시기가 조선시대로 추정된다고 하며 정확한 연도가 기록되지 않았는데 인천향교의 자료를 보면 최초건립시기가 고려인종 5년(1127)이라 추정되지만 구전(口傳)으로 전하는 내용이고 정확한 문헌(文獻)은 없다고 한다.
인천향교는 인천시 미추홀구(彌鄒忽區) 매소홀가(買召忽街)에 위치한 인천시 문학동(文鶴洞) 문학산(文鶴山) 기슭에 위치하는데 우선 건물의 배치부터 약술해 본다.
※미추홀(彌鄒忽)과 매소홀(買召忽)은 신라(新羅)시대 인천을 부르던 지명(地名)이다.
인천향교(仁川鄕校)는 문학산 기슭 맨 위쪽 가운데 대성전(大成殿)이 있고 좌우에 동무(東廡)와 서무(西廡)가 있는데 성현(聖賢)들의 위패(位牌)를 봉안(奉安)하고 제례(祭禮)를 올리는 제향공간(祭享空間)이다.
10여 계단 아래로 내려오면 작은 마당이 있고 좌우에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그리고 아래쪽에 잇닿아 명륜당(明倫堂:敎室)이 들어서 있는데 유생(儒生)들이 공부하던 전교(典校)님의 강학공간(講學空間)이다.
동재(東齋)는 양반 자제들이 기거하던 방이고 서재(西齋)는 평민자제들이 기거하던 방이라고 하며, 명륜당과 맞붙어 재실(齋室)이 있는데 이곳은 제례(祭禮)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인천향교는 비교적 단출한 구조이지만 주요 건물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다.
작년의 추기석전제도 참관했었는데 코로나(Covid-19)로 인해 극소수의 제관들만 참여하고 일반 관광객도 일체 금지하여 초간소(超簡素) 제향고유제(祭享告由祭) 형식으로 치러졌는데 제관 15~6명이 전부였다.
그러나 금년은 크게 성대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절차를 엄숙히 준수하고 일무(佾舞)까지 빠뜨리지 않았으며 초헌관(初獻官)으로 인천 미추홀구 구청장(區廳長) 이영훈(李泳勳)님, 아헌관(亞獻官)은 미추홀구 의회의장(議會議長)인 배상록(裵相錄)님, 그리고 종헌관(終獻官)은 장의(掌議)이신 장기빈(張基彬) 님이 맡았고 제례(祭禮) 진행자(司會者)인 집사(執事)는 향교 사무국장(事務局長) 이제만(李濟滿)님, 이 모든 제례의 총책임을 맡은 봉행위원장(奉行委員長)은 제26대 전교(典校)인 성기민(成耆敏)님이셨다.
제례를 봉헌하기 전 간략한 참례자(參禮者/奉獻者) 소개가 있었다.
최승원(대축관) 장의, 신건범 장의, 성기민 전교 / 구청장 소개 / 의회의장 소개 / 이제만(李濟滿) 집사(執事)
제례의 봉행(奉行)을 순서대로 약술(略述)해 본다.
제관(祭官) 입장 / 진설(陳設-다례상 차리기) / 고축(告祝) / 관세위(盥洗位-손 씻는 곳)
사배(四拜) 올리기 / 폐백(幣帛) 올리기 / 격고(擊鼓-시작) / 망예(望瘞:燒紙-끝맺음)
<봉행(奉行) 차례> 집사(執事:司會者) - 향교 사무국장(事務局長) 이제만(李濟滿)
- 시보격고(時報擊鼓) : 시작을 알리는 북 울리기 -
1. 영신례(迎神禮) - 집례자(執禮者)들은 4배(四拜)하고 모든 참례자들은 일어서서 머리를 수그린다.
2. 전폐례(奠幣禮) - 초헌관(初獻官:미추홀구청장 李泳勳)
◆관수(盥手) - 헌관(獻官)은 관세위(盥洗位)에 나아가 손 씻기
<대성전(大成展)으로 들어가 가운데 공자 위패(位牌) 앞에 나아가>
◆봉향(奉香) - 삼상향(三上香) - 화로에 향을 넣어 사르기
◆독축(讀祝) - 축문(祝文) 낭송(朗誦)
3. 초헌례(初獻禮:初獻官) : 대성위(大聖位:孔子)와 4성위(四聖位:顔子,曾子,子思子,孟子)
◆궤향(饋香) - 술(祭酒) 올리기(封爵)
◆독축(讀祝) - 축문(祝文) 낭송(朗誦)
4. 아헌례(亞獻禮:亞獻官-미추홀구 의회의장 裵相錄) : 5성위(五聖位)
◆궤향(饋香) - 술(祭酒) 올리기(封爵)
5. 종헌례(終獻禮:終獻官) : 5성위(五聖位)
◆궤향(饋香) - 술(祭酒) 올리기(封爵)
6. 동서종향분헌례(東西從享分獻禮:分獻官) - 한국 18현(十八賢)에 잔 올리기(封爵)
◆봉향(奉香) - 삼상향(三上香) - 화로에 향을 넣어 사르기
◆궤향(饋香) - 술(祭酒) 올리기(封爵)
7. 행음복(行飮福) 수조례(受胙禮) - 초헌관(初獻官)
◆행음복(行飮福) - 술을 따라 복(福)을 마시는 절차(飮福)
◆수조례(受胙禮) - 제사 올린 고기를 맛보는 절차(受胙)
◆독축(讀祝) - 축문(祝文) 낭송(朗誦)
8. 철변두(徹籩豆)
◆철변두(徹籩豆) - 다례상 정리하기(치우기)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 놓는다.>
◆독축(讀祝) - 축문(祝文) 낭송(朗誦)
9. 망예례(望瘞禮:燒紙)
◆망예(望瘞:燒紙) - 축문(祝文)을 불사르는 절차
※이상이 간략하게 정리한 제례순서이고, 제례에 맞추어 무용단이 일무(佾舞)를 추었는데 간략히 소개해 본다.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과 일무(佾舞)>
왼손 약(籥:피리), 오른손 적(翟:꿩), 진현관(進賢冠) / 왼손 간(干:방패), 오른손 척(戚:도끼), 피변관(皮弁冠)
일무(佾舞)는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에 맞추어 제례의 순서에 따라 각각 다른 형태의 춤을 추는 것을 말하는데 매우 단아하고 우아한 제례무용(祭禮舞踊)이다.
두 가지 소품을 바꾸어 들고 줄(列)을 맞추어 추는데 줄의 수에 따라 2일무(二佾舞), 4일무(四佾舞), 6일무(六佾舞), 8일무(八佾舞)가 있고, 최소 8명에서 64명까지도 있다.
향교 일무단(佾舞團)은 4일무, 16명으로 제법 연세가 드신 여성들로 구성되었는데 보기에 매우 좋았다.
일무(佾舞)는 제례의 내용에 따라 모자(帽子)와 손에 들고 추는 소품(小品)을 바꾸는데 이때 사용하는 음악이 문묘악(文廟樂)으로, 제례의 절차에서 영신(迎神)·전폐(奠幣)·초헌(初獻)에는 문무(文舞)를 추는데 홍주의(紅周衣)에 남사대(藍絲帶)를 띠고 진현관(進賢冠)을 쓰며, 아헌(亞獻)·종헌(終獻)에는 무무(武舞)를 추는데 홍주의(紅周衣)에 피변관(皮弁冠) 차림으로 춤을 춘다. *약(蘥:피리)과 적(翟)는 문무(文舞), 간(干:방패)과 척(戚:도끼)은 무무(武舞)를 출 때의 소품이다.
문무(文舞)에는 정대업(定大業)을 연주하고 무무(武舞)에는 보태평(保太平)을 연주하는데 우리나라 정통(正統) 국악(國樂)인 정대업(定大業)과 보태평(保太平)은 세종대왕(世宗大王)께서 하루 저녁에 직접 만드신 곡이라고 하며, 후일 많이 손을 보았다지만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여러 곡의 집합이다.
세종 이전에는 중국 송(宋)나라의 대성아악(大晟雅樂)이 들어와 제례 때 사용되었는데 약칭 아악(雅樂)이라 불렀는데 이는 중국음악이다.
제례 끝난 후 기념촬영 / 강정원 23대 전교님과 김석중 장의(掌議)
※10여 년 전, 김석중(金錫中) 장의님과 나는 강정원(姜汀遠) 전교님 밑에서 함께 한학을 공부했다.
<제례참례자들 복색>
검은색 - 대헌관(大獻官) 5, 대축관(大祝官), 당상집례관(堂上執禮官), 전사관(典祀官), 묘사(廟司), 알자(謁者), 찬인(贊引) 등 제례를 직접 이끌어가는 분들
붉은색 - <남성> 당상관 정3품 이상(전교, 유림회장 등)
<여성> 일무팀, 안내, 관세(盥洗) 담당,
푸른색 - 수석장의(首席掌議) 장의(掌議)<사대부 유림>
▼廟司- 鄕校를 관리하는 사람 ▼謁者- 윗사람에게 알현(謁見)을 청하는 사람 ▼贊引- 집사(執事)를 안내하는 제관
▼掌議- 향교의 재임(齋任) 가운데 으뜸
제향이 끝난 후 명륜당 앞 잔디밭에 식탁을 둘러놓고 향교에서 마련한 식사를 제공했는데 총인원이 7~80명은 되었을 터인데 전원에게 무상으로 중식을 제공하였다.
예전의 스승님인 강정원(姜汀遠) 전교(典校)님을 모시고 귀빈석에서 식사를 했는데 다양하고 맛깔스러운 음식은 물론, 다양한 반주(飯酒)까지 제공하여 식사를 하는 내내 감사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