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계란 ‘산 것을 해치지 않겠다’는 불상생계, ‘남의 것을 훔치지 않겠다’는 불투도계, ‘삿된 음행을 하지 않겠다’는 불사음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불망어계,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불음주계의 다섯가지 윤리지침이다. 일반적으로 재가불자를 위한 수계식에 참석할 경우 이런 오계를 받게 되는데, 불자가 되고 싶어도 이런 다섯가지 윤리지침을 다 지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망설인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대지도론>이나 <우바새계경>에서는 이렇게 망설이는 사람을 위해서 융통성 있는 수계법을 제시한다. 오계 가운데 자신이 지킬 수 있는 계만 선택적으로 받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오계 모두를 수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복잡다단한 현대사회 속에서 참으로 다양한 직업을 갖고 살아가기에 오계 모두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직업 때문에 오계를 모두 지킬 자신이 없으면 몇 가지만 받아 지녀도 된다. 오계 가운데 네 가지 계만 받는 사람을 다분행자(多分行者)라고 부르고, 둘 내지 세 가지 계만 받는 사람은 소분행자(少分行者), 한 가지 계만 받는 사람은 일분행자(一分行者)라고 부른다. 그리고 오계 모두를 받아 지니는 사람은 만행자(滿行者)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서 오계 가운데 살생, 투도, 사음, 음주의 네 가지 죄업은 금할 자신이 있는데, 장사를 하기에 가끔 ‘밑지고 판다’는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 불망어계를 받지 않으면 된다. 네 가지 계만 지키는 다분행자다.
또 생선 횟집을 운영하기에 매일매일 살생을 해야 하고, 손님이 권하는 술도 한 잔 마셔야 하지만, 투도와 사음과 망어의 세 가지 악행은 절대 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불살생계와 불음주계를 받지 않으면 된다. 두세 가지 계를 지키는 소분행자다. 다른 것은 다 지킬 자신이 없어도 배우자에 대한 신의를 어길 수 없기에 불사음계 하나만 다짐한 사람은 일분행자다.
또 오계 모두를 받아 지키는 만행(滿行)의 재가불자 가운데, 불교수행이 무르익어서 자신의 배우자와도 음행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독신 수행하는 스님처럼 살겠다는 다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오계의 수계의식이 모두 끝난 후 계사 앞으로 나아가서 “앞으로 저의 배우자와도 음행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을 하면 된다. 이런 사람을 단음행자(斷行者)라고 부른다. 직접적인 음행이든 플라토닉러브든 음욕을 끊지 못한 재가자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사다함이다.
사다함은 사끄리드아가민(sakr.da-gamin)의 음사어로 일래과(一來果)라고 번역된다. 아직 음욕을 끊지 못했기에 내생에 한 번 더 욕계에 태어나서(一來) 음욕을 정화해야 하기에 일래라고 부르는 것이다. 재가자도 아나함이나 아라한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음욕을 끊은 재가불자에 한한다. 유마거사나 이통현 장자, 방거사 등 재가의 스승 모두 단음행자였을 것이다.
재가불자가 되기 위한 수계의 스펙트럼은 참으로 다양하다. 가장 간단한 삼귀의계에서 일분행자, 소분행자, 다분행자, 만행자, 그리고 단음행자의 수계까지…. 이 가운데 어떤 단계의 불자가 될 것인지 내 가슴에 손을 얹고 나 스스로 선택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