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경 시인>>
<<성찬경 시인의 양력>>
<작품의 경향>
성찬경 시인은 영국의 현대 낭만주의 시인인 딜런 토머스를 연구하면서 그로부터 시적인 영감을 적잖이 받은 것으로 보이며, 형이상학파 시인들의 영향도 눈에 띈다. 그의 시는 전 시작 과정을 통틀어 지속적으로 은유를 구사하고 있고, 이와 더불어 추상적 관념이 빈번하게 드러난다. 그의 시에 있어서의 은유는, <은유를 사랑한다>는 그의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유의 한 종류라는 의미를 넘어서 시인의 근본지향까지도 아우르는 이중적인 개념을 지니고 있다. 그의 시는 시어의 비약과 생경한 이미지의 상용으로 인해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비약적인 연결과 특이한 이미지가 특유의 개성 있는 언어 표현으로 주목된다.
- 참고: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생애>
충남 예산에서 출생한 성찬경은 서울대 대학원 영문과를 졸업하였고, 1971년 미국 아이오와대학 국제창작계획 회원으로 참가하였다. 박희진(朴喜璡), 박재삼(朴在森), 박성룡(朴成龍), 이성교(李姓敎), 이창대(李昌大), 강위석(姜偉錫) 등과 함께 <60년대사화집>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했다. 1956년 <문학예술>에 시 <미열> 등을 통해 추천 완료되어 문단에 등단한 이후 <아무도 나를>, <다빈치의 독백>, <삼신 할머니> 등의 작품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1979년 연작시 <나사>로 제11회 한국시인협회상, 1985년 <반투명>으로 제5회 현대시학작품상, 1991년 제2회 빛과구원의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양력>
* 1930년 충남 예산 출생
* 2013년 2월 타계
* 1956년 조지훈의 추천으로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
* 1961년 시동인지 <60년대사화집>에 참가
* 1964년 서울대 문리대 · 동대학원 영문과 졸업
* 1971년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국제창작계획에서 문학연구
* 1978년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
* 1980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문학연구
* 1993년 가톨릭문인회 회장
* 1996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 2000년 성균관대학교 사회교육원 시창작 강사
<시집>
<화형둔주곡(火刑遁走曲)>(1966) <벌레소리송(頌)>(1970) <시간음(時間吟)>(1982) <반투명>(1984)
<영혼의 눈 육체의 눈>(1986) <황홀한 초록빛>(1989) <소나무를 기림>(1991) <묵극>(1995)
<나의 별아 너 지금 어디에 있니?>(2000)
<상훈>
* 1979년 한국시인협회상 - <나사>
* 1985년 현대시학작품상 - <반투명>
* 1991년 빛과구원의문학상
* 1996년 월탄문학상
<<성찬경 시인의 시>>
달/성찬경
달이여
달이여
쏘련제
로켓트로
Hymen을 찢긴
아름다운
아름다운
빛의 호수여
秋史의 글씨에게/성찬경
몸통을 틀며 꼬리를 튕기며 하늘을 찢는 비늘 돋친 용(龍).
시기하는 눈알하고 천 길 낭떠러지를 뛰며 오르내리는 성난 호랑이.
허나 이젠 용(龍)이 너에게 늘어져서 힘을 빌린다.
너에게 근육(筋肉)을 빼앗긴 호랑이도 더는 뛰지를 못 하는 병신이다.
어느 천둥벌거숭이가 너의 모험(冒險)을 겁없이 바라보랴. 어느 제왕(帝王)의 횡포가.
어느 미치광이가. 어느 귀신(鬼神)이 너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흉내내랴.
비단을 吐하는 누에의 솜씨보다도 쉽사리 네가 마구 뿌리는 그 절묘(絶妙)한 멋을
어느 제비의 비상(飛翔)이. 어느 선녀의 너훌거리는 옷자락이 한 번인들 지녀 왔으랴.
너의 주춧돌도 기둥도 대들보도 그 위에 박힌 온갖 잔 못까지도
모두가 山 위에 제멋대로 뒹구는 무심한 광물(鑛物)처럼 스스로의
온통 온전한 모양과 무게에 매혹(魅惑)되어 깊은 잠 속에 가라앉는다.
그러면서도 하늘의 성좌(星座)처럼 어김없이 서로의 자리를 눈뜨고 지킨다.
규우브니 훠어브니 하는 이십 세기의 회오리바람이 너로 하여 비롯된다.
데포르마숑이 너로 하여 기계(機械)다운 기계(機械)가 된다. 너로 하여
피라미드처럼 쌓인 울적이 무산(霧散)한다. 팽창한 자의식(自意識)이 작열(灼熱)한다.
벽에 밴 오랜 곰팡내가 가신다. 해풍(海風)이 밀려온다.
무슨 슬기가 야릇하게 홍소(哄笑)하는 너의 표정(表情)의 뜻을 샅샅이 풀어낼 수 있으랴.
불순(不純)을 산산이 바수는 무슨 치도곤(治盜棍)이 너처럼 무자비하랴.
너를 키운 한국(韓國)이란 물, 한국(韓國)이란 땅, 한국(韓國)이란 바람은
너의 천둥 같은 나래 소리로 해서 길이 멀리 떨칠 자랑을 간직한다.
나사/성찬경
길에서 나사를 줍는 버릇이 내게는 있다.
암나사와 숫나사를 줍는 버릇이 있다.
예쁜 암나사와 예쁜 숫나사를 주으면 기분 좋고
재수도 좋다고 느껴지는 버릇이 있다.
쭈그러진 나사라도 상관은 없다.
투박한 나사라도 상관은 없다.
큼직한 숫나사도 쓸 만한 건 물론이다.
나사에 글자나 숫자나 무늬가
음각이나 양각이 돼 있으면 더욱 반갑다.
호주머니에 넣어 집에 가지고 와서
손질하고 기름칠하고
슬슬 돌려서 나사를 나사에 박는다.
그런 쌍이 이젠 한 열 쌍은 된다.
잘난 쌍 못난 쌍이
내게는 다 정든 오브제들이다.
미술품이다.
아니, 차라리 식구 같기도 하다.
보석밭/성찬경
가만히 응시하니
모든 돌이 보석이었다.
모래알도 모두가 보석알이었다.
반쯤 투명한 것도
불투명한 것도 있었지만
빛깔도 미묘했고
그 형태도 하나하나가 완벽이었다.
모두가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보석들이었다.
이러한 보석이
발아래 무수히 깔려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하늘의 성좌를 축소해 놓은 듯
일대 장관이었다.
또 가만히 응시하니
그 무수한 보석들은
서로 빛으로
사방팔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빛은 생명의 빛이었다.
이러한 돌밭을 나는 걷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의 밭이었다.
홀연 보석밭으로 변한 돌밭을 걸으면서
원래는 이것이 보석밭인데
우리가 돌밭으로 볼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것 모두가 빛을 발하는
영원한 생명의 밭이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이다.
거리가 우주를 장난감으로 만든다/성찬경
알맞게 구름이 끼어 있으면
해도 잘 익은 감 정도여서
오래 보며 놀 수 있다.
사실은 지구에서 해까지
광속으로 8분 걸리는 거리 덕택으로
해가 저렇게 예뻐 보이는 것이다.
개똥벌레의 정기총회 같은
하늘의 별자리.
구경 치곤 세상에서 으뜸이다.
그러나 저 별까지의 엄청난 광년의 거리가 있기에
무시무시한 불덩어리들의 모임이
저러한 신비의 향연이다.
거리만 있다면야
장비도 골리앗도 무서울 게 없다.
막 폭발한 성운의 사진이
영혼의 심부까지 스미는 추상화다.
직업 화가를 난처하게 만드는.
거리가 있기에 우주 구석구석이 서로 재미나는 장난감이다.
인간 둘레
무량 광명
거리가 자비다.
바스락바스락 작업을 한다/성찬경
제일 좋은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로버트 브라우닝)
주문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흥얼거리며
바스락바스락 작업을 한다.
단박에 걸작이 나오나.
바스락바스락 작업을 한다.
밥먹다가도
글자 몇 자 끄적끄적 끄적이기도 하고
잠자다가도 생각만 나면
신문지를 가위질하여 스크랩 북을 채워나간다.
바스락바스락 작업하는 재미는
내가 지금까지 발견해 온 재미 중에서
단연 으뜸가는 재미다.
80대를 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가 되게 하는
마지막 남은 나의 전략이 이것이다.
바스락바스락 작업을 한다.
리듬 인생/성찬경
인생은 리듬.
리듬만 타면야 리듬만 타면야
쓴 맛도 단 맛. 재미나게 도도 닦아.
랄랄라 랄랄라 리듬 인생 즐거워.
호습고 재미나는 리듬 발명하면 천재.
리듬 잘 타면 삶의 달인.
리듬의 두목은 우리의 호흡.
리듬 자동장치 타면 백리 길도 멀지 않아.
리듬은 마약 같은 묘약.
게다가 권위도 있어.
관성(慣性) 탄력(彈力)모두 와서 리듬 시중을 들어.
리듬은 순환운동.
영원 가는 비밀 통로.
리듬 리듬 리듬 리듬 리듬 인생 즐거워.
보석밭/성찬경
가만히응시하니
모든돌이보석이었다
모래알도모두가 보석이었다
반쯤투명한것도
불투명한 것도 있었지만
빛깔도 미묘했고
그형태도 하나 하나가완벽이었다
모두가 이름이 붙어 있지않은
보석들이었다
이러한 보석이
발아래 무수히 깔려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하늘의 성좌를 축소해놓은듯
일대 장관이었다
또 가만히 응시하니
그무수한 보석들은
서로 빛으로
사방팔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러한 돌밭을
나는걷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의 밭이었다
홀연 보석밭으로 변한 돌밭을걸으면서
원래는 이것이 보석밭인데
우리가 돌밭으로 볼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것 모두가 빛을발하는
영원한 생명의발이
우리가 걷고 있는곳이다.
줄타기 곡예사(曲藝師)/성찬경
휘청휘청 끊길 듯 팽팽한 줄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정신은 소멸하고
그 위에 수직으로 세워진 신경이
칼날 같은 안식처를 찾아서 찾아서 떨고
그 명령을 받아 역시 미시적(微視的)으로 떨리는
한걸음 한걸음이
태(胎)에서 무덤까지의 도정(道程)처럼 멀구나.
그러면서도 그것은 긴 절규처럼 일순이다.
그런 속에서 곡예사는 웃는다.
밑에서 장단꾼이 업! 하면 업! 하고
여! 하면 여! 하고 화답하긴 하지만
그러나 곡예사는 외롭구나.
풍랑 속의 쪽배처럼 외롭구나.
줄을 뒤로 뒤로 흘려 보내는
곡예사는 시시각각 꺼꾸러지지 않고
곡예사는 시시각각 기적이구나.
이때에 줄이 탁 끊어지지 않는다는 우연의 정체를,
갑자기 발에 쥐가 나지 않는다는 우연의 정체를,
질풍이 난데없이 휘몰아치지 않는다는 우연의 정체를,
이 모든 정체를 곡예사는 모른다.
능동의 고비를 넘어
순수한 피동 속에 내맡긴 곡예사는
이 깊은 낭떠러지 위에서
그처럼 신기하게 안전하구나.
곡예사여. 곡예사여.
이윽고 묵숨의 유희를 마치고
갈채 속에 무대 뒤로 사라지는 곡예사여.
이제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대의 수고를 치하하는 이들의 따뜻한 품 안이냐?
아니면 그런 것이 오히려 번거로와
화장도구(化粧道具)와 못난이역 의상 따위가 황량하게 널려 있는
어느 구석 삐걱이는 의자 위에
아아, 하고 쓰러지며 부르는
쓰디쓴 망각이냐?
시계불알이/성찬경
시계불알아.
시계불알아.
만약에 내가 너에게서
‘시계’를 빼고 그냥
불알아
불알아
한다면
남들이 나를
얼마나 실없는 건달로 알겠느냐.
그러나 ‘불알’에 ‘시계’를 붙여
시계불알아
시계불알아
하면
남들이 그냥저냥 들어줄 뿐만 아니라
끝도 없이 흔들리는 너의 몸짓에서
무슨 상징적인 여운을
느끼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니 이 세상에
‘시계’란 말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시계불알아.
시계불알아.
예수님은 시인/성찬경
예수님.
당신은 진실로 시인중 시인이십니다.
시인의 위대한 할아버지로
세인은 흔히 호머를 꼽습니다만
당신은 바로 호머의 아버지이십니다.
시의 핵심이 은유에 있다면
당신의 신묘한 은유를 능가할
은유가 세상에 없습니다.
시의 핵심이 정열에 있다면
당신의 그 거룩한 불을 따를
불이 세상에 없습니다.
시의 핵심이 아름다움에 있다면
들에 핀 백합과도 같은 당신의 시구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아름다움과 견줄 만한
아름다움이 세상에 없습니다.
시가 생명력의 맺힘이라면
진실과 진리의 그릇이라면
당신의 말씀의 생명력과
감동과 진실과 진리 앞에선
모두가 그것을 한번 닮아보려고
애쓸 뿐입니다.
시가 상징의 숲이라면
당신의 상징의 숲에 묻히지 않을
상징의 숲이 없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늘 고독하셨고 늘 슬프셨습니다.
갖가지의 감회가 늘 바람처럼
파도처럼 설레었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모든 시인의 으뜸이시라는 생각이
왜 이렇게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짊어지신 십자가가 너무도 무겁고 커서
흔히 그 일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예수님
당신은 진실로 시인 중 시인이십니다.
한일자/성찬경
마음먹고 붓에 먹물을 듬뿍 먹여
한일자 하나 써본다.
삐뚤빼뚤 굵었다 가늘었다 심지어
불결하기 짝이 없는 터럭까지 매달려 있다.
이것 큰일났구나.
바로 내 마음 내 모습 아닌가.
세상에 태어나 한일자 하나
제대로 못 쓰고 만대서야 되겠는가.
나는 요새 남몰래 한일자 쓰는 연습을 한다.
사람이 아무리 연습해도 완벽한 한일자는 못쓴다.
완벽한 한일자에 무한히 접근할 따름이다.
단 한 획, 가장 간명한 꼴
따지고 보면 인생은 한일자다.
흠없는 한일자 하나 남기고 가면 빼어난 인생이다.
황산(黃山)/성찬경
황산! 황산! 황산!
중국 황산에 가기도 전에
나는 헤아릴 수도 없이 여러 번 황산을 마음속에 그려봤다.
이 친교로
황산은 내 마음 한복판에 마치 뚜렷한 기억처럼
형언하기 어려운 명산으로 자리 잡았다.
황산이 차츰 가까워진다.
황산 근처에 오니
포도송이 모양의 가로등이 인상적이다.
2012년 7월 7일.
마침내 황산은 내 눈앞에
상상이 아니라 현실의 산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황산! 황산! 황산!
어느 산도 따를 수 없는 저 깊은 계곡! 흐르는 구름!
비교를 절하는 높고 우람한 바위 무리의 위용!
이빨 부러진
톱날 같은 능선의
기기묘묘한 선(線)의 질주,
저것이 연화봉(蓮花峰), 광명정(光明頂), 옥병봉(玉屛峰)
천도봉(天都峰), 단하봉(丹霞峰), 시신봉(始信峰)
저것이 송림봉(松林峰), 비래석(飛來石), 무송타호(武松打虎)…
현실의 황산은
미리 그려본 모든 환상(幻想)의 호아산을
다 포용하고도 남았다.
이윽고 황산에 어둠이 내린다.
소리 없이 황산이 어둠 속에
장엄하게 장엄하게 가라앉는다.
황산이여, 작별이다.
아마 내가 그대를
다시 찾는 날은 내 생전 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황산은 내 안에서
은은한 여운 닮은 비경으로 남아
나의 미(美)의 비의(秘儀)에 얼마나 큰 구실을 할 것인가!
흙/성찬경
마지막을 예시하는 큰 고승처럼
공간시 사화집에 남긴 시 한 편
‘흙’이란 제목 아랜 텅 빈 여백 뿐
종이 결과 결 사이 고랑 속으로
그 ‘흙’들이 밀핵(密核)처럼 스며들더니
한 알의 시핵(詩核)으로 발아시키며
이렇게 시 한 편을 쓰게 하나니
안동국시 한 다발로 점심을 하고
마지막 돌아다본 일중(一中*) 회고전
의자에 걸터앉은[半倚] 사유상(思惟像)처럼
자브럼히 감으시며 피안 드셨네
고승의 사리 같은 민들레 씨앗
한 알이 ‘흙’ 속으로 굴러가서는
봄봄봄 피워내는 시(詩) 꽃 한 송이.
황홀/성찬경
이 놀라움 홀연 청정한 눈 내린 백지.
영롱한 詩想 하나 있어 적어나간다.
글씨가 절로 태 없이 예쁘다.
이 귀한 만남에 어울린다.
형상인가 기운인가 알몸인가 그림자인가.
그 모습 붙들고도 형언할 길이 없다.
그것 좇아서 그것 위해서 멀리 흐른 세월.
목숨의 방울이 많이 날아갔구나.
보석의 단단함 허나 무르익은 포도향.
생각에 녹고 스며 혀끝에 달다.
허무처럼 엷음에도 눈부신 빛 뿜는다.
시간과 하나 되어 나는 지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몸이 없듯이 편안하다.
글씨 나르는 손도 깃털처럼 가볍다.
五行의 운행이 어떻게 서로서로 짝을 찾았기에
像과 삶이 하나뇨 몸과 無想이 하나뇨.
예서 스르르 손이 멎는다.
여운에 그냥 오래 머문다.
유리와 병/성찬경
유리가 병으로 있는 한 언제까지나 병이다.
인간의 수족이다.
깨져야 유리는 유리가 된다.
병은 기능이요 쓸모다.
소유의 차원이다.
값을 매겨 사고 판다.
파편은 무엇이고 그것 자체다.
쇠는 쇠요 구리는 구리요 은은 은이다.
존재의 차원이다. 무값이다.
에덴동산이 어디뇨.
있는 것 모두가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나뒹굴면 바로 거기지.
산산조각난 것들이 창궁의 별처럼 모여들어
존엄의 왕좌에서 반짝이고 있다.
빛 뿜는 파편의 삼천대천세계다.
풍선 날리기/성찬경
대축제다.
어린이들의 풍선날리기다.
오색 풍선이 200개쯤
일제히 하늘로 솟는다.
풍선의 해방이다.
하늘에 뜬 꽃밭이다.
하늘이 너무 파랗다.
영감적인 너무나 영감적인.
이 놀이엔 의미가 없다.
절대의미(絶對意味)가 있을 뿐이다.
어린이는 영감(靈感)의 샘.
노아의 가족인가.
풍선들이 모두 함께 동남풍 미풍을 타고
서서히 흐르며
작아진다.
슬픈 원근법이다.
어린이 마술에 걸린 나는
언제까지나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풍선의 승천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하늘로 하늘로 사라짐.
세상에서 제일
축복 받은 운명이다.
아, 이때 기적이 인다.
나의 눈이 1.5다.
아니, 2.0이다.
바늘 끝만한 것이 계속 보인다.
빛깔은 이미 없고
반짝반짝 하는 것.
대낮별이다.
아득히 남은 한 별,
하는 사이
하나가 다시 나타나,
두 별이다.
하는 사이
셋이다.
최후로
이젠 정말 하나다.
그것마저 영영 사라졌을 때
내가 보는 창궁(蒼穹)에
올챙이꼬리 달린 풍선만한 별들이
일제히 헤엄쳐 들어와
불멸의 성좌 되어 찬란히 빛난다.
전화/성찬경
현대과학이 갖가지 기적을 창출해낸다
허나 기적마다 숨은 트릭이 있다
모두 패러다임 울타리안에서 생기는 묘기다
나는 이정도로는 뿅 안간다
현대 과학으로 이승과 저승에 전화가 개통되어,
'추사 김정희 선생님, 「지구고금예술단(地球古今藝術團)」
단장으로 막 선출되셨습니다.’ 이런 통화가 가능하게 된다면,
음악가 슈베르트선생과도 눈물겨운 해후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또는 ‘아버님, 어머님, 하늘나라에서 지내시기가 어떠하신지요
두 분 음성 들은지가 몇 해만인지 모르겠어요
여기서는 기우가 혼례를 올려 제 막내며느리가 들어왔어요’
이런 통화가 일상사가 된다면
나는 현대 과학에 뿅 갈것이다
완전히 뿅 가서 무릎을 꿇을 것이다
차돌/성찬경
죽음 앞에 선 이의 예감
말을 때릴 만큼 때리면 차돌이 되지
단단한 차돌이 되지
무엇이 어떻고 어떻다고 설명할 필요없이
말이 그냥 거기에 차돌처럼 놓이게 되지.
그리하여 내가 모으고 싶은 나의 차들은
오로라 이슬방울 유리 파편 헨리 무어의 구멍
짓이겨진 나사 대가리 구리 철사토막 추사의 점
모짜르트의 음부 세 개 뭐 이런 것들이지
너무 인정사정에 끌려다니지 말고,
눈물은 그만하면 흘릴 만큼 흘렸으니까
욕도 고만하고, 꽃노래도 섹스 시도 그런 정도로 해두고
이제 관심을 쏟을 분야는 광물이지
무심히 태없이 그리하여 완벽의 극점에서
그저 그렇게 있게 되면 그곳이 영원의 시발점이지
천연하게 흘러 축 늘어진 난초 곡선, 저게 사람 죽이지
짝 갈라진 붉은 벽돌 속살 쑥색 무늬, 저게 사람 죽이지
아가페 칵테일/성찬경
‘아가페는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에서 만난 이 말이 크나큰 불기둥으로 솟아올라
남을 원망하는 내 마음의 앙금을 깨끗이 녹여버린다.
言靈의 효험을 무섭게 실감하는 순간이다.
‘남이 나다’ 하고 다시 한 번 버릇처럼 중얼거린다.
이미 다 풀린 근육으로
저 험준한 아가페의 文脈에 오를 수는 없고
다만 꼭대기 만년설에 외경의 시선을 보낸다.
이 모두 마음의 일일진대 능소능대하지 않고 어찌 마음이랴.
천체만한 아가페 덩이를 확 줄여
예쁜 a 활자만한 크기의 환약을 조제한다.
이런 저런 상황의 부스러기로
調味하는 일상의 칵테일에
향료 삼아 아가페 환약 한 알 떨어뜨린다.
정물점묘/성찬경
낮잠에서 꼭 깨야 할 시각에 전화 벨 소리.
요샌 건강이 어때! 안부전화였다.
크리스탈 잔에
캘리포니아산 포도주.
형광등 빛이 스며
최고 품질의 루비.
루비가 다이아 다음으로 비싸다며.
나는 애기 주먹만한 루비를 먹는 행복자다.
기적이 다반사인 일상
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어.
밖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의 ‘매미’가
초속 200미터로 극성을 떨고 있다.
조개비 같은 집.
지금 창문을 열 때가 아니다.
순간 음악에 五體投地.
순간 삶이 흐르는 멜로디.
모베슈1). 가난한 오디오지만
구실은 보탬 없이 날개 단 천사.
마음이 X선. 창자의 계속에
아까 먹은 루비 흐르는 광경이 보인다.
20년 知己. 영국제 석유난로 알라딘.
동화 나라 푸른 불꽃, 늘 봄날씨.
‘심청이 같은 우리나라.’2)
그래서 더 사랑한다.
1)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2) 구상 선생의 시구
몸부림/성찬경
칠십 평생 사느라 무한량에 가까운 기운을 탕진했다.
더러는 그 기운이 미광(微光)어리는 예술의 사리로 갔다.
나머지는 흔적도 없이 허무에의 제물로 사라졌다.
진이 거의 바닥나 몸이 몸부림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안으로 스며 이어지는 것은 이를테면 마음의 몸부림이다.
이 전위(轉位)된 몸부림은 고뇌를 곱게 빻는 파동으로 퍼진다.
요즈음은 자나깨나 이 파동으로 내가 나를 가눈다.
70년대를 인생의 황금기로 꽃피우려는 나의 마지막 염원.
어쩌랴 변환자재한 도깨비 '엔트로피' 놈이
눈 깜빡할 사이 70대 10년의 반을 또 먹어버렸다.
허나 마음이 궁극임을 하늘 걸고 믿는 나는 안 흔들린다.
관조와 달관의 달구경은 끝내 내 체질이 아니다.
오늘도 나는 피땀 밴 마음의 몸부림
설렘의 파동으로 아늑한 별을 쏜다.
판이냐 식이냐/성찬경
판이냐 식이냐가 재미나는 문제다.
인생이 먹자판이건 춤판이건 난장판이건
격식이건 허식이건 기념식이건
판이냐 식이냐가 재미나는 문제다.
판이 깨지면 인생은 사막. 식을 버리면 인생은 정글.
윷판이다. 신명난다. 던지는 족족 모다.
놀음판은 인생의 블랙홀이다.
졸업식이다. 두 어버이 볼에 눈물 흐른다.
식 중 꽃은 역시 혼례식.
나의 인생관은 판 7 식 3, 아니 판 8 식 2다.
판을 떠나면 예술은 물을 여읜 물고기다.
판과 식의 영감적 황금분할은 천재들의 몫이다.
위대한 영혼이 빚은 비례를 우리가 먹고 산다.
인생은 동시에 판이자 식 식이자 판이다.
청춘난무(靑春亂舞)/성찬경
청춘의 아름다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청춘에 비길 수는 없다.
그러기에 청춘은 은유의 보고(寶庫)다.
불타면서도 서늘하다.
까닭 없이 슬프다가 기쁨이 분출한다.
양지바른 언덕에서 하모니카 꺼내 분다.
스스로 무한한 가능성에 취해
현기증을 앓는다.
허나 아프다. 청춘의 열매를 따기는 쉽지 않다.
요리조리 다라나는 그것을 붙들기 위해서는
냉엄한 노년의 지혜를 지녀야 한다.
젊은 늙은 이. 늙은 젊은 이. 인생은 총체적(總體的).
젊음과 늙음이 합세해야 서로 살며 빛난다.
힘드는 화두다.
삶/성찬경
번뇌 많은 삶이다
겪을 만큼 겪지않고
번뇌를 넘는 방법은 없다
번뇌와 괴로움을 떠밀지 말고
오냐 오냐 하며 다 받아들이며
또 한편으로는 해야 할 일을 하는 수밖엔 없다
웃을 때 웃고 즐길 때 즐기며
어쩔 수 없이
고통의 제물을 많이 바치는 삶이
참으로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까닭은 역시 신비이리라
즐거움은 날아가 버리고
슬픔은 남아 가라앉는다
해학이 잘 나오면 어지간하다
큼큼이 정성으로 빚은 황홀만은
주변에 뿌릴 일이다
남이 주는 황홀은
고맙게 받아 먹을 일이다
슬프고도 황홀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