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게 보내 드려 보실런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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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밭 파 엎기
素欣 이한배
“여보 오늘 김장밭 좀 파줘요”
태풍이 지나가는 틈새에 햇볕이 따가운 데 아내가 김장밭을 파 달라고 한다. 밭이라고 해봐야 울안에 있는 텃밭이지만 막상 삽으로 파려면 땀 좀 흘려야 한다. 아침을 먹고 나갔더니 모기가 저공비행으로 무차별 공격을 해댄다. 일단 후퇴하여 긴 바지와 긴팔 옷으로 완전무장하고 다시 나와 거름을 펴고 삽으로 파기 시작한다.
77년 직장 따라 대전으로 내려오면서부터 삽으로 밭을 파서 채소를 직접 심어 먹기 시작했다. 그 땐 밭이 삽으로 파서 농사짓기에는 버거운 크기였다. 하지만 한꺼번에 파 엎는 것이 아니고 이른 봄부터 조금씩 파 엎어 그때그때 파종을 하고 키우기 시작하면 어느새 밭 전체가 싱싱한 채소로 가득하게 된다. 또 그 시절엔 나도 젊었기 때문에 힘든지 모르고 삽질을 해대곤 했었다. 시내 쪽으로 이사를 오면서 텃밭은 작아졌지만 계속해서 지금도 삽으로 파서 채소를 키워 먹고 있다.
한 삽 한 삽 파 엎으면서 흙이 많이 부드러워 졌음을 느낀다. 처음에 이곳으로 이사 와서 밭을 팔 때는 진흙땅이라 어찌나 딱딱한지 한 삽 길이가 안 들어갔다. 그러던 밭이 매년 봄에 파종할 때와 여름에 김장 갈 때 두 번씩 거름을 많이 쓰면서 삽으로 파 엎다 보니 흙이 많이 부드러워 진 것이다.
아무리 작은 밭을 파 엎는 것도 삽질은 삽질인가 보다. 그것도 한 여름 뙤약볕 아래라 땀이 비 오듯 한다. 삽질은 절대 급하게 해서는 안 된다. 꾹 밟아 천천히 한 삽 한 삽 파 엎어야 한다. 그래야 오래도록 삽질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급하게 하면 얼마 못가서 허리가 아파오게 마련이다.
그렇게 깊게 파 엎어서 배추를 심으면 아주 건강하게 잘 자란다. 그 무공해 배추로 김장을 담가 겨우내 맛있는 먹을 김치를 생각하면 즐겁다. 그 즐거움 때문에 힘들고 땀이 많이 나도 삽으로 밭을 파 엎는 이유다.
먹거리에서 중국산이 어떻고 농약이 어떻고 이런 것이 모두 남의 얘기이다. 텃밭 조금 갖고 있으면서 이렇게 조그만 수고로 직접 가꾸고 키워서 먹으면 절대 안전한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거름이 풍부하고 밭 흙이 부드러우면 배추가 스트레스를 안 받고 잘 자란다. 튼실하게 자라다 보면 병충해도 덜 생긴다.
사실 요즘은 아파트에도 베란다나 옥상에다 화분 같은 것을 갖다 놓고 가꾸어 먹는 사람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채소를 키워 돈으로 바꾸려니까 많이 심는 것이지 자급자족하기 위한 거라면 굳이 큰 밭이나 텃밭이 필요한 건 아니다. 고추 몇 그루, 쌈 채소 몇 가지를 한두 포기씩 심어 놓으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고 의지일 것이다.
한 삽 파 엎을 때마다 흙덩이 속에서 지렁이가 놀라서 꿈틀대며 난리를 친다. 오늘은 완전히 지렁이들의 수난의 날이다. 삽에 잘리는 놈도 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햇볕을 받으면 금방 죽으니까 미안한 마음에 밖으로 나온 놈들은 이내 흙을 덮어준다. 잘라진 지렁이는 따로 따로 하나의 개체가 되어 산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어 그나마 조금은 덜 미안해진다. 내가 이사 왔을 때는 없었던 지렁이가 몇 년 지나니까 생기기 시작하여 지금은 무척 많다. 그만큼 밭이 건강해졌다는 증거다.
또 어떤 곳은 큼직한 감자가 툭 튀어 나온다. 봄에 감자를 수확했을 때 빼 먹은 감자가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큰 감자가 나오면 공짜로 횡재를 한 것 같아 이 또한 밭을 파는 즐거움 중에 하나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밭을 파다 보니 어느새 다 팠다. 땀은 비 오듯 하고 모기 때문에 노출된 신체 부위에는 여기저기 가렵다.
며칠 전 TV에서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가꾼 채소는 없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적게 든 많게 든 농약과 비료를 주고 가꾼다는 것이다. 내가 해봐도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작물을 키워서 내다 팔아야하는 입장에선 더더욱 어려울 게다. 왜냐하면 나처럼 울안 텃밭도 아니고 대량으로 키우는데 언제 벌레 잡고 하겠는가? 또 그렇게 키웠다 해도 벌레 먹어 숭숭 구멍이 뚫린 채소는 아무도 안 사간다. 그것이 무공해 채소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농약을 주고 가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농약을 주되 농약병에 적혀있는 사용법을 얼마나 충실히 지키느냐이다. 지난번에 이 만큼을 탔더니 벌레가 안 죽었다며 희석비율을 무시하고 마구 원액을 많이 넣어 뿌린다. 또 약을 주고 난 다음 일정기간이 지나서 수확을 하게 돼있는데 그것도 무시하고 수확을 해서 내다 파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농사지어 내가 먹으면 그런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어린 배추모를 사다 심어 놓고 나면 배추벌레가 극성을 부린다. 요놈은 꼭 고갱이에 숨어들어 파먹는다. 고갱이를 파 먹힌 배추는 기형이 되어서 벌레 잡는 게 조금만 늦어도 낭패를 보게 된다. 농약을 뿌리면 되겠지만 매일 아침마다 나무젓가락을 들고 일일이 잡아줘야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주위에 까만 똥이 있게 마련이어서 찾아보면 꼭 고갱이에 들어 앉아 있다. 또 달팽이들의 극성도 심하다. 부지런히 잡아 줘야한다. 그러나 진딧물이 끼면 농약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진딧물은 어린 배춧잎에 많이 끼니까 초기에 약을 주면 배추를 수확 할 때까지 기간이 길기 때문에 그래도 안전할 것이다.
퇴비를 많이 쓰고 비료를 줄이면 땅이 건강해지고 그 곳에서 크는 작물도 따라서 건강해져 병충해가 줄어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상책인데 그러기위해서는 미리미리 퇴비를 준비해야 하고 밭을 깊게 파서 땅속에 충분히 산소가 공급되게 해야 한다.
농사는 할 일 없을 때 짓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 어느 직업보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말이라고 쉬고 여름이라고 휴가 가는 그런 사고로는 절대 농사를 못 짓는다. 또 농사도 살아있는 생물을 키우는 것이라 많이 짓든 적게 짓든 여간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되고 계절을 잘 읽어 때를 놓치지 않는 부지런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모든 곡식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땅은 주인이 얼마나 정성을 들이느냐에 따라 내어 주는 것이 다르다. 그만큼 농사일은 부지런함과 노력 그리고 정성을 다해 키우면 결코 배신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첫댓글 올려주신 수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