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와 사랑의 종류 / 김종환

밸런타인데이와 사랑의 종류 /김종한 교수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Valentine’s Day)이다. 매년 이 날을 맞으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선생님과 친구들을 위해 카드와 초콜릿을 준비하던 일이 생각난다. 밸런타인데이는 3세기 로마의 박해 하에서 활동하다가 269년 2월 14일에 순교한 밸런타인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에 관한 전설 가운데, 결혼이 금지된 기독교인 병사들을 위해 주례를 섰다는 이야기, 감옥에 있을 때 간수의 눈 먼 딸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는 이야기, 처형 당하기 직전에 간수의 딸에게 작별편지를 쓰고 “Your Valentine(당신의 밸런타인)”이라고 서명했다는 이야기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를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고 하고, 3월 14일 화이트데이는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주는 날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에 부부, 부모자녀, 연인, 친구, 동료 사이에 남녀노소 상관없이 카드, 초콜릿, 또는 선물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미국에 사는 이민자의 자녀들은 영어의 특성상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남용하고 오용한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엄마아빠도 사랑하고, 강아지도 사랑하고, 운동도 사랑하고, 아이스크림도 사랑한다. 그러나 헬라어(그리스어)는 사랑의 대상이나 종류에 따라 사용되는 단어가 다르다. 헬라어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다섯 개만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에피투미아(Epithumia)는 육체적인 사랑으로서 정욕 또는 탐욕적인 애착을 말한다. 이것은 동물적인 사랑으로서 짐승 같은 행위를 낳는다. 대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에피투미아는 모두가 최대한 멀리해야 할 사랑이다. 둘째, 에로스(Eros)는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감성적인 사랑이다. 저절로 끌리는 사랑이기 때문에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눈길이 마주쳐 불꽃이 일면 케미가 터지고 사랑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하라고 해서 하고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다. 오히려 주변에서 반대할수록 더 강열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에로스에 빠진 청춘 남녀를 강제로 떼어놓으려 할 때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에로스 사랑은 이기적이어서 주는 것만큼 또는 그보다 더 많이 받기를 원한다. 독점적이라서 제삼자와 나눌 수 없다. 또한 충동적인 특성이 있으므로 해악을 낳지 않기 위해 적당한 한계를 정해 놓을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에로스 사랑은 전성기에는 뜨겁다가 권태기를 만나면 식어진다. 유행가에 나오는 사랑은 대부분 에로스이다. 셋째, 필리아(Philia)는 이성적인 사랑으로서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좋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고, 친구들 사이의 우정을 뜻한다. 공통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에로스가 연인들이 서로 마주보며 서로에 대한 관심에 몰두하는 것이라면, 필리아는 서로 나란히 서서 같은 것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는 것이다. 넷째, 스톨게(Storge)는 감성적이며 동시에 이성적인 사랑으로서 동기간의 우애를 말한다. 가족과 친척들이 서로를 신뢰하며 보호하는 사랑이다. 스톨게 사랑은 시간이나 공간, 상황이나 조건을 초월하여 지속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다섯째, 아가페(Agape)는 의지적인 사랑으로서 돌봄의 행동으로 표현된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보고 그것을 해결해주려는 사랑이다. 결혼식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겠습니까?”하는 질문과 “예”라는 대답이 곧 서로를 향한 아가페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타인을 위해 자기를 기꺼이 희생하는 이타적인 사랑이다. 따라서 혈육이나 친지 또는 낯선 사람, 누구나 아가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아가페는 의지적이기 때문에 명령이 가능한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은 아가페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에피투미아와 에로스는 명령에 따라 조절할 수 없다. 그와 같은 사랑은 마음이 저절로 끌리는 것이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이다. 필리아도 마찬가지다. 우정은 함께 활동하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깊어진다. 또한 스톨게는 혈연관계에 따른 사랑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끊고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가페 만큼은 의지적으로 시작할 수도 있고 끝낼 수도 있다. 따라서 아가페하라고 지시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부부의 백년해로는 에로스와 필리아와 아가페를 필요로 한다. 결혼생활의 시작을 위해서는 우선 에로스가 있어야 한다. 상대의 매력에 끌려 데이트를 하게 되고, 데이트는 결국 두 연인으로 하여금 결혼에 이르게 한다. 결혼생활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에로스는 사라진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거나 손끝만 스쳐도 전기가 흐르거나 하지 않는다.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자녀양육, 저축, 주택 마련, 노후대책 등의 공통의 관심사를 함께 추구한다. 그렇게 하면서 필리오가 돈독해지고 서로 닮아간다. 그러나 부부관계를 평생토록 유지시키는 것은 아가페이다. 결혼생활이 지루하고 짜증 나고 실망스러울 때라도 부부를 묶어 두는 것이 곧 아가페이다. 아가페는 헌신과 희생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밸런타인데이는 사랑의 날이다.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과연 누구에게 어떤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기에 좋은 날이다. 이민자들 모두가 에로스와 필리아와 아가페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매일매일을 밸런타인데이로 만들어가면 좋겠다. <ul style="list-style-type: disc;" data-ke-list-type="disc"><li> </li></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