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죽음에 스탠톤은 "이제 그는 한 시대의 역사가 되었다"하고 했다.
'죽음이 역사가 된 사나이'이쯤되면 백만대군을 호령하는 근육질에 영웅쯤으로 오해하기 쉽상이다.
하지만 그는 말구유에서 태어났던 예수님처럼 지극히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끊임없이 실패하고 좌절하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하여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까지 오르게된다.
물론,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위대하다고는 할 수 없다.
250년 동안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노예일수 밖에 없었던 흑인들을
해방시킨 위대한 과업은 영웅보다 더 위대한 신의 소명을 감당한건 아니였을까!
우리들에 신은 소외되고 버림받은 불우이웃을 위해 이 땅에 오셨듯이....
마음 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읽어 치울수 있을 정도로 페이지가 적은 문고판의
'데일 카네기'가 쓴 '링컨 당신을 존경합니다'를 보았다.
링컨이 위인이라는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위인전의 허풍스러운 이야기가 아니고 링컨의 고뇌를 가감없이 표현하여
쉰여섯 해를 살면서 그가 과연 행복이라는걸 경험이나 해봤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미국의 변방 켄터키주 통나무집에서 태어난 링컨
14년동안 인디애나 주 농장에서 일을 했지만 저축은 커녕 토지세조차
낼 돈이 없었던 링컨의 아버지는 토마스 링컨은 돈에 관념이 전혀 없는 사람였다고한다.
가장이 이 지경이니 집은 찢어지게 가난 할수 밖에 없었다.
1809년(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순조 재위 9년째 되던 해)
캔터키주 엘리자베스 타운에서 멀지 않은 황량한 벌판의 통나무 오두막집에서
하얀 눈이 통나무 사이로 들어 와 곰가죽 이불에 쌓이던 날 링컨은 태어났다.
경제력 없는 남편 덕분에 링컨 엄마 낸시는 치통으로 시달리던 날도
나무못을 어금니에 대고 돌로 치며 통증을 가라 앉히는 처절한 삶을 살다가
링컨이 아홉 살 되던 해 당시 유행했던 괴질에 걸려 이 세상을 하직한다.
마루도 창문도 문짝도 없는 오두막집에서 겨우네 몸을 씻는다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 못하고
나이크와 포크가 없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었으며 햇볕이 전혀 들이 않아 집안은 벼룩과 벌레들이 득실거리는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살었다.
그렇게 짐승처럼 살던 링컨아버지 토머스는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다시 새 장가를 가기로 마음을 먹고 세 명의 자녀와 약간의 빛이 있는 과부와 결혼을 하게된다.
열다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서 글을 떠뜸떠뜸 읽었지만 쓰는 법은 전혀 몰랐지만
1824년(순조 제위 24년)드디어 마을에 학교가 세워졌고 링컨 남매는 학교를 다니게된다.
정강이가 드러난 짧은 사슴가죽 바지에 다람쥐가죽 모자를 쓴 소년은
자신의 이상향였던 위싱턴과 제퍼슨의 필체를 쓰기 시작하면서 깔끔하고 또렷한 글씨체는 마을에
금방 소문이 퍼져 편지를 대필해주는 수준에까지 이른다.
공부에 참맛에 단단히 들어버린 링컨은 숯으로 널빤지에 글을 쓰기도하고 오두막집의 벽에 수학문제를 풀고
그 면이 새까맣게 되면 칼로 그것들을 긁어내곤 했으며 책을 빌려다가 내용을 베낀 다음 실로 묶어 공부를
했는데 그가 죽었을때 그의 의붓어머니는 그것의 일부를 가지고 있었다고한다.
하지만 그가 정식교육을 받은 기간은 12달 밖에 되지 않는다.
글을 완전히 깨우치고 나자 링컨은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알게되고
세상 보는 눈이 바뀌면서 미래에 희망을 갖게된다.
책에 대한 열정은 그로 하여금 일을 한 댓가로 책을 빌려다 보는 일을 서슴치 않았으며
키케로와 데모스테네스의 책을 통해 연설하는 법을 배우고 셰익스피어의 작중 인물들로부터 명연설을 배웠다.
종이가 없으면 널빤지에 적어 스크랩북을 만들었으면 독수리 깃털 펜에 식물즙으로
만든 잉크를 사용하여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적어서 읽고 또 읽으면서 연설을했다.
일자 무식의 아버지는 링컨에게 바보같은 짓은 그만두라고 경호를 하지만
링컨이 듣지 않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링컨의 얼굴에 주먹을 한 방 날려버리는 개망신을 준다.
링컨은 그자리에서 쓰러져 눈물을 흘렸으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고한다.
1830년(순조 재위 30년)그의 나이 21살때 마을에 괴질이 돌아 겁에 질린 링컨가족은
있는 재산을 몽땅 팔아서 일리노이 주 디케이터에 정착한다.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그리고 불행했던 결혼생활
이복형제와 육촌형제와 함께 배를 만들어 농산물을 싣고 미시시피 강을 오르내리며
장사를 하던 링컨은 뉴올리언스에서 무시무시한 노예제도의 실상을 보게된다.
사슬에 묶인 채 심하게 채직질당하는 흑인 노예들,마치 짐승처럼 사고 파는 노예들에게
사는 사람 맘에 들게 행동하라고 명령하는 것을 보고 그는 치를 떨며 분노한다.
그리고 결심한다,'노예제도를 없앨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없애고야 말겠다고...'
뉴 세일럼에서 베리와 동업으로 잡화점을 운영하던 링컨은 토요일 밤마다 러트리지 선술집에서
열리는 '문학 동호회'에 참석하여 손수 지은 시를 낭독하기도 하고 그 주에 있었던 주요한 사건들을
토의 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시설이 형편없이 한 번 와 본 사람은 두번 다시 눈길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허름한 선술집였지만
링컨은 오로지 그 선술집이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왜냐면 그 선술집에는 2년제 대학을 갓 졸업한 파란눈에 적갈색 머리가 매력적인 앤이라는
선술집 주인 딸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오와 주로 이사가는 사람에게서 헐 값에 사게 된 블랙스톤 법률책을 보면서
오로지 앤을 위해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링컨은 그녀를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아름다운 사랑을 했지만 책만 들여다 보던 링컨과 술주정뱅이 베리가 운영하던 잡화점은 당연히 망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러트리지 선술집마저 망하게 되어 앤은 농장에 하녀로 가게 된다.
앤이 하녀로 있는 농장에서 링컨은 옥수수 농사를 지으며 그녀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가득 넘치는
행복감을 맛보곤한다. 하지만 '링컨의 천국 생활'은 너무도 짧았다.
1935년 앤이 장티푸스에 걸려 죽고 말었기 때문이다.
앤이 죽는 그날 부터 링컨은 변했다. 죽을때까지 그는 슬픔과 죽음을 다른 시를 좋아했고 편집증 환자처럼
그것들에 매달렸다고 한다.
앤의 죽음으로 실성끼까지 보였던 링컨였지만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
1937년 벌률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된다. 그리고 1834년 25세에 일리노이 주의원에 당선 된 이래
1936년,1838년,1940년 내리 세번 당선 되기도한다.
1937년(헌종 재위3년) 변호사가 된 링컨은 앤이 추억이 묻어 있는 뉴 세일럼을 떠나 스프링필드로 오게된다.
잡화점을 동업하던 술주정뱅이 베리가 죽어 천백달러의 빚만 고스란히 안게 되었던 링컨은 수중에 동전 한 푼 없이
스프링필드에 왔지만 운 좋게도 5년 6개월 동안 돈 한푼 내지 않고 같이 생활하며 숙식을 해결 할수 있는 친구
스피드와 버틀러를 만나게된다.
잡화점 동업은 술주정뱅이랑 변호사 동업은 정치 지망생 스튜어트랑
변호사 사무실이라고 해야 돈이 없으니 '더러운 작은 침대,소가죽 옷,의자'밖에 없는 허름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여섯 달 동안 수임료란 다섯 건의 사건을 맡아 25달러50센트가 전부였다.
너무도 낙담한 링컨은 하루는 목재소 앞에 멈춰서서 변호사 그만 두고 목수 일이나 해 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몇 년 전 뉴 세일럼에서 변호사로 공부 할때 공부 그만 두고 대장장이나 되어 볼까 하는 기억을 떠올리면서.
1939년 스프링필드는 포장도로나 인도도 없었고 전기 또한 들어오지 않는 인구 1,500명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지만
1860년 미국 대통령 입후보자 중 2명이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민주당 북부지역 후보인 스테판 더들러스. 한 사람은 공화당 후보였던 아브라함 링컨.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를 자랑하던 집안에서 태어난 메리 도트는 프랑스 학고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자신은 미국 대통령이 될 사람과 결혼 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오만 방자한 여자였다고 한다.
계모와 싸움질하고 언니가 결혼해서 살고 있던 스프링필드에 온 그녀는 처음에는 여자를 배려 할 줄알고
대인관계가 뛰어 났으며 잘 생기고 매력적인 26살에 벌써 국무장관였던 '작은 거인' 더글러스와 사귀였지만
더글러그가 끔쩍도 하지 않아 그의 강력한 정치적 적수였던 링컨의 마음을 사로 잡으려고 계획을 세운다.
공화당 대집회가 스프링필드에서 열리던 7월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 서민들의 표를 받으려고 한다는 비난 집회가 열리자
링컨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일리노이주에서 왔던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무식한 소년은 한달에 8달러 받고 배에서 일하는 것 부터
시작을 했다는 것과,사슴 가죽으로 만든 하나 밖에 없는 바지가 물에 젖기라고 한다면 햇볕에 말리는데
가죽이라 쪼그라들어 발목에서 점점 멀어졌으며 키가 더 커지고 가죽 바지는 더 쪼그라들어 결국 다리는
시퍼렇게 멍든 자국이 생겨 지금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런 사람이 귀족적이라고 한다면
자신은 그 혐의를 부인 할 수 없다는 연설은 청중들로 부터 링컨에게 휘바람과 환호성을 안겨준다.
그날 밤 메리는 링컨과 함께 돌아오면서 휼륭한 연설가로 언젠가는 대통령이 될거라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1841년 1월 1일 결혼하기로 약속을 한다. 하지만...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성장배경,교육,기질,취미,사고방식.메리는 링컨을 만날 때마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늘어놓아 링컨을 질리게 만들었다.
1841년 1월 1일 결혼식날도 신랑 링컨이 나타나지 않은 사건을 일으키고 만다.
실성을 가장하여 결혼만은 피하고 싶었지만 자존심 강한 메리의 집요함에 마음 약한 링컨은 지고 말아
결국 1842년 11월 4일 결혼식을 치르게 된다.
버틀러 아들이 새 옷입고 구두 광내고 있는 링컨에게 어디 가느냐고 묻자
"아무래도 지옥에 가는 것 같아"라는 말을 내 뱉으면서^^
스프링필드에는 열 한명의 변호사가 있다고 하는데 그들 모두가 그 곳에서 생계를 꾸릴 형편이 못 되
판사 데이비드 데이비스와 함께 순회 재판하는 구역을 여기저기 따라다니면서 변호를 하다가 주말이면 가족곁으로
돌아오지만 링컨은 메리가 혼을 빼 놓을 정도로 성가시게 괴롭혀서 집에 오는 것을 끔찍히 싫어 해서
아 예 봄에 세 달 가을에 세 달을 순회 재판구에 머물면서 스프링필드 근처에는 얼씬 거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특히나 돈에 대한 감각이 없는 링컨은 수임료 25달러 보내 준 의로인에게 너무 많다며 그 중 10달러는 도로
보내주기도 하고 무료 변호도 다반사로 했으니 메리 또한 알뜰 할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치하기를 좋아하던 메리가 이 또한 견디기 힘든 일임에는 틀림없으니 잔소리는 거듭되고 결혼의 악순환은
꼬리를 물게 될수 밖에....
오뚜기처럼 일어서서 대통령이 되었다.
1954년 메리 토드의 옛 애인(?) 더글러스는 앞으로 다가 올 대통령 선거에서 남부의 표를 의식하여 자신이 발의한
미주리주 타협안(미주리주를 경계선으로 하여 북부는 노예제도 인정하지 않고 남부는 노예제도를 인정함)이 폐기되었다.
물론 하원에서는 칼을 휘두르고 총을 빼아드는 사태가 벌어졋다 하더라도
더그러스의 주장은 노예제도는 입법화 하지 말고 각 주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수 많은 도시지역 농촌지역에서'반역자 더그러스''현대판 유다'라고 하면서 항의 집회가 일어났다.
더글러스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도 당연히 분열 되었고 진보적 젊은 민주당원들은 더글러스를 공격하여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링컨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링컨은 불의를 비난했고,억압받는 흑인을 강하게 변호 했으며,도덕적의 위대함으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 한편
감동 시켰다.1855년(철종 재위 6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에 당연히 당선 될 거이라 철석같이 믿고 처가 집에서는
리셥션까지 준비 했지만 결국 메리 토드의 가장 친한 친구 남편 라이먼 트럼북에게로 상원의원 자리는 돌아갔다.
상심과 비탄에 빠진 링컨는 마을 타고 순회 재판을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변호사일을 다시 시작했지만 마음은 이미 정치와 노예제도에 있었다.
1858년(철종 재위9년) 링컨 나이 마흔 아홉
무명의 공화당 일리노이 주 상원 위원 후보 링컨은 미주리주 타협안 폐기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극적인 정치적 대결로
극복하고 오히려 예전보다 입지가 더 견교해진 미국의 우상 민주당 일리노이 주 상원의윈 후보 더글러스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정치 대결의 장을 시카고에서 치르게 된다.
"미국은 영원히 반쪽은 노예주 다른 반쪽은 자유주로 지속 되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집은 부분 부분 따로 세워 질수
없기 때문이며 이제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 쪽을 선택 할때가 되었다"는 요지의 연설문을 친구들에게 보여주자
친구들은 아연실색하며 '바보 같은 주장'이기 때문에 오히려 표를 깍아 먹는다고 말렷다.
그러나 결국 링컨은 다음과 같은 말로 연설을 마무리한다.
'집은 부분 부분 따로따로 세워질 수 없는 법'이라는 말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진리다.
이러한 주장으로 정치세계에서 사장 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목숨 바치겠노라"고.
당대의 최고 이야기꾼 링컨과 유머감각이 전혀 없는 더글러스와의 난타전은 결국 링컨이 패배하였다. 하더라도 링컨은
"넘어진 것이 아니라 다만 미끄러 졌을 뿐이라고" 자신을 위로한다.그리고 생계를 위해 다시 말을 타고 여기저기 순회
재판소를 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1860년(철종 재위11년)시카고에서 열린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 전당 대회에서 링컨은 시워드(강력한 대선 후보지명자)
와 그릴리의 보이지 않는 갈등으로 인해 어부지리로 대통령 후보 공천을 받게 된다.
그 소식을 들은 링컨은 아랫 입술이 경미하게 떨렸고 얼굴이 붉어 졌는데 그 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였다고 전해진다. 19년의 참담한 실패 끝에...그는 자기 자신도 정신 차리기 어려운 극적인
성공을 거든 거이다.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더글러스의 민주당이 분열하는 덕분에 40%가 못 되는 표를 얻고도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남북 전쟁...그리고 암살
1861년 3월 4일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을 하자 남부 7개 주는 이에 반발 분리 독립 선언을 하고 수도를 버지니아주의
리치먼드에 두는 아메리카 연합을 조직한 다음 노예제도 인정하는 헌법을 제정하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그리고 4월 남부가 샘터 요새를 공격함으로써 내란은 시작되었다.
노예제도를 증오했고 흑인노예를 해압시켰주었지만 버지니아 사람였기 때문에 링컨의 요청을 들어주지 못하고
남군 사령관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로버트 리 장군과 북군의 남북전쟁은 1865년 4월 9일 리 장군이 그랜트에게 항복
함으로써 남북전쟁은 막을 내린다.
그리고 이틀후 단지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때문에 존 윌크스 부스라는 연극배우는 포드 극장에서 링컨을 암살한다.
1865년(고중 재위 2년) 그의 나이 쉰 여섯 살에.
1863년 11월 게티즈버스 국립묘지에서 했던 링컨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연설을 할 당시 사실은 그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은 남부지방 억양의 그의 연설을 듣고
실망하여 박수조차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늦게 초청장이 도착하여 앉으나 서나 연설에만 몰두 했던 연설였는데...절망에 빠진 링컨은 심한 두통을 겪으며
침대칸 열차에서 찬물로 머리를 감아야만 했다고 한다.
링컨은 죽기 며 칠전 옥수수 농장에서 맨발로 농사 지을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지인은 전한다.
(배부른 투정일까?)
1863년이며 우리나라는 조선 철종이 승하하고 고종이 황제가 되는 시절이다.
미국에서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하겠다고 통수권자가 애타게 국민의 마음을 잡으려고 하는데
과연 우리나라는 그 시절 무엇을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링컨의 생애와 우리나라 역대 임금들을 비교 해 보았다.
정조 둘째 아들 순조가 왕위에 오른지 9년째 되던 해 링컨은 캔터키주 변방 오두막집에서 태어났다.
순조가 열 세살 나이에 김조순 딸을 비로 맞이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는 헌종과 철종에 까지 이른다.
왕전 마져 손아귀에 너고 뒤 흔들었던 세도 정치는 견제 세력이 없어서 벼슬을 사고 파는 매관 매직까지 서슴없이
저질러 나라는 극히 문란 해지고 백성들은 점점 살기가 힘든 환경에 내 몰릴수 밖에 없다.
체제가 다르기니까 뭐가 좋다 나쁘다라고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위정자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그 나라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질을 달라지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틀임없는 사실이다.(야그 하고 보니 넘 진부하네요..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요^^)
노예제도를 파괴하여 인류 역사를 다시 쓴 사나이 링컨
공화당에서 당선 되었던 링컨였지만 노예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민주당 인사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인재 등용했던
링컨였기에 어쩌면...오늘날 민주당에서 흑인 오바마대통령이 나온 건 아닐런지.
미국이 선진국 일수 있었던 가장 큰 경쟁력은 합리적인 사고인 것 같다.
열린 마음에 합리적인 사고를 키우는 것이 진보의 기초는 아닐까?
2012.9.16
NaMu
에피소드:링컨이 서거 한 뒤 5주 동안 메리 토드는 밤이나 낮이나 자기 방에서 나오려 하지 않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가슴이 찢어질 듯한 울부짖음. 이 세상 사람의 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날카로운 비명.
온 몸에 소름 돋게하는 영혼 깊숙한 곳에서 부터 터져나오는 슬픔같은 거.
|
첫댓글 시간이 없어 ...자판 내리 두들겼더니 오타 투성이네요
링컨...누구나 다 아는 야그 맞는거져^^
아...나무님..
고마워요~좋은 글을 읽게 해줘서~
섬세한 표현으로 링컨을 이야기하는 나무님에게 박수보냅니다~~
불로그에 옮겨놓고 몇번이고 읽어봐야겠어요~
누구나 다 아는 야그인데요...
쓰다보니 넘 길어졌어요...
반으로 딱 줄여 버릴까 그런 생각도 했는데요...
시간도 없고해서...그냥 올려봤어요...시간 나실때 ....함 ...읽어들 보시라구요^^
길어도 전혀 느슨하지 않고
탄탄함이 느껴지는걸요~^^
잘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질서언니^^
좋은글 감사요
무쟈게 길죠...
맘 잡고 함 읽어보신다면...아...그럴수도 있겠구나 하고 동감이 들긴하실거예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많이... 동감하신거져~~
네 그럼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링컨 다시 보기...읽은지는 한 참 됐는데요..
늘 시간이 없다보니...맘 잡고 함 써 봤어요..
불행했던 결혼 생활이 안타까운 점이기도해요..
(그럴만한 이유야 충분히 있었겠지만...)
한권의 책을 잘 읽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마져여~~ 넘 길죠...
맘 잡고 읽으신다면...그냥 저냥 읽을 만 했죠^^
오래 전에 링컨 위인전인지 자서전을 읽었는데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나도 어디서 단편적으로
읽은 걸 소개하겠습니다.
1. 링컨이 가난한 이유
링컨의 아버지가 부동산 계약을 3번 실수를 했다.
그게 부동산을 사려는 계약인지, 세를 들어가는 계약인지
몰라도 3번 실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동산은 잘
선택을 해야 한다. 뭐 대충 이런 겁니다. 아마도 부동산
자문하는 분들이 사실을 갖고 이렇게 해석을 한 것 같습니다.
2. 흑인 노예해방
애당초 링컨은 노예해방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다.
다만 자기가 소속된 곳이 노예가 필요 없는 산업을
주로 하는 곳이라, 흑인 노예 해방이란 명분도 전쟁의
명분에 추가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흑인들의 대단한
호응을 받았다고 하는 데, 어디까지나 어디선가 읽은 글입니다.
우리 배울 때
초등학교 교과서에
링컨이 독서광이다, 라는 게
나온 것 같습니다.
내가 알기론 돈이 없어서
한 권을 읽고 또 읽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 독서의 기본인 소량, 다독을
지킨 결과는 위대합니다.
히야간 돈이 없어서 유리한 점도 있습니다.
잼 난 야그 하나 할까요.
제가 본 책은 링컨의 전기하고 링컨의 지인 인터뷰를 중심으로 쓴 글였는데요...
키케로와 데모스테네스의 책을 통해서 연설문을 배웠구요.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보면서 연설을 익혔다고해요.
특히 셰익스피어를 상당히 좋아했나봐요... 세익스피어에 관한 얘기도 여러번 언급했거든요.
한 시도 책을 손에 뗀적이 없는 독서광였구요. 시도 상당한 수준였다고해요^^
생각을 해보세요...50주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뽑는 대통령인데...
처음에야 벌이가 시원찮았지만... 변호사로도 성공을 했다고 해요^^
턱수염을 길러라 조언을 누군가 했다던요
나무님 수고 많았습니다.
건강하세요!~
내가 안 했어요.
그거
아주 예뿐 여학생이
<링컨 아저씨 너무 말랐어요,
수염을 기르면 말른게 카무프라지 되요> 라고
편지를 써서 이틀 후부터 기른 겁니다.
아 그렇군요 이제 확실하게 기억나는 군요
세수대야님 말씀이 정확하게 맞는 듯 합니다.
그 다음날부터
기르려고 했는 데
습관적으로 면도를 했습니다.
이건
역사책 속에 없습니다
사람이 뭔지 알 면
자동적으로 이런 해답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은
습관을 잘 들여야 합니다.
습관,버릇, 그것 고치기 힘들어요
노력이 엄청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야구 중계를 보다 보면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들
저마다 습관,버릇이 다르더군요.ㅎㅎ
고인 된
프로 야구 장효조 선수는
베트로 발을 톡톡 쳤는 데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였습니다.
또
엉덩이를 돌리던 선수도
있었습니다.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삐적 마르고 .장대같은 키에 가는 목소리. 아무렇게나 입는 옷. 등등 남자로써의 매력은 없다고 책에서도 여러번 이야기했는데요...
중요한 것은 상당히 이야기를 잘하는 이야기꾼였다다고해요^^
(솔직히....키다리 아저씨같은 느낌이 NaMu에게는 더 들었는데요)
어릴 때 역사를 빛낸 사람들(간략하게 소개된 종합본)에서
링컨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세세하게 올려주심에 감사드려요
223페이지 짜리 아주 짧은 책였지만 내용은 링컨 전기책을 중심으로 링컨의 지인들 이야기 그리고 연설들을 넣어
사실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상당히 애쓴 흔적이 많아서 링컨을 객관적으로 아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넘 길죠...맘 잡고 함 읽어보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이란 나라는 이렇게 국민을 위해 애쓰는데 도대체 우리나라는 그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함 들쳐보았을 뿐이예요..
물론 비교 대상은 되지 않죠...이민국하고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