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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자 칼빈이 가장 염려한 것이 바로 ‘오직 믿음으로’라는 교리가 이런 식으로 오해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는 가르침은 예정설과 견인설을 주장하는 칼빈의 견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원파와 달리 그는 한 번 구원, 영원한 구원의 성립은 오로지 철저하게 중도탈락 없이 끝까지 성화의 삶이 전제되었을 때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 번 구원 받으면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위와 거룩한 삶이 없어도 구원이 보장받는다는 말은 칼빈의 견해에 근거한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전혀 성립될 수가 없다."
‘칼빈도 무조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강추>박영돈 이민규 교수,
‘칼빈도 무조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작성일: 2월 11, 2015 글쓴이: shekinah
“거룩함 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주장은 종교개혁 가르침 왜곡한 것”
“신자는 칭의와 성화가 성령 안에서 긴밀히 결합되어 거룩한 열매 산출해야”
이번 세월호 사태로 인해 구원파의 교리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그들의 구원 교리에 의하면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얻으면 더 이상 죄를 회개할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 후에는 어떻게 살아도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순진한 교인들을 홀리기 쉽습니다. 어떤 교인은 기존 교회에서 몇 십 년 신앙생활을 해도 누리지 못했던 구원의 확신을 이런 구원파 교리를 통해 단번에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은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방종에 빠지게 하며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 사이비 구원론은 구원파 교주와 그 일가와 측근에게서 볼 수 있듯이 양심이 화인 맞은 괴물 같은 인간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개신교 구원의 교리가 얼마나 괴이하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보는 많은 교회에서 전하는 구원의 교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김세윤 박사가 얼마 전 그의 강의와 책에서 대다수의 한국교회도 사실상 구원파적인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세윤 박사의 진단을 100%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1. 잘못된 구원론에 빠진 한국교회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거룩함의 열매가 없어도 믿기만 하면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심각한 복음의 변질입니다.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근원에는 잘못된 구원론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교인들이 변화되지 않는 문제는 우선적으로 구원론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거룩함이 없어도 무조건 구원받는다는 생각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요. 성경은 물론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에도 이런 사상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히 12:14). 이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고전 6:9-10, 갈 5:21, 엡 5:5). 주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주를 본다고 했습니다. 죄에서 떠나 순결하고 거룩하지 못한 이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거룩함이 없어도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받는다는 생각은 성경말씀에서 완전히 벗어날 뿐 아니라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완전히 왜곡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가장 염려한 것이 바로 ‘오직 믿음으로’라는 교리가 이런 식으로 오해되는 것이었습니다.
2. ‘오직 믿음으로’에 대한 이해
칼빈은 우리의 행위나 거룩함에 근거해서 구원받는다는 주장을 배격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반드시 거룩함의 열매를 산출한다는 점을 동시에 역설합니다.
믿음으로 신분이 의롭게 되는 것과 실제적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영원한 띠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의롭게 하면 동시에 그를 반드시 거룩하게 하십니다. 또한 믿음은 끊임없이 회개하는 삶으로 이어집니다(기독교강요 3.1.1).
끊임없이 회개함으로 거룩함을 이루어가지 않는 이들은 곧 부패해져 은혜에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 안에는 구원의 확신과 함께 두려움과 떨림이 공존해야 합니다. 이 두려움은 구원의 확신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종과 게으름과 헛된 자만을 막아줌으로 구원의 확신을 더 온전하고 견고하게 합니다(기독교 강요 3. 2. 22).
이런 칼빈의 가르침은 히브리서의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히브리서에는 환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교인들에게 믿음의 확신과 위로를 주는 말씀과 함께 시험을 당해 믿음을 저버릴 수 있는 배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씀이 공존합니다. 교인들을 위로하는 말씀과 두려운 경종의 말씀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습니다. 이 두 종류의 말씀이 신앙생활에 요긴합니다.
3. 위로와 두려움의 양면성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위로와 확신을 주는 말씀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진리를 알고 은혜를 입고 배도하면 다시는 회개할 수 없다는 히브리서의 말씀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는 경고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위험을 두려워하며 경계하게 됩니다.
이런 두려움이 있어야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두려움이 없는 구원의 확신은 우리를 방종에 빠지게 하며 결국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거룩한 두려움 없이 확신으로만 충만한 사람, 거룩하게 살지 않는데도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이는 망할 사람입니다.
마귀는 거짓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확신을 전혀 흔들거나 공격하지 않고 더욱 강화시킵니다. 그래서 자기기만에 빠져 확실하게 망하게 합니다.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서 믿었기에 구원받았다고 굳게 확신하는 것은 마귀가 준 거짓 확신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마귀적으로 왜곡된 구원의 복음을 통해 마귀가 심어준 거짓 구원의 확신에 사로잡혀 있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은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며 자신의 구원의 여부를 염려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확고히 하려는 경각심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거룩함의 열매가 없는데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한다고 성경이 분명히 말씀했는데 거룩함이 없으면서도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자기 착각, 기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치는 말
내가 참된 믿음을 가졌는지, 내가 참으로 구원받았는지는 오직 거룩함의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거짓 확신에 푹 빠져 신앙 생활하다가 멸망하는 것보다 괴로울지라도 자신의 구원을 점검하고 구원을 의심해보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것이 온전한 확신에 이르는 길입니다.
물론 참으로 구원받은 신자들도 자신이 이룬 거룩함이 너무 미흡하고 보잘 것 없기에 그것만 의지해서는 자신의 구원을 자신할 수 없습니다. 거룩해질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합니다. 자신의 죄인 됨과 부패성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거룩해질수록 자신의 의로움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의 의로움과 긍휼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신자들은 이처럼 점점 더 낮아지면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에는 칭의와 성화가 성령 안에서 긴밀하게 결합되어 거룩함의 열매를 산출하는 것입니다.
-박영돈 교수(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기독교개혁신보 2014년 7월 9일 기사
첫댓글 사실 진성칼빈주의는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결코 타락하지 않는다고 하죠. 그렇게 함으로써 고의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방지하려합니다. 문제는 누구든 신앙이 연약할 때 타락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때 칼빈주의는 “당신은 선택받지 못했어”라는 절망감을 준다는 겁니다
절망감 때문에 그런 거군요
오늘날 장로교는 진성 칼빈주의조차 아닙니다. 타락을 해도 구원이 유지된다고 가르치죠 사실상 구원파랑 뭐가 다른지..
루터의 수동적 의를 보완한 분이 칼빈이라고들 하죠. 루터는 야고보서를 정경에서 빼자고 했지만 칼빈은 야고보서를 정경으로 받아들였죠.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행위 없이 의롭다함을 받을 수도 없다”. 칼빈이 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교회가 행함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행위구원 신율법주의라고 비판하는 순간 그들은 존 스토트, 로이드 존스 등 진성 칼빈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장로교의 아버지인 칼빈을 공격하는 꼴과 다를 바 없다 생각됩니다. 칼빈도 행함을 강조했기 때문이죠. 문제는 그가 이중예정이하는 잔혹한 교리를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이중예정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ㅎㅎ
@하나님만을 의지함 절대주권에 의한 선택과 유기입니다. 태어나기 전에 천국행과 지옥행이 무조건적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이죠.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닌데 영원히 불고문을 받아야 할 운명이라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알미니안이나 웨슬리안들이 그런 하나님은 마귀보다 더 악하다라고 하며 칼빈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것이죠
@겸손3 선택받은 자는 예지예정으로 결정되는 거 아니었나요?
@겸손3 "태여나기전에 이미 천국과 지옥이 정해졌다"라는 주장은, "모든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말하는것 같은데...그렇다면 같은이치로, 누군가가 타의(타인에 자유의지의 선택)로 세상에 태여났을경우,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체가 어떻게하면 자신에 선택이 무엇을 어떻게할지까지 다 아시는데, 왜 그 존재에게 최선,최대,최고의 방법으로 하나님(예수님의 십자가)께 돌아오는길을 주시지 않으시겠읍니까?!!.
결국엔, 말장난?이라는 생각을 저는 개인적으로 하게 되네요...🤔
@evergreen 그냥 사람에 기준과 관점으로, 단순한것을 학문적이라는 미명하에 복잡?하게 꼬아놓은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evergreen 예지예정이란 하나님이 누가 은혜에 반응하고 누가 은혜를 거부할지 미리 알고 그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셨다는 교리입니다. 지극히 성경적이죠. 반면 칼빈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서 그 어떠한 반응도 보시지 않으신 채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신다고 합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함 예지예정으로 선택을 받는다고해도 누구든지 사도바울에 고백을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고 알고있읍니다.
@evergreen 그렇긴 하죠.. 음 근데 그러며눈 예지 예정을 통해 이미 하나님 자기 자신에게로 끝까지 안 돌아오는 사람들까지 다 알고 계시는 거 아니에요?
@겸손3 동의 합니다 ^^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
@하나님만을 의지함 그건 하나님만 아시는 비밀?같은것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 하나님에 자녀들도 주님앞에 설때까지 주님을 절대적으로 붙잡고 예수님안에 거해야 하는것이잖아요^^
@하나님만을 의지함 하나님은 아시지만 사람은 죽음을 맞이할때까지(하나님자녀, 악인 모두포함) 아무도 모르잖아요...(로마서에 바로의 경우는 지나간 역사이고 동시에 지금에 우리에게 교훈이되며, 하나님에 절대주권을 깨닫게 하시는 방법,방편?인 경우인거 같구요...)
@evergreen 아아 모르는 거였군요. 아 ㅎㅎ 그렇구만용
@하나님만을 의지함 지금 내가 예수님안에 거하고 있지만 끝까지 붙어있어야 하잖아요^^
그리고 동시에 지금현재에 악인들도 그들에 죽음이 실제가 될때까지는 기회가 있는거잖아요^^
오해는 없으시길...^^
@evergreen 아멘^^
칼빈이 한 번 구원 영원한 구원이라고 주장했는데 오로지 철저하게 중도탈락 없이 끝까지 성화의 삶이 전제 되었을 때만 가능하다고 말했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요.
그런 뜻이라면 굳이 어렵고 오해되기 쉬운 이런 말을 왜 했을까요?
끝까지 성화의 삶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하니 끝까지 가봐야만 구원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을 받은 사람이 영원히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주님 다시 오실 때나 사용가능한 말이 됩니다.
그러니 지금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절대 안 되겠지요.
그러면 무슨 말입니까?
지금 이런 교리를 주장한다고 하는 것은 혼란을 부추길 목적이든지
아니면 애초에 글쓴이가 그들의 주장을 옹호하려고 전제를 슬쩍 집어넣은 것이라는 의문도 듭니다. 그러니
그런 전제가 없거나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의롭게 하면 동시에 그를 반드시 거룩하게 하십니다"=(기독교강요 3.1.1)...???
위에 칼빈에 주장은 왜곡(한쪽으로 치우침) 됐다고 사려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의롭게 하시면 동시에 그에게 거룩하게 살아갈수있는 도우심(성령님)을 반드시 주셔서 반드시 거룩을 이룰수있는 힘과 능력(자유의지에 선택을 통해서)을 주십니다" 가 맞다고 사려됩니다!!!^^