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의 대를 이어라” 00-01시즌을 앞두고 드래프트 전체 1라운드 1순위로 삼성 썬더스에 입단한 이규섭에게 부여된 첫 번째 임무다. 공교롭게도 팀 선배 문경은은 프로출범 하기 전인 90농구대잔치에서 연세대 1학년 신분으로 신인상의 영예를 차지했었고 주희정은 97-98리그서 프로농구 초대 신인왕의 자리에 등극한바 있다. 일생에 단 한번밖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신인상이기에 이를 놓고 벌어지는 경쟁은 어느 상보다 치열할 수 밖에 없고 그 영예 또한 크다 하겠다. 문경은·주희정의 신인상 수상 당시의 활약상을 조명해보고 이규섭의 수상 가능성을 타진해본다.
글 / 정호진 기자 사진 / 문복주 기자
문경은 90년 2월 광신상고를 졸업하고 연세대에 입학한 문경은은 1학년 때부터 주전을 꿰차고 폭발적인 장거리슛을 자랑하며 성인농구 최고의 슈터로 자리매김했다. 문경은은 봄철 대학연맹전서 게임평균 28득점을 올리며 대학 무대 신인상을 거머 쥐었고 실업팀들과 격돌한 90농구대잔치에서도 기라성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통합 신인왕에 올랐다.
문경은의 가세로 전력이 한결 탄탄해진 연세대는 그해 농구대잔치 2차 대회서 3위에 오르며 농구대잔치 사상 최초로 4강권에 진입했고, 93농구대잔치 첫 정상 등극의 초석을 다졌다.
고1때부터 청소년대표로 뽑혀 3차례나 국제대회에 출전했지만 정작 광신상고의 국내 대회 성적은 신통치않아 크게 빛을 보지 못하던 문경은은 연세대 진학 후 최희암 감독의 조련을 받으며 공수에서 두드러진 기량 향상을 보였다.
본인의 노력 또한 꾸준했다. 하루 700-800개의 슛을 연습하며 땀을 흘렸다. 그 결과 3점슛 적중률이 눈에 띠게 좋아졌고 큰 키를 이용하여 상대 블로커 위로 슛을 구사하기도 했다. 그 당시 농구대잔치 신인상은 대학과 실업 통틀어 한 명만을 시상하는 전통이 이어져 내려왔고 주로 실업팀 선수들이 영광을 차지했다.
하지만 90농구대잔치에선 문경은의 기록이 워낙 뛰어나고 활약이 두드러져 당당히 신인상을 차지했다. 그와 동기생으론 연세대 김재훈을 비롯 명지대 조성원, 중앙대 조동기, 홍사붕, 김승기, 동국대 봉하민, 고려대 진현구, 박세웅, 경희대 김도명 등이 있었지만 그의 상대론 역부족이었다. 실업팀에서도 기아 강동희, 삼성 강양택, 기업은행은 장일, 산업은행 박희성, 현대 임근배, 유도훈이 있었지만 강동희를 제외하곤 활약이 미미했다. 강동희는 86농구대잔치때 중앙대 1년생으로 신인상을 받아 수상후보에서 밀려났었다.
주희정 고려대를 중퇴하고 96년 연습생으로 삼보 엑써스(당시 나래 블루버드)에 입단한 주희정은 97-98시즌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당당히 프로 초대 신인왕에 등극했다. 대학시절 신기성의 그늘에 가려 출전기회가 거의 없었던 데다 불우한 가정환경 탓으로 일찌감치 프로의 문을 두드린 주희정은 스틸 게임평균 2.8개로 1위를 차지하고 어시스트 4위에 랭크되는 등 포인트 가드로선 두드러진 성적을 올렸다. 부산 동아고시절 ‘제2의 강동희’로 불렸지만 대학진학이후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던 주희정은 월급 100만원의 암울했던 연습생시절 꾸준한 개인연습으로 내일을 기약했었다.
연습생 1년만에 연봉 4천만원으로 5년계약을 맺은 주희정은 97-98시즌 45게임 전게임에 출장하며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시간동안 코트를 누볐고, 게임평균 12.7득점에 4.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기막힌 돌파와 어시스트, 몸을 내던지는 투혼으로 팀을 정규리그 3위로 견인하여 프로농구 최대의 스타로 떠오른 주희정은 실력이외에 할머니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대학 중도포기, 프로에 뛰어든 사연까지 소개되며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그의 신인왕 등극엔 행운도 따랐다. 그당시 신인상 후보론 당대 최고 스타인 이상민(현대)과 문경은(삼성)이 버티고 있었던 것. 이상민은 전부문에서 뛰어난 기량을 과시하며 소속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어 강력한 후보였으나 MVP(최우수선수)에 신인상까지 독차지하는 게 무리라는 여론에 따라 MVP에 만족해야 했다. 문경은은 국내 선수로는 처음으로 시즌 1천득점을 돌파하고 3점슛 1위에 오르는 등 개인성적이 두드러졌으나 불행하게도 소속팀이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하고 하위권으로 탈락하여 신인왕 꿈을 단념해야했다.
이때 기자단 투표서 주희정은 32표, 이상민은 5표를 얻었다.
이규섭 작년 12월 교육문화회관에서 2000년 2월 대학 졸업반 선수들을 대상으로 열린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삼성 유니폼을 입고 함박웃음을 터뜨린 이규섭은 7월 10일 끝난 프로농구 Summer Camp에서 게임평균 30점이 넘는 고득점 행진을 펼치며 최고의 기량을 과시했다. 신인과 2진급 선수들이 벌인 대회지만 사실상 MVP감이었다.
지난 1월 농구대잔치 고별무대서 왼쪽 발목이 접질리는 부상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프로로 옮겨온 이규섭은 줄곧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다져왔다. 덕분에 대학시절보다 체중이 10kg이나 늘어나 100kg에 육박하지만 용병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선 더욱 늘릴 계획이다. 이규섭은 골밑부터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슛감각이 탁월한데다 유연한 피벗 플레이로 당장 삼성의 주전 파워 포워드로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
골밑에서 밀리면 외곽으로 돌고 아직 체력이 모자라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위력을 더하고 있다. 그의 경쟁상대는 SK 임재현과 LG 이정래 등이 손꼽힌다. 대학시절부터 중앙대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 명성을 떨쳐온 임재현은 입단하자마자 황성인의 입대로 주전자리를 이미 확보해둔 상태로 이번 Summer Camp에서도 제몫을 톡톡히 했다.
또한 예상을 뒤집고 전체 7순위로 LG 유니폼을 입은 이정래도 부상에서 벗어나 대학시절의 부진을 털고 쾌조의 3점슛을 구사하며 은근히 신인상을 탐내고 있다.
하지만 신인상의 전제조건은 ①팀내 주전확보 ②팀성적(최소 플레이오프 진출) ③개인 성적 ④행운 등이 따라주어야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으로 역대 수상자들은 한결같이 지나친 부담감이나 조바심은 오히려 장애가 될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