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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간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때입니다.
어김없는 자전과 공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최근 의료계의 분란을 봅니다.
10여년 전부터 소아과 등은 신생가 출생 감소 등으로 인하여
사양업종이란 이야기들이 의사들 사이에서 기피하던 과였어요.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등이 인기가 있었고요.
최근 농가주택들과 외곽의 전원주택 등을 중심으로
매물과 경매물건이 증가 중입니다.
지방이 당장 소멸하는 것이 아님에도 빠르게 이탈하려는 것인데요
그만큼 한국인의 종특으로는 급함이 있기 때문으로 여깁니다.
개인적으로 의대 증원의 득실이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지방의 의사를 늘리려 해도 탁상공론일 뿐이지 않겠나란.
안정된 직업 등을 얻고자 의사가 되려는 것인데
환자가 별로 없어도 거기가서 살아~~할 수 없는데다
보건소 등의 지방으로 가면 오히려 일이 더 많다고 하기도 해요.
의사들이 부족하니 여러 질환자들을 다 다루어야 하고
밤이고 낮이고의 구분도 모호하고 등 봉사 정신이 없으면
이리저리 어렵다고 하대요.
지금도 당장 위험 부담과 인건비 등을 감당하지 않으려
수술을 하지 않는 병원들이 많고, 증가 중입니다.
간단한 수술조차도 대학병원 등 상급병원으로 가야 하는 실정이기에
이리 시간이 흐르면 수술을 받는다는 것이
특권이 되어질런지도 모르겠다 합니다.
의대생을 증원하면
오히려 수도권의 병원들 경쟁만 더 치열해지기만 한다는 주장이
개인적으로는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경쟁이 심해지면 스스로 도태되지 않도록
다른 방향으로도 눈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
의료기술 등이 발전할 수 있는 측면이 생겨날 수도 있고요
로스쿨이 생기자 변호사들이 많아졌어요.
결과 소소한 것에도 소송을 대리해주겠다는 경우들이 많아졌어요.
예를 들면 신규 아파트에 입주할 때 기분양자들이 소송을 걸어
건설사를 상대로 돌려받는 돈들이 의외로 있습니다.
뭐가 분양당시의 조건과 맞지 않았다 식으로요.
결국 이런 것들이 공급 원가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이겟죠.
그리고 정계로 많이 진출해서리 아시다시피......인 상태이고요.
정치평론에도 많이 뛰어들었고
심지어는 재테크 조언까지도 하던데요.
어느 자칭 불우했던 환경의 흙수저에서
변호사가 된 이의 컨덴츠를 보았더랬습니다.
일부의 내용에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들었는데, 한데요~~~
공감이 되었던 부분을 제외하고는(사람들의 행태 등)
젊어서인가 미래에 대한 부분에서는 탁상공론이란 느낌이 강했습니다.
언급한 변호사 등만이 아닌
최근 유툽 크리에이터들 중 재테크 관련이 많던데요.
역시도 흔하게 발견되는 아쉬운 점이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은 남의 이야기를 그저 몇 마디 들어서 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직접 경험을 해보고 어려움을 느껴보고 등의 과정에서
알아지는 것들이 많죠.
주식투자를 에로 들면 간단합니다.
좋은 주식을 싸세 사서 보유하고 있으면 되야요.
실제로 뛰어들어가보면 하루에 열두번도 생각이 왔다갔다 하기가
쉬울 건데욥. 주가의 오르내림에 따라 심리 상태가 달라지기도 하고.
많이 알아질수록 오히려 모른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돌발적인 변수와 개인의 여건이나 상황 등에 따른
개인차가 많다는 것을보기 때문에 결과를 책임져줄 수 없어서 입니다.
실제 미래에 대해서는 모르기도 하고요.
돌아가서요.
의대가 없는 대학들이나
비인기 전공들이 고사되어지겠다 하는 중입니다.
국문학과가 없어진 대학들이 예전부터 존재합니다.
다른 전공으로 통폐합 등이 되어서 관련 과목은 남아 있으되
학과는 사라진 형태로요.
이유는 취업률로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이 만들어지다보니
국문학과 등이 해당 대학의 취업률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요.
개인적으로는 영어가 한국어 외의 공용어가 되었으면 합니다.
비영어권 국가의 사람으로 느끼는 애로점이 많은지라~~~
얼마 전에 나온 최신 폰은 앱을 받지 않아도
폰 자체에 16개 언어에 대한 통번역 기능이 있다지만~
그래도 불편한 것들이 많은 것은 사실.
이렇든 저렇든 저의 소관이나 영역이 아니기에
그저 흘러가는대로 지켜볼 뿐이긴 합니다만,
다수의 이해관게가 얽힌 탓에
세상은 늘 이리저리 시끄러운 곳이구나~ 하는 중입니다.
단지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리의 부분에서는 미혹의 문제들로 더 많이 혼탁한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설교 중에
언급된 아마존의~ 분의 간증을 들어본 바가 없기에
그 부분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도
어느 분의 간증을 듣다가 문제를 일어날뻔한 적이(?) 있습니다.
들으면서 여러 부분에서 자신에 대해 계속 높이는 것 같은 등
거부감이 있었는데
제가 교만함 등으로 주님의 종인 분들에 대해
심히 경계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저를 스스로 눌렀다는 ㅠㅠ
"왜 그랬는디?"
휴~~~
여전히 귀가 얇아서리. 사람의 말을 따라갔다는. ㅜㅜ
결과 갑자기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는
'이건 주님에게서 온 것이 아녀~~' 하면서 거부하니까 사라졌지만요.
그러니 들을 (두터운 ㅎ~)귀를 주신다는 것 역시
은혜 중의 은혜라고 여깁니다.
사단이가 공격하는 방식이 많을 것인데
그 중 하나가요~~~ 그 사람을 바로 치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한 고리를 치는 간계를
자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으면 오로지 꽃길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인들이 쓰러지고 넘어지고 ~~그럴 수가
얼마든 있음에 대해 점점 더 알게 되어집니다.
이런 문제들에 비하면
탁상공론 식의 투자 조언 등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가토요.
함부로 조언 등을 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이 아닌
영혼의 문제와는 비견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단이가 마구잡이로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람의 이유와 규칙성 같은 것이 있는 듯 합니다.
예전에 이런 내용을 들었어요.
모세의 광야 생활 동안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적인 때와 뗏국물을 빼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그 시간이 40여년이 걸렸다고 ~~~
휴~~~저 같은 소자가 한 것이 아닌
엄청시레 유명한 분이 한 말입니다. 그랬으니 저는 그게 참말인줄로만 ㅜㅜ
확실히 얇아~~~ㅋ
목사님의 설교 포함 말씀을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세의 영권에서 보호를 받고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뭔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되는 분은 목사님의 출애굽 등의 강해 설교를~^^)
제가 주님을 열심히 믿을 때, 주님이 은혜를 주시겠죠.
저로 인해 은혜 안에 같이 거하는 부분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여 제가 사단이라면~~~
은혜 안에 어느 정도라도 같이 거하는 이보다는
영향력을 크게 미칠 수 있는 후자의 사람을 통해
믿음을 무너뜨리려 할 것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모든 것은 죄의 문제이긴 하나
믿는 이의 영향권에 대한 부분도 고려되는 것 같습니다.
영향권에 있지 않는 경우가 좀 더 강력한 마귀의 밥이 되어지는 듯.
하여서리 제게 영향은 미치되,
그러나 제 입장에선 도움을 줄 수 없을 때
공격의 타깃이 되어지는 것을 본 듯 합니다.
그래야 피 튀기는 영적 싸움에서 사단이가 이길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사단이는 매임을 만들고 만들려고도 합디요.
그럴 땐 '매임에 대한 놓아버림~'이 강력한 대응방법이 되겠죠.
믿음이 중요하다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힘이 없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듯
자신을 쳐서라도 놓는 것이 사단이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반면 사단이는 행함을 하지 못하도록 계속 방해하고 막을테고요.
주님을 따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여깁니다.
주님은 강제하는 영이 아니시지만
사단이는 강제하려 하고 괴롭히는 영인지라
계속 번민이 일게하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롭히는지라
괴로우니까, 괴로움을 끊어내려 따라가다보면
믿음은 무너져 내리기 쉬운 상태가 되어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믿음이 어리고 공격에 대해 둔감할수록 이 방법에 당하기가 쉽겠죠.
자신의 영혼에 대한 책임은
타인 혹은 연대 책임 등이 아닌 오로지 자신이 지는 것입니다.
한디요~~
사단이는 다른 이가 믿지 않는 부분에 대한 책임까지
저더러 다 지고 가라고 압박합디요.
제가 책임권자이면 누구는 복음을 얻고,
누구는 안되고가 제의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인데요.
복음은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저 같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데도요.
투자의 경우도 모든 것은 자기 책임이라든디
영적인 부분에서는 타인이 안고 갈 수도 있다는 미혹 또한
얼마든 존재할 수 있겠다 합니다.
내가 기도를 덜 해줘서 그렇다~~식으로요. 등등
단지 몇 마디의 말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주님도 그러지 않으셨다는~~
주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주님에게로 나온 이들은
삭개오 등에서처럼 그들이 주님을 원했기에~ 그랬던 것이지
믿지 않겠다는 이들을 주님이 강제로 돌려세우신 바가 없는데도
주님도 행하지 않으셨던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달라는 이들이 많은 듯요.
악한 이들이 주변에 많을수록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믿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럼으로 그 자신을 악한 자들 가운데에서 지킬 수 있고
누가 아나요?
빛과 소금이 되어서 다른 이들을 변화시킬런지.
주님을 따름에 있어 목적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음혜를 받기아 어려울 것으로 여깁니다.
주님은 주님이시기에
왕이신 분으로 순종하여 믿고 따르는 것 그게 믿음인 것이지
조건이나 목적이 붙는다는 것 자체가 주님을 이용하려는 함인데요.
나아가 주님은 주님이시오니 믿는 것이지
다른 이를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 내가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죠.
등불이 되고 소금이 되어지기 위해 믿는다면
외식하는 자로 가는 지름길이지 않겠나 합니다.
타인에게 나의 의로움이나 선함 등을 계속 보이고 과시를 해야만 하니까요.
우리는 다들 미치기~쉬운 존재들인가 봅니다.
방구석 기도로 세상의 많은 일들을 자신의 원함대로 바꾸려드는
미혹으로 들어가는 경우가많음을 접하곤 합니다.
우상의 문제라는 것은 풀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단지 제사를 지내지 않고~ 그런 정도에 불과하다면 참 쉬운 것인데요.
얼마 전에도 제 집안의 어느 조상님이
매일 같이 머리를 빗었다(단정하게 했음~~)란 내용이
일간지 기사에 인용이 되어 있어서리 웃었는디욥.
상투를 틀던 시절이었다지만
머리를 매일 빗었다가 ~~~대체 머시라꼬.
그런 조상님이 있다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닙니다.
그 후손들은 대부분 조상숭배를 강요받고, 숭배에 빠져들기 쉬워서
영적으로 피폐한 상태이기 쉽지라~요.
이런 것보다
사람을 포함 세상의 것들이 우상인 경우는
죄를 깨닫고 해결하기가 한결 더 어려운 듯 합니다.
자신의 원함, 사랑 등으로 포장되어 있기가 쉬워서요.
앞서 언급했던 간증과도 이어지는데요.
어느 이가 사망을 했는데 주님이 데려가셨다는 겁니다.
사역자였던 상태에서 갑자기 사망을 했다는데
꿈인지 환상인지를 통해 이전에 그 사람에 대한 확증을 받았다는 겁니다.
갸우뚱~~~~~~??????
제가 아는 주님은 그렇게 누군가에 대해
설령 사역자 할아버지여도 배교하지 않도록 해주시겠다고
(계속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데블고 계신겠다고)
물론 믿음을 잃기 전에 데려가시는 은헤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압니디만,
그 부분에 대해 타인에게 생전에 인을 쳐주시는 분이 아니신데요.
그리 인을 쳐주시는 분이시라면 사울왕은 왜 그랬대요.
한때는 가장 겸손한 사람이었다던데.
인을 쳐주신다면 배교란 있을 수 없을 것이라
구원파식 믿음에 대해 경계하고 배격할 이유 또한 없겠죠.
그래서리 주님이 데려가셨다고 하면서도
오랫동안 슬퍼하고 아파했다는 겁니다.
그러한 고통을 겪는 이들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주님이 경험을 주셨다는 역시도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를 합디요.
그라면 남자 목사님들은 해산의 고통에 대해 전혀 알 수조차도 업꼬~~
주님도 남자의 몸으로 오셨으니 ???
역시도 그런 논리라면 말씀을 통해서가 아닌
지옥에 댕겨와야만 (불가능+ 저는 절대로 원하지 않음 ^^;;)
지옥의 고통에 대해 느끼고 알 수 있다는 것 아닌가요?
제 입장에선 이해가 잘 안되는 논리이고 주장이었다는.
아무리 주님이 데려가셨다한들
내 골육지친이 사망하면 마음이 아픈 것이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만
그 슬픔을 몇년 동안~ 그 이상으로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죄의 영역이지 주님의 단련하심이 아니지 않나요?
슬픔에서 계속 빠져나가지 못하면
정신적, 정서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이상하다 식으로 비난을 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렇듯 우상의 문제는 많은 이들에게서 어려운 부분이구나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다한들 주님을 따르려면
넘어서야만 하는 부분에 불과합니다.
얼마 전에 주님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어떤 것에 대한 방법을 찾은 것으로 여겨 "유레카~~~" 를
혼자서만 외쳤더랬슈.
나아가 마음까지도 기쁨으로 편해졌더랬는데요.
그 부분에서의 불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깨달았는디~~" 라며 묻는 분이 나타나기 전에 얼렁 고백하자면 ㅋ
공격을 받는 것 같았기에 왜 그러한가의 이유를 찾아가다보니
그 부분에서 마음이 걸리더만요.
즉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어떠한 부분에 대하여 주님을 앞서서
저의 머리와 판단에 기대어서 방법을 찾았던 것인데.
주님에게 의지했다고 해도 결국은 같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결국은 같은 상황일 것인데도
왜 그랬을까에 대해 짚어보니 의지적으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실제 마음 속에는 그 부분에서의 막연한 불안함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 여긴다'와 '그렇다'는 다를 수 있어서
때로는 나도 내 마음을 잘 몰라~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같은 상황인데
불신이란 죄가 있으니 죄를 부른다~로 설명할 수 있겠죠.
또한 잠시 마음이 편혔었다 한들
편안함이 다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며
여전히 주님을 따르며 순종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익히고,
또 익혀야 하는 자에 불과하여서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 바로 죄 속으로 들어갈 있는 자임을
다시금 깨닫고, 생각해보게 됨에 대해
그래도 감사하게 됩니다.
이간이 심한 사람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를 해주려면 당신에 대해 알아야 하니 말해보시오~~"하던데
이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여깁니다.
실제로 사정을 알아야 기도를 깊이(?) 해줄 수 있기도 하고요.
다만 여기서 이간의 영이 작용을 하였다고 여겨집니다.
"그것을 어캐 알았는디?"
주님이 아닌 그 사람에게 마음이 열리면서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등 그랬어요.
하여 '이건 잘못된 것이구나~~' 라고 바로 알았다는요.
미혹의 영이 작용해도 비슷한 것 같던데
미혹의 영이 이간의 영이기도 해서 그러하겠죠.
역으로도 생각해봅니다. 이간의 영이 강한 사람은
선지나나 특별한 능력자를 찾아헤매는 등
주님보다 사람에게서 구원자의 모습을 찾으려 함이 강하게 될 것이란.
결과 쉽사리 주님이 아닌 사람을 따르게 될 것이니
잘못된 영을 따라가기 쉬운 상황이 펼쳐지기 쉬울테고요.
"주님을 믿는 사람이 그라믄
그 상태는 양신 역사 같은건감?"
휴~~~~
저는 그런 부분에 대해선 일절 몰러욧~~
개인적으로 양신 역사란 없다고 여기기도 하고요.
그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면
악한 영이 거룩한 존재인척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깁니다.
물론 믿는 이라도 잠깐
악한 영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정도입니다.
계속 강하게 받는다면, 주님을 부인한 상태인 것일테고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지라.
"그란디 우상의 내용에서 갑자기 다른 내용으로 바뀐 이유가 뭐여~~"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부분에서 같은 것 같아서요.
절대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
목사님에게도 예언은사가 있으신지라
예언을 받아본 바가 있습니다. 여러 교우님들이 같이 받았는데요.
제게는 "네가 ~ 믿느냐?" 였어요.
순간 띵~~~~~~~~~~~~~ㅎ
언급한 ~~의 부분을 의심한 바가 없고, 안 믿었던 적이 없었기에
당연하게 믿는다고 대답하면서도 의아했기도 했고
왜 그런 내용이 나오는가 등에 대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죠.
오래지 않은 얼마 뒤
목사님을 통해 무엇을, 왜 물으셨는가에 대해 알았습죠.
제 주변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었거나
또는 곧 일어날 일에 대해
강한 마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버텨나갈 힘을 주시기 위한 것.
말씀에 기록된 에언에 대해서조차도 다 알지는 못합니다만
그 유명한~~~~~
베드로에게 주님이 예언을 하셨더랬어요.
이후 실제로 주님을 3번 부인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주님이 예언을 해주신 것에는 이유가 있겠죠.
예언은 점장이식의 역할이 아닌
그 사람이 믿음을 유지하고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길라잡이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목사님이 설명대로
신사~들은 예언에 조건이 없더만요.
따악~~~무속인들이 쌀알을 던지고는
점을 치듯한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영화 등에서 본 모습인데
왜 그리도 무속인들의 모습은 상투적일까? 합니다.
역시도 간계이고 전력이다라고 여깁니다.
우연히 정치인들을 상대한다는 무속인을 마주친 적이 있는데요.
경계하느라 말을 시켜보고 하지는 않았지만
샤방샤방하고 이뻤어요. 말도 고분고분 조용하게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한 모습에서
무속인에 대한 전형적 이미지가 파악~깨지면서
평범한 사람인양 여겨지기가 쉽겠죠.
글타보니 요즘엔 정신과 의사를 대체하는 카운셀러라고도 하던데요.
요즘 무속과 관련한 귀신이가 나오는 영화가
극장가에서 인기를 끈답디요.
결과로 출연진과 제작진 등이 엄청시란 (영적인) 타격을 입었겠다 합니다.
얼마 전에 예전에 만든 선교 영화를 하나 봤어요.
북한 쪽에서 기독교가 무너져내린 모습을 다룬 것인데
요즘 감성으로 보려니 내용의 전개가 매끄럽지 않고 등
저예산으로 (?) 70년대 즈음에 만들어진 영화로 여겨지던데
여러 부분에서 엉성했어요.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내용의 전개가 넘 매끄럽지 못하여 재미는 없었지만
배경에 깔린 찬송가들이 은혜로워서 끝까지 봤다는 ^^
그런 영화들을 통해 영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을 듯 싶고
저때는 사람들의 믿음이 순박했었나보나~싶었네요.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영~~
당연한 것이겠으나 사단이는 항상 그 사람의 약점
즉 약한 고리를 칩니다.
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오로지 깨어서 기도하며
주님을 따르는 것 외엔 없다고 압니다.
영적인 타격거리가 ~~많은 가운데
사단이의 종으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뭔짓을 하든
사단이의 손으로 넘어갔다면 사단이의 마음인 것이겠죠.
사단이에게 넘어간 사람에 대해
백날 기도한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지겠나 합니다.
오히려 우상의 문제로 불이 나기만 쉬울 것 같은디요.
기도한다고 하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가 역사할 때 같이 넘어지는 길을 가지는 않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영적 권위란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자신이 어느 부분까지는 만들어야 하지만
역시도 주셔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겠죠.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신비로운 영역 가운데 하나이다 합니다.
간혹 쌍두 상태의 동물들이 태어나곤 합니다.
대부분 자연생태게에 살아남을 수 없어 도태되는데
간혹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살립니다.
한 가정에서 머리가 둘인 경우엔 문제가 많이 일겠죠.
보통 가정에서의 머리는 남자입니다만.
목사님의 어느 설교 중에 아내가 머리 노릇을 하려 할 때
영적인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 되어
이단 등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등을 설명해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는 '맞다~~'라고 공감을 했었죠.
가정 내에서도 권위구조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모든 이들의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이시기에
다 통용이 되는 영적인 법칙이다 합니다.
가장 작은 사회라 할 수 있는 가정 내에서도
영적 권위 구조가 없거나 질서를 흐트러트린다면
그사람은 하나님에게도 순종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작은 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더 큰 것을 지킬 수 있는 법이니까요.
거액의 로또나 복권에 당첨되면 인생이 행복해질 것 같으나
대부분의 경우에선 더 불행해진네요.
방탕, 사기, 이혼, 파산, 약물, 극단적인 선택 등으로 이어진다죠.
돈을 제대로 관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확률을 따져 그런데 쓰는 돈 마저도 아까워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확천금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노력해서 모으고 불리려 하죠.
즉 돈은 관리할 능력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지킬 능력 또한 없는 법입니다.
단지 돈의 부분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많은 부분에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공짜 점심이란 없고, 일확천금이란 것도 없다~입니다.
하지만 믿음을 포함하여 영적인 부분으로만 가면
노력 없이도 손 쉽게 다 얻는 일확천금을 기대하려고 합니다.
안보이고, 잘 모르니까.
어쩌면 제가 지닌 미혹일 수도 있으나
삶의 과정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고 열심히 살아본 경험의 유무가
믿음에서도 어느 정도는 작용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느 때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믿음에서도 제 의지와 노력으로
죽을 똥, 살똥~~~할 때가 생기는 부분이고요.
도움이 되는 부분은 그럼에도 주님에 의지하여 계속 밀고 나가면
얻어질 것이고 된다고 여기는 긍정성 부분에서.
어쨌든 믿음에도 그 사람의 기질이 많이 작용하는 듯요.
"에고~~~요즘엔 잠잠한가 했드만
또 열심히 살았다고 주장하는 자뻑이구만~~~
그 병엔 약도 없어. 약이 없다든디~~~~~"
헐~~~~~~
자뻑 아닌데요~~자뻑이란 증거를 대보셔요.
전 아니란 증거를 객관적으로 댈 수 있음~~~~~~~(? ) ㅎ
"박박 우기니까 귀찮아서라도 ~~그렇다 치고
그렇게 살아서 대체 뭘 얻었다는겨?"
주님을 만났죠~~~
오~~~
이것만으로도 매우 성공한 인생인데요.
열심히 해본 것들에 대해서는
내 능력은 어디까지이고 식으로 한계에 대해 스스로 알기에
허황된 기대치 등을 지니지 않게 됩니다.
허황됨 등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부분에서의 거품이 없다는 것이라
놓는 것을 포함하여 주님의 다루심을 받기가
(다 그렇다고 할 수 없어도) 상대적으로 쉬울 가능성이 생기겠죠.
해보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아쉬움을 늘 지니게 되면서
환상 등을 지니기가 쉽잖습니까.
쓰잘데 없이 자신은 생각으로 슈퍼맨이라도 될 듯 여기고는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조종하려 들 수도 있고요.
기도도 그라요~~
미치다시피 한 사람멘치로 도고 기도를 열심히 해본 적이 있습니다.
원함대로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제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최대치를 해주었다고 여기기에
그 사람에 대한 놓아짐이 빠르게 되었다고 여깁니다.
놓아진다는 것은 그 부분에서의 자유함이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 그렇다고 할 수 없겠지만
기도에 대한 미혹이 있다는 것은
전심으로 하는 기도를 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전심으로 기간을 길게 잡고 해보면(40일 정도라도 )
기도에 대한 미혹은 이내 깨질 것 같습니다.
만일 기도의 내용이 잘못된 것이라면 믿음마저도잃을 수 있겠죠.
그러나 단지 모름으로 그러는 것이라면
믿음이 무너지기 전에 분명 주님의 바로 잡아주시는 은혜가
나타날 것이라고 봅니다. 제게도 나타났던 은혜입니다.
제가 보냈던 불신의 시간에 대한 깊은 회개로 이끌어가셨어요.
당시 상황이 한편에서는 계속 공격을 받았기에 비유하자면 밑빠진 독 비슷했는데
결국은 교만함으로 인해 주신 은혜를 빠르게 까먹고는 넘어졌더랬어요.
지나고보니 공격을 제겐 이겨낼 힘이 없었어요.
그래서 은혜를 더 주셨던 것 같기도 하나.
어느 부분에서 계속 저의 의가 주님보다 앞서 있었던 것이 결국에는.
"지금은 이길 수 있어?"
이기고 짐의 부분이 아니고요.
갸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여깁니다.
다른 이의 죄에 함부로 간섭하지 말라고 하셨기에.
"그렇다고 모른척 하믄~~ 그 사람은 죄를 어떻게 깨달아?"
한 두번 정도 권면해 보아도
계속 듣지 않거나 제자리이면 어쩔 수 없는 것이죠.
당사자가 해결해야 할 부분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고자 하면 때에 맞춰 회개를 이끌어 주시는 등
은혜를 주실 것일 것이라 믿고 놓아야죠.
죄를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시오니.
만일 제 머리에 꽃이 만발하여
성령님의 자리를 꿰차려 든다면 저는 어찌 될까요?
자칫 성령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댕겨서리
다시는 회개함이 없을 수도 있는 죄 가운데로 들어갈런지도.
아이고~~~
단지 생각만으로도 무섭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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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찌되었든 필수의료 수가를 넉넉하게 책정하여 주고 필수의료가 아닌 분야들은 필수의료보다 더 적은 수가를 받을 수 있게 한다면 필수의료는 차고 넘치게 될 것은 뻔한 일이 될 것입니다만... 1990년 중후반부터 의료보험 제도 속에서 많은 것들이 주먹구구식으로 되어져 왔기에 의료제도를 잘 정돈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싶습니다. 그렇기에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를 보고 국민들은 피해를 떠안고 있는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의료인력의 단순한 증원만으로 노령화로 인한 의료공백이나 필수의료 분야의 인력부족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기에, 의사분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만... 정부가 자신들의 주장을 내려놓고 의사들과 대화의 장을 열기를 바래봅니다만...
지금도 의사들의 심한 경쟁 속에서 돈을 많이 버는 의사들도 많지만 망하고 실패하는 의사들도 많은 실정인데, 많은 총체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논의가 필요하고, 지혜자들이 많이 나와야 어느 정도 정돈될 수 있을 터인데... 그냥 이번 의료사태를 지켜보게 됩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지금 안과수술을 예약한다면 2년 뒤에 가능하다고 합니다.
네. 그랬으면 좋겠어요.
합리적인 수가 조종으로 상생할 수 있는 구조요~
이래저래 복잡다단한 세상이다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