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장 : 풍운(風雲), 호위제(護衛祭) - 03
- 싸우려면 상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호대운이 단엽과 관패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네 놈들은 누구냐?”
관패의 표정이 변했다.
‘네 놈들이라니.’ 아무리 보아도 이제 이십이 갓 넘은 애송이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는 관패였다.
그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그 모습을 본 금강인은 안색이 파랗
게 질렸다. 이미 호되게 당해본 그였기에 관패가 얼마나 무지막지한
인간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저런 눈을 한 다음
일어난 끔찍한 사고는 그의 머리에 아직도 꽉 박혀 있었다.
파사랍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관패의 허리에 덜렁거리는 두 자
루의 도끼에 머물렀다가 호대운과 요상군에게 돌아갔다.
관패는 마음이 어떻든 허연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었다. 그 웃음
을 본 파사랍이나 막총은 기분이 오싹했다. 반대로 호대운과 당의려
등은 기분이 아주 나빴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느냐?”
관패의 말에 호대운은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띠우고 말했다.
“그렇다.”
“허, 요놈의 자식 좀 보게, 꼬박꼬박 반말에 건방진 말투네 그려!”
관패의 입장에서 보면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호대운이
나 당의려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그들이 관패의 정체를 생각하기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요상군 역시 자신의 스승인 호군명이나 사패천 일행이 천금마옥에
서 탈출한 줄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관패의 모습만 보
고는 그가 설마 천살성이라 불리던 관패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알았다면 이런 어리석은 일이 벌어질 리도 없었다.
당의려가 앞으로 나서자 호군명과 요상군은 뒤로 물러섰다. 현재
그들의 대표는 바로 당의려였다.
당의려는 싸늘한 눈으로 단엽을 주시하며 말했다.
“네 놈 하나 때문에 여기 있던 모든 사람이 다 죽어야 한다. 그래
서 함부로 놀리는 주둥이는 화의 근원이 된다 하였다. 네 놈은 나
에게 원치 않는 살인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용서 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
그녀의 한 마디로 이층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러나 단엽은 여전
히 태연했고, 관패는 실소를 하고 있었으며, 막총과 그 일행들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관패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당의려를 보고 말했다.
“참으로 맹랑한 계집아이구나.”
“더러운 아가리로 감히 날 욕하다니.”
당의려가 차갑게 말하며 앞으로 나서려 하자 놀란 요상군이 그 앞
을 막아서며 말했다.
“아가씨 이런 무식한 자는 제가 적격입니다. 제가 사로잡아 주리
를 틀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당의려는 생각해보니 자신이 나서는 것은 체면에 손상에 가는 일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이정도의 일은 아래 사람이
처리해야 마땅하다는 오만하고 사치한 심리가 그녀를 뒤로 물러서
게 하였다.
당의려가 군소리 안하고 뒤로 물러서자, 요상군은 검을 뽑아들고
관페에게 다가섰다.
막총과 청년들 역시 일어서서 한쪽으로 물러서며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요상군은 관패의 덩치와 그의 허리에 달린 도끼 두 자루를 보면서
웃었다.
“복장이나 차림새가 비슷한 것을 보니, 네 놈이 어디서 천살마부
의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구나, 도끼 두 자루 달랑 들었다고 그 미친
살인자가 될 수 있다면 지나던 개도 웃지.”
요상군의 말을 들은 막총이나 파사랍등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버
렸다. 그들은 그 말을 듣고서야 관패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직도 긴가 민가 하는 상황이었지만, 금뢰불
을 상대할 때의 그 무지막지한 모습이라던가? 두 자루 도끼 등등,
그를 관패라고 생각할 증거는 너무 많았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관패가 아니라면 두 자루 도끼만 지니고 금뢰불과 사대금강을 그렇
게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세상 천지에 또 있을 수 없었다.
문제는 천살마부를 만나고 자신들이 왜 살아 있을 수 있는지 그게
의문이었다. 그리고 대체 천살마부가 뭐가 아쉬워 주인을 두었는
지도 더더욱 의심스런 일이었다.
막총 등이 관패가 정말 천살마부일까? 아닐까? 하는 문제로 고민
하고 있을 때, 당사자인 관패는 자신을 미친 살인자라고 말하는
요상군에게 무한한 살기를 느끼고 있었다.
살인자라고만 했다면 화가 안 났을 것이다. 그 말은 정직한 말이
니까, 그런데 미친이라니.
“네 놈은 죽었다.”
관패의 얼굴에 무서운 살기가 피워 올랐다.
포양호 남서쪽에 있는 남창을 끼고 남쪽에서 올라온 강줄기는 북
으로, 북으로 흐르다가 포양호에 온 정력을 다 쏟아 놓고 질펀하게
잠이 든다. 이 강의 상류를 향해 몇 칠이고 계속 남하하다 보면 어
느 순간 강은 무섭게 옆으로 꺾어져 서쪽으로 굽어져 있다.
다시 쉬지 않고 강의 상류를 향해 가다보면 호남성에 못 미쳐 무
공산이라고 제법 크고 험한 산 하나가 나타난다.
제법 차가운 바람이 가시지 않은 계절이지만, 남쪽에서도 한참 아
래쪽인 무공산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서늘한 바람이 구름을 몰고 막 동이 트는 산허리의 각진 부분에
걸터앉을 때 쯤, 무공산의 산자락을 천천히 내려오는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목관을 등에 짊어진 사내의 손엔 박달나
무로 만들어진 듯한 지팡이 하나가 달랑 들려 있었다.
마치 연기처럼 엉켜 있는 수염은 누가 보아도 그가 산 사나이임을
알게 해 주었으며,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안대와 깊게 가라앉은
외눈은 이 사내가 지독한 수련을 거친 무인임을 알게 해 주었다. 가
끔 불어온 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펄럭이게 만들 때마다 그의 하나
밖에 없는 눈은 깊게 가라앉았다.
등에 맨 관 위에는 몇 장의 곰 가죽과 짐승 가죽들, 몇 개의 물건
들이 가지런하게 올려져 있었다.
강서성에서 호남성으로 들어서기 직전에 있는 제법 큰 현인 평산
은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한 탓에 제법 번성한 곳이었다.
따스한 해가 중천에 올라 대지를 녹이고 있을 무렵, 한명의 사내
가 거대한 관을 등에 지고 평산현에 나타났다.
덥수룩한 수엽과 하나밖에 없는 눈이 유달리 이 사내를 굳건한 모
습으로 보이게 하였다.
마차 두 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관도를 따라 평산
현에 들어온 사내는 능숙한 솜씨로 마을의 대장간을 찾았다.
평산현에서 오대째 대장간일로 생업을 하고 있는 노인 장칠은 종
업원들을 다구 치며 풀무질을 하다가, 나타난 외눈의 사내를 긴장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거칠어 보이면서도 정기가 번쩍이는 이 사내는 결코 가볍게 볼 상
대가 아님을 그는 연륜으로 알아보았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뭘 원하십니까?”
“검을 주시요.”
사내는 그 말 한마디와 함께 세장의 곰 가죽을 노인 앞에 내밀었
다. 노인은 곰 가죽 세 장을 받아 잠시 살펴보았다.
회색 곰의 가죽은 어느 곳 하나 손상 입은 곳이 없을 정도로 완벽
했다. 노인은 곰의 가죽을 보고 그 곰을 잡은 사람이 보기 드문 내
가의 고수임을 짐작했다.
곰을 잡을 때, 내가 중수법으로 죽인 곰이 아니면, 일반 사냥으로
이렇게 깨끗하고 완벽한 곰 가죽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한 장은 몰라도 세 장이 다 그렇다면 사내는 최소한 내가 중수법
을 쓸 수 있을 정도의 고수이거나 그런 고수에게 이 곰 가죽을 얻
었을 것이다.
노인은 곰 가죽을 안 쪽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날, 따라 오시요.”
사내는 노인을 쫓아 대장간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관은 여전
히 등에 짊어진 채였다. 제법 넓어 보이는 문이 그 관으로 인해 오
히려 비좁아 보였다.
노인 장칠은 그 모습을 흴끔 쳐다보고 못 본체 하였다. 필히 곡절
이 있으리라.
강호란 원래 기인이사와 괴인이 넘쳐 나는 곳이라 어느 곳 하나
예측하기 어려운 곳임을 노인은 잘 알고 있었다.
안쪽은 제법 넓은 실내였고, 거기에는 수백여종의 무기가 진열되
어 있었다.
검과 도, 그리고 창과 도끼는 물론이고 온갖 기이한 무기가 가득
했다. 성도가 아닌 현에 있는 대장간 치고는 생각보다 과할 정도로
많은 무기가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여기 현에는 수많은 무림인들
이 지나다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은 작은 미소를 머금고 조금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래보여도 여기가 이 근방에서는 가장 유명한 병기점이자 대장
간이라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곤 병기를 고르기 시작했다. 한참 후 제법
단단해 보이는 청강검 한 자루와 단검 한 자루, 그리고 일반 장검
보다는 한참 작고 단검보다는 약간 긴 검 한자루 등 모두 세 자루
를 들고 나왔다.
노인은 사내가 들고 나온 청강검과 단검을 보고 약간 당황한 표정
을 지으며 말했다.
“그 검은 철마방의 방주가 부탁해서 구해 놓은 것이라 팔수가 없
습니다. 손님.”
사내는 자신이 들고 온 검을 다시 보았다. 비록 평범해 보이지만
검을 만든 재질은 한철이 포함되어 있어 그 어떤 보검보다도 단단해
보였다. 마음에 든다.
사내는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노인에게 던져주었다. 노인은
그 주머니를 열어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향긋한 냄새와 함께 능히
삼백년은 묵었음직한 하수오가 안에 들어 있었다.
노인의 얼굴에 욕심이 어렸다가 지워졌다.
아무리 돈과 건강도 좋지만, 자칫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검상이 세 군데나 난 철마방의 방주 얼굴이 떠오르자 오금이 저려
왔다. 이 근방에서 철마방은 곧 법이었다.
“손님 그래도 그것은 안 됩니다. 그 검의 주인은.......”
“고맙소. 주인, 철마방주에겐 나중에 하나 더 만들어 주면 될 거
아니요.”
노인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검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재질도 구
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마침 그 검을 전해 주기로 한 날이 오늘입
니다. 제 처지를 생각해서.......”
“고맙소.”
그 말을 끝으로 사내는 성큼 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노인은 입만
쩍 벌리고 사내의 등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풀무질을 하던 점원들도 멍하니 그를 보고 있었다.
대장간이란 언제나 칼 밥을 먹는 사람들과 가까울 수밖에 없고,
그들은 사내의 모습에서 감히 거부할 수 없는 기세를 느끼고 있었다.
노인 장칠의 모습은 보기에도 불쌍할 정도였다.
이미 문 밖에 선 사내는 슬쩍 노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전하시오.”
중천에 떠 있는 태양은 사내의 머리 위에 있었지만, 장칠은 찬 기
운에 몸을 떨었다.
대장간을 나온 사내는 객점을 향해 걸어갔다.
‘평화객점’ 평산현에서는 가장 큰 객점이었다.
“소면”
점소이는 조금 기이한 눈으로 사내를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다섯 그릇째였다.
관을 메고 들어온 사내는 점소이를 깨끗하게 무시하고 의자 몇 개
를 나란히 놓은 다음, 메고 온 관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화가 나서 그 짓을 저지하려던 점소이는 그만 숨을 죽이고 말았
다.
사내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을 다르듯이 관을 의자들
위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그 경건한 표정에 압도 되어 버린 탁이
었다.
사내는 관을 그 위에 올려놓고 점소이를 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고기를 잘 다진 죽 한 그릇과 소면 한 그릇.”
점소이는 그 건조한 명령어에 대꾸도 못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고기죽 한 그릇과 소면을 가져온 점소이는 색다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사내는 고기 죽 한 그릇을 관 위에 올려놓고 잠시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소면을 먹기 시작했다.
왕팔은 점소이 생활 십오 년 동안 소면 한 그릇을 그렇게 맛있고
소중하게 먹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무엇인가 울컥하는 감동이 그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사내는 소면을 입에 넣고 천천히 아주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씹
고 또 씹어 삼켰다.
왕팔은 그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음식점의 점소이로 굳어진 자신
의 직업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낄 정도였다. 더군다나 관 위에 고
기죽을 올려놓고 자신은 가장 싸구려 음식 중 하나인 소면을 먹는
사내가 왠지 경건하고 무엇인가 큰 사연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사내는 그렇게 다섯 그릇 째의 소면을 시켰다.
소면을 다 먹은 사내 진충은 배를 채워오는 포만감을 느끼고 다시
차 한 잔을 시켰다. 마침 평화객잔은 다루를 겸하고 있어서 후식
으로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차를 시켜 놓은 진충은 자신의 옆에 있는 관을 보았다.
‘주모님, 빨리 일어나셔야 합니다. 그래야 주공을 찾고, 그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던 아름다운 연이 다시 이어질 주 있습니다.’
진충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밀실에서 탈출한 후, 용부와는 반대 방향인 남서쪽으로 도망친 것
이 벌써 사십여 일 전이었다. 그는 무공산에 숨어서 혹시 자신을
뒤쫓는 봉성의 무리가 없는 지 살핀 후, 안전하다고 생각되자 세상
에 나왔다.
봉성에서는 지하 수맥이 터지며 자신과 주모가 함께 매장 되었으
리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지금 어딘가에
자신을 뒤 쫓는 무리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분간은 안
전하리라.
마음이 안정되자, 단 한번 본 자신을 거두어 주고 자신에게 무공
을 가르쳐 준 사공운의 모습이 다시 한번 그의 뇌리 속에 아른거
렸다.
아주 오랜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처음
사공운을 만났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했다. 얼마나 동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분인가? 난 이 분을 주공으로 모셨다. 이제 난
이분을 쫓아 협행을 하며 주유천하할 것이다.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지금도 변
함이 없었다.
‘주공 살아 계시리라 믿습니다.’
진충은 굳게 믿고 있었다. 이제 다시 그가 사공운을 만났을 때 자
신이 발전 한 것 이상으로 강해지고 큰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진충은 그렇게 믿었다.
‘담사우, 반드시 너는 천벌을 받을 것이다. 주공이 세상에 나오는
날 네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진충의 외눈이 차가운 한광을 뿌렸다. 한참 격한 감정을 다스리고
있을 때, 점소이가 차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점소이가 차를 막
탁자 위에 내려놓았을 때였다.
“꽝”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네 명의 사내
들이 있었다.
사내들의 복장은 검은 가죽으로 만든 윗옷들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들의 가슴엔 철로 만든 마귀 형상의 패가 상징처럼 걸려 있었다.
그것을 본 점소이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며 빠르게 그들에게 다가
가 그 중 덩치가 큰 사내를 보며 비굴한 웃음을 흘렸다.
“아이고 왕향주님 오셨습니까?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점소이의 말을 들은 왕향주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점소이를 밀
치며 사방을 둘러보다가 진충에게 다가섰다.
세 명의 사내들 역시 그의 뒤를 쫓아 우르르 몰려간다.
진충에게 다가선 왕향주는 발 하나를 탁자위에 올려놓으며 거만하
게 물었다.
“여기 외눈은 너 밖에 없으니, 혹여 거짓말 할 생각은 말아라! 네
가 감히 방주님의 검을 훔쳐간 놈이냐?”
진충은 차를 후르륵 마시면서 말했다.
“돈을 주고 산 검은 있소이다. 남의 물건을 강탈 하진 않았소.”
의외로 담담한 진충의 모습을 보면서 덩치의 사내, 왕향주는 야릇
한 표정으로 사내를 훑어보았다. 많은 수련을 한 모습이었지만, 내
공은 깊어 보이지 않았다. 대체 이 철모르는 멍청한 자식이 무엇을
믿고 저리 태연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그가 유령신공의 내
기를 알아 볼 정도라면 철마방에서 향주 노릇이나 하고 있진 않았
을 것이다.
왕향주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허, 이놈 보게 아주 간댕이가 부었군, 지금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
고 빌어도 이 어르신이 봐 줄까 말까인데, 오히려 대드네 그려.”
덩치는 혀를 차며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나는 철마방의 집마향주인 호두검(虎頭劍) 왕목이라고 한다. 네
놈은 이름이 뭐냐?”
호두검 왕목이라고 하자 주루의 손님들은 더욱 기가 죽은 표정이
었다.
호두검 왕목이는 철마방의 마두들 중에서도 가장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왕목이가 누구인줄 모르는 진충은 여
전히 태연했다.
“관, 이라고 하오.”
덤덤한 진충의 목소리를 들은 왕목이는 분했다. 치가 떨리도록 분
했다. 당연히 자신의 이름을 들었으면 얼굴이 사색이 되어 살려
달라고 빌어야 하는데, 상대는 전혀 그럴 기미가 아니었다. 마치
자신의 체면이 부하들 앞에서 크게 손상을 입은 느낌이었다.
왕목이는 치밀어 오르는 분함과 분노를 참고 말했다.
“검을 내 놓아라! 그럼 살려주마.”
“싫소.”
“뭐, 싫어!”
“귀찮으니까 자꾸 말시키지 마시오.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하다니
철마방은 도적의 집단이오.”
왕목이와 세 사내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들은 이 인근에서 감히
철마방에게 시비를 거는 인간을 보지 못했었다. 전혀 상상치 못한
일이었기에 일시적으로 대처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점소이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아예 한쪽 구석으로 숨어버렸
다. 역시 점소이 연륜도 무시 할 수 없는 듯 그는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왕목이의 얼굴이 차갑게 식어 갔다.
“미친놈, 관을 메고 다니는 모양부터 무엇인가 수상하더니 네가
죽을 줄 모르고 시비를 거는구나, 어디 이 관에는 무엇인 들었는지
보자.”
왕목이가 관에 손을 대려 하자, 지금까지 담담하던 진충의 표정에
살기가 돌기 시작했다.
“관에 손을 대는 순간 죽는다.”
왕목이는 진충의 말에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곧
자존심이 상했다. 들개 같은 놈의 말 한마디에 자신이 겁을 먹었
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참을 수 없었다.
“애들아 저 관을 부셔라!”
“예! 향주님.”
수하들이 대답과 함께 관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순간 진충의 몸이
흐릿하게 음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음직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은밀해서 왕목이는 자신의 앞에 있던 진충이 움
직였는지 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왕목이는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눈으로 자신의 수하들을 보았다.
순간 마치 도막을 낸 통나무가 무너지듯이 그의 수하들은 천천히
뒤로 무너져 버렸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죽지 않은 듯 그저 뻣뻣하게 굳은 채 뒤로 넘
어졌는데 혈도를 집힌 듯 했다.
검으로 세 명의 혈도를 한꺼번에 짚는다.
왕목이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운 무공이었다. 너무
놀란 왕목이가 다시 진충을 보았을 때 서리보다 더 차가운 살기가
자신의 목을 눌러 오는 것을 느꼈다.
‘절대 고수다.’
왕목이는 그제 서야 상대가 자신 따위는 아무리 많은 수가 덤벼도
어쩔 수 없는 절대 고수임을 알았다.
진충은 넋을 잃고 서 있는 왕목이를 놔두고 관을 맨 후, 객점을
나섰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왕목이는 진충이 사라지고 나자
그 자리에 오줌을 지리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철마방에
가서 자신들의 방주에게 추궁 당할 것 같은 후일의 생각은 지금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관패의 살기를 본 요상군은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호대운과 당의려 역시 상대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무서
운 인물임을 그 순간 느꼈다.
용상군은 상대가 생각보다 강하 보이긴 하지만 절대 자신의 이상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겨우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관패가 내
공을 익히면 얼마나 익혔겠는가? 본래 세상의 이치는 보이는 것만으
로 판단할 수 없다는 이치를 그는 그 나이에서도 잘 모르고 있었다
. 그러나 교활한 요상군은 만약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호대군을
슬쩍 단엽 있는 쪽으로 밀며 말했다. 그 모습은 주인이 다칠까봐
미리 선봉을 서는 충복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대공자님, 이 어린놈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걱정 마시고 다른
잡 당 들이나 잘 감시하십시오.”
요상군의 말을 들은 호대운은 그의 말뜻을 빠르게 눈치 챘다. 혹
시 뭔 일이 있으면 단엽을 인질로 잡으라는 뜻이리라. 원래 음계
로는 언제나 죽이 잘 맞는 노소였기에 요상군이 왜 자신을 이쪽으
로 밀어 놓았는지 충분히 짐작이 갔던 것이다.
호대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시고 저 멧돼지 같은 미련퉁이나 잘 처리 하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공자님.”
두 노소가 하는 양을 보며 관패는 이미 피가 거꾸로 돌고 있었다.
어디까지, 먼 짓거리를 하는지 보자고 참았지만, 멧돼지란 말을 들은
순간 참기 어려웠다.
“이런 잡종 같은 놈들이.”
고함 소리와 함께 관패가 자신의 주먹을 들어 올리며 패왕신권의
초식을 운용하였다. 그러자 그의 주먹에서 무시무시한 경기가 소
용돌이 쳤는데, 그 힘으로 인해 막총 등은 다시 뒤로 물러나느라
난리를 치고 말았다. 그 때문에 관패의 공격이 조금 늦어졌고, 펼치
기도 전에 보여 지는 힘에 놀란 요상군과 당의려가 함을 합하려는
나란히 섰다. 그들의 얼굴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관패는 자신의 성명 절기인 패왕신권을 막 펼치려 하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호대운이 갑자기 검을 뽑아든 채 움직이는 것
을 본 것이다. 그러나 주춤하며 호대운을 본 관패는 그만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말았으며, 요상군과 당의려는 득의양양한 표정이
되었다.
정말 빠르게 움직인 호대운은 자신의 검을 단엽의 목에 대고 관패
를 보며 승자의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련한 놈, 네 주공이 나에게 인질로 잡혔다. 이제 어쩔 테냐? 네
가 조금만 움직이면 이 자는 죽고 말 것이다.”
막총 등은 어쩔 줄 몰라 하며 호대운의 비겁함을 욕했지만, 관패
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미친놈이 대체 죽으려고 별짓을 다하는 구나, 세상에 건드릴
사람이 없어 주공의 목에 칼을 대다니. 아예 염라대왕의 수염을
뽑는 게 낫지.’
호대운과 요상군, 당의려는 관패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이 없자
과연 호대운의 뜻대로 단엽을 인질로 잡은 것이 제대로 먹혔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일련의 사건에 가장 큰 공을 세운 호대운은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놈의 가장 큰 실수는 내가 청죽림의 대공자이고, 호자 군자
명자 쓰시는 분이 나의 조부님임을 몰랐던 것이다.”
막총과 그 일행들은 호대운이 살수들의 집단인 청죽림의 대공자라
고 하자 안색이 더욱 일그러졌다. 원래 살수가 암수를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때 지금 호대운의 행동을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관패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참 멋지다. 확실히 실수는 실수지.”
“흐흐 알면 됐다. 이제 이 멍청한 놈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
는지 말하겠다.”
호대운의 말에 관패는 아주 안 됐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
다.
“쯧쯧, 네 할아버지가 지금 그 모습을 보면 오줌을 지리고 도망
칠 텐데, 너도 참 재수 없는 놈이다.”
그의 말을 듣고서야 당의려는 인질인 단엽의 표정이 너무 태연하
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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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ㄷㄳ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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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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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