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2:15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우리 교회는 지난주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주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메시지 즉 하나님의 나라가 복음이고,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복음이라고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전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으면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복음과 맛집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우리가 인생 맛집을 발견했다면 지인에게 전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인생이 달라졌다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았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신앙이 참되다고 확신한다면 당연히 부활을 증언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된 단어가 24번 나옵니다(그말씀 2010년 3월호, 67쪽). 부활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있지요. 사도들은 부활의 증인이라는 말씀이 5번 나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였으면 부활을 증언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라는 첫 번째 말씀은 베드로가 가룟 사람 유다를 대신해 맛디아를 새로운 사도로 선출할 때 나옵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 1장 21~22절에서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사도 중에 가룟 사람 유다는 노예 한 사람의 몸값인 은 30에 스승인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죄가 있다고 공격을 당하자 스스로 뉘우쳐 은 30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마27:3~5). 유다는 회개한 것이 아니라 후회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세우신 사도는 원래 12명이었으니 한 사람을 다시 선출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성경에서 3은 하나님의 수이고 4는 사람(땅)의 수입니다. 3과 4를 더한 7도 완전수이고 3과 4를 곱한 12도 완전수거든요. 야곱의 아들도 12명이었고 이스라엘 지파도 12지파이었고 예수님의 제자도 12명이잖아요. 한 명이 더 있어야 완전해지거든요. 우리는 흔히 제자라고도 말하고 사도라고도 말하는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사도라고 불렀고 구원받은 교인들을 제자라고 불렀습니다(행2:41,6:7). 베드로는 새로운 사도의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새로운 사도는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함께 했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새로운 사도의 임무도 제시했습니다. 새로운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해야 했습니다. 새로운 사도는 예수님의 세례로부터 예수님의 승천까지 함께 했으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과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의 가장 큰 임무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거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임무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베드로가 하지 장애인(못 걷게 된 이)을 고치고 나서 솔로몬 행각에서 설교할 때 나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하지 장애인을 걸을 수 있도록 고치고 나서 자신들은(베드로와 요한)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라고 설교하였습니다. 사도행전 3장 15~16절에서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하지 장애인이 걷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곧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었던 못 걷는 사람이 지금 걷는 기적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 장애인이 걷는 것도 기적이지만,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거는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ESV 스터디, 2,128쪽). 베드로 사도는 하지 장애인이 걷게 되는 기적을 통해 예수님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명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설교로 복음을 전하고,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복음을 확신시켜야 사람들이 믿음을 갖게 됩니다. 목사님은 복음을 전하는데 기적이 필요하다는 제3의 물결을 지지합니다.
세 번째는 베드로가 산헤드린 공회에서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대답할 때 나옵니다. 사도행전 5장 29~32절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나무’는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생각했습니다(신21:23).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람에 대한 형벌을 몸소 감당하셨습니다(갈3:13, ESV 스터디, 2,146쪽).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달린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전했고,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어주었고, 베드로는 새벽에 성전에서 부활을 설교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를 산헤드린 공회로 소환하였고, 베드로는 종교지도자들이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아무리 종교지도자들이 부활을 전하지 말라고 해도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히 목격했기 때문에 종교지도자들이 아무리 금지해도 끝까지 부활을 증언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아무리 박해를 받더라도 부활을 증언하는 일만큼은 멈춰서는 안 됩니다. 증언을 멈추는 순간 교회 문도 닫히게 됩니다. 며칠 전 서울행정법원에서 코로나 기간에 대면예배를 금지한 정부 정책이 잘못이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크리스천투데이, 6월 10일).
네 번째는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사는 로마제국의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할 때 나옵니다. 사도행전 10장 37~41절에서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성령님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셔서 예수님이 선한 일을 하셨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셨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일의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도는 예수님은 고난을 겪고 돌아가셨지만,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셨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사명을 제일 사명으로 여겨야 합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해야 교회도 살고 한국도 살게 됩니다.
다섯 번째는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도할 때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한다고 말합니다.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부활을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9~31절에서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사람들에게 여러 날 여러 차례 보이셨다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한 번 봤다면 잘못 봤다고 의심할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여러 차례 봤기에 예수님은 정말로 부활하신 겁니다. 오늘날 교회도 부활을 한 번만 전하면 안 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해서 전해야 합니다.
이처럼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씀이 24번 나오고,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라는 말씀이 5번 나옵니다. 여기서 ‘부활의 증인’할 때, 증인은 헬라어로 ‘마르튀스(μάρτυς)’입니다. 마르티스에서 나온 단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증인이라는 위트니스(Witness)가 아니라, 순교자라는 마터(Martyr) 입니다. 성경에서 증인은 순교자라는 뜻입니다. 증인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는 사람이지만, 순교자는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사도 바울에게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2장 15절에서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에게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기 위해 목숨을 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트니스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증언하고 손해가 되면 증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터는 자기에게 유리하건 불리하건 따지지 않고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금반지를 준다고 경품을 내걸어서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달라졌으니 저절로 증언이 되는 겁니다. ‘돼라’가 아니라 ‘되리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불리하더라도, 우리에게 손해가 있더라도 마터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졌으니,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증언이 되는 겁니다. 우리 교인들은 코로나 기간에 불이익을 감내하며 예배를 드린 것도 마터의 모습입니다. 우리 부활하신 주님을 확실히 만나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증인이 되며 삽시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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