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번 출간된 세번째 평론집 『이면의 시학』에 수록된 김옥종 시인의 글 일부를 올렸습니다.
"바다에서 체화된 삶의 절실한 언어들 -김옥종 시집 《민어의 노래》중심/ 시와사람 2021년 봄 99호 발표
화자의 전언으로 들려주는 시 속에는 바다 물고기를 통해 날 것 같은 언어가 삶의 비의와 더불어 감칠맛 나는 향토성을 자극한다. 그중 시적 대상인 민어는 서, 남해안 쪽에서 즐겨 먹는 바닷고기이다.
고사리 장마가 지나고 난 바닷길
깊게 패인 여울물 소리에 새우떼의 선잠을 깨우는
밴댕이와 알 품은 병어들의 놀이터가 돼버린 전장포 앞바다에서는
서남쪽 흑산해에서 진달래꽃 피기를 기다렸다가
뻘물 드리우는 사리물 때를 기다려
뿌우욱 뿌우욱 부레로 내는 속울음으로
내 고달픈,
고향에 다다른 칠월의 갯내음을 아가미로 훑는다
마늘 뽑고 양파 캐어 말리던 늦은 오후,
구년은 자랐을 법한 일 미터의 십키로짜리 숫치를 토방에 눕히고
추렴하여 내온 병쓰메*에 네 등살은 막장에 얹어 먹고
목살은 묵은지에 감아먹고 늙은 오이짠지는 볼 살에 얹어 먹고
고추 참기름 장에는 부레와 갯무레기 뱃살을 적셔먹고
갈비뼈와 등지느러미 살은 잘게 조사서
가는 소금으로 엮어내는 뼈다짐으로 먹어도 좋고
내장과 간은 데쳐서 젓새우 고추장에 볶아내고
쓸개는 어혈이 많아 어깨가 쳐진 친구에게 내어주고
아랫 턱 위에 붙어있는 입술 살은 두 점 밖에 안 나오니
내가 먹어도 될 성 싶은
깊은 고랑 주름살에도 꼬리뼈 살을 긁적거리고 있노라면
봉굴수리잡* 옆의 대실 개복숭아는 제법 엉덩이가 빨갛다
세월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
민어 몇 마리 돌아왔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새우 놀던 모래밭을 파헤쳐
집 지을 때부터 플랑크톤이 없던 모래밭에
새끼를 품어내지 못한 오젓, 육젓이 밴댕이를 울리고
깡다리를 울리고
병어를 울리고
내 입맛 다실 갯지렁이도 없는 바다에 올라 칼끝에 노래하던
민어의 복숭아 빛 속살은 다시 볼 수 없으리라
*병쓰메: 2홉짜리 작은 소주. 일본말 빙즈메에서 온 말.
*봉굴수리잡: 봉굴저수지 옆에 있었던 수리조합의 준말.
-<민어의 노래> 전문
민어가 자주 출몰하는 ‘전장포 앞바다’와 시인의 태생지일듯한 섬의 환경을 상상해 본다. 시인이 태어나 성장한 시간이 온통 집약되어 있는 ‘전장포’는 전남 신안군 임자면을 아우르는 바다 물길이자 삶의 터전임을 알 수 있다. 사철 푸른 바다와 거친 파도가 일상처럼 몸에 밴 생존을 위한 험난한 시간들을 기억 속 문장으로 체현體現한 것이다. 농촌이나 어촌이나 보릿고개라는 고달픈 계절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농경지가 부족한 섬에서의 절박한 그 계절을 넘기기 위해 고사리를 뜯는 장마를 지나 한참을 더해야 바다를 둘러싼 산 능선에 진달래 꽃이 터졌을 것이다. 그러고도 한 동안 바닷가 사람들에게 배고픔은 금방 해소되지 않는다. ‘조금’이 한참을 지난 뒤에야 찾아오는 “뻘물 드리우는 사리물 때를 기다려/ 뿌우욱 뿌우욱 부레로 내는 속울음으로/ 내 고달픈,/ 고향에 다다른 칠월의 갯내음을 아가미로 훑는다”는 사리물 때는 밀물과 썰물의 차가 최대가 되는 시기로 만만치 않은 바다의 높은 파고를 넘어야만 그토록 기다리던 민어가 돌아온다. 민어를 통해 곤궁한 삶을 해소할 수 있었던 전장포 바다가 화자의 유년기 고픈 배를 가득 채워준 바다였다. 시적 대상으로 기억에 남은 ‘전장포’의 바다는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치열한 각축장이었고, 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도보다 더 크게 울부짖어야만 했던 섬사람들의 비명 가득했던 장소로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3연으로 아우러진 ‘민어의 노래’는 시인이 지금껏 살아온 회한과 동경이 교차하면서 아련한 울림으로 교차한다. 한없이 순한 사람들이지만,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맞서야만 했던 바닷사람들의 슬픔을 탁본한 듯한 중저음中低音의 문장이다. ‘전장포’ 바다가 ‘조금’과 ‘사리’로 반복하여 변주되지만, 바다의 본성을 잃지 않듯 긴 세월의 부침을 굳건하게 버텨낸 바닷가 사람들의 비말飛沫같은 언어들을 형상문자로 복원한다. 1연의 아련한 기억 속 바다는 잊을만하면 도지는 통풍만큼이나 아픈 향수처럼 애틋함이 묻어 있다. 어린 눈으로 체험한 실상에서 육화한 삶은 위중함을 깨닫게 한다. 2연에서는 토속적인 민어 요리 방법을 보고 자란 섬사람들만의 정겨운 풍경을 재현하고 있다. 그 언술 안에서 서정시의 정경을 보여주는 인정미 가득한 “쓸개는 어혈이 많아 어깨가 쳐진 친구에게 내어주고/ 아랫 턱 위에 붙어있는 입술 살은 두 점 밖에 안 나오니/ 내가 먹어도 될 성 싶은/ 깊은 고랑 주름살에도 꼬리뼈 살을 긁적거리고 있노라면/ 봉굴수리잡* 옆의 대실 개복숭아는 제법 엉덩이가 빨갛다”는 묘사만으로도 시적 상징을 초월한 완경이다. 민어를 맛깔지게 먹는 방법처럼 사람 사는 데 있어 끈끈한 인정머리가 배제된다면 시의 본령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 3연 아름다운 기억 속 전장포 앞바다도 예전 같지 않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다. 과거 추억 속 아름다운 ‘전장포 앞바다’의 변해버린 현실 앞에서 돌이킬 수 없다는 비애가 가슴에 슬어 든다. 그 체념 같은 “민어의 복숭아 빛 속살은 다시 볼 수 없으리라”라는 말속에는 미래의 모두가 감당해야 할 환경에 대한 부채負責란 것도 암시하고 있다.
울 큰 엄니 사리 물때에
눈이 가슴팍 까지 차오르던 날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꿩전을 부치셨다
생이 몇 바퀴 돌고서야 꼬순내 나던 꿩전이
명태 대그빡으로 만든 것임을 알았다
하릴없이 유년의 뒷그림자
녹슨 칼로 닦아내고
비계의 육즙 옆에 얼큰하게 드러눕던 밤
울 큰 엄니 꼬부랑 할매 되어
돌고 돌아오던 길가에서
기억을 꼬집고 가차이 서있는 보름달 아래에
콩대 타는 소리 튀어 오르고
휘어진 냉길 눈물샘으로 불어내며
명태 대그빡 대신 꿩 살을 다져 전을 부친다
대실 잔등에서 북서풍의 설향이 물안개처럼 흩날리고,
냉골인 구들장을 뎁혀 눅눅해진 시절을
올 곱게 하고 싶은 날에
버스 끊긴 정류장 앞은 달이 차고 넘쳐
새벽으로 번진 은하수 길 따라
명태 자리 별의 대그빡을 조사서
전을 부친다
-<명태 대그빡 전> 전문
세월은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생사를 갈라놓는다. 기억에만 남아있는 사람들의 추억은 잊을만하면 울컥 되살아나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그래서 흔히들 문학은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라며 문자를 새겨 영원성을 갈망한다. 김옥종 시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과거라는 찰나도 시적 발현을 거쳐 사라지지 않는 생명성으로 양각된다. 그것이 시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위안일 수 있다. “울 큰 엄니 사리 물때에/ 눈이 가슴팍 까지 차오르던 날/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꿩전을 부치셨다”며 회상의 단초를 드러낸다. ‘엄니’라는 말부터가 그리움이 묻어 시적 정감을 배가한다. 시인의 생애에서 은근한 사랑의 화수분이 되어준 그 ‘엄니’가 살아온 시간은 물리적으로 아득하지만, 정신적인 거리는 예전과 동일한 지근거리에 있다. 그 거리는 팍팍한 현실을 무한 애정으로 보듬어 주던 어머니의 가슴이자 세상을 살아가며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포옹의 시간으로 환기된다. 시인은 시간 여행을 통해 수시로 과거 속 ‘엄니’를 회상할 것이다. 회상 속에서 ‘엄니’의 손맛으로 기억하는 ‘꿩전’이란 것이 나이 들어 알게 된 ‘명태 대그빡 전’이었다. 명태 ‘대그빡’이라는 거친 어감을 맛깔진 ‘꿩전’으로 에둘러 말한 것마저 어머니라는 정감으로 품어낸 세상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신안군의 다도해인 섬에서 ‘꿩전’의 유래는 빈궁한 삶을 견뎌내게 한 궁리인 것이다. 한 끼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버려진 명태 대가리로 곤궁한 시기를 극복한 어머니의 사랑이 혼곤하게 밴 추억으로 그 섬에 살던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소싯적 아이의 꿈같은 시간 속에 각인된 고향과 어머니의 사랑으로 넘긴 한 끼지만, 절박한 현실을 넘기는 데는 많이 부족했다. 시인은 바닷고기를 조리하는 직업인으로 살며 어머니가 베푼 살가운 정을 음식 속에 듬뿍 담아내고 있다. “울 큰 엄니 꼬부랑 할매 되어/ 돌고 돌아오던 길가에서/ 기억을 꼬집고 가차이 서있는 보름달 아래에/ 콩대 타는 소리 튀어 오르고/ 휘어진 냉길 눈물샘으로 불어내며/ 명태 대그빡 대신 꿩 살을 다져 전을 부친다”는 슬픔 같은 현실에서 먹고살기 위해 고단한 노동을 실천해야만 한다. 생존의 고통이 가슴까지 차오를 즈음이면 주저 없이 어머니가 부쳐낸 “명태 대그빡 전”이라는 시 제목처럼 정색하며 음미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달픈 세월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새벽으로 번진 은하수 길 따라/ 명태 자리 별의 대그빡을 조사서/ 전을 부친다”라며 어머니가 베풀던 사랑을 실천해야 할 삶의 덕목으로 기억한다. 욕망이 앞선 사회에서 이타적인 사랑을 볼 수 없는 요즘 순정한 마음들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 시절 가슴으로 나눈 인정을 삶의 중심으로 불러내 형상화한 김옥종 시인의 적층 된 과거가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은 그만큼 요리사란 삶에서 특별함으로 실천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