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7 章 무림기인전으로 드는 길
백도제일인으로 불리는 비룡신군.
그는 무림기인전의 형태를 삼백 년만에 처음으로 밝힌 바 있는 사람
이다. 그러나 소문만 무성할 뿐 강호상에 나타나지 않았기에 그 역시
불귀객으로 간주되고 있지 않았던가.
그가 외팔이 불구가 되어 기인전 입구에 머무르고 있다는 게 너무도
이상했다.
"조금 전, 네게 노부가 한 전인을 두었고 그 자가 노부 손에 죽었다
고 하지 않았느냐?"
비룡신군은 착잡한 표정이 되어 말을 이었다.
"한데, 그 자는 죽지 않은 듯하다."
"아!"
"그 죽어 마땅한 자가 살아 나와 무림삼기가 힘들여 만든 협맹 사람
들을 쳐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고, 고약한 자군요."
"그놈의 재주는 천하제일이다. 십 년 전, 노부 손에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지금쯤 노부를 능가하는 고수가 되었을 것이다."
"설, 설마……?"
"허허……, 노부는 과거의 비룡신군이 아니다! 악독한 제자 놈과 싸
운다면 이길 수 없는 병든 늙은이에 지나지 않는다."
"예?"
"노부는 오음절맥에 걸려 힘을 쓰지 못하는 너하고 비슷한 처지다.
노부는 백 초 이상 싸움에 임할 수 없는 신체다. 사 년 전, 중대한
내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노부의 역도(逆徒)가 살아나 노부의 백 초
이상을 견디면 패자는 그놈이 아니고 노부가 될 것이다."
괴로움에 찬 말이었다.
비룡신군에게 그런 일면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비룡신군은 냉운의 미간에 떠올라 있는 푸른 기운을 살피며 말을 계
속했다.
"너는 심지가 굳은 아이인지라 비밀 이야기를 함부로 흘리지 않는다
는 것을 확신하기에 말해 주는 것이니, 잘 듣고 평생의 교훈으로 삼
거라!"
"예."
"호승심(好勝心)의 무서움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비룡신군은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협곡 쪽으로 손을 가리켰다.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협곡, 불귀의 전설을 간직한 무림기인전 입
구는 지옥문과 다를 바 없었다.
"저 안에는 무림제일인(武林第一人)을 만들어 주는 비급이 있다는 전
설이 있다. 그 전설이 지난 삼백 년 간 일만 명 이상을 죽게 했다."
"아!"
"저 안으로 들어가 살아 나온 사람은 없다."
비룡신군의 눈빛이 섬전같이 뻗어 나와 냉운을 놀라게 했다.
"사 년 전이었다. 노부, 망망신니, 그리고 청성은옹, 세 사람은 전인
미답의 금지인 저곳 무림기인전에 들기로 합의하게 되었다. 모두 호
승심 때문이었지."
"아!"
"삼기를 막을 장소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세 늙은이들은 용감
무쌍히 협곡 안으로 날아들었다.
비룡신군이 말을 잠깐 끊었다.
말하기에는 거북한 내용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하루 후, 삼기는 불구가 되어 돌아 나왔다."
비룡신군이 떨어져 나간 왼팔로 인해 펄렁거리는 왼소매를 만지며.
"노부는 한 팔을 잃었다. 망망신니는 네가 본 바대로 피부가 다 타고
열 손가락이 녹는 중상을 입었다. 하나, 가장 심각한 상태가 된 사
람은 청성은옹이었다. 그는 두 다리를 잃었지."
"그, 그 안에 무엇이 있기에……."
"무림기인전에는 일곱 관문이 있다. 그것은 외사관(外四關), 내삼관(
內三關)으로 구분된다. 삼기는 그 중 외삼관을 통과하고 이런 신세가
된 셈이다. 더 이상 나아갔다면 죽었을 것이다."
"……."
믿지 못할 일이었다.
어떤 장소가 삼기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냉운이 혀를 내두를 때, 비룡신군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삼기는 본래 무공에서 오 성(成) 감퇴된 무공만을
갖고 살아 나오는 비참한 신세를 면치 못했다.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하나, 더욱 무서운 것은 우리 세 늙은이들이 한순간의 호기심을 참
지 못하고 무림기인전 안으로 들려했다가 다친 것이 강호 정세에 막
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강호에 영향이오?"
"아, 삼기는 그 일이 있은 후 무림을 밟지 않았다. 그 덕에 사마외도
(邪魔外道)가 창궐하게 되었지."
"그, 그렇군요."
냉운은 그제서야 비룡신군의 말뜻을 알게 되었다.
"무림인들은 강호가 혼란되는데도 삼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원망하
고 있다. 우리 늙은이들이 호승심 때문에 반 폐인이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비룡신군이 하나뿐인 손을 내밀어 냉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냉운이 당한 혈겁도 결국은 삼기가 폐인이 되었기 때문이니 미안함을
느낀다는 듯한 동작이었다.
"협맹이 세워진 연유가 그것이었다. 삼기를 대신하는 방파가 협맹이
다. 이후 협맹에 들도록 해라."
"예."
"너는 장수할 상이다. 오음절맥도 너를 요절케 하지는 못한다."
"감, 감사합니다."
"지금 시간이 있다면…… 네게 비룡경 안의 무공을 전수할 것이나 사
정이 급해 그냥 가야겠다. 노부가 네게 준 주머니 안에 비룡경이 있
으니, 꺼내 네 것으로 하거라."
"감, 감사합니다."
냉운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허허허……, 네게 짐을 지우는 것뿐이다."
비룡신군은 다시는 전인을 두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람이었다.
그가 결심을 바꾼 이유는 망망신니의 말 때문이었다.
"삼기 중 그래도 건재한 사람이 노부이다. 그래서 노부는 지난 사 년
간 이곳을 지키며 우리 세 늙은이의 전철을 밟으려 하는 무림인들을
돌려보내곤 했었다."
숭고한 희생정신의 발휘가 아니겠는가!
"백도인들은 삼기가 무림의 최절정 고수라 믿고 사마외도를 겁내지
않으나, 모두 과거지사에 불과하다. 사실 마의 힘이 정파의 힘보다
강하다. 정파에는 거성(巨星)이 없는 탓이지."
비룡신군은 그제서야 속말을 다 털어놓아 홀가분하다는 표정이 되었
다.
그는 냉운을 바라보며 엄숙히 말했다.
"노부와 이야기한 것은 영원히 너 혼자만의 비밀로 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허허……, 너를 믿는다. 사실 너를 의심했다면 이런 말을 하지도 않
았을 것이다. 노부가 보건대, 너는 노부가 네 나이였을 때에 비해 십
배 뛰어나다."
"과찬이십니다."
"네 신체가 지금 같지 않았다면…… 이후 강호가 너로 인해 편해질
것이다. 네가 오음절맥이라는 것이 못내 애석하다."
"……."
냉운은 착잡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청성은옹은 의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지. 그라면 오음절맥을 치유
할 방도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한시 빨리 청성 산으로 가거라."
"예."
"허허…… 너를 믿고 안심하고 떠나가니, 장차 각기 일을 성사시킨
후 웃으며 만나 비룡경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비룡신군은 웃다가 훌쩍 날아올라갔다.
그는 몹시 급한 듯 탄지지간 수십 장을 날아 한순간 냉운의 망막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나 살인하고 다니는 반역도 때문에 그리도 급
히 가는 것이리라.
냉운은 곧 쓸쓸함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비룡신군에게 건네받은 가죽 주머니가 매우 무겁게만 여
겨졌다.
"강남대협이란 분은 협맹 사람이었군. 그러고 보면 염 백부도 협맹에
대해 알고 계실지 모르겠군. 염백은 무당의 속가장문인이니 정파 협
사들의 모임에 빠지지 않으실 것이다."
냉운은 중얼거리며 걸음을 떼어놓았다.
어느덧 새벽. 어둠이 점령했던 공간을 자욱한 새벽안개가 소리 없이
밀치고 들어왔다.
새벽안개가 뼈를 시릴 정도로 차갑다.
산중의 스산함이 오음절맥으로 병약한 냉운에게 한겨울 같은 추위를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이다.
"청성산으로 가려면 수십 일이 걸릴 것이다."
냉운은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비룡신군은 강호에서 가장 명망 있는 분이 아닌가! 그분이 나를 믿
고 귀한 물건을 전하라는 명을 내리셨다니…….'
냉운은 아버지를 기억했다.
상서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책을 벗삼아 읽던 아버지가 강호의 유수한
고인들과 교분을 갖고 있는 사람인 줄 최근에야 알게 된 냉운이 아
닌가!
그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으나 아버지에 대해서는 잘 알
지 못하는 면이 많았었다.
그의 어머니는 황족(皇族)이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어머니 정령공주가 당시 예부상서이던 아버지에
게 반해 황제에게 청해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냉엽문은 그 후 더 높은 지위로 오를 수 있었으나 아내 덕에 출세하
기를 꺼리고 벼슬에서 물러났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그리 좋아한 눈치는 아니셨지."
냉운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직 잊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황제의 명을 어길 수 없어 어머니 정령공주를 아내로
취했고, 진짜 연인은 다른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냉운은 그 자세한 이야기를 전혀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무림고수들과 잘 알고 계신다는 눈치를 채지 못했으니, 내
가 글공부하느라 모든 일에 너무 무신경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냉운은 중얼거리다가 문득 귀를 쫑긋 세웠다.
"아아악……!"
어디선가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냉운은 몸이 얼음 구덩이 안에 던져지는 듯한 공포감을 느꼈다.
소름이 오싹 끼쳤다.
"크으으……!"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였다.
'누, 누가 죽어가고 있구나.'
냉운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기분이 되어 얼른 등을 돌렸다.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비명 소리도 등을 돌리는 순간 마치 꿈속에서의 소리인 양 여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귀신에게 홀렸나?"
냉운의 흰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귀신이 있을 수 없는데……. 분명히 처절한 비명 소리를 들었는데…
….'
냉운은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도끼로 찍어낸 듯 쩍 갈라져 있는 협곡이 눈에 들어왔다.
"저, 저 안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냉운의 이마가 식은땀으로 뒤덮여 갔다.
비룡신군이 출입자를 막으며 사 년을 보낸 신비한 협곡 안이 바로 비
명 소리의 출처였다.
'저 안에 사람이 있단 말인가?'
냉운은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비룡신검이 남긴 말이 귓전을 때렸다.
― 저 안으로 들어가면 죽을 수밖에 없다.
비룡신군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외팔이가 되었지 않았던가!
냉운은 그것을 알고 있는 소년이었으나 방금 고막을 때린 비명 소리
로 인해 정신이 오락가락하게 되었다.
비명 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누군가…… 다쳐 죽어 가는 것이 아닐까?"
냉운은 겉보기에는 지극히 냉정하나 속마음은 불꽃같이 뜨거운 소년
이었다.
죽어 가는 사람이 있다면 도와 주지 않고 배기지 못하는 온정스런 마
음의 소유자가 바로 냉운이었다.
"아,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
냉운은 협곡 안쪽을 주시다하다 등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아아악……!"
다시 고막을 때리는 처절한 비명 소리가 있었다.
"누구요?"
냉운은 흠칫 놀라 다시 등을 돌렸다.
결과는 전과 마찬가지였다.
그가 등을 돌리는 찰나, 처절한 비명 소리는 여운 없이 사라지고 마
는 것이었다.
"으음……."
냉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누군가 나를 놀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냉운은 어떤 사람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얼음같이 차갑던 마음의 냉정(冷情)이 뿌리째 흔들렸다.
"나는 놀림감이 되어 살지 않는 사람이다."
냉운은 중얼거리며 협곡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누가 비명 소리를 냈는지 알아보지 않고는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
냉운 특유의 고집이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같이 불끈불끈 치밀어 오
르고 있는 것이다.
협곡까지의 거리는 오십 장에 달했다.
슥 ― 슥 ―.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마른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 신발을 잿빛으로
물들였다.
오십 장을 전진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냉운은 어느덧 짙은 안개에 휘말리는 형상이 되고 말았다.
알 수 없는 힘이 그를 안개 있는 곳까지 끌어당겼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휘익!
난데없는 귀풍(鬼風)이 일어났다.
"음……."
냉운은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어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협곡 바로 어귀에 서 있었다.
협곡의 폭은 오 장 정도였다.
"이, 이상하군. 나도 모르는 사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니……."
냉운은 자신이 허깨비에게 홀렸다고 생각하고 얼른 돌아나가려 했다.
왼쪽 절벽 밑, 문득 눈에 뜨이는 글씨의 흔적이 있었다.
<환영한다!>
한 자 깊이로 새겨진 글씨였다.
눈에 확 들어오는 용사비등한 필체였다.
'환영한다니?'
냉운은 흠칫 놀라며 그 아래에 쓰인 글씨를 읽어 내려갔다.
<노부 불사검제(不死劍帝)는 무림에서 독존(獨尊)했다. 죽는 순간까
지 단 한 명의 적(敵)도 만나지 못했다.>
불사검제라는 말이 냉운을 놀라게 했다.
무림기인전이 불사검제와 관련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냉운이기 때문이었다.
글이 계속되었다.
<더욱 불행한 것은 노부가 마땅한 인재를 구하지 못해 절기를 실전(
失傳)해야 할 운세라는 것이다. 노부 불사검제는 궁리하다 못해 무림
기인전(武林奇人殿)을 세우게 되었다. 전인을 구하자는 것이 무림기
인전을 세우는 뜻이다. 하나, 탐욕한 자는 당장 걸음을 돌려라! 노부
의 탐욕한 자가 가질 수 없는 상승절기이다. 그리고 자질이 없는 자
도 걸음을 돌려라. 노부의 절기는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만이 얻을
수 있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연약한 자도 걸음을 돌려라! 노
부의 절기를 얻기 위해서는 불굴의 정신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
부 불사검제의 경고를 무시하고 무림기인전을 찾는 자는 백골이 될
것이다.
불사검제(不死劍帝).>
아주 오래 전에 쓰여져 귀퉁이가 닳아빠진 글씨였다.
"저 안에 천하제일인을 만들어 주는 절기가 있다니……."
냉운은 전에 느끼지 못했던 마력에 젖어들었다.
무림인들이 의당 경계해야 하는 무공에 대한 욕심에 빠져들고 만 것
이다.
'저 안으로 들어가 절기를 얻게 된다면…… 오음절맥을 치료하고 절
세고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냉운의 뇌리에서 비룡신군의 쓰디쓴 말이 잊혀진 지 오래였다.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남들이 얻지 못한 것을 한 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충동
이 몸과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으음……."
냉운은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죽음의 공포를 잊었기 때문이었다.
성큼 세 걸음 옮겼을까.
다시 눈에 뜨이는 글씨가 있었다.
사람의 눈에 잘 뜨이는 장소에 박혀 있는 일 장 높이 청석비의 정면
에 쓰여 있는 글씨가 그것이었다.
<무림기인전은 불귀지처(不歸之處)이다. 들어간 사람은 다시 살아 나
오지 못하는 무림금지(武林禁地)이다. 안으로 들어가는자는필사(必死
)하리라.
비룡신군(飛龍神君).>
글을 남긴 사람은 방금 전 냉운과 헤어진 비룡신군이었다.
그는 만약의 경우 자신이 자리를 뜰 경우를 생각해 이런 청석비를 세
워 두었던 것이다.
흥분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비룡신군께서도 들지 못한 장소이거늘……."
냉운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뒷걸음질 쳤다.
'현혹되어 여기까지 오다니, 그 동안 글공부한 것이 헛것에 지나지
않는군.'
냉운은 자기 자신을 책망하며 얼른 협곡 어귀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순간.
"으악!"
한동안 끊어졌던 비명 소리가 다시 고막에 통증을 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고 바로 가까이서 들려오는 것
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쪽이었다.
"엇?"
냉운은 깜짝 놀라며 얼른 위쪽을 바라보았다.
짙은 안개 속, 기기묘묘한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들이 양쪽 절벽에서
돌출되어 나와 하나의 거대한 석교(石 )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보
였다.
자연의 오묘한 꾸밈이었다.
거대한 무지개가 걸려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양쪽 절벽에서 삐죽 튀어나와 한데 맞붙어 있는 돌덩이는 거의 완벽
한 돌다리였다.
"아악!"
비명 소리는 바로 그 다리에서 들려 나오고 있었다.
냉운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이제 보니 비명이 아니었군. 바람이 돌다리를 때릴 때 공기 구멍을
빠져나오며 사람 비명 소리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군."
냉운은 그제서야 비명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비명이라 생각했던 것은 사실 비명이 아니었다.
휘익!
바람이 돌다리를 휘감으며 일으키는 기이한 휘파람 소리가 마치 비명
소리같이 들려왔던 것이다.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처절한 비명 소리로 착각되어 들렸을
뿐, 자세히 들으면 완연한 바람 소리였다.
돌다리는 십 장 허공에 걸려 있었다.
그 표면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한 자 깊이를 가진 글씨인데, 안쪽에 금칠을 해 먼 거리에서도 그 글
씨가 어떤 글씨인지 한눈에 들어왔다.
<귀음곡(鬼吟谷)>
그리고 그 밑부분 여섯 글자가 덧붙여져 있었다.
<기인전제일관(奇人殿第一關)>
비룡신군에 의한다면 기인전에는 도합 일곱 개의 관문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냉운은 일곱 개의 관문 중 제일 먼저 것의 도입 부분에 서 있는 형국
이었다.
"적당한 이름이군."
냉운은 비명 소리 비슷한 소리를 내는 다리를 걸고 있는 양쪽 절벽이
귀음곡이라고 불린다는 데 야릇한 호기심을 느꼈다.
한동안 억제되었던 그의 총명함이 환히 발현되기 시작했다.
"무서움이라는 것은 사실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닌
가! 사실을 알고 나면 무서울 것이 있을 수 없다."
갑자기 용기가 일어났다.
그는 소주성은 물론 천하가 다 알아주는 기재가 아닌가!
지금은 떠돌아다니는 방랑객(放浪客)에 불과하나 얼마 전까지는 세상
을 백안시(白眼視)하며 살던 고집스런 소년이었다.
귀음곡의 환각(幻覺)이 어떤 것인가 알게 된 냉운은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
"무서울 것이 없다."
냉운은 불사검제가 남긴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는 살아 있을 당시 전인을 찾지 못해 기인전을 세우지 않았던가!
기인전을 세운 이상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존재할 것이
다.
냉운은 지금 이 순간이 천명(天命)에 따른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
었다.
'내가 불사검제의 전인이 될 수도 있지 않는가?'
냉운은 입 안이 바짝 타 들어감을 느꼈다.
'오음절맥을 갖고 있는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냉운은 물밀듯했던 죽음의 공포를 떨쳐 버렸다.
"안으로 들어가다가 죽는다고 해도 억울한 것은 없다. 어차피 나는
올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을 운세이니……."
청성은옹을 찾아간다고 뾰족한 방법이 있겠는가?
치료하는 방법이 쉬운 것이라면 냉가장주나 정령공주가 냉운을 지금
이대로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동안 먹은 약의 가지 수는 수천 가지였다.
청성은옹이 냉운을 살린다는 보장은 없는 셈이다.
배수진(背水陣)을 친 기분이었다.
"흥!"
냉운은 비참한 기분을 떨치기 위해 일부러 냉소쳤다.
"저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죽은 사람이 일만이라고 하지 않는가! 안으
로 들어가려다가 죽는다 해도 서러울 것도 없다."
냉운은 생사(生死)를 하늘에 맡기기로 결심했다.
십칠 세 소년이 아니라면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양이 많은 사람이라면 지금 냉운이 자학적으로 내뱉은 말에 깜짝
놀라 얼른 냉운을 붙잡았을 것이다.
하나, 냉운은 혼자였다. 그의 두 다리를 옮기게 할 장본인은 바로 냉
운이었다.
"들어가 보자! 죽는다고 해도 여한은 없다."
냉운은 결심하고 불사검제가 남긴 글을 향해 절을 네 번 했다.
배사지례를 취하는 것이다.
"말학후진 냉운은 불사검제의 전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마
음에 드신다면 기인전 안에 들게 하시고,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먼
저 죽은 일만 명과 같이 백골로 만드십시오."
냉운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듯 중얼거린 후 협곡 안으로 들어가기 시
작했다.
스무 걸음 걸었을까.
안개가 지극히 짙어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일순 일진선풍(一陣旋風)이 몸을 휘감는가 하더니 양쪽 절벽에서 괴
이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
사자후(獅子吼) 같은 소리.
"이히히히……!"
저승에서 흘러나오는 듯 귀기(鬼氣) 어린 웃음 소리.
듣노라면 소름이 오싹 끼치는 소리였다.
귀음곡의 오묘한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흥! 모두가 환상이다. 바람이 절벽을 때리며 들리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냉운은 비웃는 듯한 표정을 하고 걸음을 계속했다.
휘잉!
바람이 점점 강해졌다.
그에 따라 웃음 소리, 신음 소리, 비명 소리 같은 소리가 더욱 강해
졌다.
"카악!"
피를 뒤집어쓴 나찰이 통곡하듯 피를 얼어붙게 만드는 소리. 눈을 감
으면 나찰의 환영이 들이닥칠 듯하다.
"으흐흐흐……!"
"흐윽!"
울음 소리 같은 소리는 너무 처량해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왔고, 비웃
는 웃음 소리는 너무도 조롱에 찬 것이라 화가 불끈 솟기도 했다.
오욕칠정(五欲七情)을 자극하는 소리였다.
원한이 큰 사람은 그 소리로 인해 원한을 느끼게 되고, 슬퍼하는 사
람은 그 소리로 인해 더 큰 슬픔을 느끼게 된다.
가장 무서운 소리는 두려움을 주는 소리였다.
귀음곡의 바람 소리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심
맥이 뒤틀려 죽어 버리게 된다.
보라, 냉운이 걸음을 내딛는 협곡의 양쪽 절벽 밑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거대한 백골산(白骨山)을.
귀음곡의 환각음(幻覺音)에 휘말려들어 뒤틀려 죽은 사람,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자결한 사람,
미쳐 날뛰다가 절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죽은 사람의 시신이 오랜 세
월 지나는 동안 백골로 변해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것이다.
안개가 그것을 가리어 주고 있으나 그 수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귀음곡의 환각음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으려면 최소한 백년공력(百
年功力)이 있어야 했다.
무림기인전이 세워진 후 수많은 사람이 찾아왔으나 그 중 백년공력을
가진 사람은 십분지일도 되지 않았다.
남은 십분지구의 사람들은 무림기인전의 제일관인 귀음곡을 통과하지
못하고 백골산의 한 부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냉운은 초유(初有)한 예외였다.
그는 지극히 담담한 얼굴을 하고 이제껏 근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귀음곡의 바람 소리를 노랫소리인 양 여기며 유유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음이 너무나도 굳어 흔들림이 없기 때문에 귀음곡의 환각음이 그를
쓰러뜨리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 제일관은 시작에 불과했다.
남은 여섯 관문에 비하면 관문이라고 할 수 없이 허약한 첫째 관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