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 의주길 2+1길
언제:2022년 4월2일 토요일
날씨:쾌청 기온:13도C
어디를:경기옛길 의주길 2+1길
용미3리-벽제관지-삼송역 역방향 (약 15.8km)
누구와:아내와 함께
트레킹 시간:5시간 17분<놀엉쉬멍,시간은 의미없음>
원조 의주길과 사신단 이야기.
의주길은 한양에서 고양, 개성, 평양을 거쳐 의주로 이어지는 옛길로 조선시대의 옛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름길입니다.
조선과 중국을 오가는 사신들과 상인들은 의주길을 무대로 활약하면서 조선 후기의 정치와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중국의 사신단은 한양으로 입성전 벽제관(고양동)에서 정비후 이곳 원조 의주길 숫돌고개를
거쳐 한양으로 입성하고 중국으로 돌아
가는 매우 중요한 통행로였습니다.
▲삼송역 1번출구
▲고구려 벽화의 수렵도 조형물 =삼송사거리 건너에서 774번 버스로 용미리 묘지입구에서 하차
▲1번출구로 나와 삼송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 774번 버스로 의주길 2코스 종점인 용미3리에 약47여 분여 만에
하차해 버스가 왔던길로 빽해서 조금 가다 횡단보도 건너 2코스 관청령을 향해 역방향으로 걷는다.
▲문밖을 나오니 이런 호사도 누려 볼 수 있고, 잔인한 4월이라지만 봄은 역시 우리에게도 봄이 올거라 알려준다.
▲포장 도로를 따라 올라 오니 관청령 고갯길
▲관청령, 옛 고양 관청이 있던 마을 뒷산 고갯길,
▲소나무 숲길, 신선한 아침 공기가 좋다,대자동과 파주 용미리를 이어주던 주요길목
▲대자동 고읍마을 의주길 안내 표시목
▲고읍마을 마을 회관 앞 소공원
대자동.
대자동은 고양동의 서쪽과 남쪽에 위치한 마을의 이름으로 이곳에는 쌍궁말, 고골, 대적골, 빈정동, 용복원,
한오동, 새원, 간촌 등의
자연 촌락 마을이 있습니다. 대자동에는 최영장군 묘를 비롯해 연산군시대 금표비 등
많은 문화유산들이 있습니다.
대자동의 유래설은 조선조 태종 넷째 아들인 성령대군이 총명하고 용모가 단정하여 임금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만 홍역에 걸려 일찍 죽었다고 합니다.
이에 상심한 태종은 무덤 근처에 암자를 세워 불공을 드리기로 하였는데,
조정에서는 길이 너무 멀어 임금이 이곳을 자주 왕래하면 혹 나라 일을 소홀히 할까봐 잦은
행차를 삼가도록 진언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태종은 무덤 근처에 큰 자비를 내린다는 뜻으로 대자사(大慈寺)라는 절을 지어 성령대군의
명복을 빌었으며 이때부터 이 절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대자리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노인 요양원과 시골 길
▲ 고읍마을 25번 마을버스 종점,저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
▲혜덕사 숭모문
▲숭록대부 온녕군 신도비
혜덕사 조선 태종의 아들인 온녕군과 그의 후손을 모신 사당이랍니다.
혜덕사는 조선국 태종대왕의 7남인 온령군으로부터 삼세에 이르기까지 여덟 분 양위의 신주를
모시고 제향을 받드는 사당이다. 이 사우를 중심으로 전야후산 일대가 삼대 일곱위 묘소와 4세 수자위까지
잠들어 계시는 전주 이씨 온령군파의 성지이다.
온령군은 태종 7년 정해년(1407년)에 태어나 익산군부인 순천 박씨를 배위로 맞이하였으나 후사가 없어
아우이신 근령군의 둘째 아들 우산군을 계자로 하여, 자부는 문성군부인 문화 류씨를 맞아 여섯
손자와 두 손녀를 두었다.
▲연산군 시대 금표비
▲폭군 연산이 사냥터에 살고있는 민초들을 다른 곳으로 내쫒고 못 들어오게 금표비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ㅠ
▲금표비를 지나 차도가 나오는데 좌측으로 경기축산 정류소를 지나 중부대학쪽으로 간다.
▲중부대학 교차로를 지나
▲위 사진 대한통운 물류창고 앞에서 길 건너 산길로 든다.
▲솔 숲길이 좋다.
▲고개에 올라서니 고양누리길과 잠시 겹친다. 현호색이 예쁘게 피어 눈 맞춤 해주고,
▲고양누리길과 잠시 겹치는 구간, 양지쪽 봄빛이 싱그럽다.
▲너와집 정자를 지나 의주길은 우측 고양향교 쪽으로 나간다.
▲고양향교.
▲향교 문이 열려 잠시 둘러보고, 명륜당
조선 숙종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서 창건되었다.
창건 이후의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지만 여러 차례의 보수가 있었고, 1970년 담장을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은 5칸의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재(東齋)·서재·내삼문(內三門) 등이 있으며, 명륜당은 없다.
대성전 안에는 5성(五聖)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이 향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고양향교 하마비와 홍살문
▲중남미 문화원
▲골목길을 지나
▲우측 골목으로 나가면 아래 공윈이 나오고 조금 내려가면 벽제관지다.
▲고양 벽제관지 기는길
▲벽제관지 설명판
▲옛날 벽제관지가 있던 자리, 옛 주추돌만 남아 있고, 일제 강점기와 6.25 동란을 거치며 겨우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
벽제 관지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객사를 말한다. 중국의 사신들이 묵고가던 객사.
중국과 조선을 잇는 곳에 위치하던 것을 임진왜란을 겪으며 인조3년1635년에 이곳으로 옮겨지게된다.
▲벽제관지 설명판들
▲2코스 종점 스템프함
고양 벽제관지 / 사적 제144호.
벽제관지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 객사인 벽제관이 위치했던 장소다. 벽제관은 중국과 조선을 잇는
곳에 위치해 당시 중국과의 외교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중국 사신들이 한양에 들어가기 하루 전에 이곳에서 머물며 예의를 갖추는 것이 관례였으며,
중국으로 가는 우리나라 사신들 또한 여기에서 휴식을 취했다.
벽제관은 성종 7년(1476)에 서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지어졌으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당시의 고양군청이 훼손되어
인조3년(1325) 이곳으로 함께 옮겨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그 원형이 훼손되었고,
조선총독부 2대 총독인 하세가와는 벽제관의 부속건물인 육각정을 일본으로 불법 반출했다.
한국전쟁으로 건물과 담장이 소실되었으며 1960년대에는 그때까지 남아 있던 삼문마저 허물어졌다.
현재는 건물의 기둥을 받치던
돌의 일부만이 남아 옛 흔적을 찾기가 힘들지만 지리적인 위치로 인한 전투와 한중외교사의
역사적인 의미가 인정되어
1965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고양시는 2021년 정밀발굴조사를 시행하였으며 기존에 파악되지 않았던 담장과 부속 건물 유구가
발견되었고, 고고학적 기초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벽제관의 원형을 정비, 복원하고 고양동의 잃어버린 역사성도 동시에 회복할 계획이다.
▲예날 고양군수와 관찰사들의 선정비와 송덕비
▲설명문
▲현재 육각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고양 벽제관의 육각정 터에 공덕비들을 옮겨다 놓았습니다.
이곳에 있던 육각정은 일본이 약탈해가 현재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 모미지다니 공원에 세워 놓았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조선총독부 2대 총독인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과거 임진왜란 때 왜군이
명나라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벽제관
전투를 기념하고자 벽제관 앞 연지터(이곳)에 있던 육각정을 반출하여 자신의 고향인 이와쿠니시
모미지다니 공원에 기증했습니다.
벽제관지의 유일한 현존 건물인 고양 벽제관 육각정.
벽제관은 조선시대 고양군 객사이자 벽제역의 역관으로 알려져 있는데,
벽제역은 한양에서 중국으로 가기 위한 의주로의 10개역 중 첫 번째 역으로서 중국 사신을 영송하던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시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소실되었고 유일하게 남은 삼문도 1960년대에 허물어졌습니다.
따라서 일본 이와쿠니시 모미지다니 공원에 약탈된 육각정이 벽제관의 유일한 잔존 건물입니다.
▲500년된 느티나무와 육각정이 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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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코스 끝내고,1코스 이어간다
▲고양 초교=고양초등학교는 1905년 5월 1일 사립 명륜학교로 처음 설립되었다.
2017년에는 105회 졸업식을 거치면서 총 11,71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한다.
▲고양동 벽제관지를 뒤로하고 1코스를 이어 걷는다. 우측 골목길로
▲고양1교에서 벽제천을 따라 우측으로
▲벽제천 따라 가다 잠시 빈정교를 건너 다시 용복교를 건넌다
▲대자1교 밑 천변으로 내려선다.
▲저 다리건너 자전거길로 오른다
▲능골천과 공릉천이 합수되는 지점
▲교외선이 다니던 철길
▲공릉천 옆 송강 약속공원
▲송강 정철 시비
공릉천은
경기도 양주시, 고양시, 파주시 거쳐 한강으로 흐르는 하천이다.
공릉천이란 이름은
파주 삼릉에( 공릉 순릉 영릉)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양주시 장흥면 꾀꼬리봉에서 발원한 장흥계곡의 물과 북한산 송추계곡의 물이 합쳐져 일영유원지를
지나 고양시를 거쳐 파주시로 넘어가는, 고양의 대표적 하천이다.
고양시를 통과하는 길이는 13.8km에 불과하지만, 선유동, 신원마을, 송강마을, 관산동, 사리현동,
내유동 등 고양시 북쪽의 마을을 두루 감싸며 다채로운 풍광과 이야기를 연출한다.
양주시 부곡리에서 지방행정상의 지방하천으로 시작 한강 1지류이라고 한다.
공릉천은 국가 하천으로
유로연장 457㎞ 유역 면적 16,05㎞ 엄청 꼬리가 긴 하천이라고 한다.
공릉천은 억새 군락지가 넓게 펼쳐있으며 바람과 맑은 물 흐름이 좋은 생태지로 각종 새들이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철새 도래지로 속한다.
▲사패산 송추계곡에서 발원해 양주시 장흥계곡물과 합류하여 고양시를 지나 파주에서 임진강과 합류하는 공릉천
▲삼송역이 가까워지자 고층 아파트들이 보이기시작한다.
▲징검다리도 몇번 건너고,
▲신원 아파트
▲지나온 징검다리
지방하천인 선유천, 오금천, 벽제천 대차천, 원당천과 소하천인 한무물천, 능골천, 두포천, 고곡천,
내유천, 놀미천, 새터천, 사리현천, 물구리천이 모두 공릉천으로 합류한다.
▲노고산도 한 눈에 보이고,
▲신원아파트를 지나 공원길에 덕명교비가 서있다.
▲의주길 1코스 스템프함
고양 신원동 덕명교비(高陽 新院洞 德明橋碑) /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52호.
고양 신원동 덕명교비는 총 높이 286cm로 비신은 가로 95cm, 두께 25cm이며 화강암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비를 받치고 있는 대좌는 현재 지표면보다 낮은 상태로 비신의 비문은 비바람 등으로 마멸이 심해 일부분은
판독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비의 가장 윗 부분인 옥개석의 일부도 마모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비의 앞면에는 전자(篆字)로 '경기도 고양군 신원덕명교'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면에는 전자 이외에도 가는 글씨로 된 비문이 전면(全面)에 새겨져 있습니다.
비의 뒷면에도 비의 중간 부분부터 비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고양 신원 덕명교량명'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비문의 그 아래로는 수십 명의 인명이 한문과 이두문자 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비의 내용은 한양과 한반도북부 지방 및 중국을 연결하는 의주길 관서대로 구간 중 신원동 공릉천
위에 다리를 놓으면서 그 자세한 사항을 기록으로 표기해 둔 것입니다.
비문에 의하면 이 비의 건립자는 이한(李瀚)과 당시 고양 군수인 통정대부 유후성, 그리고
정헌대부 윤면지, 이상식, 홍시우를 대표로 한 760여 명의 주민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앞면은 비의 서문과 본문으로 주민 760여 명이 힘을 합쳐 공릉천 위에 돌다리를 건립했고
그 명단을 자세하게 기록해 둔 것이다.
▲한우물 숲길 공원을 지나고
▲오금천8교를 지나 한우물 숲길 공원으로 올라 엘리베이터가 수리 중이라 저 계단을 내려가
공원아래 굴다리를 지나고
▲군 부대앞 우측으로 마을길로
▲만개한 산수유가 반겨주는 길을 따라 벽화 골목으로
▲저 높은 빌딩아래 벽화마을=저렇게 시집 장가 가서 많은 자손들 다복한 가정을 이뤘다.
▲익살스런 벽화와..이랴 어서 가자..의주길로
▲앙증맞고 귀여운 벽화골목을 따라 내려오니 오늘의 종점인 삼송역이다.
맑고 화창한 날씨에 봄꽃들을 구경하며 의주길 2&1길을 무사히 마친다.
▲1+2길 전자인증과 트레킹 괴적
트레킹을 마치고...
지난주 봄 비가 촉촉히 내린 후 4월의 햇볕은 한층 따사롭기만 하고
대지의 봄 꽃들은 앞을 다투며 피고 있는 잔인한 4월이다.
경기옛길 중 의주길을 걸어 보려고 새벽부터 길나섬에 나선다.
의주길은 고양누리길과 평화누리길을 걸으며 겹치는 구간이 있어 그리 낯설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내게는 그 동안 미루고 미뤄 숙제로 남겨두었는지도 모르는
그런 길이였다.
삼송역 앞에서 774번 버스로 용미리 묘지입구 정류장에 하차 하여 역 방향으로
걷는다. 벽제 용미리하면 명절 때 성묘객 차량들으로 정체가 심하다는 뉴스가 나오고
그런 기억들이 먼저 스쳐지나가는 곳이다.
이 나이가 되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오늘의 아침...
산길엔 현호색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생강나무꽃 등등 봄 꽃들의 향연속에
힘든 줄 모르고 오른 관청령은 생각과 좀 거리가 멀지만 고양 용미리,파주 고읍마을을
이어주는 관청령,수 많은 민초들의 애환도 함께 했었겠다는 생각...
산정의 싱그런 솔향기를 맡으며 솔밭 길을 지나 대자동 고읍리 쪽으로 내려서며
시골 밭둑에 피어난 풀꽃들과 눈 맞춤하며 걷는 동안 숭록대부 온녕군의 사당과
연산군 금표비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배우고 간다.
고양 향교도 둘러보고, 벽제관지는 또 무엇일까? 아~ 사신들의 객사가 있던 곳이구나.
중얼거리며 벽제관지를 둘러본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임진왜란과 6.25 동란을 거치며 모두 없어지고 주춧돌만 남아
허망하기만 하고, 조선총독부 2대 총독인 하세가와는 벽제관의 부속 건물인 육각정을
일본으로 불법 반출한 아픈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대자천과 공릉천변을 이어 걸으며 송강 정철의
약속공원에서 시비들을 보며 쉼을 하고 삼송역 방향으로 속도를 내본다.
신원 아파트를 지나고 천변에 세워진 덕명교비 앞에서 1길 스템프도 찍어보며
760명의 이름이 새겨진 명덕비를 살펴 보지만 비바람에 마멸이 심해 읽을 수가 없지만
아직도 그 공을 현대인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숫돌 고개쪽으로 이동하여 벽화 마을을 지나 삼송역 8번 출구에 도착한다.
이른 시간에 의주길 2&1길을 역방향으로 마무리 하고 삼송역에서 3호선 전철에 올라
화사한 봄 날 아내와 즐겁게 봄 나들이를 마치고 행복한 귀가 길에 든다.
우리부부 함께 살아 온 날들보다 살아 갈 날들이 짧다보니 한 템포 느긋하게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즐기며 살아가는게 순리이고 진리 아닌가 생각해 보며
봄꽃 흐드러지는 이 봄날,한 주가 다르게 달라 질 대지의 풍경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려지는
때가 아닌가 생각하며 연초록의 풍경속으로 다음 주의 길나섬을 기대해 보며 마무리 한다.
행복은 사소한 곳에 숨어 있다 흔히 사람들은 무엇으로도
잘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이것이 요즘 사람들의 공통된 병입니다.
그래서 늘 목이 마른 상태와 비슷하게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번쩍거리고 잘 사는 것 같아도
정신적으로는 초라하고 가난합니다.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사랑스러움과 고마움에 있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차 한 잔을 통해서도 행복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내 삶의 고마움을 느낄 때도 아주 많습니다.
산길을 지나다가 무심히 피어 있는 한 송이 제비꽃 앞에서도 얼마든지
나는 행복할수 있습니다.
또 다정한 친구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전화 한 통화를 통해서도 나는 행복해집니다.
행복은 이 처럼 일상적이고 사소한 데 있는 것
결코 크고 많은 데 있지 않습니다.
2022. 4. 2.
첫댓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이미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길을 다 이미 걸으셨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의주길”만 따로 오롯이 걷는 길은 처음이라고 말씀하시니 조금은 생경스럽습니다. 저는 몇해 전 경기 옛길 중 영남길을 걸으며, 경기 옛길 3길을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옛길은 영남길을 포함해서 아직 미완의 길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평해로와 경흥로가 새롭게 개통되었네요. 점점 숙제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필 받으면 또 숙제를 마칠지 모르겠습니다.
사진 속에는 넉넉한 풍경이 오롯하게 담겨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게 만드는 마력이 있습니다. 가뜩이나 시즌이 체인지 업하는 이때, 푸근한 정경을 보니 봄을 산에서 뿐 아니라 너른 곳에서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주실도 시작하셨지만, 늘 그렇듯이 이 길도 곧 마치시라 생각이 듭니다. 마음보시님과 함께 즐거운 봄나들 길이 되시길 바랍니다. 즐감했습니다.
갑자기 대한민국 모든 길이라니요?
어림도 없습니다.ㅎ
기껏해야 집 주변만 걷고 있는데요.
아직도 못 걸어본 길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주말에만 걷고 잘 걷지도 못하는 체력으로는 한계가 있지요.
아직도 곳곳에 가 볼 곳이 넘 많은데 마음 뿐이지요.
경기옛길도 평해길과 경흥길 또 올해 개통될 강화길까지
새로운 길들이 많이 늘어 나고 있지요.
봄 꽃피는 시기 또 어느 길을 갈지는 늘 선택적이라 생각하며
이번주엔 벗꽃 핀 백운 호수도 둘러보고 삼남길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늘 성원과 격려에 감사 합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
가곡님의 후기를 보면서 조선의 벽제관에 얽인 수난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다시는 외국의 침략을 받지 않기 위해서 국력을 부강하게 만들어서 감히 다른 나라에서 넘보지 못하게 해야 할텐데 ...하는 바람을 소망 해 봅니다.
상세하게 기록하신 후기와 영상을 줄거운 마음으로 정독하면서 그동안 걸어야지 하면서 남겨둔길 걷기로 다짐 하면서 후기를 참조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먼길 수고 많으셨습니다.
늘 건강하시고,두분의 행복한 동행 이어가시길 염원 하겠습니다.
외세의 침입으로 우리 한민족은 늘 수난의 역사였지요.
그래서 한이 많은 한민족이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조선의 국보급 보물들은 일본군이 다 가져가고
슬픈 역사만을 간직하고 있는 안타까움만 남습니다.
즐겁게 보셨다니 고맙습니다.
걸으시는 봄 길에 화사함이 가득한 꽃길이 되시기 바랍니다.
늘 건강 하시고 즐거운 한 주 되세요.
성원에 감사 합니다.
아. 가곡님도
저와 후배가 걸은 것처럼
의주길의 1코스 2코스를
한번에 걸으시면서
역도보를 하셨네요.
그래서인지 가곡님의
가신 길 풍경이 고스란히
생생하게 소환돼오네요.
저는 느낌과 감상 쪽으로
대략 훑어낸 길 풍경을
알찬 정보까지 꽉 채우시니
뒤에 걸을 분들에게는
무척 큰 도움 되겠습니다.
지난번에 다녀 오신 길 따라 저희도 다녀 왔습니다.
저에겐 오랜 세월 미뤄 두었던 의주길이지요.
저의 후기를 보고 후답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언젠가는 길위에서 만나 뵐 수 있겠지요?
꽃피는 봄 즐거움만 가득하시길....
늘 건강 하세요.
감사 합니다.
후기글의 역사적인 배경을 보면서 제가 걸었던 길을 회상하여보니
의주길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됨니다.
나미지길도
건강한걸음, 의미있는 걸음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의주길은 볼거리도 많고 역사적으로 배울 것이 많은 길이더군요.
역사의 아픈 상처를 보며 무거운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얼마전 걸으셨던 의주길을 보고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남은 길도 차근차근 걸어 보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가곡님 후기 즐감합니다. 3년전 제가 갔던
의주길과는 조금 다른듯 합니다. 가곡님
길따라 곧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의주길이 예전 길 보다 변경 되었어요.
걷기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좋은 길 많이 많이 걸으세요.
걷다 보면 길위에서 만나 뵐 수 있는 기회도 있겠지요.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