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8. 07. 16. | 광주감옥 개청 |
1912. 05. | 광주시 동명동 200번지 신축ㆍ이전 |
1923. 05. 05. | 광주형무소 명칭변경 |
1961. 12. 23. | 광주교도소 명칭변경 |
1971. 07. 15. | 기관 이전 (동명동 200 → 문흥동 88-1) |
2015. 10. 19. | 기관 이전 (문흥동 88-1 → 삼각월산길 49-43) |
.
내후성 강판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농장다리 위로 올라가 본다.
다시 푸른길로 내려 가는데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석류도 주렁주렁
붉게 익어가고 있다. 가을엔 껍질이 터지며 붉은 석류알이..침이 절로 나오게 할 것이다.
빈 마루의 향수 라는 의자 작품..이해 불가...그냥 쉼 의자 같다.
시가 흐르는 대청...대청 넘어 나무가우거지고 자그마한 연못이 있다면 더 운치가 있겠다는....
오른쪽은 창억떡집...왼쪽은 큰길 건너 지호로를 따라 지산 유원지로 연결되는 길이다.
분수가 나왔으면 훨씬 더 운치가 있을걸..
여기도 분수는 안나오고 개울은 말라 있다.분수를 가동하면 개울에 물도 흐르고 아름다운 길이 될텐뎅...
여기도 물이 졸졸흐르면 얼마나 운치가 있을까? 많ㅇ는 양이 아니고 그냥 졸졸 흐르기만 한면....
수국이 참 싱그럽다.
셀레시오여고 버스정류장..여기 못미쳐 서석교회 뒤부터 1순환도로와 만난다. 차량의 소음과 매연...옛날 철길이 여기에 있었으니 철길따라 길을 내다 보니 그렇겠지만...푸른길에 어울리지 않은 길이다.
제1순환도로==>남광주 교차로 (남광주역) - 조선대학교 입구 - 지산사거리 - 산수오거리 - 두암지구 입구삼거리 - 광주교육대학교 - 서방사거리 - 안보회관 앞 - 중흥삼거리 (광주역 북문) - 전남대학교사거리 - 신안교 - 경신여자고등학교사거리 - 동운고가차도 - 광천사거리 (유스퀘어) - 화정 삼익아파트앞사거리 - 농성광장 (농성역) - 건강관리협회사거리 - 전남매일 앞 - 주월 교차로 - 백운 교차로 - 남광주고가차도 - 남광주 교차로 (남광주역)
심산유곡 호방
상념...위에 달린 풍경소리가 참 맑게 울린다.
나팔꽃아가씨 나팔불어요.==> 동요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a6cCf22zkEo
조대얖
조대앞 길건너 조형물...살명이 없다. 뭘 의하는지...
언약의 벤치...특별한 사람과 함께하면 행복해 지는 곳이라네요.
조대에서 남광주로 가는 길..차량소리와 매미 우는 소리가 여간 아니다. 짜증날 정도로....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지저귀는 새가 있어 담아 본다.
멋있다.그냥...조형물에 설명이 없으니...
전대병원 뒷쪽 쉼터
남광주 사거리...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길건너에 을지연습 홍보프랭카드가 설치되어 있다.한한반도의 전쟁을 억제하는 훈련인가? 부추기는 훈련인가? 요즘 두 또라이들의 설전에 정세가 하도 어수선해 저 훈련의 의미가 알고 싶어 진다.
남광주역 주차장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돌하르방..제주도도 아닌데 무슨 의미가...
돌하르방 : 자세히 보면 그 두 손의 위치가 다릅니다. 만약 오른손이 왼손보다 더 위에 놓여 있다면 그 하르방<할아버지>는 글을 잘 썼다 하여 문과 하르방이라 하고 그와 반대로 왼손이 오른손보다 더 위에 놓여 있다면 그 하르방은 활을 잘 사용했다하여 무과 하르방이라 한다고
남광주역사지로 가는 길
능소화가 만발...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하는데 양반집에만 심었다 하여 양반화라고도...어사화라고도 하는데 그건 좀...
여기도 바닥분수가 있는데 물이..
남광주 시장으로 내려 가는 길
1930년 12월 25일 : 신광주역(新光州驛)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1938년 4월 1일 : 남광주역으로 개칭
1978년 11월 20일 : 화물취급 중지
2000년 8월 10일 : 경전선 광주 외곽 이설로 역의 기능은 서광주역으로 이전, 폐역.
역명은 역이 위치한 지명을 따라서 지었음. 광주의 철도 이용객을 분산시켜 광주시내 주요역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2000년 8월 10일 경전선 광주 시외 이설로 인하여 이 역은 폐지되고, 역의 기능은 서광주역으로 넘어갔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광주역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간이역과 사람들), 2008., 한국콘텐츠진흥원)
옛날 광주 남부 지역에서 농수산물을 기차를 타고 와 남광주역에 새벽시장이 열렸는데 기차가 없어진 지금도 새벽시장은 열린다.
기차도서관..내부로 들어가 보려다 그냥 사진만 찍는다.
기차카페
남광주역에서 양림동으로 건너가는 남광보도교.. 아래 옛날 철교 일부가 남아 있다.
어찌보면 흉물스럽지만 옛 정취가 되살아 난다.
남광보도교..그아래 철교..그 위에 남광주 고가도로
해당화
해당화 열매
남광보도교를 건넌다.
다리위에서 본 광주천
카다란 멧돌이 6개나..진짜 맷돌이 아니라 만든것일까?
양림역사 마을..언제 한번 둘러 봐야 겠다.
[鄭律成 ] 재중(在中) 작곡가. 전남 광주(光州) 출생. 일명 정률성.
1933년 형을 따라 중국 남경(南京) 조선혁명간부학교에 입학하여 1934년 졸업 후 비밀활동을 하면서 피아노를 배웠다. 상해에 가서 외국인에게 성악을 배운 후 1937년 프랑스에서 작곡공부를 했다.
프랑스에서 귀국해 신성해가 작곡한 "구국군가"(舊國軍歌)를 불러 호평을 받았다. 이 시기 가요 "5월의 노래"·"싸우는 여성의 노래"·"유격전을 발동한다" 등을 작곡했으며, 대공전지복무단(大公戰地服務團) 선전대대 음악대장직을 맡고 활동했다. 서안(西安)팔로군 판사처의 소개로 연안에 도착해 섬북공학에서 공부하면서 가창활동에 참가했다.
1938년 봄 1연안로신문예학원에 전학해 "연안송"·"연수요"를 작곡했다. 1939년 연안항일군정대학 정치부 선전과 음악지도원으로 활동하던 때 "팔로군 대합창"을 작곡했고, 그해 12월 로신문예학원 음악부로 전근하였다.
1942년 8월부터 화북조선혁명군정학교 교육장으로 활동하다가 1945년 "조국 향해 나가자"를 작곡했다. 같은 해 북한으로 가서 1946년 황해도 선전부장을 지냈으며, 해주음악전문학교(海州音樂專門學校)를 세웠다.
1947년 평양으로 전근해 보안대대 훈련대대부 구락부장(문화부장) 직무를 맡았다. 보안간부훈련대대부협주단(조선인민군협주단의 전신)을 창건하여 초대 단장을 역임했으며, 1949년 조선국립음악대학(朝鮮國立音樂大學) 작곡학부장에 부임했다.
1950년 중국으로 돌아가 1952년부터 북경인민예술극원으로, 이후 중앙악단에서 전문 작곡가로 활동했다.
가요 "해방행진곡"·"3·1행진곡"·"조선인민군행진곡"·"조중친선의 노래," 대합창 "두만강"·"동해어부" 등을 작곡했고, 가극 "망부운"(望夫云)·"설란," 대합창 "평화의 합창"·"강우의 노래소리"·"조국만세"·"행복한 농장," 동요 "우리는 행복해요"·"푸르른 조국," 대중가요 "흥안령에 눈꽃 날린다"·"철도로동자의 노래"·"집련화"·"건설의 행진"·"공군전가"·"국방전사의 노래" 등 각종 작품 360여 편을 창작했다.
"팔로군대합창" 가운데 "팔로군행진곡"은 1939년 창작되면서부터 50여 년 동안 중국 전역에서 불리워지고 있다. 이 곡은 중앙군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중국인민해방군군가"로 되었다. 1978년 북경음악출판사에서 『정률성가곡선』이 출판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율성 [鄭律成] (한겨레음악대사전, 2012. 11. 2., 도서출판 보고사)
백운광장으로 가는 푸른길
배롱나무..일명 백일홍..옛날에이 꽃이 3번 피면 쌀밥 먹는다고 했는데 ...참 없이 살던 힘든시절이었다.
비들기들이 뭔가 열심히 쪼고 있는데 뭘까? 누군가 먹이를 뿌려 준걸까?
기다란 벤치
푸른길 쉼터
남구 구간은 동구 구간처럼 자세한 안내가 없다.화장실 안냐도 없고...현 위치가 어디인지도...길을 따라 가니 굳이 설명이 필요 없나?
기둥같은 조형물
철길이 그대로 잇다. 따라 걸어 본다.
수국이 만발해 있다.
철길이 쾌 길게 뻗어 있다.
길섶에 푸른길 작은 도서관이 있다.운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큰길 도로가에 운동기구라...
꽤 큰 광장이다.
폐선의 땅위에 희망을 심었습니다.
백운광장..교차로..오른쪽으로 만 3번의 신호를 건너고 한번 더 횡단보도를 거넌다..
백운교차로 길 건너가 푸른길 입구인가 보다
푸른길 입구..우측으로 실개천이 흐른다.
실개천 시작...실개천을 따라 흐르다 다시 순환되는듯.
오른쪽으로 실개천이 흐른다.자연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그런데로 운치가 있어 정겹다.
실개천 그대로의 모습이다.
두꺼비 음수대..물이 나오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
푸른길 담벽의 벽화..어린이들의 그림을 붙여 놓았다.
찻길이 없어 참 좋다. 그대로 푸른길이다.
지압보도도 있다.
사람중심 건강 남구 조형물이 있다. 작은 공연도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다.
푸른길 가운데 섬처럼 만들어 양쪼으로 보행하게 해 놓으니 한결 운치가 있다.
뭔가 설면판이 있을것 같다.
광주의 유래와 사진
도심철도 폐선부지가 푸른길공원으로....
푸른길을 노래한다.
폐선부지 푸른길 공원은?
광주도심철도(경전선)을 달렸던 기차..디젤기관차
풍력발전기 조형물
지금도 병꽃이 피어 있다.
해바라기
진월초교 횡단보도
푸른길 공원 마지막 시설물
여기까지가 푸른길공원 조성 끝이다. 효천역까지 는 몇 의미가 없을것 같다. 찻길과 같이 가는 길이니까...
그래도 더 가 보기로 한다. 원래는 동성중학교에서 금당산으로 올라 가려 했으나 뒤 돌아 가기도 싫고 더 가 보고 싶기도 해서다.
바로 앞에 올라 가는 계단이나온다. 찻길을 피해 길이 되어 있나 하고 올라 본다.
아니다. 이길은 산으로 올라 가는 길인것 같다.되돌아 내려 온다.
계단옆 인도를 따라 간다.
부용화가 참 이쁘다.
달맞아꽃 같은데 나무가 아닌듯
멕시코가 원산지인 노랑코스모스
찻길 옆 인도를 따라 계속 간다.
효덕교차로 밑을 통과해 목포 방향으로....
518민주항쟁 사적지이다. 15번째.....광목간 양민학살지
계엄군의 화풀이, 젊은 청년들의 죽음
계엄군 간 오인사격으로 인한 화풀이로 공수부대원들이 무고한 양민 학살을 자행한 곳이다. 계엄군은 집집마다 난입하여 총격을 가하였으며, 이로 인해 권근립, 임병철, 김승후 등 다수의 주민이 살해 당했다. 또한 항쟁 기간 중 이곳을 지나가던 민간차량에까지 무차별 사격을 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문 대통령은 "아직 광주의 진실이 다 규명되지 못했다"면서 "우리에게 남은 과제이다. 이 영화가 그 과제를 푸는 데 큰 힘을 줄 것 같다. 또한 광주민주화운동이 늘 광주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국민 속으로 확산되는 것 같다. 이런 것이 영화의 큰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찻길을 따라 인도를 걷는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효천역까지 가려던 계획을 철회하여 버스를 타고 귀가하기 위해 육교를 건넌다.
육교에서 본 목포쪽
효덕교차로쪽
건너온 육교...이곳에서 28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경전선...
경전선은 우리나라의 남해안을 동서 방향으로 횡단하는 철도로,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연결한다. 총연장은 300.6㎞이다. 경전선의 부설 공사는 호남의 종관선부터 착수하였는데, 1936년 12월 송원~순천 구간이 준공됨으로써 전주~순천의 130여 ㎞가 개통되었다. 공사 일수는 5,100여 일이고 공사비 총액은 355만 1000원이었다. 각 공구의 공사는 순조롭게 진척되었는데, 농한기 이 외에는 인부의 충원이 여의치 않아 애를 먹기도 하였다.
궤도부설공사는 1931년 10월 전주~남원 구간을 제1차로 개업하고, 역사·관사·통신 등의 설비를 차례로 시공하였다. 또 금지~담양 구간은 1939년 11월 노반 공사에 착수하였다. 진주~순천 구간도 계속 공사를 추진하였으나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전세가 불리하게 전개되자 일제는 경전선의 부설 공사를 중단하였고 해방 때까지 경전선은 완공되지 못했다.
변천
경전선의 시작은 1905년 5월 25일 경부선 개통 이튿날인 26일에 개통한 삼랑진~마산 구간에서 부터이다. 이어 조선 철도 주식회사의 사설철도(私設鐵道)인 마산~진주 간 70㎞가 1923년 12월 1일에 개통되었고, 1931년 4월 1일 국유철도에서 경남선을 사들여 경전남부선으로 바꾸었다. 1923년 7월 1일 조선 철도 주식회사의 전신인 남조선 철도 주식회사가 호남선 송정리에서 분기하여 광주까지 14.9㎞를 개통시켰다. 이로부터 7년 뒤, 1930년 12월 20일에 광주~여수 간 155.5㎞의 사설 철도가 개통되었다.
이로써 호남 지방을 동·서로 횡단하는 철도가 완성되었으며, 1936년 3월 국유 철도에서 사들여 경전서부선이라 개명하고, 송정리~여수 간을 송여선[광주선]이라 하였다. 1956년 6월 14일 다시 경전남부선을 진주선, 경전서부선을 광주선이라 하였고, 진주와 순천을 잇는 철도의 건설은 지방 주민의 오랜 숙원으로 남게 되었다.
그 후 1964년 4월 28일 진주~순천 간의 철도공사가 착수되어 경상남도 하동에서 기공식을 올렸다. 1968년 2월 7일 약 4년간의 공사 끝에 순천~진주 간 80.5㎞가 개통됨으로써 경전선이 완성되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한 철도라는 뜻에서 두 도의 머리글자를 따서 경전선이라 명명하였다. 경전선의 개통으로 영남·호남의 유동이 원활해졌고 교통난이 해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해안의 경제 개발도 크게 촉진될 수 있었다.
경부선과 호남선을 잇는 순환 철도망이 완성되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인 의의를 가진다. 또한 경전선은 남해 고속도로 및 88올림픽 고속도로와 함께 영남과 호남을 잇는 간선 교통로로서 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산업발전은 물론, 생활권의 확대와 새로운 문화권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구성
경전선의 총길이는 300.6㎞이다. 삼랑진~마산 사이를 잇는 마산선(馬山線), 마산~진주 사이를 잇는 진주선(晋州線), 광주송정~광주 사이를 잇는 광주선(光州線) 및 진주~순천을 잇는 경전선 등이 합해진 철도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한 철도라는 뜻에서 두 도의 첫 글자를 따서 경전선이라 하였다. 삼랑진~마산 구간은 1905년 5월 26일, 마산~진주 구간은 1923년 12월 1일, 광주송정~순천 구간은 1922년 7월 1일, 진주~순천 구간은 1968년 2월 7일에 각각 개통하여 삼랑진~광주송정 간이 완전히 개통하였다.
2000년 8월 10일 효천~광주송정 구간의 철도를 이설하여 서광주역이 새로 생기고 효천~남광주~광주 구간이 폐선되었으며, 2006년 11월 1일부터 광주 반복 열차도 모두 폐지되었다. 2009년 기준 운행하는 역은 삼량진역에서 낙동강~한림정~진영~창원중앙~창원~마산~중리~산인~함안~군북~원북~평촌~진주수목원~반성~진성~갈촌~남문산~개양~진주~유수~완사~다솔사~북천~양보~횡천~하동~진상~옥곡~골약~광양~순천~원창~구룡~벌교~조성~예당~득량~보성~광곡~명봉~이양~능주~화순~남평~효천~서광주~동송정을 거쳐 광주 송정역까지이다.
삼량진역에서 경부선과, 낙동강역에서 미전선과, 창원역에서 진해선과, 광양역에서 광양 제철선과, 순천역에서 전라선과, 광주 송정역에서 호남선·호남 고속선·광주 도시 철도 1호선과 각각 접속한다. 이밖에 삼량진~진주 구간이 복선 전철화 공사가 진행되어 2010년 삼량진~마산 구간과 2012년 마산~진주 구간이 개통되고 경전선 노선을 이용하는 부전~마산 구간의 복선 전철 사업 또한 진행 중으로 2017년 개통된다.
경전선 중 화순군을 지나는 구간의 길이는 남평역과 화순역 구간 9.2㎞이다. 화순역에서 능주역 구간 8.9㎞, 능주역에서 이양역의 12.2㎞ 구간이다.
현황
경전선은 2009년 현재 총 연장 300.6㎞에 45개의 역을 두고 있다. 영남 지방과 호남 지방을 연결하는 유일한 철도이지만 기울기가 심하고 노선개량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고속 도로에 비해 수요가 매우 적다. 이에 따라 삼랑진~진주 구간에 대하여 단선 비전철의 기울기가 심한 노선을 복선 전철화 공사와 함께 대대적으로 선형을 개량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진주에서 광양까지는 복선화 계획이 수립되어 있으며 장기적으로 전철화 할 계획이다. 이는 진주에서 하동을 거쳐 광양에 이르는 구간을 개량하여 복선화하는 계획이다.
경전선은 삼랑진에서는 경부선, 창원에서는 진해선, 광양에서는 광양 제철선, 순천에서는 전라선, 동송정에서는 광주선, 광주 송정에서는 호남선 및 호남 고속철도와 각각 이어진다. 1일 운행 횟수는 상행선[삼랑진 행]과 하행선[광주 송정 행]을 각각 22회 운행하고 있다. 그러나 경전선 전 구간을 운행하는 여객 열차는 각 방향으로 2회에 불과하다. 경전선을 이용한 여객은 2008년에 171만 5975명이었으며, 화물수송량은 57만 3773톤에 달하였다. 화물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은 무연탄으로 41만 9616톤이며, 그 다음으로는 잡화, 건설 자재 등이다.
경전선은 남한 지역에서 유일한 동서 횡단선으로 목포·군산·여수·부산 등의 주요 항구를 내륙 연락로를 통해 연결한다. 영남과 호남의 풍부한 해산물을 내륙으로 수송하고 아울러 연선의 농·임·광산물을 개발하는 것이 이 철도에 부과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전선은 우리나라 가장 남단에 위치하여 동·서지역을 연결하고 있는 유일의 철도로서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관심을 끌지 못했다. 남해 고속도로의 건설 이후 경전선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되고 그 역할마저 축소되었는데, 경전선이 통과하는 여러 도시들이 기능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경전선 기능 또한 변화가 요구되어지고 있다.
경전선은 건설 후 초기단계에서 협궤를 표준궤로 개량하는 등 많은 시설개량이 추진되었으나 인력에 의존한 건설로 인해 시설 수준이 낮고 곡선 반경이 대부분 R=600m 이하이면서 단선이기 때문에 영남·호남 간의 간선철도망으로서 기능을 발휘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경전선을 개량하고 남해안축 철도망을 확충함으로써 영남·호남의 교류를 촉진하고 철도 수송의 효율성을 증대해야 한다. 또한 남해안 일대 공업 단지를 연결하고 관광 자원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전국 해안선 순환 철도망을 구축하기 위한 계획이 추진 중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전선 [慶全線]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첫댓글 고문님 참 대단 하십니다.
이렇게 유래까지 찾아 올려주시니 광주를 한눈에 볼 수있는것 같습니다.감사 드리며 수고 하셨습니다.
애써 촬영하시고 작성 해주신 ~
정성이 묻어나는 글~ 잘보았읍니다.
수고 많으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