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건기와 계약을 한지도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가끔 복도를 지나다 보면 친한척을 하는 녀석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찌나 엉겨대던지 안그래도 화제에 오른 나인데 이젠 내 안티까지...
정말 웬수가 따로없다.
그런데도 이 녀석은 자각이 없다.
물론 피사체로는 최고지만 인간으로서는 최악이다.
눈치코치없는 바보병신.
"홍자두야~"
봐라. 아주아주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은건기.
나보다 키가 한참이나 크면서도 대롱대롱 메달린다.
내가 무슨 천하장사냐?
안그래도 화구때문에 무거워 미치겠는데 이런 곰탱이까지..
"놔. 무거워."
"치~ 오늘은 '거기' 안와?"
"안가. 오늘은 수업 들을거야. 안그럼 졸업 못해."
"잉~ 와라 와라. 나 심심해~"
울상을 지으며 애교를 부리는 은건기.
귀엽다. 젠장.
아무리 니가 그래도 안돼는건 절대 안돼는거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심호흡을 했다.
"후우. 안돼."
"자두는 너무 냉정해."
"아씨. 야 니 친구들 기다리잖아. 안떨어져?"
옆에서 녀석을 놀라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은건기의 친구들이 보였다.
뭘 저렇게 보는지...
그래도 끼리끼리 논다고 친구들도 다 잘생겼다.
옘뵹.난 은건기의 팔을 뿌리치며 계단을 내려갔다.
은건기는 그래도 뭐가 좋은지 쭐래쭐래 따라온다.
주인을 보며 꼬리치는 개새끼같다.
"절루 안가?!!!!!!!!!!!"
"자두야아~ 와라와라"
"안간다고!!!!! 넌 어떻게 니 생각만 하냐? 너때문에 나 피해보는거 니눈에는 안보여?
좀 달라붙지마. 주인따라다니는 똥강아지도 아니고 왜그래? 너 무뇌아야??"
"자두야..."
자꾸만 칭얼거리는 은건기때문에 짜증이 극에달한 나는 기어코 소리를 높이고야 말았다.
그러자 멍하게 날 바라보는 은건기.
충격받았나? 내가 말을 좀 심하게 하긴 했지.
내가 말해놓고도 아차 했다.
"....어쩜...화내는것도 멋져!!>_<"
"..........-_-............"
그럼 그렇지.
은건기는 그딴걸로 상처받을 위인이 절대 아니다.
난 한숨을 지으며 반으로 쏙 들어가며 문을 쾅 닫았다.
지가 설마 우리반까지 쫓아들어오겠어?
내 예상과는 달리 은건기는 뻔뻔했다.
그걸 잊고있었다. 젠장젠장젠장.
은건기는 아주아주 당당하게 우리반 문을열며 내 이름을 불러댔다.
쪽팔려서 못살겠다 정말.
그 여시같은 최한나(1편에서 싸가지 없게 굴던 그 가시내)가 무슨 꼬투리를 또 잡았는지
애들을 모아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자두야 자두야♪ 가자가자 둘만의 비밀장소로♬ 야후~ 가자~"
녀석의 부름에도 내가 대꾸를 안하자 이제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 애매모호한 가사는 뭐야!!!!
둘만의 장소가 어딘데!
그 소리에 반 애들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못살아 진짜.
"야!!!!!은건기 너 안가???? 너 이러면 진짜 절교야"
절교란 말에 은건기는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며 반을 나갔다.
저 웬수새끼.
인생에 도움이 안된다.
"자두야. 잘있어. 절교하면 안돼.."
열로 후끈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며 책상에 앉았다.
그 때 교실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오 지저스! 강하빈이였다.
"가,가,가,강하빈!!!!!!!!!!!!!!!"
"네?"
큰 소리로 외치는 내게 윙크를하며 태연하게 대답하는 강하빈.
럴수럴수 이럴수가!
니가 왜 여기에 있는거야!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여러분을 가르칠 미술교사 강하빈입니다.잘부탁해요"
상콤한 강하빈의 말에 괴성을 지르는 기집애들.
무서운 놈.
아마 저 녀석의 실체를 알면 다 도망갈거야.
저게 더럽기는 얼마나 더러운데. 우엑!
다 겉모습에 속고있는거야.
난 자리에 앉아 투덜거렸다.
.
.
.
악몽같은 미술수업이 끝나고 강하빈이 나가자 튕기듯 따라나갔다.
내,내, 저 강하빈을 그냥!!
"야! 강하빈!"
"쉿!"
강하빈은 내 입을 막으며 빈 써클룸으로 들어갔다.
퉤퉷 으~ 짜.
문을 닫고 그제서야 입 막은 손을 내려놓는 강하빈.
그 녀석의 손이 떨어지자마자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너,너! 여기 왜왔어!!!"
"왜 오긴~ 교사로 온거지"
"이,이,이 구라파덕아!! 뻥까지말고 빨랑 말해!!"
"아 알았으니까 소리좀 줄여. 다 듣겠어."
난 씩씩거리며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저 나쁜놈. 응큼한놈.
난 강하빈을 노려보며 콧김을 뿜어냈다.
"자윤이가 너 좀 도와주래잖아. 니가 사고칠지도 모른다고. 니가 좀 많이 왈가닥이냐?
얼마나 자윤이 속을 썩였으면 그래?-_- 내가 또 자윤이라면 뻑 가잖냐. 훗-"
강하빈은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이걸 패 말어?
주먹을 꽈악쥐는 날 보며 녀석은 움찔했다.
곧바로 비굴모드에 들어가는 강하빈.
"아, 알았어. 열 내지마. 아무튼 성격하고는... 넌 친구가 도와주러왔는데도 안반갑냐?"
"니 도움 필요없어!!"
발끈한 날 보며 강하빈은 웃었다.
상콤하게 웃는게 아주 얄미워 죽겠다.
여전히 씩씩거리는 날 안아주는 강하빈놈.
우씨! 이러면 내가 화를 못내잖아!
"야. 자윤이도 좀 생각해줘라. 좀 애가 타겠냐?"
"알어. 언니가 걱정하는거. 그래서 수업도 들은거아니야"
"짜식. 기특하다 기특해! 이 오빠는 감격..."
"엇!"
갑자기 몸이 훽 돌아가 누군가의 품에 안겼다.
뭐여 이건.-_-
"홍자두야한테 손대지마 변태선생."
은건기였다.
이 옘병할 놈. 사랑스런 친구와의 재회를 방해하다니..
아니 그것보다는 여태까지 이야기를 다 들었을거라는 생각에 화가났다.
은건기를 밀쳤다.
"오~ 자두쒸. 이 애송이는 뭐야?"
눈을 반짝반짝 딱정벌레처럼 빛내는 강하빈을 보며 죽었다는 생각을했다.
이 새끼 얼마나 우려먹을까?-_-
한숨만 나온다. 은건기 이새끼는 정말 인생에 도움이 안돼.하아.
"자두 애인이다!"
젠장.
강하빈의 눈에 웃음기가 어렸다.
난 이제 쌌다. 은건기야 지금 니가 무슨일을 저질렀는지 아느뇨?
육두문자가 입을 맴돌았다.
정말 살인충동느끼게하는 인간.
"오! 이젠 연하에게 마수를 뻗친거냐 친구?"
"닥쳐."
난 하빈이의 배를 주먹으로 쳤다.
맞고서도 좋다고 싱글거린다.
아~ 제발.
"흥!"
은건기는 나를 지 품에 안고 하빈이를 째려봤다.
아 짜증나. 왜 자꾸 안는건데!!
난 녀석의 품에서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야릇해 야릇해. 이걸 사진으로 찍어서 돌려야겠어."
"강하빈!!!!!!"
"아아. 알았어. 성질하고는.."
니가 성질나게 안했냐?
정말 이 웬수들때문에 제 명에 못살겠다.
누가 나좀 구해달라구요~
"은건기. 언제까지 안고있을래?"
"저 변태가 자두한테 안 집적거릴때까지~"
"내 친구거든?"
"거짓말거짓말. 홍자두는 거짓말쟁이."
"애송이 나 자두 배꼽친구 맞어."
은건기는 하빈이의 말에 날 뗴어놓았다.
이거 은근히 기분나쁘네..
내 말은 개똥만도 못하다는거냐=0=
"...-_-..."
"안뇽하세요. 전 자두의 비밀스런 친구랍니다."
바로 태도돌변하는 저 또라이 은건기.
도대체 니 정체가 뭐냐,
손을 내민 은건기에게 또 뭐가 좋다고 같이 손을 내밀어 악수하는 병신같은 강하빈.
왜 내 주위에는 언니빼고 정상적인 사람들이 없는걸까?
난 한숨을 내쉬며 써클룸을 나갔다.
저 인간들하고 같이있으면 내 머리도 이상해질것 같다.
#작업실.
"홍자두 나뻐! 나 빼놓고 혼자가!!"
"......."
멍하니 이젤앞의 스케치북만 바라봤다.
저건 상종해봐야 내 머리만 아퍼.
난 새하얀 종이를 바라보며 작품구상을 했다.
"자두야 자두야~"
"........."
대답없는 내 귀에 자꾸만 이름을 부른다.
아 귀찮어.
이 찰거머리는 사람을 왜 이렇게 피곤하게 하는지...
"...이야.."
"응 응?"
"계약위반이라고...그림그리는데 방해 안한다며.."
"미안."
은건기는 내 말에 씨익 웃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별로 미안해 보이지 않어 이새끼야.
점점 성격파탄자가 되는것 같다.
이 섬세한 내가 저 또라이때문에 망가지다니..
"그럼 내 모델해줘,"
헉! 내가 뭐라고 그런거야!!
무심코 내뱉은 말에 내가 놀랬다.
"알았어."
흔쾌히 알았다고 말하는 은건기.
녀석은 정말 완벽한 피사체지만 산만하다.=_=
"누드어때? 나 몸짱이야~"
"닥치고 그냥 쇼파에 앉어."
"웅."
착하게 내 말을 듣는 은건기가 쇼파에 앉자마자 난 연필을 들어 데생을 시작했다.
사진을 찍듯 은건기의 눈 코 입 손가락 모두 눈에 담았다.
그리곤 연필에 다시 담았다.
지루했는지 잠이든 은건기는 눈을 떴을때보다 아름다웠다.
하긴. 입열면 또라이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