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5일 주현절 후 다섯째 주일]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권은영]

20230205 살림교회 주일공동예배(주현절 후 다섯째 주일)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사58:3-9a/ 고전2:6-12/ 마5:13-20

최근에 “브로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을 했고, 송강호, 강동원, 아이유, 배두나가 출연했습니다. 소영(아이유)이 자신의 아기를 베이비 박스 앞에 버려둔 것을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가 팔 목적으로 몰래 데려갑니다. 다음 날, 아기를 다시 보러 온 소영은 아기가 시설에 없다는 것을 알고 경찰에 신고하려 합니다. 그런 소영에게 상현은 아기를 잘 키울 적임자를 찾아주기 위해 데려간 것이라고 변명합니다. 이 영화는 세 사람이 아기의 양부모를 찾는 과정에서 가족에게 버려졌던 자신들의 상처와 아픔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은 늘 빚 독촉에 시달립니다. 부인과 딸이 있지만, 가장의 역할을 못한 그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동수는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만 남기고 자신을 보육원에 두고 가버린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소영은 청소년 시절 가출한 이후로 성매매를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부모의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소영은 이제 엄마가 되어 자신이 아기를 버려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기를 좋은 값에 팔겠다고 말은 하지만, 아기가 행복하게 자라기를 그들은 진심으로 바랍니다. 자기들이 겪은 비극이 아기에게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양부모에게 아기를 보내기 전날 밤, 상현은 소영에게 아기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묻습니다. 할 말이 없다는 소영에게 상현은 하다못해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이라도 하라고 합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소영은 그 방안에 있는 모두에게 말합니다. “상현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동수야, 태어나줘서 고마워.” “우성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소영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살면서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 어디서도 자기 존재가 환영받는다고 느껴본 적 없는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따뜻한 말이었습니다.

소영이의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에 전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몸을 상해가면서까지 가혹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성향이 있습니다. 저는 애정과 존중의 욕구가 너무나 강합니다. 내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인정과 평판이 너무나 중요한 사람입니다.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채워지지 않는 애정과 존중의 욕구 앞에서 제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고 혐오해왔음을, 그것이 깊은 상처가 되었음을 영화를 보면서 알았습니다. 그냥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말은 제게 치유와 회복의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혐오를 지니고 있습니다.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은 사라지지 않고 상처가 되어 우리의 몸과 마음 안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안전과 생존의 욕구, 힘과 통제의 욕구, 존중과 애정의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으면,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는 이것들을 채우기 위해 행복을 위한 정서 프로그램을 가열차게 돌립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우리의 욕구가 채워질리 만무합니다. 좌절 속에서 우리는 다시 자기혐오로 돌아갑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감정으로 괴로워하고 있고, 그 감정 밑에 어떤 욕구가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 감정이 왜 올라왔는지에 대한 수많은 이유에 대한 생각을 잠시 멈추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만나는 것이 나 자신을 만나는 첫 걸음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힘들게 눈물콧물 빼가면서 집단 상담과 춤 테라피, 꿈 작업을 하는 이유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만날 때는 그 감정을 끝까지 파고 들어가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영혼의 어둔 골짜기 속으로 끝까지, 끝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영혼의 골짜기는 자기 자신만의 하데스, 죽음의 지하세계입니다. 하데스 앞에서 우리는 엄청난 저항감이 일어납니다. 보통 8살 이후로 굳어진다고 하는데, 어릴 때부터 반복해왔던 행복을 위한 정서 프로그램으로 돌아가 절대 변하고 싶지 않도록 마음이 굳어지곤 합니다.

그런데 나 자신을 온전히 만나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만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깊이 만나려면, 먼저 사랑과 은총의 샤워를 충분히 받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영에 접촉되어서 우리 안에 소금과 빛이 있음을, 바로 우리가 소금이고 빛이라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과 은총을 받고 자유로워진 후에야 하데스가 보입니다. 자기를 만나는 이 두 가지 길은 분명 가는 방향이 다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렵지만, 이 다른 두 길을 동시에 가야합니다.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에서 토마스 키팅 신부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성장은 우리 자신의 근본적인 선함 안에 있는 믿음 위에 세워진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초월적 잠재력을 가진 존재 안에 있는 선함이다.” 우리의 내면 작업과 영적 수련을 하는 근본 바탕은 바로 우리 존재 안에 있는 근본적인 선함, 즉 하나님의 신성함입니다. 자기 자신을 만나는 영적 여정의 모든 순간들이 하나님의 선함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믿음이 없이는 우리는 성장하고 깊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 존재의 바탕은 우리를 신성하게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선함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사회와 학교, 가정에서조차 태어나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우리 존재의 선함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합니다. 정글 같은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존재보다는 행위에 초점을 맞춰 살아가게 됩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의로운 행위를 하라고 장려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마5:16)” 이 말씀을 근거로 삼습니다. 이 말씀만 떼어놓고 보면, 그렇게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본문은 13절부터 시작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행위는 결코 존재에 선행할 수 없습니다.

원형심리학자 제임스 힐만은 “그 이미지에 매달리라(Stick to the image).”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이미지가 비유나 상징일지라도, 이미지를 특정한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친구가 이해해달라고 소리칠지라도, 그 사람은 해석받길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지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기대를 내려놓고 이미지가 이끄는 깊이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영혼의 자리로 내려가게 됩니다. 이미지에 잠재적인 차원이 있다면, 그것은 무한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이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미 소금과 빛에 관한 고정관념이 있다면, 제임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욕망과 욕구가 의로운 종교인의 옷을 입고 교묘하게 변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를 기울여 살펴야 합니다. 아울러 소금과 빛의 이미지를 어떤 해석도 하지 않고, 그저 이미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윤리적 행동을 촉구하는 의도라기보다 우리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려주려는 의도로 주님께선 이 본문을 말씀하셨습니다. 16절의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라’는 말씀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인위적인 빛을 만들어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빛으로 내주하시는 주님을 우리의 온 존재를 통해 드러내라는 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거짓자기는 우리가 누구이고,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인식하는 방식입니다. 거짓자기는 환영입니다. 의지의 힘으로 일들을 완성하려 애쓰는 것은 거짓자기를 강화할 뿐입니다. 의지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행위는 노력이 아닌 동의입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있는 것들을 동의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행위라기보다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놓아둔다.’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여기서 말은 곡식의 양을 잴 때 사용하는 그릇모양의 용기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거짓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인식하지 않으려면, 날마다 우리 안에 켜져 있는 등불이 등경 위에 있어서 마음의 모든 것을 비추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빛 안에서 보이는 모든 것에 의지를 내어 동의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순명함으로써 우리는 보다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다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있는 당신의 빛을 따라 온전한 자기를 찾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